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50화 (50/367)

049-06-두유 노우 갱완 리?

김준은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눈부터 감는 경완을 보며 어이없는 기분으로 웃었다. 정말 괴짜도 이런 괴짜가 또 없었다.

승객들이 들어왔다. 한국행 비행기인데도 동양계만이 아니라 백인, 라틴계, 흑인들도 들어왔다. 소위 한류가 전 세계로 퍼지며 한국에 대한 관광도 흥미가 높아지는 상황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고 태평양 위를 지날 때였다. 모두 시차 조절을 위해 잠에 들거나 시차 따윈 조까라며 기내에서 제공되는 영화를 감상할 때쯤.. 일이 터졌다.

“프리즈!”

“꺄아아악!”

“쎳떠 퍽 업!”

교대로 깨어나 경완을 감시하고 있던 톰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둘러 김준을 흔들어 깨웠다. 그 바람에 사이에 끼어있던 경완도 잠에서 깨어 인상을 찌푸렸다.

“아씨, 뭐예요.”

경완이 눈을 감은 채 비몽사몽으로 물어도 두 사람은 경완의 가슴팍 앞에 머리를 모은 뒤 속닥속닥 영어로 뭐라고 대화를 나누었다.

경완이 한숨을 내쉬며 초탈한 듯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대체 뭐냐고요.”

“어.. 경완 씨..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모르겠는데?”

김준이 목소리를 죽였다.

“하이잭 같습니다.”

“? 그게 뭐예요?”

경완이 알아듣질 못하자 김준은 한숨을 내쉬며 설명해주었다.

“비행기 납치요.”

“흐음.. 어떻게 할 거예요?”

“곤란한 상황입니다.”

정말 곤란한 상황이었다. 넉 달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이렇게 곤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땐 경완을 감시하고 만일의 상황에 그를 제압하기 위한 요원들이 여러 명 배치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뢰관계가 쌓이고 경완이 말썽을 부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신뢰관계를 망가뜨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경완에 대한 감시 및 관리를 김준과 톰, 단둘에게 맡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

과연 톰과 김준 둘만으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경완이 물었다.

“막 조종석도 장악해서 빌딩에 처박을 정도예요?”

그 말에 김준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불쾌하기도 했고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911테러는 모든 미국인의 마음에 상흔을 남긴 사건이었다.

경완은 김준이 말을 하지 않자 상황이 심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래서 말했다.

“서둘러야겠네요.”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데 하이잭킹을 당해 비행기 테러로 마감한다고? 웃기지 않는 농담은 사절이었다.

경완의 말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죠.”

그때 총소리가 들려왔다.

탕!

“꺄아악!”

“돈 무브!”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아니 검문검색은 어떻게 통과했데?”

총소리에 경완이 황당해할 때 김준이 살짝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싯 다운!”

하이잭 범인이 그런 김준을 보며 소리를 질렀고 김준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플라스틱 총입니다.”

“그게 돼요?”

“신뢰성에는 문제가 있지만 살상력은 확실합니다.”

3D 프린터로 뽑아낼 수 있는 플라스틱 총은 다양한 설계가 가능했다. 조립형은 물론이고 탄피를 쓰지 않는 식이라면 검문검색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장난감처럼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 경우 탄자(彈子)로 쓸 금속도 반입이 쉬웠다. 탄약의 형태가 아닌 탄자만으로는 그것이 흉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할 테니까.

김준이 말을 이었다.

“모양을 보니까 네 발이 한계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 정만 소지하고 있을 것 같진 않고 범인의 수도 보이는 것만 최소 3명입니다.”

플라스틱 총을 최소 2자루를 챙기고 있다고 가정하면 2x4x3 최대 24발의 사격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경완이 물었다.

“우리는 무기 없어요?”

“애석하게도...”

“아니! 미국인이라면서 총도 한 자루 안 가지고 다녀요?”

“한국은 총기소지 금지 국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초기에 나온 말이기도 했지만 경완에게 총기를 탈취당했을 경우의 시나리오를 점검해 봤는데 차라리 총기를 소지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결과도 있어서 이렇게 경완을 한국으로 호송할 때는 총기를 놔두고 다니게 된 김준과 톰이었다.

하지만 경완이 듣기에는 기가 막힌 소리였다. 무슨 미국의 수사기관이라는 것들이 총기 한 정 가지고 다닌대?

경원은 그러한 황당함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어이가 읍네.”

김준이 대꾸했다.

“한국 경찰들도 총기를 안 쓰잖아요?”

“적어도 테이저건은 들고 다니거든요.”

“삼단봉 정도는 저도 있습니다.”

“그거라도 줘 봐요.”

“.. 왜요?”

“제가 앞에서 어그로 끌어줄 테니까 얼른 제압해야죠. 이대로 시간만 주다가 조종실 제압당하고 조종사들 다 죽이고 빌딩으로 덴노 헤이카 반자이! 하며 가미카제 해버리면 책임질 거예요?”

“.. 저놈들 일본인 아니잖아요?”

“덴노 헤이카 반자이나 알라 후 아르바크나 미친 건 매한가지잖아요.”

“···.”

미친놈이 누군가를 두고 미친놈이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니 참으로 신선한 느낌이었다.

“암튼 빨리 줘보기나 해요.”

경완의 재촉에 김준은 톰과 상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기인 삼단봉을 줄 수는 없다고 했다. 배가 나온 톰도 무기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뢰성이 떨어지는 플라스틱 총이라지만 명색이 총을 상대로 삼단봉 같은 냉병기를 써야 하는 좆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맨손보다는 뭐라도 손에 들고 있는 편이 나았다.

“참. 미스터 리가 나서서 어그로를 끈다는 발상은 좋다고 하십니다.”

톰의 말을 옮기는 김준을 보며 경완은 짜게 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경완을 향해 톰이 힘내라는 듯이 씨익 웃으며 엄지를 쳐들었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잊지 않는 저 태도는 베테랑의 짬밥인가?

뭐 아무튼 톰의 제안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본인보다야 경완 같은 범죄자가 어그로를 끄는 편이 나중에 뭔가 문제가 생겨도 뒤처리하기가 편할 테니 말이다. 자신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경완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총에 맞든 말든 나름대로 잘 포장되어서 '귀휴 중이었던 재소자, 테러를 막다!'같은 언론 플레이를 해주면 감형이든 포상이든 얻어낼 수 있는 구실이 되어주니까.

그렇다고 경완이 그걸 노리고 나선다는 말은 아니었다. 광신도 새끼들과 텐노 헤이카 반자이에 강제 동참하고 싶진 않을 뿐.

“그럼 제가 어그로를 끌 테니 나머진 알아서 잘해봐요. 무슨 일 생겨도 난 책임 안 질 테니까.”

“그럼 시나리오부터 짜볼까요?”

김준과 경완, 그리고 톰은 비행기 납치범들을 제압할 계획을 짰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계획이 짜인 것은 경완이 전적으로 김준과 톰의 계획에 동의한 바가 컸다.

계획의 골자는 간단했다. 우선 김준이나 톰이 화장실에 간다. 그리고 그동안 경완이 어그로를 끌고 그에게 시선이 쏠리는 사이 화장실에서 나온 김준이나 톰이 범인들의 뒤통수를 삼단봉으로 후려친다.

참으로 어설픈 계획이었지만 원래 급조한 계획이 다 그런 법이었다. 그리고 때론 계획의 정교함보다는 신속함이 중요할 때가 있었다.

세 사람은 범인들이 조종석에 침입하기 전에 얼른 일을 시작했다.

“싯다운!”

김준이 조심스럽게 두 손을 들고 일어나자 복면을 한 범인이 플라스틱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총의 모양은 직육면체를 닮았다. 네 개의 플라스틱 총열에 각각 해머가 달려있어 총을 쏘려면 해당 총열의 해머를 당긴 후에 방아쇠를 당기는, 생각보다 정교한 구조였다.

확실히 일반적인 탄약을 사용하지 않는 총이었다.

총의 구조를 확인한 김준은 안절부절 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토, 토일렛. 플리즈.”

그 말에 그 범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총 끝을 까딱거렸다. 허락의 의미였다.

그때 톰도 손을 들었다.

“미, 미투.”

“쉬트!”

범인은 인상을 쓰면서도 톰까지는 허락해주었다. 문제는 세 번째였다.

“미투!”

경완이 손을 들며 일어나자 범인이 말했다.

“퍽유! 싯다운!”

딱히 미투운동을 혐오해서라기보다는 연속으로 세 번이나 화장실을 요구받다 보니 자신을 놀리거나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 여겨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경완이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항변했다.

“아이 니드 토일레뜨!”

“퍽유! 퍽유! 싯다운! 올 다이!”

범인이 총을 겨누며 외치자 경완이 말을 하며 허리띠를 풀고 지퍼까지 내렸다.

“아이 리얼리 니드 토일레뜨! 아윌 쇼 유!”

“뻑! 뻑! 뻑유!”

범인은 연신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완이 팬티까지 내려서 바닥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정신이 나갔거나 자신을 모욕하려는 것이 아닐까?

범인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아윌 킬 유!”

그때 경완이 허리를 들며 방광에 힘을 주었다. 콜걸을 밤새 홍콩 보냈던 젊음을 증명하듯 세찬 오줌 줄기가 범인의 얼굴로 날아갔다.

“오우! 쒜트!”

탕!

놈은 얼굴, 특히 눈에 오줌줄기가 닿자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총을 쥔 손을 경완이 있는 쪽으로 내밀며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그때 이미 경완은 상체를 수그리며 개구리처럼 놈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총알은 빗나갔다. 안 그래도 플라스틱 총열이라 명중률이 개판인데 눈까지 감고 쏘니 몸을 숙인 경완을 맞출 수 있을 리 없었다.

놈이 정신을 차리는 동안 경완은 두 발로 힘차게 앞으로 전진하고,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다시 허벅지를 당기고, 다시 두 다리로 앞으로 몸을 밀어 먹잇감을 포착한 짐승처럼 신속하게 비행기 납치범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처 바지를 올리지 못해 하물을 덜렁거리며 말이다.

“뻑!”

경완이 욕설을 하는 범인의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범인의 몸놀림은 무한전생자인 경완의 체술을 따라잡기엔 무척이나 일천했다.

경완은 일본의 유술처럼 팔을 비틀어 범인을 쓰러뜨리고 그대로 턱을 밟았다.

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놈이 그대로 기절했다. 턱뼈가 조각나는 격통에 쇼크사하지 않은 것만 해도 용했다.

그제야 경완은 팬티와 바지를 올려 입고 플라스틱 총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본 비행기 납치범들이 경완을 향해 달려들었다.

“킬 힘!”

플라스틱 권총의 사거리가 생각보다 짧은지 급히 달려오는 비행기 납치범들이었지만 화장실에서 슬쩍 나온 김준과 톰이 휘두르는 삼단봉에 후두부를 후려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김준과 톰은 쓰러진 놈들의 품을 뒤져 무기를 빼앗고 승무원과 승객들의 도움을 받아 승객석을 감시하던 세 놈을 포박한 후에 신속하게 조종실로 향했다.

과연 예상대로 조종실에선 두 놈이 인질극을 벌이며 조종사들에게 문을 열라고 협박하고 있었다.

“오픈 업! 올 쉬 윌 다이!”

이미 승무원 한 명이 희생되었는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쉽게 문을 열지 못했다. 911테러 이후 조종석을 빼앗기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게 된 항공사들이 일제히 매뉴얼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뻑!”

그중 후방을 경계하던 한 놈이 다가오는 김준과 톰을 발견하고는 급히 총을 쏘았지만 김준의 사격이 더 빠르고 정확했다.

앉아 쏴 자세로 정확히 머리를 노린 플라스틱 권총에서 네 개의 해머가 동시에 뇌관을 때렸다. 거의 동시에 발사된 네 개의 탄환 중 세 개가 놈의 머리에 맞았고 피와 뇌수를 흩뿌렸다.

역시 한국계. 원딜 한민족의 피가 어디로 가진 않았다.

“꺄아악!”

그 바람에 얼굴에 피와 뇌수가 묻은 인질이 비명을 질렀다.

조종실 문을 열도록 조종사를 협박하고 있던 마지막 범인이 급히 뒤를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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