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56화 (56/367)

055-07-더 빌런 라이징

“굳이 이미 식은 떡밥을 다시 데운다고요? 왜요?”

그 예리한 지적에 김준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되새겼다.

“음..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한 번 맞혀볼까요? 분명 그 초능력 범죄 수사부랑 관련되어 있을걸요?”

“..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야 홍보를 해야 인재를 더 많이 모을 테니까. 저라는 떡밥은 초능력 범죄 수사부를 홍보하기 딱 좋죠. 명백한 증거를 찾기 어려운 초능력 범죄의 경우 독심술만큼이나 수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독심술이라는 것이 딱 봐도 초능력스럽잖아요? 초능력 범죄 수사부에서 사용할만한 능력이죠.”

“....”

“그리고 그렇게 홍보를 하는 이유는 민간 기업이랑 경쟁이 붙어서 그런가? 요새 초능력자 영입이 어려워요? 히어로 좋아하는 미국답게 벌써 민간 히어로 조직 같은 게 나오고 있나 보죠?”

김준은 종종 경완이 무섭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저 통찰력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합니다. 자칭 전미 초능력 협회라는 것이 설립되어서 초능력자를 모집 중이거든요.”

“딱 보니 민간 자본이 투자되고 있는 곳이겠네요?”

“네. 여러 제약회사는 물론 PMC, 유명 제조업, 월가까지 얽힌 단체로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고 있습니다.”

막대한 투자금이 쏠리는 만큼 이 단체는 유능한 마케팅 인재까지 영입했는데 그중 한 명이 저번 대선에 승리한 캠프에서 마케팅 담당을 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과연 높으신 몸값에 어울리게 자극적이며 효과적인 마케팅으로 협회에 가입하는 초능력자의 수를 빠르게 늘리고 있었는데, 그 기본 전략은 당근과 채찍이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대중은 특별한 자를 좋아하지 특이한 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초능력자들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국가가 우리를 이용하고 착취할 것이며 대중들로부터 차별받을 겁입니다!]

라는 식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세상에 우리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임을 홍보해야 합니다! 우리가 저들과 다르지 않고 그저 운 좋게 개성을 얻은 똑같은 사람임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협회에선 초능력 각성의 확인 및 그것의 올바른 사용과 개발에 관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본인이 각성한 것 같으신가요? 부담 없이 전화주세요! 당신도 특별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심과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즉 당근을 제시했다.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끈 것은 자신이 혹시 모를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와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비용이 현재 전액 무료라는 관심 때문이었다. 협회 초기 가입자를 불리기 위한 무료 정책이라 언제 유료가 될지 모르지 지금 당장 가입하라는 것이다.

마치 품절 임박, 할인 임박으로 호갱님의 카드 영수증을 늘리는 쇼핑 호스트와도 같은 수법이지만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기가 미국이기 때문이리라.

“협회에 가입하는 것으로 무슨 제약 같은 게 생기나요?”

“그건 아니지만 결국 협회가 가지게 되는 인적자원 정보가 거기에 투자한 기업들에게 가죠.”

뭔가 특별히 예산이 필요한 경우 국회를 거쳐야 하는 행정기관과는 달리 이런 민간 기업은 경영자나 주주의 의지만 있다면 신속한 투자가 가능하다. 그것을 증명하듯 전미 초능력 협회의 초능력 검사 기술과 노하우는 국가기관에서 참관과 협조를 요청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사실 기업이 흥미 있어 하는 초능력 인재와 저희가 필요로 하는 초능력 인재가 상당히 겹친다는 것이거든요.”

사실 안 그럴 수가 없었다. 단순히 힘이 증가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자. 더 많은 탄약, 더 많은 중무장과 신속한 기동력은 전술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었다. 군대는 물론 PMC에서 군침을 흘릴만했다.

그리고 에스퍼의 경우는 겹치는 범위가 더 넓었다. 개만큼, 또는 그보다 후각이 발달한 능력자는 마약이 범람하는 미국 세관에서 가장 선호하는 인재가 될 것임과 동시에 후각에 관련된 각종 산업, 향수나 화장품,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의약 연구까지 도입이 가능했다.

경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나름 일자리가 있는 게 다행이네요. 저는 또 전미 초능력 협회가 히어로를 만들어낸답시고 빌런을 조장할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을 생각했거든요.”

그 왜 있잖은가?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답시고 배후에서 악을 조장하는 그런 비밀결사 같은 거 말이다. 히어로와 빌런은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라 적대감을 부각할수록 그 필요성이 설득력 있어진다. 마치 빨갱이나 혐한을 부르짖는 극우처럼 말이다.

솔직히 빌런은 히어로가 없어도 되지만 히어로는 빌런이 없으면 그 존재의의를 잃지 않는가? 재해가 없어진 세상에서 소방관이 할 일은 은퇴밖에 없었다.

경완의 말에 김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농담이더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왜요? 설마 진짜 그런 일이 있어요?”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그렇습니다. 전미 초능력 협회처럼 급속도로 몸집을 불려가는 거대 단체가 그런 배후의 악당 같은 짓을 하면 미국, 아니 세계의 악몽이 될 겁니다.”

“에이.. 테러 단체도 초능력자가 있을 텐데 굳이 세계라는 수식어가 붙을 필요가 있나요?”

전미 초능력 협회의 무고함을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세계구급 악당을 자처하려면 넘어야 할 벽이 있다고 말하는 경완의 태도에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골칫거리를 더 안겨주는 심보라니.. 안 그래도 미국 내의 문제만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외국의 초능력 테러리스트까지 고민하기엔 김준은 이제 특별 수사관을 앞둔 수습 수사관에 불과했다. 거기에 대한 고민은 더 높은 직위에 있는 이의 몫이었다.

“암튼, 빨리 가기나 합시다.”

“오! 저기 컵밥 파네요?”

결국 김준은 한쪽에 서있는 푸드트럭을 가리키는 경완의 손에 컵밥을 들려주고 나서야 신속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FBI본부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 즉시 데이비드를 만나 안부를 교환하고 톰의 인도를 받아 차를 탔다. 세 사람을 태운 차는 워싱턴 외곽에 있는 모종의 장소로 향했다.

“무슨 지구방위대 본부로 가는 거 같아서 두근두근하네요.”

“과장은 그만두세요.”

경완의 말에 김준이 대꾸했다. 그냥 인적 드문 도로와 최근에 지어진 창문 하나 없는 직육면체의 건물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그 용도 모를 건물의 외견은 지구방위대같이 꿈과 정의,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무슨 중앙첩보국의 기밀 시설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도 지구방위대라고 하니 감성이 틀려먹은 건지 이쪽을 놀리려고 하는 건지 김준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건물에 자동차가 접근하자 자동인식 기능이라도 있는지 철문이 자동으로 올라갔고 자동차는 중앙의 공터로 진입했다. 내부에서 보니 중국 토루의 건축 개념에 미국 국방성 청사인 펜타곤의 설계를 적용시킨 듯한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외부의 공격에 단단히 방비하고 있었다.

“언제 이런 건물을 지었대요?”

“원래 국방부 소유의 건물인데 이번에 초능력 범죄 수사부를 꾸리게 되면서 같이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돼요?”

“아무래도 초능력 범죄 수사부는 초능력자의 원한을 사게 되니까요.”

안전을 위해서라는 말에 경완이 이죽거렸다.

“그런 말이 나돌면 지원자가 확 줄겠는데요?”

“절대 말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김준이 반쯤 심각한 농담을 하자 경완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초능력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일을 하면서 초능력 범죄자에게 원한을 사지 않을 거라는 순진한 발상을 하는 지원자라면 지능미달로 탈락시키거나 탈락까진 아니라도 예비 고문관으로 예의주시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경완은 여기저기에 있는 CCTV의 시선을 느끼며 김준, 톰과 함께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복도를 지나 어느 방으로 들어가 낯선 이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경완은 눈치 빠르게 그들이 바로 초기에 일어난 초능력 범죄들을 수사해낸 초능력 수사 요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중에 김준이 설명했지만 기존에 경찰이었거나 경비원, 탐정, 그도 아니면 공무원 중에서 급하게 발탁한 이들이라 기본적인 수사절차나 서류작업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초능력 범죄 수사부의 첫 요원이 되는 건 당연했다. 아무리 초능력자라고 하지만 수사나 관련 행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이들을 데리고서 초기의 초능력 범죄에 대응하기에는 업무가 과중했다. 일일이 애송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칠 시간은 없었으니까.

즉, 눈앞의 이들이 초능력 범죄 수사부의 씨앗이었다.

김준은 그들에게 경완을 소개했다. 경완이 손을 흔들었다.

“하이! 나이스 투 미튜!”

그런 경완을 향한 초능력 수사부 제1팀의 시선엔 경계와 호기심, 그리고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아마 그 복잡한 시선의 원인에는 경완이 타국의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미국발 하이재킹을 막은 공로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호기심은 아마 그의 독심술에 대한 것일 테고.

김준이 그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주었다. 아직 능력을 다 말하진 않았지만 경완은 대충 눈치로 그들의 능력을 짐작하며 별명을 붙여주었다.

비염이라도 있는지 코를 자꾸 훌쩍거리는 빈스라는 이름의 라틴계 남성은 개코, 눈을 반쯤 감고 귀를 팔랑거리는 제시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은 돌고래, 짙은 선글라스를 썼지만 눈이 떠있는 시간보다 눈꺼풀에 덮여있는 시간이 더 길어 눈감고 다니는 것 같은 빈스라는 이름의 백인 청년은 부엉이.

그 밖에 몇 명이 더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일단 경완이 소개를 받은 사람은 이 세 사람이 다였다.

경완이 김준의 귀에 속삭였다.

“그래서 이제 제가 뭘 해야 할까요?”

솔직히 경완으로서는 굳이 저들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은 범죄자이고 저들은 수사관들인데!

김준이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미스터 리가 가장 잘하는 걸 보여주는 거죠.”

결국 진실의 스무고개를 선보여 달라는 뜻이었다.

경완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가 원래 미국에 와서 하던 일이 그거였다.

김준은 톰과 함께 경완을 데리고 심문실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 초능력 범죄 수사부의 요원 세 명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심문실로 향하며 경완이 목격한 것은 군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중무장을 한 채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는 장면이었다.

“분위기가 살벌하네요.”

“음.. 솔직히 말하자면 몇 번의 탈출 시도가 있었습니다.”

자기 능력을 잘 모르는 범죄자들은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자신이 가진 능력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범죄자였다.

“외형을 바꾸어 살인을 한 범인도 그가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신분을 준비했다면 놓쳤을 겁니다.”

변검술사 재크 오하이요. 영어로는 매니 페이스. 그가 바로 경완이 이번에 심문할 범죄자였다.

김준이 설명하길, 재크라는 이 초능력자는 테러 단체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가 살해한 교수는 평소에 강단이나 강연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전근대성과 그로 인한 현대사회 간의 갈등이 무슬림 테러 단체가 결성된 본질이라 말해왔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겪지 못해 종교의 수준이 중세 수준에 불과한 이슬람과 인본주의가 정착된 현대사회의 갈등은 필연적이며 자연히 현재의 패권국가이기에 현대사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미국이 이슬람의 적으로서 대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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