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07-더 빌런 라이징
셀프감금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여론의 이목을 끌고는, 2심에선 상부의 지시에 따라 허위 진술했다고 자백까지 했지만, 대법원에서 악플을 단 것에 대한 모욕죄만 인정받아 국정원 대선개입에 면죄부를 수여 한 일은 사법부까지 국정원의 영향력이 뻗쳐있다는 방증일까, 아니면 사건이 일어난 지 5년 만에 재판해서 그 사이에 증거가 다 인멸된 탓일까?
확실한 건 그렇게 나라 망신은 다 시켜도 국정원이란 간판이 부서지는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왜? 명색이 대한민국 유일의 합법적 정보기관이었으니까.
이관영은 부글부글 끓는 듯한 표정으로 경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경완의 표정에 서린 조소어린 표정은 이러했다.
‘꼽냐? 꼬우면 꺼지던가.’
하지만 용건이 없었다면 국정원 차장이나 되는 인물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내려왔을까?
그는 부글거리는 심정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느은~ 그런 이르을~ 햐지 않는댜~.”
경완이 혀짧은 소리를 내며 국정원 차장의 말을 따라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자가 마땅히 견뎌야 하는 조롱이었다.
하지만 이관영은 살벌한 표정으로 경완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 이렇게 나오면 살기 편할 것 같아?”
“어떻게 할 건데요? 궁금하네?”
“미국이 널 비호한다고 해도 이렇게 나오면 네가 안전할 것 같아?”
“오우~. 저에 대해서 조사 안 해보셨어요?”
경완은 놀라며 감탄했다.
“할 만큼 했다.”
“그럼 저를 위협하면 처맞는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경완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덥석 그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앞으로 공손하고 신속하게 고개를 숙였다.
물론 인사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퍽!
“크윽!”
강력한 완력과 복근 코어힘이 결합된 박치기에 급히 고개를 돌려 콧잔등이 주저앉는 것은 피한 이관영이었지만 광대뼈가 얼얼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급히 교도관이 끼어들어 경완을 붙잡았고 경완은 순순히 물러났다.
“이 새끼가!”
이관영이 주먹다짐이라도 할 듯이 손목의 단추를 풀자 경완은 교도관들을 향해 물었다.
“집단린치 사건의 공범이 되실 생각이세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교도관이 책상 옆을 돌아서 경완에게 다가오는 이관영의 앞을 막아 세웠다.
“지, 진정하시죠!”
“저보고 진정하라는 말입니까?!”
나만 맞았는데!
“일단은 고, 공무원이시지 않습니까?”
그래! 빌어먹을 공무원이지! 이렇게 얻어맞아도 주먹으로 되돌려줄 수 없는!
이관영이 이를 악무는데 경완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에이~. 무려 국정원 차장씩이나 되시는 분에게 공무원 나부랭이라고 하면 모욕이죠.”
그리고는 이관영을 향해 얄밉게 말했다.
“아 맞다! 고소하려면 고소하세요.”
“제발 좀 닥쳐주라!”
분위기만 더욱 험악하게 만드는 경완 때문에 교도관들의 언성도 높아져 버렸다.
아무튼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상황이라 이관영은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아 경완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그의 말에 경완은 그만 피식 웃음이 남았다. 과연 운이 좋은 건 어느 쪽일까? 남들이 말릴 수 없게 단둘이 있다? 경완은 삼초 안에 눈앞의 있는 남자가 오줌을 지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자신의 불알 두 쪽을 걸 수 있었다.
“일단 뱉어봐요.”
경완이 내뱉는 문장의 저렴함에 이관영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도 참으며 여기까지 온 용건을 내뱉었다.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국가가 그대의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건 들었고.”
“... 여기서부턴 외교적 사안이 얽혀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일단 수락부터 해줬으면 좋겠다.”
“약 팔지 말고 무슨 일인지부터 말해 봐요.”
이관영의 요구에 경완은 고개를 저으며 대꾸해 주었다.
원래 국익을 외치면서 뒤로 호박씨 까는 족속들과 일을 하면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국익에 헌신해도 귀찮은데 국정원이라는 기관은 과거전력이 국익에 헌신한 건지 아니면 자기네들 권력에 헌신한 건지 모를 놈들이라 솔직히 얽히고 싶지 않은 종자들이었다.
평소에 무슨 짓을 하는지 불투명하기까지 하니 꿍꿍이속이 뭔지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일본으로 가줘야겠다.”
“텐노헤이카 반자이! 하면서 아베 상을 향해 카미카제하라고요?”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경완의 헛소리에 이관영은 펄쩍 뛰었다. 이 미친놈이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일본으로 가줘야겠다는 영문 모를 소리 대신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인지 설명을 잘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는 경완의 억지에 이관영은 달아오른 얼굴에 마른세수를 하고 입을 열었다. 어찌나 열이 받았는지 교도관들이 그를 향해 딱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관영이 입을 열었다.
“요즘 초능력 각성자들 때문에 세상이 요지경이 되어가는 건 너도 잘 알겠지.”
옆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튀는 놈은 일단 망치로 후려치는 사회 분위기에 순응한 국민성은 내면이 기이하게 뒤틀린 이들을 양성했다. 평소에도 그런 이들이 문제였지만 초능력 사태가 결합하자 한층 더 큰 골치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히키코모리 정도는 괜찮았다. 히키코모리가 각성해봤자 초능력을 각성한 히키코모리가 아니겠는가? 오히려 일본 정부로서는 써먹기 좋은 초능력 신민(노예)이 생겨서 유리했다.
반사회적인 놈들이 각성한 초능력으로 저지르는 엽기적인 범죄도 나쁘진 않았다. 모리토모 학교 등의 각종 정치권 비리로부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큰 문제가 발생했다. 도쿄도 고토구에서 일어난 혐한 초능력자와 그에 대한 초능력 재일한국인 사이의 다툼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부수적 피해를 냈던 것이다.
[나는 결코 너희의 이지메에 굴복하지 않겠다!]
혐한 초능력자 및 그를 옹호하는 혐한 시위대와 싸우다가 도주한 재일한국인의 외침이 일본 언론을 비롯해 SNS로 퍼지자 이지메를 당하는 처지에 있다가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이 초능력에 자신감을 얻어 하나둘씩 사적 보복을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일본 정치인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에겐 하극상에 준하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약육강식.
약자는 밟히면 기꺼이 밟혀야 한다. 그것이 일본 기득권의 기본마인드였으며 윗사람에게 느끼는 불합리함과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풀라는 통치 기조였다. 대중을 소수의 약자와 그들을 핍박하는 강자, 그것에 동조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침묵하는 이들로 분열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통치하는 자들이 피지배층처럼 놀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지연, 학연, 혼맥 등 다양한 수단들을 동원해 인맥을 맺으며 끼리끼리 뭉쳤다.
이런 일본 사회이니만큼 괴롭힘 당한 이들이 보복하는 세태가 일반화되면 장차 그들의 기득권 역시 안전하지 못하리라는 건 뻔했다. 왜냐면 그들의 기득권이란 결국 음습한 곳에서 약자를 잔인하게 짓밟는 공포로 대중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피라미드식의 먹이사슬을 만들어 분열시키는 것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주한 범죄자의 행적을 아는 건 아무래도 그의 가족이나 친인척들이지. 그래서 일본 경시청에선 그들을 심문하려고 하지만 쉽게 입을 열 것 같진 않고, 신속하게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은 상황에서 미국까지 오가는 널 떠올린 거다.”
이관영이 범죄자라고 언급한 이는 바로 혐한 초능력자를 상대로 싸웠던 재일한국인이었다. 그는 재일한국인의 가게에 위대한 대(大)일본 신민의 능력을 자랑한답시고 초능력으로 테러를 한 혐한 초능력자와 그 단체놈들을 두들겨 패서 전치 6개월을 만들고는 도주했다.
5Ch 같은 곳에서는 ‘재일도 못 이기는 무능한 놈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될 자격이 없다!’ 같은 댓글이 달리는 와중에 일본 정부로서는 그 재일한국인 초능력자를 붙잡아 일명 이지메 보복, 안티 이지메 하극상에 찬물을 끼얹고 싶어 했다.
그래서 경완이 선택된 것이다. 그의 독심술은 신속한 수사속도를 보장하니까.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굳이 국정원에서 나서는 건데요? 외교부가 있잖아요?”
“.. 나라의 일이다. 더는 몰라도 된다.”
자신의 물음에 눈알을 돌리는 이관영의 모습에 경완은 의구심이 남았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럼 한 가지만 알려주세요. 대가로 뭘 받기로 했어요?”
“그건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적어도 독도 영유권 주장 같은 개소리는 안 한다는 약조는 받으셨죠?”
“허! 네가 그 정도 깜이나 되는 줄 알아?”
“와~. 미국에서도 모셔가려는 제가 그 정도 깜이 아니라고요? 이거 자존심 상해서 하기 싫은데요?”
“야.”
경완의 말이 이관영이 나지막이 경고의 의미를 섞어 경완을 불렀지만 그런다고 눈 하나 깜빡할 경완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가로 뭘 받았는데요? 나도 명색이 이 나라 국민인데 적어도 내 몸값이 정상인지 아니면 후려쳐진 건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에요?”
“말할 수 없지만 큰 국익이 있다.”
“나 그런 말만 믿고 예스할 정도로 빙다리 핫바지 아니에요.”
우묵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는 이관영과 잠시 시선을 마주하던 경완은 피식 웃으며 한 가지 제안을 걸었다.
“손 한 번 잡게 해주세요.”
“뭐?”
“제가 뭐 딱히 게이라서가 아니라 딱 질문 하나만 할게요. 그러면 일본에 가는 거 받아들이죠.”
“....”
“쫄려요?”
경완의 말에 이관영은 어금니를 악 깨물었다. 설득이나 협박이 도저히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경완의 단단한 태도에서 나온 탈출구. 그것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약속 어기지 마라.”
“나 이래 봬도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에요.”
그 말에 이관영은 속으로 지랄이라고 내뱉으면서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경완이 그의 손목을 덥석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게 붙잡고는 이렇게 물었다.
“국정원에 일본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돈이나 향응 받는 사람들이 있죠?”
“뭐, 뭣!”
그 질문에 이관영은 막 볼일을 보려 팬티를 내리려다가 화장실 문이 갑자기 번쩍 열려 놀란 처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결단코 경완이 이런 질문을 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그 국익이 무엇이냐는 식의 질문을 받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관영은 그에 관해 잘 포장된, 아니 자신도 그렇다고 믿는 바를 말해줄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훅! 들어오다니?!
그는 급히 경완의 손으로부터 손목을 빼내려고 했지만 저 체격에서 나올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의 악력이 그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상하잖아요? 큰 국익이 걸려있다? 그럼 거기에 기여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국익이 있는지 조금은 설명해서 자신이 하는 일이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애국심을 고취해줘야죠. 그런데 그렇게 못할망정 자꾸 그렇게 뒤가 구린 사람처럼 감추고 또 감추니까 의심이 들잖아요.”
공무원이 자기 권한과 권력을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챙기는 행태가 하루 이틀인가? 인허가 권력을 가진 시장은 말할 것도 말단 공무원도 급행료랍시고 돈 받고 행정처리를 해주곤 한다.
뭐? 언제적 시절을 이야기하냐고? 수도권에서 먼 지방에선 염전노예가 탈출해 경찰에 신고해도 묵살당하고 기껏 탈출해 택시를 탔더니 도망쳤던 염전으로 택시기사가 도로 데리고 가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뭐? 그래도 국정원은 그런 닫힌 사회가 아니라 수도권에 있으니 다를 거라고? 다른 공무원은 그래도 국정원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LH로남불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