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07-더 빌런 라이징
홍영혜의 말에 경완은 김명환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오두관이 바로 질문했다.
“가네모토 아키라, 한국 이름으로 김명..의 소재지를 알고 있습니까?”
“.. 당신들이 그걸 왜 물어보는 거요?”
김명환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눈앞에 있는 이들은 일본사법당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하도 시달린 김명환은 이제 눈앞에 있는 이들이 어떤 표정, 어떤 태도,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지만 봐도 아, 이놈이 일본검찰인지 일본경찰인지 구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고 말았다.
그 질문에 홍영혜가 어색하게 웃었다.
“국가 간의 좀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어서요.”
사실 그녀가 말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국정원이나 외교부, 혹은 정부가 이 일로 일본으로부터 어떤 대가를 약속받았는지 말단 요원인 그녀가 알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질문에 집중해주십시오.”
“.. 그냥 시늉만 하는 거요?”
김명환의 말에 일을 열었던 오두관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어깨를 짚은 사람이 그 유명한 독심술사라고, 그가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솔직한 대답을 읽어낼 거라고 설명해줄 정도로 뻔뻔하거나 양심이 없진 않았다.
오두관은 대답 대신 경완을 보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계속 심문을 진행하라는 뜻이었다.
오두관이 김명환에게 질문했다.
“혹시 김명이 어디쯤에 잠적해 있는지 짐작 가는 부분이 전혀 없으십니까?”
김명환이 고개를 젓자 경완도 고개를 저었다. 오두관이 착잡한 심정으로 질문을 이었다. 아무리 국익이 얽혀있다지만 일본 사회에서 차별당하는 동포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찜찜했다.
“솔직히 말해주시죠. 그가 이렇게밖에 나돌아다니면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일본의 차별과 탄압이 더욱 심해질 겁니다.”
그 말에 김명환이 이를 악물었다. 퀭했던 눈빛에 원망과 증오가 떠올랐다. 재일한국인으로서의 차별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인가? 일본이 일본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재일한국인 차별받는 상황에서 수수방관했던 한국은 뭘 잘했다고 여기서, 그것도 자신의 눈앞에서 저런 개소리를 지껄이고는 있는 건가?
일본이 일본하는 것보다 더 미운 것이 저렇게 동포를 팔아먹는 놈들이었다.
오두관은 김명환의 태도가 바뀌자 아쉬워하며 결국 지도를 꺼냈다. 우선은 도쿄도와 그 주변의 지역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거기에 김명, 가네모토 아키라가 있는지 물었다. 대답은 필요 없었다. 경완이 연신 고개를 저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제야 상황을 짐작한 김명환은 고개를 돌려 경완을 올려보았다.
“다, 당신!”
“저 쫌 유명하죠?”
테러를 막은 독심술사로, 이름은 잘 알려졌지만 얼굴은 미국이 언론에 압박을 가하는 탓인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이런 뒤늦은 반응이 흔했다.
김명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신들이 이러고도 우리를 동포라고 부르는 거야!”
언성이 높아졌다. 뿌리로부터 배신당한 아픔은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텨온 이에겐 날 선 비수보다 더 아팠다.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댁도 한국 역사를 어느 정도 공부했으면 잘 알잖아요? 이웃과 동포를 팔아먹은 매국노 후손들이 더 잘 먹고 더 잘살아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이라는 걸.”
“그래서 너도 팔아먹겠다는 거야?!”
“아유~. 저는 여전히 사면받지 못한 죄수 신분이라고요. 저를 탓하지 마시고 저기 국정원을 탓하세요. 거기서 아주 적극적으로 나섰거든요.”
“이경완 씨!”
오두관이 언성을 높였다. 그의 표정엔 불쾌감이 서려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경완의 말만 들으면 마치 국정원에서 동포를 팔아먹는다고 들리지 않겠는가?
하지만 경완은 이죽거렸다.
“표정이 왜 그래요? 국정원에서 국익이랍시고 국민 팔아먹는 거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아요? 위안부 할머니 정보도 팔아먹고 독도 수호하자는 시민활동가, 시민단체 정보도 일본 우익에 팔아먹고, 다 팔아먹었는데 새삼 동포애가 솟구쳐요?”
오두관의 낯이 수치심으로 벌게졌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국정원의 비밀 TF 직원들이 요직으로 승진발령까지 났기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 우리는 국익을 위해서,”
“그걸 보고 비겁한 변명, 혹은 인지 부조화라고 하는 거예요.”
더 들을 필요는 없는 변명에 경완이 중간을 끊었다.
나라 팔아먹는 매국노 조직에 몸담아 이렇게 또 동포를 팔아먹는데 한 손을 보태고 있으면서 국가와 민족, 국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합리화가 이 정도면 가슴에 대만주국 건국 공로장을 달고 명예 황국신민이 되어도 한민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또 동포를 팔아먹겠지.
경완의 조롱 섞인 직언에 오두관이나 홍영혜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마치 '너는?'이라며 묻는 듯한 눈빛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요? 나야말로 한민족이라는 공동체에서 가장 이질적인 이물질이죠.”
그것은 사실 이었다. 무한전생자인 그에게 새삼 한민족이라는 동질감과 동포애가 솟아날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저한테 동포라는 울타리보다 중요한 건 한 가지 원칙이에요. 그게 뭐냐면요, 좆같은 놈, 좆같이 행동하는 놈에겐 좆 같이 해준다. 이 얼마나 심플해요?”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은지 여전히 불편한 분위기에 경완은 눈치 없이 요구했다.
“얼른 일이나 합시다. 우리는 빨리 일 끝나서 좋고, 이분은 얼른 집에 가서 좋고.”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해야 할 일은 결국은 해야 하는 법이다.
김명환은 경완의 독심술에 당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머리를 비워보려고 했지만 그는 그에 대한 훈련을 해본 적조차 없는 일반인이었다.
마침내 도쿄 서쪽의 어느 시가지를 짚은 오두관의 검지에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노력해보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만 떼어낸 이름을 가진 청년을, 차별과 불의에 항거하던 이웃동포를 떠올렸다.
부디 그가 무사히 이 차별이 만연한 일본을 탈출하기를..
= = = = =
자이니치 빌런, 가네모토 아키라, 한국명 김명은 전 여친의 집에 잠시 몸을 피해있었다.
그는 전 여친의 집에서 향후 자신의 미래를 걱정했다. 한국이나 미국으로 망명을 가야 할까?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 차별이 만연한 나라에서 초능력을 각성해봤자 권력자들의 장난감 병정이 될 뿐이었다. 그의 눈에도 자신들을 차별하면서 상층부와 힘 있는 자들의 불의에는 침묵하는 이 일본의 국민들은 권력자들의 노예나 마찬가지로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노예들은 자신들을 착취하는 권력자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보다 약하거나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마치 자신들이 뭐라도 된 것인 양, 마치 대단한 애국자인마냥 행세했다. 혐한은 그러한 풍조에 일본의 정치적 논리가 낀 이지메의 꽃이었다.
자신들이 식민지배하던 국가, 자신들이 가마우지 경제구조로 곳곳에 빨대를 꽂아 이익을 갈취하던 후진국만큼 만만한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일본 내에 만연한 혐오의 꽃은 혐한 스피치에서 끝나지 않고 결국 자신이 자주 다니던 한류 가게에 대한 테러로 이어졌다.
김명은 매스컴에서 초능력 각성 이슈를 다루기도 전에 초능력을 각성했다지만 재일이라고 차별하는 이 나라에서 자신의 각성 사실을 자랑하고 싶진 않았다.
자랑해봤자 자신은 영원한 자이니치에 불과했다. 귀화해도 자이니치라는 딱지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부락쿠민이 지금도 부락쿠민이란 딱지가 붙어 차별당하는 것처럼 일본국민 속의 비국민이 될 뿐이었다.
능력이 뛰어나면 된다? 닛산의 구원자였던 곤 회장마저 토사구팽당했다. 더구나 혐한 하는 놈마저 각성하는 이 시국에 초능력을 각성했다는 사실이 그리 특별한 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아직 안 갔어?”
전 여친이 들어오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이렇게 그를 숨겨주는 것도 그녀에겐 상당한 부담이었다. 과거의 정이 아니었다면 잠시 숨겨주길 보다는 신고부터 했을 것이다.
“연락을 기다려야 해.”
일본에는 자발적 실종자들을 위한 야반도주 서비스가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힘들어서, 그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서비스였다.
얼마나 수요가 있으면 이런 업종까지 있을까? 1년에 실종되는 일본인의 수가 10만 명이다.
김명은 그 서비스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홋카이도, 다른 나라로 밀입국, 뭐든 좋았다.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다행히 업체 측에선 김명의 상황을 잘 이해해주었다. 이런 야반도주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요 수요층 중에선 주변에 부락쿠민 출신이었던 것이 들켜서 이지메 당하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자이니치라고 차별을 받고 도주 중인 김명도 비슷한 처지였다.
초능력 범죄자? 혐한 초능력자의 자이니치 가게 테러로부터 가게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그를 폭행범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옹호하지 않고 침묵하는 이유는 그를 범죄자로 낙인찍은 권력자들의 눈 밖에 나고 싶진 않기 때문이었다. 윗사람의 결정이 곧 그 집단의 결정이고, 윗사람의 시각이 곧 사회의 시각이니, 아무도 여기에 반발해서는 안 된다. 평화와 조화를 해치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위 일본이 자랑하는 평화와 조화의 사상, 와(和)의 이면이었다.
기다려야 한다는 김명의 말에 전 여친이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탕탕탕!
“기미코 상 계십니까?!”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기미코는 긴장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문을 열기 전에 물었다.
“누구세요?”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순간 기미코와 김명의 시선이 교차했다. 김명은 얼른 웃옷을 입고 지갑과 휴대폰을 챙겼다. 기미코가 현관에 있던 그의 신발을 그에게 던져주었다.
“얼른 문 열어!”
“꺄악!”
빠루가 문틈을 파고들어 문고리를 부수고 억지로 문을 열어젖혔고 경찰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때 이미 김명은 신발을 신고 창문을 열고 도주하고 있었다.
3층 높이의 공동주택이었지만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 두렵진 않았다. 그는 각성한 초능력자이지 않은가?
전신에 생체전류가 흘렀다. 신체가 새로워지는 듯한 감각이 그에게 고양감을 선사했다.
완전한 통제 아래에 들어간 육체와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뇌의 조화는 3층에서 뛰어내린 충격을 유연한 몸놀림으로 흡수했다.
한 바퀴 굴러 3층 높이의 운동에너지를 모조리 흡수한 김명은 상상한 대로 움직여주는 육체와 그것이 가능하도록 해준 자신의 초능력에 감탄하며 도주를 위해 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경찰들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한편으론 억울했다. 자신은 그저 혐한 폭도로부터 이웃의 가게를 지키려고 했을 뿐인데 왜 자신만 폭행범으로 낙인찍어 수배를 때렸냐는 말이다. 그는 인터넷과 뉴스를 뒤져봤지만 가게에 테러를 저지르려 했던 혐한 시위꾼들이 잡혀갔거나 기소를 당했다는 그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이것은 명백한 차별이었다. 혐한을, 자이니치 혐오를 명백히 국가가 조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법을 지키겠다고 자수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일본은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였고 시민들에겐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설 권리가 있었다.
그런 그의 눈앞에 하늘에서 뚝 떨어져 히어로 랜딩을 했다가 일어나는 경찰이 있었다.
“가네모토 아키라. 얌전히 투항해라.”
딱 보니 경시청 소속의 초능력 경찰이었다.
물러날 순 없었다. 좁은 골목, 뒤로 가면 경찰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명은 싸움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능력을 끌어올렸다. 손끝에서 전기가 튀었다. 포켓 몬스터를 좋아해서 그런가 그는 생체전기라는 능력을 각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