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64화 (64/367)

063-07-더 빌런 라이징

추론의 결과는 이러했다. 그를 홀로 가둔 것도, 밥을 주지 않는 것도, 다 그가 딱히 능력자도 아닌 주제에 괴력 능력자인 가와구치 경사를 제압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힘이 빠지도록 굶겨서 관리하겠다는 것 외에 합리적인 이유는 없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그냥 자신들의 자랑 초능력 경찰 1호를 조진 경완에게 꼴 받았을 뿐.

어느 쪽이든 역시 잃어버린 30년의 일본! 사람 다루는 수준도 30년 전이랑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모양이었다.

경완은 철창을 두들겼다. 이대로 굶을 수는 없었다. 선비도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넘는다고 했다. 감히 선비가 될 마음조차 없는 경완에겐 자신을 두 끼나 굶긴 일본경시청, 혹은 일본정부의 행태는 탈옥의 명분으로 충분했다.

텅! 텅! 텅! 텅!

경완의 손이 일정한 속도로 철창을 때렸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다가 일정한 박자로 수렴했다.

철창을 향한 경완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사실 그는 눈을 뜨고 있지만 앞을 보고 있진 않았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헛소리 같은 게 아니었다. 그는 피부로 전해져오는 공기의 파동을 만지고 그에 반응하는 자물쇠의 소리를 맛보고, 진동에 의한 마찰로 인해 열쇠 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쇠내음을 맡았다.

극한으로 고조된 감각에서 깨어난 육감이 자물쇠의 구조를 투시하듯 꿰뚫어 보았다.

경완이 만들어낸 공진 주파수에 격렬하게 떨리는 창살의 파동이 자물쇠의 정밀한 구조를 자극했다.

작은 부품들이 떨리고 걸리고 진동한다. 동시에 원하는 위치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육감이 안겨준 초월적인 시간 감각은 1초에도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침내 시행착오가 이천 번을 넘어 삼천 번을 향할 때 자물쇠의 모든 부품이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는 위치로 이동했다.

그렇게 철창이 열렸다.

“나, 난데스까?!”

경완을 외면한 채 점심 배식을 끝내고 있던 일본 경찰이 갑자기 철창을 열고 나오는 경완을 보고는 기겁했다.

“뭐긴 뭐야?! 고항! 이 쪽바리 씹새끼야!”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짓이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는 짓이다. 경완에게 그러한 행동은 내가 너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겠다는 선언이자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위협이었다.

고로 지금부터 경완이 저지를 짓은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손들어!]

경찰이 서둘러 품에서 총을 뽑으려 하자 경완이 한 마디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고항!”

밥! 밥 달라고 이 개쪽바리쉐끼들아!

경완은 그런 자신의 분노를 인지하며 새삼 놀라워했다. 밥에 진심인 한국인의 특성이 어디 뇌 한구석에 남아있었던가? 고작 밥 두 끼를 굶은 것에 이렇게 분노하다니?

아마 몸의 본래 주인이 원래 잘 못 먹고 굶던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것일 수도 있었다.

달려드는 경완을 보며 총을 빼 드는 경찰이었지만 어설픈 사격 실력으로는 분노한 경완을 제대로 조준조차 할 수 없었다.

출세코스, 이른바 커리어를 추구하는 나름 엘리트가 모인다는 경시청 소속의 경찰이었지만 경완이 벽을 밟고 천장도 밝고 입체적으로 기동하는 걸 어떻게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컥!”

결국 낙하하는 경완의 무릎이 경찰의 얼굴에 콱!하고 박혔다. 그는 떨어지는 권총을 낚아채서는 총알을 확인하고 밥차를 살폈다.

밥이 없거나 모자란 것이 아니라서 더 열 받았다.

굶주림에 식판에 밥을 퍼려고 했던 경완은 잠시 멈칫했다. 밥과 반찬의 수준이 영 거시기했다. 역시 인권 후진국인 일본이랄까?

거창하게 탈옥까지 했는데 고작 이런 군대 짬밥 수준의 밥을 먹을 순 없었다.

그는 정신을 못 차리는 경찰의 품을 뒤져서 수갑을 찾아냈다. 그리고 경찰의 손목에 채워서는 목덜미를 붙잡아 끌고 유치장을 나섰다.

당연히 소란이 일어났다. 경찰들이 즉시 달려와 인질을 잡은 경완을 포위했다.

하지만 섣불리 다가갈 순 없었다. 경찰 한 명이 제압 도구를 들고 경완의 시야 밖에서 몰래 접근하다가 다리에 총을 맞고 실려 나갔던 것이다.

마치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 보지도 않고 사람을 쏘아 맞힌 경완의 모습은 현장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범인은 인질을 해방하라!]

“일본어 몰라요. 재패니즈 랭귀지 와까리마셍. 오케이?”

이 새끼 정말 일본어를 모르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게 하는 경완의 대꾸에 어디선가 급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여경이었다.

“인질을 풀어주세요.”

그 여경을 보며 경완이 물었다.

“한국어 할 줄 알아?”

“어느 정도는...”

“그럼 무작정 풀어주라고 하는 것보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부터 물어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날 굶겼거든.”

“네?”

잘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여경을 보며 경완이 외쳤다.

“유 돈 기브 미 푸드! 아이엠 배리 헝그리! 두유 언덜스탠드?!”

그 말에 좌중이 웅성거렸다.

여경은 황당함을 감추며 경완을 설득하려고 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인질은 풀어주세요.”

“착오? 내가 아침부터 점심까지 나만 빼고 밥 주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리고 설사 착오라고 그렇지! 이 새끼는 내가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소리를 쳐도 외면했던 놈이라고! 밥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경완이 인질로 삼은 경찰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경찰은 자신의 미간을 누르고 있는 총구에 시퍼렇게 질려 그냥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가랑이 사이가 촉촉하게 젖어 들어갔다.

여경이 긴장한 표정으로 제안했다.

“그럼 밥을 가져다주면 인질을 풀어주겠습니까?”

“그건 일단 먹고 이야기를 하지.”

“인질을 풀어주면 밥을 주겠습니다.”

“이봐요, 경찰 아가씨. 협상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탕!

“아아악!”

“꺄아아악!”

경완은 인질의 허벅지에 총을 쐈다. 인질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 요란 떨지 마. 그냥 거죽만 스쳤을 뿐이니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총알은 허벅지를 감싼 천을 스치고 바닥에 구멍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만일 허벅지를 진짜로 쐈으면 제대로 서지 못하고 경완이 인질을 일으켜 세워야 해서 오히려 피곤해지는데 그런 짓을 할 리가?

경완이 새파랗게 질린 여경을 보며 말을 이었다.

“경찰 아가씨.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유치장에 갇힌 사람에게 밥을 주는 건 그쪽의 의무에요. 바꿔 말하면 내가 식사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권리고. 그런데 그 당연한 권리를 마치 협상카드처럼 사용하면 내가 상대하는 게 준법 기관이 아니라 마치 내 권리를 강탈한 야쿠자 양아치들을 상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 그렇게 되면 상황이 더욱 험악해질 텐데 어떻게 생각해?”

마치 선생이 학생에게 설명하듯 조곤조곤하고 친절한 어투에 여경은 당황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귀에 댔다. 그리고는 어딘가와 통신을 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경완에게 말했다.

“좋아요. 우선 식사부터 제공하죠. 대신 인질의 부상을 살피게 해주세요.”

“걱정 마. 그냥 거죽에 생채기만 났으니까. 출혈이 있는지는 바닥을 보면 알잖아?”

경완의 말에 여경은 바닥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의 말대로 출혈은 없었다. 인질이 자신의 다리 힘으로 멀쩡히 서 있기도 했다.

그녀가 물러나려고 할 때 경완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참! 식사는 KFC로 줘.”

“.. 알겠습니다.”

여경이 물러나서 상관으로 보이는 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경완은 경찰들과 대치한 채로 치킨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뒤 여경이 치킨을 담은 상자를 들고 와서 내밀었다.

경완은 허탈하게 내뱉었다.

“오 맙소사..”

“뭔가 문제라도..”

여경이 불안해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당연히 문제가 있었다. 치킨이 오긴 했다.

하지만 캔떩기 할아버지의 프라이드치킨이었다.

경완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KFC라고 하면 당연히 코리안 프라이드치킨을 뜻하는 게 상식이잖아!”

K-pop, K만두와 함께 한류의 선봉에 계시는 K프라이드치킨 되시겠다.

경완의 말에 여경은 뭔가 불합리함을 느끼는 듯이 미간을 좁혔지만 어차피 칼자루는, 아니 총자루는 경완이 쥐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아! 그거 버리지 말고 가져와.”

“왜요?”

“얘도 밥은 먹여야지. 나는 너희처럼 먹는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굴진 않아.”

치킨에는 죄가 없다. 죄수도 밥은 먹여줘야 한다는 걸 경완은 인질을 통해 몸소 저 쪽바리들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경완의 말에 여경은 납득한 지 고개를 끄덕이며 치킨 통을 들고 조심스럽게 경완에게 가져갔다.

그때...

“야메로!”

이마가 무척 넓은 중년의 경찰이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옷 입은 거랑 얼굴의 액면가를 보니까 경찰 간부로 보였다.

“가져와!”

경완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총기를 들고 인질을 위협하는 인질범과 상관의 명령 사이에서 여경은 혼란에 빠졌다.

그때 경완이 인질을 넘어뜨려 등을 밟고는 손을 내밀었다. 여경이 아차 하는 사이에 치킨통을 빼앗겼다.

경완은 살이 통실통실한 날개를 꺼내 인질의 입에 가져가며 먹을 걸 강요했다.

“Eat. 이트. 이트요. 도대체 어떻게 발음해야 이해를 할래?”

경완은 도저히 따라하기도 쉽지 않은 일본식 영어 발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귀한 치킨을 인질에게 먹이는 것에 기겁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방금 앞으로 나선 이마가 넓으신 경찰 간부님이셨다.

“타베나이!”

그 소리에 인질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왜 먹지 말라는 걸까? 뻔했다. 음식에 수작을 부렸으니까.

“흐흐흐.”

경완은 음충맞게 웃었다. 그 표정을 보는 여경은 흠칫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무섭게 웃을 수가 있지?

경완이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꺄아악!”

여경은 몸을 웅크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경완이 노린 사람은 여경이 아니라 이마가 넓으신 경찰 간부였다.

경찰들은 경완이 인질을 포기하고 달려들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이 빠를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차! 하는 사이, 애석하게도 그 이마 넓으신 경찰 간부가 잡히고 말았다. 대응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기적절한 경완의 사격에 오히려 다리를 다쳐서 쓰러졌다.

실려 나가면서 괜히 나섰다고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경찰 간부는 경완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저항했지만 턱 끝과 정강이, 관자놀이 등을 어깨, 발끝, 권총 손잡이 등으로 타다다닥 빠르게 얻어맞고 나니 전신에 기력이 쑥 빠지고 말았다.

경완은 무력화된 이마 넓으신 경찰 간부의 정수리를 잡고 질질 당겼다. 이마의 상태를 봐서 탈모가 걱정되는 머리였지만 남의 탈모 따위 지금 상황에서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넌 꺼져!”

경완은 처음 인질이 되었던 경찰의 엉덩이를 발로 차며 밀었다. 그렇게 인질이 교체되었다.

경완은 인질이 되신 경찰 간부를 무릎 꿇린 뒤에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감히 누가 치킨에 약을 타래?”

아무리 짝퉁 KFC라지만 치킨은 치킨이다. 누가 감히 치킨에 약을 타는가!

“먹어. 잇. 타베. 이따다끼마스.”

자신이 뿌린 똥은 자신이 치우는 것이 올바른 일인 것처럼 자신이 약을 친 치킨은 자신이 먹어 치우는 것이 옳다.

경완은 새로 인질이 된 경찰 간부가 약을 타라고 한 장본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한통속이라는 것에 자신의 불알 한쪽을 걸 수 있었다. 두 짝이 아니라 한쪽만 건 이유는 확률이 반반이기 때문이다.

경찰 간부는 경완이 어설픈 일본어로 그들이 수작을 부린 치킨을 먹으라고 강요하자 눈을 찔끔 감았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또 어디 있는가? 음식에 약을 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인질범에게 간파당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본 경찰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자랑한 꼴이 아닌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