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07-더 빌런 라이징
“빨리 처먹어. 고노야로.”
경완은 그사이에 한 마디 주워들은 일본 욕설을 알뜰하게 써먹으며 경찰 간부에게 강요했고 그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치킨통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때 경완이 홱! 하고 옆으로 목을 꺾었다.
팍!
쐑!
동시에 바닥에서 불꽃과 함께 돌이 튀고 공기가 찢어지는 파열음이 뒤늦게 들려왔다.
저격수였다.
경완은 머리 옆에 남은 충격파와 열기에도 몸을 숨길 생각 없이 저격수가 쏜 방향으로 총을 겨누고 육감을 일으켰다.
몸에서 S입자가 퍼져나갔다. 그와 함께 육감의 범위도 넓어졌다. 원뿔형으로 넓어지는 감각에 저격수의 위치가 느껴졌다. 위치는 건너편 건물의 10층쯤 되는 창문이었다.
그가 빠르게 옆으로 걸음을 옮기자 바닥의 돌이 깨지고 음속을 넘은 총탄이 공기를 찢는 파열음이 뒤늦게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저격수는 허탕을 쳤다.
하지만 경완은 세 번째 기회를 줄 생각은 없었다.
그가 저격수를 향해 권총을 겨눴다. 보자아~. 권총탄의 속도가 약 1 마하 정도 되던가?
육감에 바람의 흐름까지 느껴졌다. 바람이 어떻게 불지 예측은 어려웠지만 당장은 잠잠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아쇠를 당긴 후엔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경완은 급격히 돌풍이 불지 않을 거라는 가능성에 배팅했다.
그가 저격수의 머리 중앙을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사람을 죽이려면 너도 목숨을 걸어야지.
탕!
“흐음..”
경완은 총을 쏜 결과에 그리 만족하지 못했다. 나름 머리를 노린다고 쐈는데 계산에 오류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권총으로 저격총과 같은 효과를 누리려고 했던 심보가 결국은 놀부 심보였는지 얼굴이 아니라 어깨에 맞은 것 같았다.
저격수를 제압한 그는 아무튼 다시 이마 넓은 경찰 간부에게 치킨을 먹으라고 강요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치킨을 꾸적꾸적 씹어 삼켰다.
그렇게 세 조각 정도 먹었을까? 치킨을 먹은 그는 눈이 풀린 채 추욱~ 늘어졌다.
경완이 혀를 내둘렀다.
“이야~. 독하다 독해.”
참 독하게도 약을 쳤다.
여경은 자신을 돌아보는 경완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 무전기를 통해 직통 하달된 명령에 의하면 절대로 눈앞의 범인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먹을 음식을 약을 탄 사실이 들켰으니 더 화가 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권총으로 저격수를 도리어 저격해버린 경악스런 사격능력마저 방금 목격했다. 여경도 건너편 건물에서 들려온 비명과 그 건물의 입구에 구급차가 멈춰서고 특수급습부대 복장을 한 사람이 실려 나가는 것까지 보았다.
눈앞의 남자는 사격과 관련된 초능력을 가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긴장한 그녀를 향해 경완이 물었다.
“그래서 치킨은 언제 와?”
“저.. 그게..”
“아직 한 발 남았다.”
경고 어린 경완의 말이 사람이 아니라 CG라는 설이 있는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의 유명한 대사 어조를 따라한 것을 느꼈는지 여경은 짜게 식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샤이 한류팬이었다.
그렇게 경완이 치킨을 기다리며 경찰과 대치하는 동안 새로운 얼굴의 사람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무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 주일한국대사일세.”
“아, 네. 반갑습니다.”
경완은 마치 마실 나온 사람인 양 주일한국대사의 자기소개에 자연스레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주일한국대사는 이 새끼는 진짜 개또라이 새끼라며 속으로 욕설을 삼키고는 침착하게 그를 설득하려 시도했다.
“여기서 그만하면 안 되나?”
“뭘요?”
“이 인질극.”
“여기서 그만하면 저는 뭘 얻죠?”
“뭘 원하나?”
“음.. 일단 누가 저를 굶겨 죽이려고 했는지 그 얼굴을 보고 싶은데요?”
“굶겨 죽이다니?”
주일한국대사는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두 눈을 떴다. 그는 그저 연고도 없는 한국인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으니 얌전히 투항하도록 설득해달라는 일본측의 요청을 듣고 급히 왔을 뿐이었다.
주일한국대사의 반응에 경완은 자신이 받은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설명했다.
사정을 다 들은 주일한국대사는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겨우 두 끼 굶은 거 가지고 나라 얼굴에 먹칠을 해?
“고작 그 정도 가지고...”
“고작? 그 정도?”
경완이 주일한국대사의 반응에 어이없어하며 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고 빙글빙글 돌리자 주일한국대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좋게 좋게 말을 했다.
“뭔가 착오가 있었음이 분명하니 그만 화를 풀게. 일본인들 매뉴얼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거 유명하지 않은가?”
“착오라고요? 아무리 착오가 있다고 해도 사람을 굶기면 안 되죠.”
“그래그래, 다 이해하네. 내가 근사하게 초밥이라도 사주지. 치킨을 요구했다고 했나? 치킨보다는 초밥이 더 낫지 않나?”
주일한국대사를 좋게 말하며 경완을 회유하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걸려버렸다.
주일한국대사의 제안에 경완은 어이없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초밥보다 당연히 치킨이 더 낫죠. 혹시 초밥이 치킨보다 더 고급음식이다, 이런 문화사대주의 같은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죠? 명색이 일본에서 한국을 대표하시는 분인데?”
주일한국대사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내가 설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겠나? 하지만 명백히 초밥이 치킨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건 팩트지. 그래서 이번 기회에 초밥을 먹어보는 기회를 가져보라는 거야.”
과연 주일한국대사. 공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닌 듯 혓바닥이 매끄럽게 돌아갔다.
하지만 경완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초밥은 과대 포장된 음식일 뿐이에요. 객관적으로 따져도 초밥보단 치킨이 더 맛있다고요.”
초밥의 맛에 대한 높은 평가는 일본이 그간 거액을 들여 만든 이미지메이킹에 불과하다.
요리는 생존기술의 갈래일 뿐이며, 고로 재료 고유의 맛이라는 표어는 인간의 혓바닥이, 인간의 몸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나 지껄이는 말이었다. 요리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이나 먹기 힘들어하는 것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는 과정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즉, 칼로리가 충분하고, 소화가 잘되며 인간의 대사 작용에 필요한 미량 원소 등이 적당량 첨가되어 있다면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설사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 밑창이라도 이와 같은 조건을 만족한다면 기꺼이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사능 초밥은 줘도 안 먹어요.”
IC~. 주일한국대사는 뒷골이 땡기는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기자들이 주변에 포진해서 지금 상황을 내보내고 있는데 하필 일본 방사능을 언급할 게 뭐냐?
여기서 방사능 우려가 없는, 인증받은 곳의 초밥을 준다고 하면 일본 사람들이 씹어댈 것이요, 그렇다고 방사능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면 한국 사람들로부터 질타받을 것이다.
요즘 한일관계에서 주일한국대사짓 해 먹기가 이렇게 쉽지가 않다.
주일한국대사가 이 상황을 어떤 매끄러운 화술로 넘어갈까 고민하는 와중에 다행히 치킨이 왔다.
경완의 표정에 흡족한 미소가 서렸다.
“빨리 왔네?”
“근처에 한국 치킨집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여경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경완은 역시 KFC라며 새빨간 양념치킨을 살피더니 치킨을 들고 온 여경에게 말했다.
“먹어봐.”
“하이?”
“이번에도 약을 뿌렸는지 누가 알아? 네가 먹어봐.”
“.. 알겠슴니다.”
여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각 하나를 들었다.
침이 저절로 꼴깍 삼켜졌다. 혹시나 약이 들어있는지 본인조차 확실할 수 없다는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예전에 먹었던 한국 치킨의 맛이 연상 된 반사적인 행동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경완은 막상 치킨을 집는 그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야! 누가 다리를 먹으래? 퍽퍽살 먹어.”
“퍽퍽살이믄...”
“가슴살.”
경완의 제지에 그녀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들었던 다리를 도로 놓고 가슴부위를 찾아 들었다. 그리고 한 조각 씩 먹었다.
세 조각쯤 먹었을까? 그녀의 입술 주변이 빨간 양념으로 물들고서도 그녀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놔.”
경완이 손을 내밀자 여경은 조심스럽게 경계하며 그의 손에 치킨 상자를 담은 봉지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경완은 총으로 자신을 포위한 경찰들을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어디로? 자신이 나온 유치장으로.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탈출한 철창 안으로 그대로 들어가서는 직접 철창문까지 닫고는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게 역시 이맛이야! 라고 감격하는 듯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었다.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유치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경찰들이 가로막았다.
아무튼 범인이 자발적으로 인질을 포기하고 도로 철창으로 들어갔으니 이제 일본 경찰에게 남은 과제는 하나뿐이었다. 아직 한 발 남은 권총을 회수하는 것.
일본 경찰의 한 간부는 주일한국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삼자의 시선에서 봤을 때 그가 오고 나서 경완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긴 했다. 그저 경완은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태도를 취했을 분이지만 말이다.
“다 끝난 건가?”
경완이 들고 들어간 총을 회수하기 위해서 주일한국대사가 나섰다.
그가 말을 걸자 경완은 치킨을 뜯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누가 저를 굶겨 죽이려고 했는지 얼굴을 보고 싶기는 한데 솔직히 그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 돼요.”
“굶겨 죽인다는 말은 좀 과장 아닌가?”
“사람은 안 먹으면 죽어요. 저는 말도 안 통하는 이 이국땅에서 밥, 고항 달라고 소리쳐도 개나 짖느냐는 듯 저를 개무시하며 저만 뺀 채 배식하는 일본 경찰을 봤죠. 그리고 이러다가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제 위기의식이 정말 과장 같아요?”
경완의 말에 어느 만큼의 과장과 엄살이 섞여있는지 전혀 모르는 주일한국대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밥 때문에 이런 사달이 벌어지다니...”
한일 외교에 신경 써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푸념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건수를 잡았다는 것이 꼬투리를 잡았다.
“대사님은 한국인 아니에요?”
이 새끼가 또 뭔 소리를 하려고?
대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 맞는데?”
“그럼 한국인에게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세요? 무상급식은 안 된다고 반대를 위한 주민투표를 했다가 애들 밥 안 먹이려는 인간이라고 개망신당한 시장 아저씨도 몰라요?”
그래도 투표 부결되면 사퇴한다고 해서 정말 사퇴한 점은 인정할 만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온갖 개소리와 헛소리를 내뱉으며 딴소리하려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뭐 일각에선 전임자가 싸놓은 똥이 감당이 안 돼서 일부러 사퇴 명분을 챙기려고 그랬다는 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정도로 한국인에게 밥은 중요했다. 먹는 것에 진심인 민족. 아마 프랑스 사람하고 세계순위를 놓고 다툴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주일한국대사는 더 이상 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주동자 색출은 포기한 건가?”
주일한국대사는 그 부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재차 확인을 시도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딱 봐도 희생양으로 엉뚱한 사람이나 내밀겠죠. 저는 일본어도 할 줄 모르니 누가 시켰는지 물어보기도 여의치 않고.. 그래서 이번엔 경고 수준으로 끝내기로 했어요.”
“경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