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08-비질란스
“What are you two talking about?”
김준이 채 뭐라고 하기 전에 경완이 대답했다.
“유 투 섹스 어바웃.”
“미스터 리!”
김준이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고 스테이시는 경완의 어설픈 영어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김준의 반응에 뭔지 이해를 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풋하고 웃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김준은 감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말았다. 도대체 왜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인 걸까?
다행히도 그 민망한 상황은 길어지지 않았다. 스테이시가 능숙하게 화제를 전환하며 분위기를 환기한 덕분이었다. 뭐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흰소리하지 말고 얼른 움직이라나?
그러자 김준은 이때라는 듯이 경완이 이상한 소리를 더 하기 전에 그 등을 밀었고, 두 사람은 스테이시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했다.
일행은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경완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 매니 페니스 같은 위장 능력자라면 스테이시 같은 수사관이 더 필요한 거 아니에요? 여기서 이렇게 우리 데리러 올 여유가 있어요?”
경완의 말을 김준이 통역했다. 솔직히 무시한 채 통역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 스테이시가 물어봐서 통역해줄 수밖에 없었다.
경완의 의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말고 유능한 수사관이 있어요. 매니 페이스는 체형은 바꾸어도 체향은 못 바꾸는 모양이더라고요.]
“개코? 그 친구요?”
[하하하! 재밌는 별명이네요.]
재밌는 별명이지만 단순히 볼 능력이 아니었다. 전직 사립탐정의 경험에 초인적 후각이라는 능력, 그리고 FBI라는 배경이 붙어 있으니 경완이 딱히 활약할 틈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찾았어. 말하자면 여기에 있을 확률은 99% 정도랄까?]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개코의 자신만만한 장담과 함께 FBI초능력범죄 수사부 요원들과 LAPD(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의 합동 체포 작전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상대가 순식간에 타인으로 위장할 수 있는 능력자이다 보니 그를 추적하고 식별할 수 있는 능력자가 현장에 참여해야 했다. 스테이시도 마찬가지였다.
장비를 챙기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막 도착한 경완은 김준의 옆구리를 찔렀다.
“굳이 제가 왔어야 했나요? 이거 제가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요?”
“그럼 밥도 안 주는 일본 감방에 계속 있으시던가요.”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경완은 살짝 놀랐다. 홍 소장도 그렇고 자신하고 자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왜 말투가 이렇게 되는 걸까?
경완은 근묵자흑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면서 가엾은 표정으로 김준을 보았다. 자신과 닮으면 사회생활이 참 힘들어질 텐데.. 쯧쯧.
한편, 김준은 자신을 동정하는 듯한 경완의 시선에 갑자기 왜 저러나 싶으며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만일 경완의 생각을 그가 들었다면 참으로 억울했을 것이다. 경완 때문에 자신이 지금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곤한데? 스테이시의 차를 타고 오면서도 통역할 때 자꾸 경완이 매니 페니스, 매니 페니스 하는 걸 일일이 매니 페이스로 고친다고 꽤나 신경을 썼다.
스테이시야 영어 잘 못 하는 외국인의 발음 실수로 넘어가는 모양새였지만 한국 같은 곳에서는 성희롱이라고 벌써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그게,”
김준의 물음에 경완은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다. 처음과 다르게 댁의 화법이 싸가지가 없어졌다고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누군가 경완이 입을 열기 전에 끼어들었다. 백인남성이었다.
“미스터 리!”
그는 경완을 발견한 일이 매우 놀라운 일인 듯 감탄사를 터뜨렸다.
경완이 김준을 보고 그 남자에 대해 물었다.
“누구예요?”
“초능력 범죄 수사부의 SSA인 제이미라고 합니다.”
“그게 뭔데요?”
“특별 수사 관리관, 간단히 말해 현장 책임자입니다.”
“오호!”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미라는 남성이 내민 손을 맞잡고 웃으며 흔들었다.
“나이스 투 미츄. 마이 네임이즈 경완 리.”
“하하! 알아요우.”
“한국어 할 줄 아시네요?”
“어 리틀. 할유가 대쇄좐아요.”
그렇게 잠시 잡설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경완은 이 제이미라는 백인 남성이 한류, 특히 걸그룹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흐음.. 동양인들은 서양인 기준으로 대체로 어려 보인다던데.. 혹시.. 로.. 음.
경완은 무례한 상상을 거기서 멈췄다. 굳이 이렇게 호의를 보이는 상대에게 이상한 편견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특별 수사 관리관인 제이미는 이미 경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경완이 언급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일본에 억류된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며 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유는 쪼능력짜도 아닌데 워떠케 머슬러를 윈 해쬬?”
거의 방언 수준의 미국식 한국어였지만 경완은 대충 눈치로 알아들었다. 원래 한국어라는 것이 반은 눈치로 알아듣는 언어가 아니겠는가? 거시기 거시기 해도 거시기하게 뜻이 통하기는 한다 이 말이었다.
“머슬러가 뭐죠?”
“괴력 계열의 초능력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김준이 옆에서 부연 설명을 가했다. 보아하니 그도 경완의 대답을 듣고 싶은 눈치였다.
어떻게 괴력 능력자를 딱히 신체강화계열의 능력이 없어 보이는 경완이 이길 수 있었는가?
그 노하우를 알아놓으면 앞으로 일어날 괴력 초능력자, 일명 머슬러 관련 사건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경완은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했다. 아무리 근육이 잘 발달해도 사람의 몸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고, 자신이 가와구치 경사를 상대할 땐 그 약점이 뼈라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두텁고 단단한 근육이 몸을 감싸고 있다? 그렇다면 겉을 공략하지 말고 안을 공략하자! 그렇기에 폐를 감싸는 뼈에 타격을 주고 호흡을 제대로 못 하게 가슴을 퍽퍽 밀어주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경완의 설명에 제이미는 물론 김준 역시 감탄하는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머슬러의 뼈가 약할 거라는 건 어떻게 예상하셨습니까?”
“그냥 그 녀석이 과도하게 근육을 부풀린 걸 보고 아! 이놈은 근육에 환장한 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람 조지는 데 충분한 근육량은 그 정도까진 아니거든요. 그만큼 다른 곳에 소홀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다행히 그 생각이 맞아 들었죠.”
근육과 인대, 뼈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 성장이나 단련의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건 전문가가 아니라면 잘 알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가와구치 경사는 확실히 신체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만일 인대나 뼈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근육만 그렇게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그런 추론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김준의 물음에 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히 생각해봤죠. 그럴 경우에는 뭐 도망가거나 대일본경찰의 위대한 초능력 경사의 심기를 어지럽혀서 유감입니다하며 무릎 꿇고 도개자할 계획까지 세워놨죠.”
혹여 상대의 갈비뼈도 초능력으로 강화가 된 상태고 영 불리해서 공략법이 없다 싶을 때는 그렇게라도 해야지 않겠는가? 패배를 인정하는 건 쓰라리지만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아야 성숙한 어른이었다.
난 절대 실패하지 않고 실패할 리가 없다고 장담하는 것은 정신연령이 5살짜리 애도 하지 않는 짓이었다.
김준과 제이미는 경완의 말에 그의 통찰력과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체면과 자존심도 언제든 굽힐 각오가 되어 있다는 유연함? 경완이 그렇게 유연했다면 이처럼 감옥을 집처럼 삼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슬슬 사람들이 출발하기 시작하자 제이미가 경완에게 제안했다.
“가치 갈뢰요?”
김준이 경완에게 시선을 주었다. 선택권을 넘겨준 것이다.
경완은 잠시 생각을 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심심하기도 했고 명색이 수사에 도움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일본을 빠져나왔는데 여기서 귀찮아서 쉬겠다고 할 정도로 그는 염치와 눈치가 없진 않았다.
그렇게 경완과 김준은 제이미의 차를 타고 조용히 출동하는 LAPD의 스와트팀과 FBI의 초능력 범죄 수사부 요원들의 뒤를 따랐다.
매니 페이스 체포 작전을 위한 인원이 LA의 어느 슬럼가로 향했다.
경완은 노숙자들의 텐트와 황량한 분위기의 거리를 감상하며 입을 열었다.
“여기가 그 매니 페니스라는 놈이 숨은 곳인가요?”
“네. 그런데 왜 미스터 리는 왜 자꾸 그놈은 매니 페니스라고 하는 겁니까? 매니 페이스라고요.”
나름 바른 생활 청년으로 살고 있는 김준에게 페니스 페니스 소리를 자꾸 듣기 거북했다.
그런 그에게 경완이 두꺼운 낯가죽으로 대꾸했다.
“페이스보다는 페니스가 발음이 쉽고 입에 쫙쫙 감기지 않아요?”
주둥이를 쫙쫙 때려줄까 보다.
그냥 무의식적인 말실수라고 하면 밉지나 않지, 이건 뭐 일부러 그런다는 말밖에 더 되는가?
하지만 김준은 경완과 입씨름할 여유가 없었다. 제이미가 도착을 알렸기 때문이다.
“도촥했어요우. 나는 이만 가볼께요우.”
제이미는 현장책임자라는 책임을 지고 있어 FBI 요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곧 체포 작전이 시작되었다.
“LAPD! Open up!”
LA경찰 스와트 팀이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 모습에 경완이 김준에게 물었다.
“왜 FBI Open up!이 아니에요?”
“어쩔 수 없습니다. 미국은 엄연히 총기 허용 국가고 초능력 수사요원은 귀하거든요.”
LAPD에게 체포 작전에 대한 권한을 넘기는 대신 귀하신 초능력 수사요원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FBI의 방침이시란다.
물론 양보만 한 건 아니었다. 체포 후 용의자 심문에 대한 권한은 확실히 가져왔다니까.
긴박하게 들리는 고함소리와 약간의 총성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보아하니 돌아가는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제이미와 초능력FBI의 초능력 수사요원들은 당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의자가 없다는군요.”
차 옆에 서서 구경하던 김준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경완이 개코라고 별명을 붙인 후각 능력자 빈스가 언성을 높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다고!]
그의 말이 맞다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제이미는 서둘러 빈스와 스테이시를 앞세워 매니 페이스를 추적하도록 지시했다.
“우리는 어떡할까요?”
경완이 김준에게 물었지만 그는 이미 품에서 권총을 빼 들고 합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경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그러나 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혹시 미스터 리의 능력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근거 없는 소리잖아요?”
“권총 한 정 드리죠. 그때처럼 뛰어난 사격실력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동맹국의 국민이라지만 범죄자의 손에 총기를 쥐여 주겠다는 김준의 대범함에 경완은 잠시 고민했다.
분명 뭔가 귀찮다는 감정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사람이 귀찮음에 계속 양보하다간 인간이 글러 먹게 된다. 경완은 자신의 편의를 봐주는 FBI의 호의를 생각해서라도 김준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만일의 상황에 공을 세운다면 그 롸끈한 데이비드 아저씨가 이번에도 롸끈한 보상을 챙겨줄지?
초능력 수사부는 후각 능력자인 빈스를 선두로 세워 매니 페이스가 사라진 현장으로 향했다. 평범해 보이는 주택이지만 사실은 마약을 소분하고 슬럼가에 마약을 파는 일을 하는 작은 갱의 본부였다.
여기 갱들은 자신들의 보스가 아무도 모르게 실종되고 매니 페이스가 그로 위장한 사실을 알까?
스와트팀이 체포한 갱단원 중 몇에게 물어봤지만 모두 모르고 있었다. 그냥 자신들이 마약을 파는 걸 들켜서 LA경찰이 체포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작게 반항했을 뿐이란다.
반항? 아, 그래서 총을 쏘셨다? 경완이 들었으면 일렬종대로 세워서 줄줄이 뒤통수를 갈길 소리였다.
아무튼, 갱단의 보스, 매니 페이스로 의심되던 용의자가 지내던 방에 빈스가 들어섰다.
방에 들어선 그가 코를 킁킁거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선명한 체향이 그의 비강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