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70화 (70/367)

069-08-비질란스

경완은 그래 니들이 어디까지 참나 함 보자라는 생각으로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고 그런 그를 보며 국정원 직원들은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서로 힘을 합해 그를 번쩍 들어 안으로 날랐다.

하지만 쉽진 않았다. 이번에는 버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힘을 축 빼며 마치 슬라임처럼 흘러내리듯 흐물흐물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그런 경완의 꼬장에 결국 누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후~. 씨발.”

“뭐? 씨발?”

경완은 건수 하나 잘 잡았다는 듯이 그걸 물고 늘어졌고 국정원 직원들은 진절머리를 내며 어떻게든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를 안으로 나르는 일을 서둘렀다.

안에서 나오던 이는 그런 그들을 목격하고는 꼰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에 유사 슬라임 상태로 국정원 직원들을 엿 먹이고 있던 경완이 고개를 세우며 그를 반겼다.

“오! 날 일본에 팔아먹으신 분이 여기는 웬일이쇼?”

시정잡배 같은 태도에 이관영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쩌겠나? 저 개또라이를 상대하는 것이 자신에게 내려진 업무인 것을..

그는 일단 경완에게 협박을 날려보았다.

“너 때문에 위에서 난리가 난 건 아나?”

“위요? 북한? 전 거기에 간 적 없는데요?”

경완이 북한에 갔으면 난리만 났을까?

갑자기 속이 답답해진 이관영이 소리를 빼액 질렀다. 이제부터 이 미친개를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상외로 스트레스를 주었다.

“북한이 아니라 정부 말이다!”

“북한이 정부라고요? 이게 웬 때아닌 국정원 이적(移籍) 선언이래?”

“그 소리가 아니라고! 청와대! 국회에서 난리라고!”

경완의 개소리에 이관영은 저도 모르게 혈압이 올라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경완의 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언제부터 국정원이 그리 나랏일에 열심히였대요? 아! 댓글부대를 운영할 정도였으니까 열심히는 맞네요.”

정치적으로 참 열심히 일하기는 했지.

“.. 너 지금 나 물 먹이려고는 드는 거지?”

“국정원이 절 엿 먹인 건 알겠던데요?”

경완의 개또라이 같은 반응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자 이관영은 일단 한발 물러섰다.

“널 일본에 혼자 남겨둔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너도 잘한 건 없잖아?”

“잘한 게 없기는 개뿔! 국정원에서 시켜서 재일 동포 팔아먹는 수사에 한몫 해줬죠, 조센징 조센징 거리는 극우 혐한 초능력 형사를 조져서 국격 드높였죠, 물론 인질극을 벌이기는 했지만 그게 제 탓이에요? 일본어 한마디 못하는 저한테 적어도 밥은 먹고 지내는지 확인은 할 수 있게 사람 한 명 붙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었냐고요!”

경완이 과장스레 억울함을 표현했지만 이관영 역시 억울한 점은 있었다.

“야! 거기서 꼭 그렇게 주먹질을 해야 했냐!”

그렇잖은가? 잘 녹음해놨다가 나중에 항의해서 사과를 받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언론 같은 걸 이용해서 그 가와구치인가 다마고치인가 하는 놈을 엿 먹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일본정부가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싶지만 뒤로는 이익 때문에 은근슬쩍 손을 잡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경완은 당당하고 뻔뻔했다.

“아니 그럼 혐한 우익 새끼를 안 조지고 그냥 놔둬요? 일본에서 돈 먹었을 때부터 좀 수상하긴 했는데 차장 아저씨 한국 사람 맞아요? 일본에서 국정원에 집어넣은 재한일본인 스파이 같은 거 아니에요?”

경완이 ‘일본에 돈’ 운운할 때 이관영이 사색이 되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말을 잘라먹으려고 들었지만 경완은 그의 말을 개무시하며 꿋꿋하게 자기 할 말을 내뱉었다.

이관영은 이상해지는 주변의 시선에 경완을 향해 이를 갈며 이렇게 말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따라와!”

그는 어떻게든 경완의 말을 거짓말, 헛소리, 개소리로 치부하고 서둘러 주변에 보는 눈이 없도록 경완을 밀폐된 방안으로 들였다.

“우와. 발뺌하는 거 좀 봐.”

물론 경완은 끝까지 이관영의 신경을 긁었지만 국정원 안가, 패닉룸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 나가봐. 이제부터 기밀이니까 다 나가라고!”

이관영은 걱정하는 부하들을 다 내보낸 후에 경완과 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털썩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제발!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나 좀 살려달라고!”

원래라면 이렇게 무릎을 꿇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완이 저지른 일이 너무나 컸다. 그 크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경완 한 놈으로는 일본 정부의 분이 풀리지 않아서 혹시 이관영 이놈이 그동안의 신뢰를 배신하고 자신들을 엿 먹이려고 이런 놈을 보낸 것은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였다.

자기들이 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면서 뭔 개소린가 싶겠지만, 원래 대가리 텅텅 비어서 자존심만 높은 것들이 그렇게 혼자 자살골 넣고는 억울하다고 생쇼를 벌이는 경우가 잦았다. 셀프 무역제재만 봐도 그 병신력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닌가?

아무튼, 지금까지 한일 양국의 핫라인으로서 자리를 지켜왔던 이관영이었는데 경완 때문에 분노한 일본 정부의 의심 때문에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벼락 맞을 놈 옆에 있다가 같이 날벼락을 맞은 격이지만 어쨌든 이러한 시기에 경완이 일본 뇌물 운운하며 말이 많아지면 큰일이었다.

옷을 벗는 것은 약과다. 잘못하다간 원치 않는 빨간 마티즈를 타야 할 수도 있었다. 일본이 뿌린 돈에 얽힌 인간이 한둘이어야지...

경완은 사정사정하는 이관영을 내려다보다 한마디 했다.

“받은 것 중에 다시 절반.”

“.. 응?”

“그럼 일본에서 받은 것 중에 75%가 제 꺼가 되는 건가요?”

“야!”

끝내 이관영의 언성이 높아졌다.

돈이야 눈먼 혈세가 있으니 준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정부 기관의 입장에선 때론 더 어려운 문제가 예산을 내기 위한 명분이었다. 명분이 갖추어지면 예산 짜내는 건 약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절하면 충분히 가능했다.

다시 말하자면 경완이 지금 하는 말은 여태까지 서로의 암묵적 합의를 다 백지로 돌리고 더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이런 신뢰관계의 파괴는 이관영같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되지만 정치에 밀접한 인사에게는 극약이나 다름없었다. 겉으로 밝힐 수 없는 거래일수록 서로의 신뢰와 신용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가 분류한 한국의 부패유형은 ‘엘리트 카르텔’이었다.

“정말 안 돼요?”

“차라리 내 배를 째라!”

이관영은 완고했다. 배가 갈려 죽는 거나 빨간 마티즈에 태워져 자살 당하는 거나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럼 일하나 해줘요.”

“.. 뭔데?”

협상의 여지가 생기자 이관영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속마음은 무너진 하늘에 솟아날 구멍이라도 생긴 듯 희망 가득 절박해졌다.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 쓸 기회가 잘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돈 쓸데도 별로 없고.”

집을 사서 안정을 누릴 수가 있나, 아니면 사치를 부리며 플랙스할 수가 있나? 어차피 그 모든 것이 그에겐 의미 없는 일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래서 해묵은 마음의 빚을 털기로 결정했다.

“제가 예전에 살던 행복원이라고 알죠?”

“....”

경완의 말에 이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에 대한 뒷조사는 이미 다 되어 있었다.

“제가 받을 돈의 80%를 거기 운영예산으로 줘요. 거기에 얽힌 조폭들 다 정리해주면 절반 달라고 했던 것도 취소할게요.”

그 말에 이관영은 귀가 팔랑거렸다.

“그뿐이야?”

“그뿐이지만 쉽지만은 않을걸요? 지역 경찰이랑 유착관계라 경찰도 좀 만져줘야 해서요.”

“흐음..”

경완의 말에 이관영 차장은 잠시 고민했다. 괜히 25% 대신 그러한 조건을 건 것이 아니었다. 역시 명석한 머리를 가지고 똘똘하게 미친놈다웠다.

하지만 이관영 차장의 영민한 정치적 머리는 이 건으로 이익을 더 창출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안 그래도 경완이 일본에서 저지른 짓이 인터넷을 통해 한국으로 역수출되고 있고 그의 이름이 들리는 걸 높은 분들이 싫어하는 이때에 조폭과 얽힌 경찰은 국민의 이목을 돌리는 동시에 정권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경완의 억지스런 요구도 해결하고, 높으신 분들은 다른 이슈로 이경완 이슈를 막아서 좋고, 행복원은 조폭 손아귀를 벗어나니 좋고, 국민들은 조폭과 얽힌 비리 경찰 솎아내서 좋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두가 좋은 그림이 나오니 이건 안 받아들이는 게 병신이었다.

조폭? 그놈들하고 붙어먹은 지역 경찰? 그 새끼들이 좆되든 말든 이관영 자신하고 무슨 상관인가?

그런 놈들 사정보다야 이관영 본인의 보신과 이권 보장이 더욱 중요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경완이 결단을 재촉하든 물었다.

“딜?”

“딜.”

이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완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도대체 왜 미국에서 그리 급하게 절 불러온 거예요?”

경완의 질문에 이관영은 꿇었던 무릎을 일으키며 소파에 앉아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초능력 테러리스트가 생겨났다.”

“어디서요? 우리나라에서요?”

경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테러가 발생했다면 이렇게 포털들이 조용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관영이 말을 이었다.

“사회 고위층을 노린 증오범죄로 보고 있다.”

“그래서요?”

“그래서요라니? 넌 이 일이 불러올 혼란이 얼마나 클지 상상도 안 되냐?”

이 중요한 일을 마치 남 일이라는 듯이 말하는 경완에게 이관영은 언성을 높이며 공감을 요구했다.

이 사건은 결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수사기관과 협조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을 해줘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경완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아니, 괜히 증오심을 가진 건 아닐 거 아니에요? 뭔가 관련된 일이 사전에 있었겠죠. 명색이 사회 고위층이 테러를 당했는데도 언론이 조용히 주둥이를 다물고 있을 정도의.”

그 말에 이관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리한 새끼.. 어떻게 그걸..

이관영은 애써 침착한 척하면서 경완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제안했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이 일의 해결에 도움을 줬으면 싶다.”

“왜 자꾸 말을 돌리고 그래요? 일이 일어난 배경이 궁금하다니까. 얽힌 사람이 무슨 차기 대통령 후보나 유명 언론사주 2세쯤 돼요?”

“···.”

이관영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눈앞에 있는 또라이의 통찰력이 정말 섬뜩할 정도였다. 경완의 말마따나 테러에 당한 피해자가 여의도에서 힘깨나 쓴다는 법조계 출신의 정치인과 진짜 유명 언론사주의 손자였으니까.

경완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서 죽긴 했어요?”

“죽진 않았지만..”

“죽진 않았지만?”

“성기가 잘려서 더 이상 남자 구실을 못 하게 되었어.”

그 말에 경완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에~이. 그런데 왜 고작 그런 일에 절 이리 급히 불러들였어요?”

“고작이라니?! 남자의 거기가 잘린 일이 고작이야?!”

“참나. 달려 있어도 못 쓰는 청년들이 이 나라에 수두룩 빽빽한데 거시기 잘못 놀려서 잘려 나간 게 뭐가 그리 큰 문제라고 소란이에요, 소란이?”

경완이 성토했다. 그 와중에 또 피해자들이 거시기를 잘못 놀려서 생긴 일이라는 건 또 귀신같이 맞췄다.

이관영이 언성을 높였다.

“아직 안 끝났으니까 그러지!”

“얽힌 사람들이 더 있어요? 이야~. 이거 뭐 어디 외딴곳의 별장에서 집단 마약 난교 파티라도 벌였대요?”

“···.”

“했군 했어. 됐어요. 안 해요.”

경완이 혀를 쯧쯧 차며 거부 의사를 밝히자 이관영이 펄떡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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