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08-비질란스
“야! 그러면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요? 제가 그런 인간들 뒤 닦아 주는 사람이에요?”
“너 이게 얼마나 큰 사태로 번질지 몰라서 하는 말이야!”
“큰 사태는 몰라도 크게 사이다 마시게 될 거라는 건 알겠네요.”
이관영의 얼굴이 벌게졌다.
“이렇게 나오면 네가 무사할 줄 알아?”
경완이 감탄했다.
“오! 누가 날 가만히 안 둔대요? 누가요? 이관영 차장님이요? 태광실업 회장님은 결국 그렇게 끝나버려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좀 스릴을 좀 즐길 수 있어요?”
쫄기는커녕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놈의 눈빛을 보아하니 이관영은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일도 없이 사는 저 또라이 새끼에게 신변의 위협 따위는 그저 무료한 일상의 자극제에 불과했다.
“너만 당하는 게 아니야! 그 행복원이라는 곳도 결코 좋은 꼴을 못 볼 거..다..”
위협적으로 말하던 이관영이 말꼬리를 흐렸다. 하얗게 미소 짓는 경완의 표정.. 왜 그냥 웃는 것 같은 표정인데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오싹함이 밀려오는 것일까?
경완이 하얀 이가 드러나는 미소로 말했다.
“사람이 말이죠, 사람 취급해 줄 때 사람 같은 짓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진짜 손을 써?!
설마 했던 이관영이 화들짝 놀라며 경완의 손목을 쳐냈다. 명색이 국정원 차장이라 나름 호신기는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경완의 손은 마치 부메랑처럼 휘어져 손을 쳐낸 이관영의 손목을 잡아채 당겼다. 그러자 이관영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는 팔꿈치와 무릎을 동원해서 경완과 초근접전을 벌였다.
하지만 경완은 그의 모든 손짓 발짓을 예상이라도 한 듯, 턱턱턱 소리 내며 막고 탓탓탓 흘려버리며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마침내 균형을 잃고 오금이 밟힌 채 덜미를 붙잡힌 이관영은 벽에 짓눌린 안면에서 고통을 느끼며 소리를 질렀다.
“알겠다고! 알았으니까! 그만해!”
“협박까지만 했으니까 저도 협박까지만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죠?”
손을 쓰면 자신도 손을 쓰겠다는 의미였다.
“알았다고!”
이관영이 소리를 지르자 경완이 그를 놓아주었다. 풀려난 이관영은 경완을 노려보는 눈으로 경계를 하면서 옷매무새를 만졌다.
“너 씨발 싸우는 법 어디서 배웠냐?”
이관영이 그리 대단한 싸움꾼은 아니지만 이쪽 업계에 있다 보면 보는 눈이 생긴다. 그가 경험한 경완의 몸놀림은 절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현역 특전사들을 데려다 놔도 저놈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놈이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만큼 그 잠깐의 투닥거림은 이관영에겐 벽으로 느껴졌다.
경완이 대답했다.
“타고난 거죠. 그보다 쓸데없는 협박은 더 이상 안 할 거죠?”
“.. 그래.”
“협박이 협박으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압박한답시고 미리 일 저지르고 왔으면 저기 저 벽에 댁 얼굴로 피그림을 그렸을 테니까. 육고자 사건은 알죠?”
이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자 중 한 명의 얼굴이 시멘트 바닥에 갈려버린 엽기적인 사건이었으니까.
경완이 말을 이었다.
“암튼. 전 안 해요. 지가 똥을 쌌으면 자기가 치워야지, 왜 남한테 치우라고 해요?”
“정말 안 되겠나?”
“정말 절 끼워 넣고 싶어요? 전 오히려 그 범인을 도울 것 같은데?”
“.. 여태까지 잘 협조해 줬잖니.. 일본도 가주고.”
솔직히 이관영은 이번 일과 그 자이니치 빌런 사건과의 차이점을 알 수 없었다. 경완의 논리대로라면 그 자이니치 빌런 사건에 경완이 한 손 보탠 건 결국 혐한의 뒤를 닦아준 격이 아닌가?
그 말에 경완은 웃었다.
“흐흐흐. 이 사건 이거 마약 난교가 아니라 윤간 사건이죠?”
“···.”
대번에 사실이 들킨 이관영은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미친놈이 아니라면 원한 사건이라는 건데 뻔하죠. 제가 아무리 협조적 인간이라고 해도 그런 놈들 뒤까지 닦아줄 생각은 없거든요.”
혐오주의에 빠진 인간이나 윤간이나 저지르는 인간이나 인간성을 보면 그게 그거겠지만 경완은 단순히 인간성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그가 인간을 평가하는 방식은 반드시 그 인간의 행동이 반영되었다.
'우리 애는 사실은 착한 애예요? 응, 아니에요, 좆같은 짓을 했으면 좆같은 놈이에요.'
'그 새끼 순 나쁜 놈이라고요? 그래서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
'아,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안 했다고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에요.'
내면이 어떻든 간에 착한 행동을 했으면 칭찬 받아야 하고 나쁜 행동을 했으면 비난 받아야한다. 왜냐면 사실 사람의 내면이라는 건 알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논리에 따르면 아무것도 안 했다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삶은 그 내면이 어떻냐에 따라 성립되는 게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며 살아왔느냐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혐오는 누구나 할 수 있었다. 혐오하는 인종이 운영하는 가게에다가 나쁜 짓도 좀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망가진 재산은 복구할 수 있잖은가?
그러나 망가진 인간은 복구할 수 없다.
뭐? 혐오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남지 않냐고? 물론 그 말도 맞지만 분명한 건 아무리 혐한종자라도 윤간범과의 사이에는 분명 구분해야 하는 선이 있다는 것이다. 그 선이 어디 있는지는 명확히 정의하긴 힘들지만 두 종자 사이에 둘을 구분하는 선은 분명 존재했다.
어디 있는지 명확히 모르면서 어떻게 존재하냐고? 그러면 양자역학은 전자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원자 주변에 전자가 있다고 말하나?
이상한 헛소리 같지만 원래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경완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무래도 범인이 우리나라 사람 같은데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정부에 대한 저항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라면 모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식 교육을 받고 한국 사람으로서 사고하는 사람이 소위 사회기득권층을 대상으로 테러에 가까운 범죄를 저지른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경완이었다.
이에 이관영이 어렵게 한 마디 뱉었다.
“.. 그는 범죄자야.”
물론 경완은 비웃었다.
“진짜 범죄자는요, 자기보다 약한 사람만 노려요. 절대로 자신이 위험한 짓은 안 하죠.”
그래서 경완에게 범죄란 곧 비열한 짓이며 범죄자는 비열한 인간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법관에게 석궁 쏜 사람이랑 노숙자에게 석궁 쏜 사람이랑 둘 중 어느 새끼가 더 비열해 보이는지.
물론 법관에게 석궁을 쏜 인간이 잘했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판사 같은 높으신 분에게 그런 짓을 저지를 정도라면 그 판사가 대체 뭔 병신 같은 판결을 내렸기에 그 지랄을 떨었는지 인간의 정서상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 심리가 이렇다 보니 경완에게도 이 소위 기득권 테러범을 지금 당장 단순히 범죄자라고 결론 지을 순 없었다. 딱 보니 도무지 법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원한이 얽힌 일이지 않은가?
원한은 풀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착각하면 안 된다. 경완은 ‘나름’ 준법 시민이지 무슨 투철하거나 대단한 준법 시민은 아니었다. 그의 눈에 이번 사건은 지들끼리 지지고 볶아야 하는 사건이었다.
이관영을 통해 보니, 소위 지도층이라는 분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려고 하는지 그 꼬라지가 짐작이 가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할 것 같지 않은가?
그때마다 경완이 뒤를 닦아줄 순 없었다.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놈들도 아니고 말이다.
“됐고. 저 집에 보내줘요.”
“집이라니? 너한테 집이 어딨어?”
“어디든 등 붙이고 정(情) 붙이면 집이죠. 제가 어디 말하는지 알면서 왜 시치미를 떼요?”
어떻게든 설득을 위한 시간을 벌어보려고 했던 이관영은 몇 년은 늙은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 =
초능력이 개화한 세상. 누군가는 인류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며 흥분했지만 마냥 낭만만 있을 순 없었다.
그것은 마치 증기기관과 산업혁명으로 발달한 기계가 러다이트 운동이란 저항을 만난 것처럼, 자신의 밥그릇, 이익에 위협을 느낀 사람들에겐 초능력이란 마땅히 억압하고 억제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특히 테러를 당하신 소위 기득권층에 속하신 분들에겐 심각한 사안이었다.
감히 우리를 상대로 범죄를 저질러?!
거시기가 거시기 된 그 정치인과 언론사주 3세가 특수강간을 저질렀든 아니든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미천한 것이 운 좋게 초능력을 각성했으면 훌륭한 인재가 되어 국가와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할 생각을 해야지 지 꼴리는 대로 하려고 하네?
그럴려면 국가는 왜 있고 법은 왜 있나?
소위 힘 있으신 분들이 검찰을 압박했다. 얼른 자기들을, 아니 사회를 불안케 하는 이 범죄자를 잡아들이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검찰이 이 사건에 대대적으로 검사를 배정한 건 아니다. 이런 증거 조작이 필요 없는 사건은 일선 수사관 같은 수사 인력이 많이 필요할 뿐이라 용공조작 할 때처럼 검사를 많이 배정할 필요 없이 그냥 수사 지휘 잘하고 머리 똘똘한 몇 놈만 배정하면 충분했다.
원래 법정에서도 통할만 한 거짓말을 지어내려고 하면 여러 사람이 일치 합동해서 입을 모아야 하는 법이었다. 수사관 등 남의 시선을 피해서 몰래 PC에 증거조작용 USB도 꽂아줄 사람도 필요하고 말이다. 물론 이쪽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판사를 배정받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아무튼, 검찰에서는 사회지도층을 테러하는 이 반사회적 범죄자에 대한 수사를 조용히 진행하려고 했지만 제2차, 3차의 피해자(?)가 나오자 결국 언론에 알려져 버려서 공개수사를 해야 했다.
그 와중에서도 피해자들이 얽힌 특수강간 및 윤간에 대한 사건이 새어나가려는 것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정보화 시대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레기 중에서도 피아구분 못 하는 병신이 없는 게 아니었고, 그런 인간 아니더라도 저널리즘을 지키고자 애쓰는 기자도 있기는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사건의 전후관계가 파헤쳐졌다. 솔직히 사회지도층에 대한 무차별 테러라고 하는데 피해자들이 죄자 남자인 것도, 그리고 거시기만 죄다 잘린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찾다 보니, 모월 모일에 모종의 별장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결국 밝혀졌다. 그리고 결국 피해자 여성의 고발도 뉴스를 타고야 말았다.
초능력 테러범으로 불안해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대번에 싸늘하게 식었다. 활발하던 제보 전화도 뚝 끊겼다.
경완은 이러한 흐름을 인터넷 뉴스로 지켜보면서 흥미진진했다. 원래 남의 집 불구경이 장관이라지 않은가?
뭐 불까지 난 건 아니었지만 책상물림 출신의 선민사상 고고하신 엘리트분들의 낯짝 변화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는 있었다.
원래 이런 사건은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힌 죄를 지었기에 진범을 잡은 후 조용히 사건을 묻는 것으로 시시하게 흐지부지되는 것이 당연했으나 경완의 생각으론 그렇게 조용히 끝날 것 같진 않았다. 무려 초능력 범죄자라지 않은가?
한 개인이 트럭을 몰고 폭주를 해도 잡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물며 초능력으로 이미 몇 번의 범죄를 끝낸 범인이야 오죽하랴? 이미 경험치가 쌓여서 전보다 더 능숙해져 있을 터인데?
“육구팔팔. 그만 컴퓨터 꺼라.”
“예!”
인터넷 사용 시간이 다 되자 교도관이 알려주었다. 경완은 보던 컴퓨터를 끄고 얌전히 독방으로 들어갔다.
또 독방이었다. 뭐 당연하게도 이관영의 요구를 거절하고 교도소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자기는 초능력 있어서 존나 잘 싸운다고 뻗대던 재소자 한 명을 존나 잘 꿈틀거리게 팔다리를 분질러주었던 것이다. 팔다리가 제대로 안 움직이면 꿈틀거리는 거라도 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