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08-비질란스
“저는 직접 봤거든요. 육구팔팔 저거 살벌하던데요. 아주 그냥 좆되라고 조진 게 한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삼오삼오 저거 용케 병신 되는 거 피했습니다.”
“그래?”
홍 소장이 놀란 표정으로 CCTV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안과장도 다시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혀를 찼다.
“와.. 이거 분위기가 완전히 수어사이드 스쿼드 느낌이 나는데요?”
보안과장의 말에 홍 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네. 그런 소리 말게.”
“네?”
“그런 거까지 만들어야 할 정도면 세상 꼴이 어떤 꼴이겠나?”
“아!”
보나 마나 엉망이겠지.
보안과장이 자신의 입을 탓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말조심은 누구나 유념해야 하는 미덕이었다.
아무튼, 경완이 삼오삼오를 포섭해서 감시한 덕분인지 아니면 초능력 재소자들이 별다른 의도 자체가 없었는지 등록 과정은 잡음 없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있기 심심했던 경완은 삼오삼오에게 말을 걸었다.
“삼오야. 벌크업 한번 해봐라.”
“.. 왜요?”
긴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삼오삼오에게 경완히 말을 이었다.
“때리려는 게 아니라 너 벌크업에 시간 한계 있잖아? 그 약점 어느 정도 보완할 요령 가르쳐줄게.”
“.. 거짓말 아니죠?”
“난 그런 별거 아닌 거 가지고 흰소리 안 한다.”
경완의 말에 반색한 삼오삼오는 자신의 벌크업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자연히 교도관들 앞에 앉아 질문을 받는 초능력 재소자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경완이 괜히 벌크업 해보라고 꼬드기겠는가?
그런데 그런 무력시위가 초능력자 등록 절차를 밟는 재소자들에게만 경각심을 준 것은 아니었다.
“육구팔팔. 잠시..”
경완을 담당하는 교도관이 경완을 구석으로 불러서 작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야, 너 무슨 생각이냐?'
'뭐요? 아, 삼오삼오에게 약점 보완할 방법 가르쳐준다는 거요?'
'그래!'
초능력이 생겼다고 날뛴 삼오삼오가 그 힘을 잘 다루게 되면 지금처럼 얌전하게 지내겠는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때를 대비해서 총이 있는 거잖아요. 쟤 그냥 괴력 능력자지 방탄 능력자는 아니잖아요? 문제 일으키면 그냥 쏴버려요.'
'....'
싸이코패스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냉정한 경완의 말에 교도관은 당황했지만 경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투자의 관점으로 봐야 해요. 저 새끼 저거 밖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나쁜 길로 빠진 놈이잖아요? 계도의 여지는 있다고요. 안 그래도 교도관들 중에 초능력자 한 명 없는데 협조자 한 명 더 확보하는 게 모두의 안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교도관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윗사람들 눈에는 ‘모양 빠지게 교도관이 재소자의 협조를 받아?’라는 반응이 나올 수는 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무슨 현실이냐고? 교도관들이 초능력을 각성한 재소자라는 위험 요소를 빈약한 안전망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현실 말이다.
안 그래도 공무원 중에서 초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을 물색해서 새롭게 창설되는 초능력 부서로 발령 내리고 있다는데 초능력 재소자 전용 교도소가 되어버린 이곳에는 초능력 교도관을 배치한다는 그 어떤 말도 아직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현장에 있는 교도관들이 자신의 안전을 알아서 챙긴다는 걸 비난하는 놈은 그냥 탁상물림의 병신일 뿐이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녀석 눈빛 보세요. 어떻게든 모범수가 되어서 감형을 받겠다는 열의가 느껴지지 않아요?'
그의 설득에 반쯤 넘어간 교도관은 그의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삼오삼오의 눈을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두고 보는 게 어때요?'
결국 경완의 설득에 넘어간 교도관은 경완이 삼오삼오에게 조언을 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권투에서도 긴장을 풀었다가 딱 타격하는 순간에 주먹에 힘을 준다고. 가만있을 때도 힘을 빡 주면 그게 다 체력소모야. 알겠어, 삼오삼오?”
“저기.. 알겠는데.. 내 이름 알려줬는데..”
이야기하면서 이미 통성명을 했지만, 여전히 수형 번호로 불리는 것이 억울한 삼오삼오에게 경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너 그 얼굴로 장동건이라고 불리고 싶어? 그 얼굴로 동건이라고 불리면 사람들이 이름값 못한다고 흉봐.”
“아니.. 장동건이 아니라 남동건인데...”
그리고 내 얼굴이 어떻다고?
마냥 억울한 남동건이었다.
= = = = =
초능력 재소자 신원 등록 절차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교도소에 수용된 초능력 재소자의 수는 공식적으로 총 백쉰네 명.
아직 초능력에 대해선 밝혀진 것도 거의 없고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었기에 많다 적다 평할 순 없었다.
하지만 나라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써먹을 데를 고민할 수 있는 자원이 백쉰네 명이나 된다니까 이 좋지 않을쏘냐?
강제노역이 반인권적이랍시고 인권단체들이 항의하지만 솔직히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안 시키는 건 반인권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성실한 사회인도 아닌 재소자들이 강제로 시키는 일을 성실하게 할 리가 있나? 자연히 제품에 하자도 많이 나와서 오히려 재료 원가와 불량 골라내는데 드는 인건비가 더 많이 들 지경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그런 강제노역으로 만들어진 상품은 이미지도 안 좋다. 신장 목화의 반인권 뭐기시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입으로 깐 중국산 마늘을 먹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어디 있겠는가? 죄수 중에 병원균 있는 환자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마찬가지로 노예제가 정말 인권 문제만으로 폐지된 거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경제적으로도 자본가들이 노예제가 채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결코 노예제는 폐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교도소에 적용하면 이렇다.
사장님들이 앞에서 말한 이유 등으로 이익이 나지 않아 교도소에 일을 맡기지 않으니 강제노역이 있을 리가 있나?
그래서 대신 생산성과 이익을 높이기 위해 직업훈련 장려금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그게 더 생산성이 높으니까. 강제노동이 아니라 사회 재활의 일환이니 신장 노예 목화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도 안 붙었다.
채찍만 가지고는 결코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이치. 이러한 교훈을 알고 있는 높으신 분들은 이 초능력 재소자들의 활용을 위해서 다양한 당근을 제시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다행히 여기엔 다양한 카드가 있었다. 장려금, 감형, 모범수, 귀휴 등 답답한 교도소를 벗어나기 위해서 정부의 조건을 충실히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재소자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 그들이 가장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은 바로 사면!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거액의 탈세, 횡령 등을 저질러 감방에 가신 대기업 회장님들이야 나라 경제 발전에 큰 이바지를 했으니 당연히 사면을 받아 마땅하시지만, 빽 없고 돈 없는 재소자들은 명목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익에 이바지해야 사면이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교도소 근처에 지어진 초능력 연구기관에 자원할 수 있는 초능력 재소자들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각성하지 못한 재소자들은 그런 기회조차 누릴 수 없었으니, 결국 인생은 운빨 좆망겜인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논란이 되는 점이 있었는데, 바로 경완에 대한 것이었다.
논란의 이유는 이러했다.
‘이경완은 초능력자인가?’
괴력 능력자를 둘이나 제압했으니 초능력자로 봐야 한다, 아니, 초능력이라 불릴 만한 것도 딱히 없는데 초능력자라고 규정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냐라는 의견이 충돌한 것이다.
솔직히 초능력 연구시설에 들어온 연구자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이긴 했다. 기존 독심술의 한계나 정밀한 기계를 초월한 듯한 진실의 스무고개라든지, 괴력 능력자를 제압하는 예술적인 몸놀림이라든지, 그런 것이 정말 초능력과 관련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바통은 경완에게 넘어왔다. 그가 초능력 연구기관에 대조군으로서 참여하고 싶다면 허락해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경완은 심드렁했다.
“참여해달라고 절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허락해주겠다? 이거 딱 봐도 호의로 해줘도 나중엔 권리로 알 것 같은데요?”
홍 소장은 그 말에 입을 다물고 좌우로 눈알을 굴렸고 옆에 초능력 연구소에서 나온 과장이라는 사람은 경완은 설득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경완 씨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혜택이 있을 예정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요?”
경완의 말에 김 과장이라는 사람이 입을 털기 시작했다.
“일단 귀휴가 주기적으로 나올 것이고요,”
“10년에 한 번씩?”
“.. 실험이 참가할 때마다 각종 장려금이,”
“그래서 최저임금 정도는 줘요?”
“아유! 물론이죠!”
“딱 최저임금만큼만 주겠네요.”
“아이! 그렇지 않습니다.”
“혜택이 확정된 거면 확정된 거라고 공문서를 들고 와 봐요.”
“....”
별안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김 과장을 보며 경완은 혀를 찼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혜택이 있을 ‘예정’이라더니..”
“아니, 그게 아니라 제 말을 좀 들어보시면..”
김 과장은 꽤나 혀를 잘 놀렸다. 하지만 경완의 태도는 어디서 개가 짖나 하품이나 해댔으니, 김 과장은 말할 기운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경완에 대한 설득이 실패한 것을 깨달았다.
‘아주 상전이네, 상전이야!’
돌아가는 그가 방문을 나서며 소리치는 것이 마치 들으라는 식이었는지 홍 소장의 귀에도 들어왔다.
“커험!”
홍 소장이 헛기침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김 과장의 말에 찔리는 게 좀 있긴 했다. 솔직히 경완이 대기업 회장도 아니면서 일반 재소자와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지 않은가?
홍 소장은 교도소의 책임자로서 어긋난 형평성에서 느껴지는 민망함을 애써 모른 척하려는 듯이 경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네에게도 좋은 거 아닌가?”
“저거 할 시간 있으면 미국이나 다녀오는 게 더 이득인 것 같은데요?”
“미국의 조건이 더 좋은 건가?”
“미국은 태도가 줄 건 주자는 태도거든요. 그런데 이 나라가 하는 짓거리는 일단 해. 보상은 나중에 생각해볼게. 이런 식이니 뭐 신용이 생길 리가 있나요.”
단순히 보상의 문제라면 비교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신용의 문제가 얽히니 기댓값이 쭉쭉 떨어졌다.
원래 사람은 보상의 크기만을 따지지 기댓값은 잘 고려하지 않는 습성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10억을 10%의 확률로 받는 것보다 20억을 5%의 확률로 받는 걸 선호하고, 20억을 5%의 확률로 받는 것보다 100억을 0.1%의 확률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기댓값이 무려 1억에서 1천만으로 떨어졌는데 말이다.
물론 100억이라는 단어가 10억이나 20억보다 희망차게 들리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 하는 행동은 요행을 기대하는 도박중독자나 다름없었다.
그렇다. 도박중독자를 죽이는 건 딴 게 아니라 혹시나 딸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인 것이다.
그러니 경완은 딱히 희망을 가지진 않았다. 자신이 겪은 이 나라, 이 사회, 이 정부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가지느니 회의적으로 사고하는 편이 서로에게 훠~얼씬 나았다.
믿었다가 배신당하면 아프잖아? 아픈 만큼 화가 날 테고. 화가 나면 풀지 않으면 안 될 테고.
홍 소장이 물었다.
“그래서 미국엔 또 언제 가는데?”
“조만간에 오겠죠. 아주 무시무시한 놈들이 나타났거든요.”
“뭐? 무시무시한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