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08-비질란스
홍 소장은 의아해했지만 경완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비질란스에 관해 미국이 밝히지 않았다면 자신도 입을 다무는 것이 의~리 아니겠는가?
하지만 비질란스의 존재가 한국에 알려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사망기자입니다. 이렇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네? 왜 사망기자나고요? 제 컨텐츠가 바로 기레기랑 관련되어 있거든요.]
외국에 서버가 있는 인터넷 방송에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화면에 나와 이야기를 하는 이는 이마에 태극기가 붙은 가이포스크 가면을 쓰고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흔히 펜이 칼보다 강하다죠? 그렇다면 그 펜을 멋대로 놀린 사람은 칼을 멋대로 휘두른 것보다 더 큰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펜을 놀린 사람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는 것이 옳을까요?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신 분들이 많다는 건 이해합니다만, 적어도 비슷한 방법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기레기들이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죽여 왔으니 기레기들 역시 사회적으로 죽여야 공평한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른바 기레기가 알고 싶다! 뭐 하는 코너냐고요? 보시면 압니다.]
말이 끝나고 다른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누군가를 몰래 촬영하는 것 같았다.
나레이션이 들려왔다. 가이포스크 가면남의 목소리였다.
[우리 이명태 기레기님은 오늘도 쓸만한 기삿거리가 없는지 썩은 고기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인터넷을 뒤적거리십니다. 오호! 그동안 뭘 쓸지 고민이 되었는데 타깃을 정했나 보군요.]
화면이 전환되고 해가 진 저녁에 이명태 기자가 어느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나레이션이 그 남자가 누구인지 설명했다.
[대리점 밀어내기와 갑질로 요즘 기업 이미지와 주가가 떡락하는 기업의 땡땡땡 이사(理事)시군요. 이름이 뭐냐고요?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저 사람의 이름보다 중요한 건 김명태 기자랍니다. 네? 그런데 왜 모자이크는 안 했냐고요? 에이~. 잠복하는 것도 힘든데 그런 편집은 언제 해요?]
나레이션이 끝나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지만 룸살롱 안에서 이명태 기자와 갑질회사의 이사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영상이었다.
[그래서 저희가 먼저 물꼬를 틀 테니, 김 기자님께서 받아서 잘 써주시면 흡족하게 사례하겠습니다. 이건 광고비입니다.]
화면에선 이명태 기자가 이사라는 사람에게서 두툼하게 봉투를 받는 것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저만 믿으십시오.]
이명태 기자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봉투를 챙겼다. 챙긴 다음에는 여자들이 들어왔다.
업소녀의 몸을 주물럭거리며 질펀하게 놀던 이명태 기자는 업소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룸을 나왔다. 이사 역시 옆구리를 업소녀를 끼고 뒤따라 나오면서 이명태가 옆구리에 낀 업소녀를 보며 이렇게 당부했다.
[열과 성의를 다해서 두 번 해드려.]
어느 영화의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말에 이명태 기자는 파안대소를 하며 업소녀를 데리고 모텔로 들어가자 다시 나레이션이 흘렀다.
[아내와 딸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과연 이명태 기자는 모르고 있을까요? 그가 아내와 나눈 까똑을 봅시다.]
화면에 휴대폰 하나가 등장했다. 라텍스 장갑을 낀 손이 휴대폰을 조작해 이명태 기자가 그의 아내와의 채팅한 까똑 내용을 확인했다.
마누라-여보, 언제 와?
나-오늘 취재 때문에 좀 늦을 거야.
마누라-정말?
나-아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나 내일 아침에나 들어갈 수 있으니까 먼저 자.
마누라-알았어.
[집에서는 이명태 기자가 쓰레기라는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요. 네? 조작 아니냐고요? 제 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이 폰은 분명 이명태 기자님의 휴대폰이 맞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왜냐면, 쨔잔!]
화면이 바뀌고 어두운 방 안에 조명 하나가 무거워 보이는 철제 의자에 결박된 남성 한 명을 비추고 있었다. 남성은 결박에서 벗어나려고 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명태 기자님이 여기에 계시기 때문이죠! 이렇게 지문인증을 하면! 보세요! 열리죠?]
가면남이 이명태의 뒤로 가서 억지로 손가락을 펴서는 휴대폰으로 잠금을 푸는 걸 보여주었다.
[읍! 으읍!]
[아무튼 이명태 기자의 쓰레기 같은 기질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도대체 땡땡땡 이사로부터 받은 청탁이 무엇일까요? 그건 사흘 후 이명태 기레기님이 하급자를 시켜서 작성한 이 기사로 알 수 있습니다.]
화면이 다시 전환되었다. 어떤 기업에서 뭔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안 좋은 재료를 썼다는 기사였다.
[자, 여기에 나온 기업은 그 땡땡땡 이사가 속한 기업의 경쟁사입니다. 이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시겠죠?]
기업의 청탁으로 인터넷에 음해성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언론사가 이를 확대재생산 한다.
가히 기레기가 할 법한 플레이였다.
[자, 그럼 본인의 입장을 들어볼까요?]
[푸하! 납치야! 사람 살려!]
[그렇게 소리쳐봤자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나,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흐음.. 굳이 있다면 당신의 몰락?]
[.. 뭐?]
[이거 봐요.]
가면남은 이명태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명태의 여러 치부가 찍힌 영상들이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스토킹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치부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된 영상 기록들이었다.
[너, 너! 이거 지워! 이거 사생활 침해야!]
[사생활 침해인 거 아는데 어쩌라고요? 댁처럼 사실을 날조하고 호도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당사자의 동의가 없는 건 불법이야!]
[당신 같은 인간들이 잘 쓰는 말이 있지 않아요? 국민의 알 권리.]
그 말에 이명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서, 설마!]
[이 영상을 당신 가족들, 친척들, 동료들, 회사는 물론이고 인터넷에도 뿌릴 거랍니다.]
[아, 안 돼! 뭐든 할 테니까 제발 그러지마!]
[내가 말했잖아요. 당신의 몰락을 바란다고요.]
가면남이 조롱하듯 말하다가 갑자기 증오와 분노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그 잘난 펜대로 죽여 온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 맛을 조금이라도 봐야지!]
그리고는 도로 이명태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는 카메라를 향하며 마치 프랑스의 옛 귀족들처럼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 뒤의 에필로그로 이명태 기레기님의 여러 치부를 담았으니 즐겁게 감상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여기까지. 비질란스의 사망기자였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전환되었고 사망기자라는 가면남의 말대로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이명태의 치부를 기록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청탁을 받아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물론 중견기업의 약점을 잡아 기사화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돈을 뜯어내는 등의 기레기짓은 물론, 후배 기자에 대한 폭언과 욕설, 성희롱 시도 등의 추태, 거기에 누구와 언제 어디서 만나 바람 폈는지, 속옷과 옷은 어디 걸 사 입는지, 야동 취향은 무엇인지, 어디서 다운로드받았는지까지 등의 개인적인 사적인 치부까지 모두 다 공개되어버렸다.
납치당한 그를 경찰이 찾아내 구조했을 때는 인터넷에 공개된 영상이 거의 다 끝날 무렵에서였다.
= = = = =
사망기자의 등장은 인터넷에서 알음알음 퍼져 마침내 언론에까지 알려졌다.
당연하게도 기레기 이명태는 완전히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 그가 소속되어 있던 언론사는 기레기 소굴답게 매정하게 꼬리 자르기를 시전했고, 부인은 이혼을 요구했다.
그가 의탁할 수 있었던 곳은 그런 놈도 자식이랍시고 걱정하는 그의 늙은 부모뿐.
그런 그의 몰락은 다시 한번 그 가면남, 자칭 사망기자라고 불리는 의문의 남자에 의해서 다시 한번 낱낱이 공개되었다.
후속 보도로 기레기의 몰락을 만천하에 공개하며 조롱했다.
아무리 기레기라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반응이 있었지만, 날조되고 호도된 기사 때문에 사업이 망해서 자살한 자영업자를 거론하며 국민의 알 권리라면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선동과 날조를 저지르는 기레기들의 행태를 보면 지들이 저지른 대로 돌려받은 거라고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고작 대리로 퇴직해도 무려 푼돈 50억의 퇴직금을 받는 능력자가 구독자들에겐 더 흥미로운 기삿거리이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대리로 퇴직하면서도 퇴직금 50억을 받을 수 있을지 누구나가 다 그 비결이 궁금할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입에 들어가는 게 짜장면이니 짬뽕이니 하는 하등 쓸데없는 거나 취재하려고 쥐새끼마냥 몰려드는 꼬라지를 보이니 일푼의 동정심이나 생기겠는가?
아무튼 높으신 분들은 당황했다. 자칭 사망기자라는 작자가 벌인 짓이 결코 혼자 벌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명백히 사생활 침해에 납치였으니 관련 용의자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당국으로서는 당연한 대응이었다. 다만 꽤나 강도 높은 수사를 하도록 은밀히 압박을 가했다.
그렇게 신속하게 수사기관이 움직이는 가운데 사람들은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비질란스? 도대체 뭐 하는 곳인가? 그리고 뭐 하는 놈들이고?
사망기자라는 놈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비질란스’의 누구라고.
조직적인 자경단이라도 문제고 혹시나 통제되지 않는 초능력자 집단이라면 국가적 비상이었다. 강도 높은 수사를 요구하는 윗선에 일선 수사관들이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김준이 경완을 방문했다.
“당국에서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럴 만도 하죠.”
미국에도 비질란스라고 자칭하는 무리가 있는데 한국에도 있다니? 저 넓은 태평양과 국경을 뛰어넘은 국제적인 조직이란 말인가?
경완은 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고, 김준은 그의 속내를 알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한국과의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희의 결론입니다.“
“한국 수사기관을 믿으세요?”
“생각보다 한국의 수사능력은 매우 훌륭합니다.”
사실 짭새라는 말도 할 일을 안 해서 나온 말이지 무능해서가 나온 소리는 아니었다. 열심히 일하는 경찰 중엔 유능한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왜 저에게 설명하시는 건가요?”
“당연히 미스터 리가 이 수사에 협조하게 되기 때문이죠.”
경완은 어이없어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당연히가 거기에 붙어야 하는 말은 아닌데?”
“어쩔 수 없습니다. 한미공조수사가 확실시되는 만큼 미국의 수사를 돕는 경완 씨가 한국에서도 수사를 돕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미국에서 할 일을 한국에서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경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망기자 수사? 좀 땡기질 않았다. 그놈이 경완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놈이긴 한가?
하지만 생각해보니 한국 수사기관이 경완이라는 훌륭한 수사도구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한국 경찰의 등쌀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미국에 빌붙는 편이 나았다.
매국노라고? 한국 군대에 징집되어 최저시급도 못 받고 있는 젊은이들의 꼬라지를 보면 한국 정부는 믿을 게 못 된다.
놀더라도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
“그럼 FBI 수사관이라도 붙여줘요. 한국 경찰이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 싫으니까.”
“상부에 미스터 리의 의견을 전달해 보겠습니다.”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뜻 경완의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경완은 어째 불안한 감이 있었다. 공무원 조직의 의사결정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지 않던가?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경완의 예감대로 미국에서 관련 업무 및 의사진행이 이루어지는 동안 소위 사망기자 및 비질란스 사건 수사본부라는 곳에서 그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