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09-다크 히어로와 빌런은 종이 한 장 차이
= = = = =
“이름.”
“강우빈.”
“나이.”
“25살.”
“주민번호.”
“없음.”
“뭐요?”
“나 미국인이에요.”
말쑥하게 잘 생겼지만 그 나이 또래답지 않게 깊은 눈빛의 청년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를 앞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리면 수사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청년을 보며 물었다.
이미 강우빈이 미국인인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물은 건 자연스럽게 이 질문을 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다.
“미국인이 왜 한국에 있어요?”
이에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업무적인 일 때문에 잠시 들어와 있었어요. 그리고 검은 머리 외국인이 저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 수사관은 강우빈이란 청년의 말에 흥하고 비웃듯 작게 코웃음을 치더니 몇 가지 더 물어보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월 ○일부터 ○월 ○일까지 어디서 뭘 하고 있었죠?”
그날은 바로 기레기 이명태 기자가 납치되어 실종된 기간이었다. 약 2박 3일간의 기간 동안 강우빈의 알리바이를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업계 관계들과 일하고 있었죠.”
“그 사람들이 누군데요?”
“메리 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이요. 이번에 뮤직비디오를 찍는데 제가 촬영 당당이거든요.”
“그리고요? 2박 3일 동안 그 사람들만 만났습니까?”
“네. 정말 바빴거든요. 원래 감독을 맡았던 사람이 바람피운 게 들켜서 감독의 아내는 물론 장인과 장모까지 촬영장에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원청 입장에선 데뷔 일은 다가오고 예산도 한정되어 있는 데다가 감독을 다시 구하느라 고생하느니 그냥 제가 감독이 되어서 찍어버렸답니다.”
어쩌다 보니 감독 데뷔해 버렸네요.
그렇게 웃는 청년의 미소를 보다가 수사관이 물었다.
“○○일보의 이명태 기자 압니까?”
그 이름이 나오자 김우빈의 즐거웠던 미소가 다른 성질의 미소로 바뀌었다.
악의(惡意) 가득한 미소.
수사관의 머리엔 그 외에 다른 표현은 떠오르진 않았다.
“알죠. 너무 잘 알죠. 이번에 유출된 영상도 봤거든요. 밤새도록 반복해서 봤죠. 볼 때마다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더군요.”
수사관이 잠시 그의 표정을 살피다가 물었다.
“··· 이명태 기자의 납치를 비롯한 그 사건에 혹시 본인이 관련되어 있습니까?”
“아, 내가 사망기자라는 그 사람이 아닌가 싶은 거죠? 하지만 내가 사망기자였다면 이명태 그 새끼는 지금쯤 살아있지 못했을걸요? 세상에서 그 기레기 새끼를 죽이고 싶은 사람 중에 둘째간다고 하면 서러운 사람입니다, 제가.”
스크린에서 그렇게나 빛이 나던 누나를 추락시켜버리고 그 빛을 꺼뜨려버리고 결국 자살로 몰고 간 놈.
김우빈은 이명태가 자신에겐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수사관님 입장에서도 이정도 동기는 범죄의 이유로 충분해 보이겠죠. 하지만 제가 그렇게 집요하게 누군가를 스토킹할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조사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알리바이가 있을 겁니다. 아마도?”
“.. 왜 아마도입니까?”
“그야 제가 이런 일이 생겨서 의심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이거 제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기억력을 좀 혹사해봐야겠는걸요?”
조롱하는 건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화법에 수사관의 표정은 복잡미묘해졌다. 이 새끼가 장난하나? 라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분 그대로 입을 열었다가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골치 아프므로 일단 무시하고 조사를 진행했다.
김우빈의 진술이 끝난 후 메리 엔터테인먼트인가 뭔가 하는 곳에 연락해서 일정을 확인해보니 그의 진술이 맞았다. 김우빈은 갑작스런 뮤비 감독의 잠적으로 인해 메리 엔터테인먼트에서 2박 3일간 숙식하며 뮤비의 촬영과 편집까지 했다는 알리바이가 확보된 것이다.
하지만 김우빈을 조사하던 수사관은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조사받을 때에 김우빈이 보인 태도. 그것이 과연 결백한 사람이 보일 수 있는 태도인가? 아무리 피해자에게 원한이 크다 하더라도?
경찰로서 잔뼈가 굵은 수사관의 경험에 의하면 김우빈의 태도는 차라리 내가 찔렀소! 라며 형님 대신 학교에 가려는 조폭에게서나 볼 수 있는 당당함에 가까웠다. 도저히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혹시나 본인의 일상에 피해가 갈까 봐 불안해하거나 어이없어하는 일반인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 수사관은 그 찝찝함을 동료 수사관에게 토로했고 딱히 다른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사의 확실성을 위해서라도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해 심문해보기로 했다.
그 거짓말 탐지기란 당연히 경완이었다. 바로 옆방에서 이명태 사건의 참고인들에게 진실의 스무고개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올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경완의 인사에 김우빈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희대의 범죄자를 앞에 둔 사람이 충분히 보일 수 있는 긴장감이었다
경완은 그의 어깨에 손을 짚고 물었다.
“혹시 본인이 사망기자세요?”
“아니요.”
“혹시 누가 사망기자인지 짐작 가는 사람은 있어요?”
“아니요.”
김우빈의 대답에 경완은 더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이 어깨에 올린 손을 떼고 수사관들을 보았다.
“죄다 진실이네요.”
“정말이요?”
한 수사관이 미간을 좁히며 묻자 경완이 어깨를 으쓱하며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믿지도 않을 거면 뭐하러 불렀어요? 똥개훈련?”
“크흠!”
경완의 면박에 수사관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진전이 없었고 김우빈은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그런 그를 향해 경완이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김우빈은 그런 그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경찰청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한류스타 이영빈 납치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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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렇게 다시 뵈어 영광입니다. 제가 누군지 아시죠?]
태극기가 미간에 박힌 가이포스크 가면.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망기자였다.
[네, 맞습니다. 사망기자입니다. 오늘의 게스트는 그 유명하신 한류스타! 이영빈 님을 모셨습니다!]
[으읍! 으으읍!]
환한 조명 아래, 단단한 철제 의자에 묶인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늘의 주제는 기레기와 붙어먹는 인간들입니다. 네? 우리 영빈 오빠가 그럴 리가 없다고요? 그럼 우선 우리 이영빈 님의 이중적인 모습부터 보시죠.]
화면이 전환되고 이영빈이 밤마다 다른 여자와 호텔에 들어가거나 숙소로 여자를 끌어들이는 장면으로 반복해서 전환되었다.
[여성팬 분들이 받을 충격에는 심심한 위로의 말을 드리겠지만, 솔직히 여성 편력이 심한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유부남도 아니고요. 뭐 방송에서는 순정남인 척 이미지 메이킹을 해왔지만 연예인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도 잘못은 아니잖아요? 네? 기만당한 것 같다고요? 왜 이러세요? 다 아는 선수들끼리? 유사연애팔이가 덕질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랍니다. 겨우 이 정도에 불과했다면 제가 유명한 한류 스타를 이렇게 초대했을 리도 없죠.]
화면이 바뀌었다. 인테리어를 보니 룸살롱인 모양이었다.
이영빈은 어느 남자와 긴밀히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를 상대역으로 해달라고요.]
[하지만 ○○○이는 인지도라든지 연기력이,]
[예쁘잖아요? 그리고 연기력이야 현장에서 갈구면 늘어날 거고요.]
[하아.. 일단 알았습니다.]
다시 장면이 전환되었다. 이영빈이 어느 여자에게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야 이년아! 너 같은 쩌리를 이 드라마에 꽂아준 게 누군지 알아?! 기회를 주면 고맙게 받아먹을 생각을 해야지!]
[난 창녀가 아냐!]
[누가 창녀래? 내가 화대라도 준댔냐? 주위를 둘러봐! 몸이라도 팔아서 기회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 천지야! 그런데 이렇게 온 기회를 네 발로 차버릴 거야?!]
[....]
이영빈의 손이 침묵하는 여자의 허리를 감쌌다. 다른 한 손이 옷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어차피 자유연애 하는 시대라고. 흠 될 거 전혀 없어. 그리고 나도 나름 잘생기지 않았어? 나랑 하룻밤 보내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여자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이영빈의 손을 뿌리치고 그를 밀어낸 뒤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저 썅년이!]
화가 난 이영빈의 목소리와 일그러진 표정이 화면의 말미를 장식했다.
그리고 사망기자의 얼굴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더군요. 자신이 가진 영향력과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많은 여성들을 강간해왔죠. 이걸 보고 법률적 용어로 위력에 의한 강간이라고 하죠? 어떻게 한두 번이 아닌 걸 아냐고요? 저번에 이명태 기레기님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여기 이영빈 님과 했던 대화를 녹음해서 가지고 계시더군요. 그것도 좀 있다가 들려드릴 겁니다. 청각이 안 좋으신 분들을 위해서 자막도 직접 만들었어요.]
사망기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영빈에게 다가가 바지를 벗기며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읍! 으읍!]
이영빈이 몸부림을 쳤지만 저항은 불가능했다.
작업을 끝낸 사망기자가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시죠? 우리의 한류 스타 이영빈 씨의 그곳에 이것을 설치했답니다.]
사망기자가 카메라 앞에 견본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질겨 보일 정도로 매끄럽게 광택이 나는 강철 와이어와 커다란 모터가 결합한 물건이었다.
[저도 사람인지라 직접 손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래서는 사망기자라고 할 수 없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하단의 링크에 들어가시면 투표를 하실 수 있어요. 무슨 투표냐고요? 이분의 거기를 잘라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투표죠.]
[으으으읍!]
[물론 제한 시간이 있답니다. 지금부터 약 6시간이 남았네요. 민주주의에 따라 제한 시간 안에 이분을 거세시켜야 한다는 투표가 많으면 이 커다란 모터가 작동해서,]
사망기자가 스윽하고 중지와 검지를 붙였다 떼었다 하며 말없이 그 의미를 전달했다.
[싹뚝! 그럼 이명태 기자님이 이분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들으시면서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많은 투표 부탁드립니다. 아참! 투표가 끝나기 전에 경찰이 들이닥치면 거기서 투표 종료입니다. 사망기자였습니다.]
사망기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시커먼 화면에서 이명태 기자와 이영빈의 대화가 자막과 함께 송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강민주가 어떻다고요?]
[그년이 감히 날 거부했잖아? 내가 그년을 괜히 여주로 꽂아줬어?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하는 거 아냐?]
[그렇죠. 당연히 그래야죠. 거참 배우님이 운이 안 좋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은혜를 모르는 인간을 자주 만나시네요.]
[다 우리 김 기자 같을 수가 있나?]
[하하하! 그럼 저번처럼 그렇게 할까요?]
[부탁할게.]
[아유~. 우리사이에 부탁이랄 게 있습니까?]
그런 비슷한 대화가 장면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름이 바뀌었다. 김○○, 정○○ 등, 이명태가 이영빈의 청탁을 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증거였고, 네티즌 수사대들은 그때마다 이영빈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 뒤로 묻혀버린 여자 연예인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한편 경찰들은 다시 켜진 이영빈의 휴대전화를 통해 그가 납치된 장소를 특정했지만 쉽게 진입할 수가 없었다. 현재 투표에서 거세하라는 쪽이 높은 상태라 지금 그를 구하기 위해 진입하면 그대로 투표가 종료되고 한류스타의 거시기가 싹뚝 잘려 나가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거 뒷감당이 되나?
책임자로서는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