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82화 (82/367)

081-09-다크 히어로와 빌런은 종이 한 장 차이

하지만 사람의 머리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달려있는 법. 경찰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투표조작을 해냈던 일당들을 서둘러 불러내 이영빈 거세 투표를 조작했다.

마침 당시 사용되었던 장비가 증거품으로 보관되어 있어서 금방 조작이 가능했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아니고 티 안 나게 조작할 필요도 없어서 투표수 조작은 금방 이루어졌다.

순간적으로 반대가 더 많아지는 타이밍에 구출팀이 들어가 이영빈을 구해냈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기지(奇智)가 빚어낸 쾌거라 할 수 있었다.

“공교롭네요.”

“어가여?”

짜장면을 후르릅 흡입하던 경완은 같이 식사를 하던 김준의 말에 면발을 볼에 담은 채 물었다.

“이명태 기자, 강민주, 그리고 이영빈.”

“그 세 명과 모두 관련이 있는 강우빈이 의심스럽다?”

“그렇습니다.”

이명태 기자와 이영빈에게 그런 짓을 할 만한 충분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바로 강우빈이었으니까.

솔직하게 대답한 김준은 경완의 눈치를 살폈다. 혹여나 자신이 그와 그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완은 그런 그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죠.”

“.. 그럴 수 있다고요?”

“제가 좀 일을 태만하게 했거든요.”

“.. 어떻게요?”

“꼬치꼬치 안 캐묻고 간단하게만 물었잖아요.”

본인이 사망기자냐? 사망기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거나 혹시 짐작되는 사람은 있느냐?

“사망기자와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냐고 물었다면 뭔가 다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말장난 같지만 현실은 그런 말장난 같은 차이점으로 진실 여부가 가려질 정도로 복잡하며 인간의 심리 역시 그런 말장난에 잘 넘어갔다.

김준이 깊은 눈빛으로 경완을 주시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원래 내키지 않은 일을 하게 되면 성의 없게 일을 하게 되는 법이죠.”

경완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재소자인 내게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사람과 같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바라진 마세요.”

“..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배신감이 서려 있었다. 경완은 피식 웃었다.

“나를 그냥 막연히 믿은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거 아니잖아요. 다시 생각해봐요. 왜 날 믿었어요?”

“무고한 시민은 건들지 않기 때문에...”

김준은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경완이 손가락을 튕기며 칭찬했다.

“바로 그거예요. 사망기자가 과연 내가 조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좆같은 놈인가?라고 하면 오히려 응원해 주고 싶은 놈이란 말이죠. 오히려 이명태나 이영빈 같은 놈이 제 눈앞에 있었다면 제가 손을 썼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지 않아요?”

나보다 먼저 알아서 쓰레기를 치워주는 사람을 어떻게 나쁘게 보나? 그런 사람보고 착한 사람 코스프레한다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경완은 배배 꼬이진 않았다.

“그럼.. 이게 다 헛짓거리였다는 말입니까?”

김준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사망기자 수사에서 경완이 성실하게 돕지 않았다니, 이거 완전 시간 낭비이지 않은가?

“헛짓거리였다니요? 덕분에 살인을 막았잖아요.”

경완이 샌드맨 사건을 언급하자 김준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대신 병신이 되었죠’라며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왜 지금에 와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그야 미국은 척을 지기엔 아까운 거래 상대니까 저를 좀 적절한 곳에 사용하라고요. 솔직히 사망기자 같은 착한 놈을 잡는 일에 일조하라고 하면 저도 불편하거든요.”

“그는 범법자입니다.”

“하하하하! 저한테 그런 말을 해요? 푸하하하! 김준 씨 농담도 잘하시네요. 푸흐흐.”

경완은 배꼽을 잡으며 말 그대로 박장대소했다.

김준의 마음 한 켠이 싸늘해졌다. 아무리 경완과 친분을 쌓는다고 해도 결코 교차할 수 없는 평행선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는 일단 생각을 잠시 정리했다. 결국 경완의 현재 입장은 사망기자나 샌드맨의 추적에 태업을 할 거라는 말이었다.

“비질란스는 어떻게 할 겁니까?”

“ㅈ같은 놈이면 돕고 아니면 좀 일하기 귀찮아지겠죠. 뭐 지금은 판단 보류에요. 전 조직으로 사람을 분류하지 않거든요.”

조직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양아치, 순딩이, 호구, 사기꾼, 소시오패스, 인격자 등등, 서로 취미를 공유하자고 모인 동호회도 다양한 사람이 모이기 마련인데 비질란스가 예외일 수 있으랴?

“그럼 비질란스 수사에 도움을 주겠다는 뜻인가요?”

“마음에 드는 놈은 빼고요.”

“현재는 그 마음에 드는 놈이 샌드맨과 사망기자고요?”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준은 우려 섞인 눈빛으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혹시 비질란스에 들어갈 생각이 있습니까?”

“어느 조직에 속하느니 차라리 길거리 노숙자나 독방에서 뒹굴거리는 걸 선택하겠어요.”

김준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보아왔던 경완의 태도를 생각하면 저 말은 진심이리라..

김준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서 강우빈이 사망기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까?”

“안 물어봐서 모르겠네요.”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아예 관심이 없는 태도였다.

= = = = =

사망기자. 그리고 샌드맨.

재벌 3세와 국회의원의 거시기를 잘라간 거세남에 이어 한국 사회를 강타한 빌런의 이름이었다. 샌드맨은 당국에서 최대한 정보 유출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사건에 관련된 자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 관련자 중에는 언론에 기삿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빨대가 있었기에 샌드맨의 이름이 유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법치주의가 흔들린다!]

[초능력 각성과 자경단의 대두!]

[정부에선 강력 대응을 경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빌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법치를 파괴하는 초능력 무법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그보다 적당한 말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빌런의 등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전 대통령 아들 사망!]

[구순잔치에 등장한 빌런!]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민주화를 원했던 많은 이들을 죽이며 권력을 공고히 한 사람, 독재자 시절에 받은 뇌물죄에 대한 수천억의 추징금을 돈이 없어 못 낸다고 하면서도 여태 으리으리한 집에서 호의호식했던 전직 독재자이자 쿠데타 사령관의 구순잔치를 어느 초능력자가 습격했다.

그리고 그 장남과 차남을 손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죽여버렸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자식들의 주검을 껴안고 울부짖는 전직 쿠데타 사령관이었던 노인의 앞엔 등이 굽은 노인이 서 있었다. 고난했던 세월을 증명하듯 얼굴엔 주름살이 가득하고 몸은 왜소하고 가냘팠다.

등 굽은 노인이 자식들의 죽음에 울부짖는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기분이 어뗘?”

“허어어엉!”

오열하는 노인은 등 굽은 노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그저 울었다. 하지만 등 굽은 노인은 상대가 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독백하듯, 마치 넋두리를 흘리듯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나는 내 탓을 했으이. 내가 그때 그 녀석에게 심부름을 보내지 않았으면 그 녀석이 여태 살아서 이렇게 팔순 잔치, 구순 잔치를 열어주지 않았을까? 댁처럼 말이여.”

등 굽은 노인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혼잣말도 계속되었다.

“초능력이라고 한다지? 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 같은 놈에게 이런 힘이 생겼는지 정말 오랫동안 고심했구먼. 새삼 부귀를 누리기엔 내가 너무 늙었고, 할멈도 얼마 전에 갔고.. 그래서 힘이 생겼는지 안 생겼는지 아무도 모르게 그냥 얌전히 있다가 갈까 고민도 했는데.. 그런데.. 흐흐흐흐흐.”

등 굽은 노인이 웃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가 짙어졌다.

“댁이 구순 잔치를 연다네? 자식새끼 손주새끼도 축하해준다지? 난 내 자식놈의 주검조차 못 찾았는데!”

등 굽은 노인이 으르렁거렸다. 얼굴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숨을 쉴 때마다 원념을 흘리듯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바닥에 고였다. 그 모습이 마치 악마와 계약한 늙은 마법사 같았다.

“그런데 누구는 손주까지 낳아서 잘 먹고 잘살고 있더구만. 나는 평생을 고통과 회한 속에서 살았는데··· 내가 죽을 날짜를 받아두고 느낀 게 뭔지 알어? 하늘은 정의롭지 않다는 거. 천벌은 없다는 거... 자식새끼 잃고 나서 나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어. 죽은 채 그저 숨만 쉬었던 거지. 그런데 힘이 생기고 나서야 깨달은 거여. 그동안은 그저 복수할 능력이 없었기에 내 증오를 억눌러 왔다는 걸.”

입에서 흘러내린 검은 연기가 안개처럼 바닥에 깔렸다.

“왜 그리 울어? 이제 겨우 자식새끼를 잃은 거 가지고? 댁한테는 아직 손주들이 남았잖어?”

“그 애들에겐 손대지 마!”

손주들이 언급되자 나이답지 않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전직 쿠데타 사령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클클클. 역시 그동안 호의호식해서 그 나이에도 소리 지를 기력은 남은 모양이구먼.”

등 굽은 노인의 조롱에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들은 죄가 없어!”

그 말에 등 굽은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 자식도 죄가 없었어.”

담담한 말과 함께 시커먼 눈동자가 좌우를 살폈다. 잔치를 위해 빌린 홀엔 축하객들이 검은 안개에 짓눌려 도망치지도 못한 채 꿈틀거렸다. 그중엔 쿠데타 주범의 손주들도 있었다.

전 대통령 노인이 다급하게 기어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바닥에 이마를 대며 애원했다.

“제발! 내가 잘못했네! 다~ 내가 저지른 일이며 내 잘못이야! 그러니 부디 아이들만은..”

늙은 노인이 울면서 애원하는 모습이 참으로 애잔했다.

그런 노인을 내려다보는 등 굽은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노가 아니라 슬픔과 애환 때문에...

“흐흐. 흐흐흐. 그 사과를 오래전에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으니 부디 용서해주게!”

“.. 댁도 사람이긴 했군. 피붙이의 목숨을 그렇게 귀중하게 여기는 걸 보니 말이야.”

등 굽은 노인의 표정엔 갈등이 서렸다. 막상 손주뻘 되는 아이들의 목숨을 거두려고 하니 망설여졌다.

복수를 결심했을 때는 악마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손을 써보니 그렇게 통쾌하진 않았다.

“꼼짝 마!”

우람한 덩치의 경찰이 홀로 들어왔다. 검은 안개가 그의 주위를 둘러싸며 바닥을 향해 압박을 가했지만 그 경찰은 바닥에 족적과 균열을 남기며 뚜벅뚜벅 등 굽은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등 굽은 노인의 시선이 그 경찰에게 향했다. 검은 안개가 휘몰아치며 그 색이 더욱 짙어졌다.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던 경찰이 끝내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검은 안개가 가하는 압력이 괴력 능력자인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다.

그런 경찰을 보며 등 굽은 노인이 말했다.

“미안하구먼.”

“얌전히 투항하십시오!”

“그것도 안 되겠구먼. 내 이 사람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 말이여.”

등 굽은 노인은 시선을 돌려 전 쿠데자 주범이자 독재자였던 노인에게 말했다.

“자네의 사죄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겠지. 자네 때문에 가족과 자식을 잃은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때까지 자네 손주 목숨은 놔두겠네.”

검은 연기가 휘몰아치며 등 굽은 노인을 감쌌다. 그의 경고가 메아리쳤다.

[명심하게. 시간이 없어. 내게나 자네에게나. 내 이 한을 풀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할 거야. 그래야 나도 내가 죽기 전에 자네 핏줄을 끊을지 말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

검은 안개가 창문을 넘어 하늘로 사라지고 등 굽은 노인의 모습도 사라졌다.

남은 건 경악과 공포, 그리고 두 자식을 잃은 전직 쿠데타 사령관의 울음소리뿐이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