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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88화 (88/367)

087-09-다크 히어로와 빌런은 종이 한 장 차이

“온다는 게스트가 얘였어요?”

“네. 요즘 한국에서 떠오르는 만능엔터테이너 이미연 씨입니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못 하는 게 없어요. 요새 영화계에 떠오르는 블루칩이랍니다. 얼마 전에 대박 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기도 했는데 모르셨어요?”

“어유, 감옥에 있는 저는 그런 거까지 관심 줄 이유가 없거든요.”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죄수 신분인 그가 마음대로 보러 나갈 수가 있나?

자연히 드라마라던지, 영화라던지, 음악 등에 대한 검색보다는 오늘은 어떤 병신이 어떤 코미디를 선보였나 궁금해하며 사회란이나 정치란을 기웃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 들어가 보면 인간의 지능이 생각보다 훨씬 낮고 비이성적이며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가끔 댓글로 도발해주면 발작하는 병신들의 꼬라지가 경완에겐 적잖은 여흥이 되었다.

아픈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된다고요? 아픈 친구가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건 괜찮고?

아무튼, 그의 말에 미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늘씬한 다리를 꼬았다.

“허! 참나! 내가 오빠 나오면 먹여 살리려고 얼마나 뼈 빠지게 고생했는데 정작 본인한테서는 관심도 없다는 소리를 듣네?”

경완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뼈는 모르겠고 살은 빠졌네.”

어릴 적에도 예쁘긴 했지만 그때 남아있던 젖살이 쏙 빠지고 여성미를 뿜뿜 내는 미연은 경국지색의 미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완의 말에 그녀는 다시 한번 발끈했다.

“살찐 적 없거든!”

“행복원에 거울이 없어서 몰랐던 모양이구나.”

“거울 있었거든! 요즘 세상에 거울 없는 곳이 어디 있어?!”

“그럼 네가 거울을 안 보고 살았던가.”

“어으~! 진짜! ”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친남매도 아니면서 친남매 같은 케미를 선보였고 그런 두 사람 사이에 강우빈이 끼어들었다.

“자자, 진정하시고. 게스트가 누군지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지금부터의 인터뷰는 딱히 인터뷰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의 대화라는 성격이 더 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중구난방이 되면 제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첫 번째 주제로 꺼낸 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쟤하고 첫 만남? 아주 골 때리는 순간이었죠.”

경완이 대답하고는 미연을 보며 물었다.

“말해도 돼?”

“응.”

미연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속사에서 뭐라 안 그래?”

“이 자리도 소속사 몰래 온 거야.”

그 말에는 경완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우~. 미친년.”

“뭐!뭐!뭐!뭐!”

경완의 감탄에 미연은 사춘기를 맞은 여동생처럼 따졌다.

“광고 다 떨어진다.”

“어차피 드라마랑 공연으로 먹고살거든!”

경완은 말이 안 통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고생을 했으면서도 여전히 천지 분간 못하는 것 같아서 그는 강우빈에게 물었다.

“좀 안 좋은 일인데 말해도 돼요?”

“정 문제가 된다 싶으면 제가 편집하면 됩니다.”

그렇다면야..

경완은 미연을 처음 만난 썰을 풀었다. 또래 남자애에게 추행당하고 있던 당시를 말이다.

“추행이요?”

김준이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저 아름다운 여인에게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미연은 담담한 태도로 대꾸했다.

“강간 직전이었어요. 아마 오빠가 아니었다면 당했겠죠.”

어두웠던 과거를 담담히 얘기는 태도에서 김준은 그녀가 참 강한 여자라고 느꼈다.

경완이 덧붙였다.

“두 번이나 그랬잖아?”

“운 좋게 그때마다 오빠가 나타났죠. 오죽하면 운명이라고 생각했겠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강우빈의 질문에 경완은 미연을 보았다. 그녀의 일이니 그녀가 적당히 알아서 말해선 안 되는 건 알아서 검열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노빠구였다.

자신이 강간을 당할 뻔했던 사연, 그 짓을 저지르던 놈의 배후에 있던 조폭들, 그리고 경완이 조언한 일까지 죄다 까발렸다.

경완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야~. 못 보던 새에 진짜 미친년이 다 되었구나. 여배우가 그렇게 다 까발려도 돼?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면 뭔가 신비로운 면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어차피 쌈마이하게 시작했어. 오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모르지?”

얼굴만 믿고 나온 함량 미달의 가수부터 시작해, 우는 연기 외엔 볼 게 없다는 반푼이 조연으로, 군 위문 공연을 악착같이 돌아다니며 밤낮으로 연습하고 일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점차 인정받고, 연기와 노래에 재능이 있었던지 역량이 빵하고 터지자 무대에선 청순요염 걸크러쉬의 아이콘으로, 스크린에선 뭐든 연기 가능한 미녀 여배우로, 예능에선 시크하면서도 털털한 자수성가형 소녀가장 이미지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굳이 좋지도 않은 과거를 까발릴 이유라도 있어?”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아는 상황이야. 나중에 발목 잡힐 바에 지금처럼 기회가 될 때 털어내는 게 좋아.”

“내 이미지를 방패막이 삼겠다?”

경완이 저지른 일에 비하면 그녀의 과거는 그다지 임팩트 있지도 않았다. 그동안의 세월을 생각 없이 보내지 않았다는 걸 엿볼 수 있는 수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세상이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대가로 뭘 원하든 다 줄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꼬았던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고혹적인 눈웃음. 유혹의 의미가 짙은 걸 경완이 모를 리가 없었다.

“너 남친 없냐?”

“그런 일을 겪은 여자애가 남성혐오가 없는 게 이상하지 않아?”

세다, 세.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높은 인기를 누리는 탑급 여성 연예인이 이렇게까지 막말하는 모습이 보통은 아니었다.

“네 소속사 사장님도 참 힘들겠다.”

“그만큼 벌어다 주고 있으니까 괜찮아.”

“조금도 미안한 맘은 없냐?”

“있지만 어쩌겠어? 멍청할 정도로 착해 빠져서 이런 일에는 믿음직하지가 않은데.”

“이야, 그 업계에 착한 사람이 있어?”

“그러니까 내가 버텼지.”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아무런 재능도 꽃피우지 못한 채 그저 얼굴만 있던 시절, 그녀가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사람도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호구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희귀한 인종이다. 호구 같은 인간은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이 죄다 뜯어먹어 멸종으로 향하는 중이니까.

“그런데 넌 걱정 안 돼?”

“뭐가?”

“높으신 분들이 날 지독하게 싫어하거든.”

국회의사당 테러에 일본에서도 그 지랄을 떨었으니 좋아할 리가 있나?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라고 해도 권력자의 눈 밖에 나는 순간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광고로 먹고사는 거 아니라서 괜찮다니까. 그리고 이번 기회에 해외진출해서 한류 스타가 되어보려고. 솔직히 내 얼굴 정도면 해외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인지도가 올라갈 것 같지 않아?”

“야망이 크네?”

“오빠가 그때 그랬잖아? 나쁜 놈들이 손 못 대게 하려면 유명해지라고.”

“지금의 유명세로는 힘들어?”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새삼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오빠는 몰라도 돼. 아무튼,”

그녀는 다시 경완을 가늘고 앙칼진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여자랑 한 거 사방팔방에 소문이 다 났더라?”

롸끈한 데이비드 양반의 롸끈했던 보상과 롸끈하게 그걸 토크쇼에서 썰을 풀었던 롸끈했던 콜걸로 화제가 전환되었지만 경완은 조금의 수치심이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꾸할 뿐이었다.

“비지니스인데 뭐 어때? 일하러 왔는데 그냥 돌려보내면 그 여자도 뻘쭘하잖아?”

미연이 황당해하며 언성이 높아졌다.

“뻘쭘?! 뻐얼쭘?! 성매매한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해?!”

“별장에서 마약 섹스 파티를 즐기며 성접대 받는 것보다는 낫지.”

경완은 당당했다. 저~어기 높으신 분들처럼 청탁을 받은 건 아니니까. 그리고 공무원도 아닌데 향응 좀 받는 게 어때서?

그런 당당함에 미연은 분한 모습을 보였다.

“누구는 아직까지 처녀인데 누구는 총각 딱지를 떼다니...”

“잘됐네. 처녀 프리미엄이 붙어서 몸값이 더 올라갈 테니까.”

차라리 영화 속 대사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여배우의 입에서 나온 파격적인 발언도 경완은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사람들이 그녀가 겪었던 사건들을 믿는다면 그녀가 처녀라는 사실도 믿을 것이다. 남성혐오에 걸린 여성이 쉽게 연애를 할 수 있을 리 없을 테니까.

미연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처녀 프리미엄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왜냐면 그건 환상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지.”

오죽하면 유니콘이란 처녀 감별사 설화가 있을까?

누군가는 시대에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매도하더라도 처녀에 대한 환상은 사라질 수 없었다.

왜냐? 처음이란 뭐든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첫 아이, 첫 유치원 등교일, 첫 번째 친구, 첫사랑, 첫 연애, 첫 직장, 첫 월급.

이렇게 처음이란 중요한 것인데 첫 경험이 중요하지 않을 리가?

이런 첫 경험의 중요함에는 남녀가 따로 없지만, 처녀를 동정보다 더 따지는 이유는 남자는 동정을 떼도 아무런 흔적이 안 남지만 여자는 까딱하다가는 첫 경험에 임신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태어난 자식이 자기 아이인지 아닌지 남자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기술적 한계가 만든 문화적 영향이기도 하고 말이다.

경완이 엄지를 척 들며 말을 이었다.

“내가 비싼 년이 되라고 했는데 진짜 비싼 년 됐네. 잘했어.”

“....”

미연은 어처구니가 없어 기가 막혀 했는데 강우빈이 끼어들었다.

“너무 미연 씨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는군요. 좀 더 경완 씨에게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두 사람에게 공통적인 주제로요.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만났다던 행복원은 어떨까요?”

강우빈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말문을 연 건 경완이었다.

“원장님은 어떻게 지내?”

“한결 표정 좋아 보이더라? 그거 오빠가 한 거지?”

“뭐.”

“행복원에 들러붙은 조폭 떼어낸 거?”

“어떻게 알았냐?”

“행복원 출신 중에 그럴 만한 능력자가 오빠 정도밖에 더 있어?”

“이철이라는 큰형이 있지 않았나?”

경완이 기억을 더듬어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후원자가 있어서 장차 경찰이 될 거라고 했던 이의 이름이었다.

“경찰 간부도 아니고 나이도 있는데 불가능한 일이지.”

“너는?”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라지만 연예인은 연예인이야. 사회의 썩은 부분에 손을 대는 건 여러모로 무리가 있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티 안 나게 기부하는 거랑 인기를 유지하는 것뿐이었어.”

아무리 주목받는 인기 연예인이라지만 공권력과 결탁한 범죄조직을 어떻게 할 순 없었다.

고발하려고 해도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고 고발해야 하는데 범죄조직과 결탁한 공권력이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할까? 오히려 연예인 주제에 주제를 모르고 나댔다고 역풍이나 받을 것이다. 오죽하면 정치권에 뭐가 터질 때마다 연예인 스캔들을 터뜨려 시선을 돌릴 정도일까?

그렇다고 마냥 불리한 것만은 아닌 것이 조폭이 인기 연예인에게 함부로 손을 쓰기도 힘들다.

이러한 구도는 마치 먼저 칼을 뽑는 쪽이 허점을 드러내는 상황이라 서로의 영향력으로 겨루는 수밖에 없었다.

인기 연예인인 이미연은 행복원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으로, 조폭은 고아들에게 잔인한 사회에서의 현실적인 출세방법으로.

어느 쪽이 우세할지는 아이들의 마음에 달린 문제였다.

그런데 경완의 한 수에 조폭들이 그냥 쓸려 나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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