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89화 (89/367)

088-10-빌드업 히어로즈

미연이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일본에 가주는 대가로 국정원에게 요구한 게 그거야.”

일본이 국정원 사람들에게 준 뇌물에 관한 건 쏙 빼놓는 경완이었다. 쥐도 구석에 몰면 문다. 굳이 국정원을 과도하게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역시 오빠였어.”

미연이 반짝이는 눈빛과 미소로 경완을 보자 경완은 질색하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저런 감탄과 선망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부귀영화에 관심이 없다지만 공짜로 일해 줄 순 없잖아? 그래서 반쯤 국정원 엿 먹으라는 기분으로 요구한 거야.”

공짜로 일해주면 노예인 줄 안다. 사회생활의 기본은 거절하는 법, 요구하는 법, 그리고 추노 하는 법으로 이루어진다.

추노가 뭐냐고? 여기서 계속 일하면 ㅈ되겠다 싶을 때 요령 좋게 튀는 방법이다.

“그래도 덕분에 여러 사람의 인생이 바뀌었는걸?”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거야.”

“내가 오빠를 만나서 바뀐 것처럼?”

“99%는 네 노력의 결과거든? 왜 이리 질척대?”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본의 이야기도 나오고 초능력에 대한 것도 나오고 문화나 사회, 정치에 관한 것도 나오는 와중에 경완의 개인적인 견해나 경험 같은 것이 녹아 나왔다. 아마 그것이 강우빈이 이 인터뷰를 의도한 바일 것이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미연이 열정적으로 호기심을 빛내기도 했고 경완이 그래도 안면이 있다고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준 덕분이기도 했다.

아마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지 않았다면 밤을 새워 이야기했을 지도 모른다.

“이제 가야 할 시간입니다.”

김준이 인터뷰에 끼어들었다. 미연이 아쉬운 표정으로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물러났다.

강우빈도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은 여기까집니다.”

“아시겠지만, 방영 전에 저희의 검수를 받으셔야 합니다.”

김준이 강우빈에게 주의를 주었다.

경완의 입에선 제법 예민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예를 들어 FBI의 초능력 수사대에 관한 이야기가 그중 하나였다. 괜히 그들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가서 범죄자들이 대응책을 모색할 여유를 줄 필요는 없었다.

강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잖습니까?”

감독으로서 검열은 반갑지 않으면서도 또한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의 수호국이라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검열은 자본에 의해 시행된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돈이 안 되거나 당기순이익에 손실을 일으킬 것 같으면 잘라버리는 것이다. 광고에 밥줄이 걸린 언론이 기업의 딸랑이로 전락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인터뷰가 끝나고 김준과 톰은 경완을 데리고 공항으로 향했다. 인터뷰를 위해 공항 근처의 호텔을 빌렸던 터라 걸어가도 무방했다.

그런데,

“왜 따라 오시는 거죠?”

김준이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강우빈과 이미연을 돌아보았다.

강우빈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큐멘터리의 나머지 부분을 찍으려면 한국에 가야 하거든요.”

이미연은 이렇게 대답했다.

“경호원도 없이 몰래 나왔어요.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같이 가게 해줘요. 불안하단 말이에요.”

김준이 톰을 보았다. 이런 건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쿨한 톰은 쿨하게 엄지를 내밀었다. 신원이 확실한 두 사람이 뭔가 나쁜 짓을 할 리는 없었고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는 것은 사법기관에 종사하는 자의 의무였다.

경완이 한마디 했다.

“이거 뭐 무슨 일이 터지는 거 아냐?”

어찌 돌아가는 상황이 수상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예감은 비행기가 무사히 서울에 착륙함으로써 무색하게 되었다.

“미스터 리. 말했지 않습니까? 저번 같은 일이 결코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요.”

“후훗! 무슨 일이 터진 데.”

미연이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경완을 놀렸다.

하지만 경완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예언자도 아니고 틀릴 수도 있,”

펑!

꺄아아아악!

그때 폭음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더해 사람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한쪽으로 몸을 피하고 있었다.

경완은 감탄했다.

“이야~. 내 입이 문젠가 보다.”

그 와중에 김준이 서둘러 강우빈와 미연의 어깨를 잡고 눌렀다.

“자세를 낮춰요!”

톰도 자세를 낮추고 주변을 살폈다. 경완이 눈치를 보며 천천히 자세를 낮추는 와중에 톰은 김준의 등을 두드리며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There!”

그가 가리킨 곳은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는 출구에서 직각 방향에 있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글이 적힌 문이었다.

확실히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누가 넘어져 길이라도 막히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으니 사람들이 안가는 길로 도망치는 게 더 안전할 수 있었다.

“갑시다!”

김준이 일행을 재촉했다.

일행이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향하는 와중에 강우빈이 말했다.

“아무래도 저는 따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어디 갈려고요?”

미연이 놀라서 묻자 강우빈이 대답했다.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는데 걱정이 되어서 말이죠.”

“위험합니다.”

김준이 경고했지만 강우빈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제 한 몸 정도는 잘 챙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미연 씨를 잘 보호해 주십시오.”

강우빈은 경완을 보며 당부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엄지를 쳐들었다.

그렇게 강우빈은 일행과 헤어지고 김준과 경완, 미연과 톰은 관계자용 통로로 피신했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 무너지고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잠잠해졌다.

경찰과 특수기동대가 출동해서 사람들을 피신 시켜 이 소란을 벌인 범인들을 체포했다.

체포 당시 범인들은 쿨쿨 자고 있었고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갈색의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양복의 남자가 나타나자 초능력으로 격하게 싸우고 있던 두 사람이 비틀거리다가 픽하고 쓰러졌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그렇게나 경찰 수뇌부가 열심히 막고 있던 샌드맨의 이름이 대중에게 드러나게 되었다.

= = = = =

10-빌드업 히어로즈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초능력자 사이의 전투는 외국인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 명은 슬라브 계열의 백인이었고, 또 한 명은 동아시아계 사람으로 중국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싸운 이유에 대해서 그냥 서로 시비가 붙어서 그렇게 싸우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경찰이 그런 말을 쉽게 믿을 리가 있겠는가?

결국 경완이 불려왔다.

“사람 쉬지도 못하게 하고 말이죠. 저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끝났다고요.”

“그럼 미국에 가질 말던가.”

경완의 협조를 구하러 온 형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솔직히 협조를 구하러 오긴 했지만 이미 수사기관에서 경완은 밉상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였다.

일본에서 사고 친 것뿐만 아니라 사망기자와 샌드맨 사건도 도움을 안 주고, 그전에 일어났던 고위층 거시기 거세 사건의 범인에 대한 수사도 도움을 거부해서 경완은 법질서를 수호하는 경찰의 편이 아니라는 인식이 박혀 버렸다.

까칠한 형사의 대꾸에 경완이 심드렁하게 카운터를 날렸다.

“따지고 싶으면 법무부 장관에게 가서 따지던가요.”

“끄응.”

또 이렇게 한 마디를 지는 법도 없었다. 말이라도 유순하면 덜 밉기나 하지.

경완이 도움을 준 건 어쨌냐고요? 원래 호의를 권리로 아는 것이 인간이란 동물의 습성 아니겠어요?

아무튼, 형사의 입장에선 이렇게라도 써먹을 일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가 얼른 저 위험한 놈을 이용해서라도 두 외국인에 대한 심문을 끝마쳐 놓으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경완은 첫 번째로 슬라브 계열의 범인과 대면했다.

경완의 얼굴이 유명한지 대번에 굳어버린 그는 수사관을 향해 위협적인 눈빛으로 ‘로이어!’를 반복해서 외쳤다. 얼른 변호사를 불러오라는 뜻이었는데 억양을 보니 분명 러시아 사람이었다.

수사관이 오케이오케이 하며 변호사를 불러주기로 하고 그동안에 경완이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백인 남성은 어깨를 털어댔지만 경완의 손아귀를 벗어진 못했고 경완의 주도로 심문이 시작되었다.

이름 미하일 바스코치. 거짓.

나이 서른둘. 거짓.

성별 남자. 진실.

신원부터 거짓이니 여권은 분명 위조였다. 하지만 감 좋은 경완이 턱턱 던지는 질문은 남자가 감추고 하는 사실, 그가 레드 마피아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밝혀냈다.

수사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윗선에서 경완까지 불러서 급하게 심문을 진행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긴 건 싸운 이유가 시비라는 진술은 또 진실이라고 나온 것이다.

수사관은 왜 레드 마피아가 한국에 들어왔나 물었지만 사실 웃긴 질문이었다. 러시아 마피아의 자금부터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 조직원이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비즈니스 때문이라는 백인 남성의 진술은 참이었다.

거기서 심문은 더 진행하지 못했다. 잘 다림질 된 양복을 입은, 척 봐도 비싸 보이는 변호사가 들어와 서류를 내밀며 백인 남성을 챙겨갔기 때문이었다.

수사관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보내주고 대신 중국인을 심문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가관이었다. 삼합회 소속의 조직원이라지 않은가?

“아니 씨발. 한국이 언제부터 이런 무법천지가 된 거야?!”

수사관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 시선엔 유명 로펌의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가는 삼합회 조직원의 뒷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레드 마피아 남자가 그랬듯, 이번에도 몸값 높은 변호사가 삼합회 조직원을 데려간 것이다.

경완이 수사관의 말에 한마디 보탰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 경완을 보는 수사관의 시선이 따가워졌다. 그 무법천지에 일조하고 있는 새끼가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냐는 시선이었다.

그런 수사관을 경완이 오묘한 시선으로 보며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한마디를 던졌다.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죠?”

“... 아 씨발..”

수사관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진짜 그럴 것 같아서 큰일이었다.

= = = = =

경완이 미국을 오가는 사이에 흑야의 두 번째 습격이 있었다. 누군가의 장손은 두 다리가 부러져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지만 병원의 중환자실보다는 어느 한적한 곳의 별장을 택해 요양을 선택했다.

한 달 뒤, 뼈가 어느 정도 붙었을 때쯤 환한 보름달이 떠 있는 저녁. 검은 연기가 별장 앞에 가라앉았다.

그 검은 연기를 헤치고 후드를 쓴 남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치라이트가 그를 비추고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자들이 그를 포위하듯 모습을 드러냈다.

흑야는 고개를 돌려 포위된 이들을 훑어보았다.

침묵이 유지되는 가운데 긴장감만 올라갔다.

흑야가 불리함을 파악하고 피하려고 했지만 그를 포위한 이들은 그를 사냥하기 위해 모인 자들. 쉽게 보내줄 리 만무했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검은 연기가 휘몰아쳤지만 고용된 청부업자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강화된 자신의 신체를 이해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다루는 방법까지 터득한 그들은 전투 경험까지 풍부해서 아무리 염동력을 사용하는 흑야라도 쉽게 물리칠 수 없었다.

아니, 염동력이란 형태의 초능력이 아니었다면 이미 초인적인 속도와 완력을 발휘하는 그들에 의해 갈가리 찢겨버렸을지도 모른다. 청부업을 직업으로 삼은 그들과 달리 흑야는 전투와 싸움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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