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10-빌드업 히어로즈
암튼 장비를 본 경완의 감상은 이러했다.
“어째 좀 싸한데요.”
“프로토타입이라서 그럴 거예요. 다루는 사람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이거든요. 물론 안전은 걱정하지 말아요. 안전만큼은 확실하게 검증했으니까요.”
그 검증은 과연 누가, 몇 명이나 했을까?
문득 떠오른 의문이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경완의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검증할 때 몇 명이나 죽었어요?”
“··· 아무도 안 죽었어요.”
“그럼 몇 명이나 병신 됐어요?”
“그럼 저기에 들어가 볼까요?”
말하기 싫은 건지 밝힐 수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짓궂은 건지, 김마리아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경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천리안' 장비를 가리켰다.
경완은 장비에 앉으며 물었다.
“왜 하필 천리안 같은 장비예요? 초능력이면 우선 관련 무기체계부터 개발하지 않아요?”
기술이 가장 먼저 응용되는 분야는 군사 분야다. 구리나 철이 발견되었을 때도 농기구보다 무기가 먼저 만들어졌고, 인터넷이나 GPS도 원래는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김마리아가 한쪽에 있는 컴퓨터를 조작하며 대답했다.
“현대는 정보전이잖아요. 정보가 우선이죠. 그리고 생각해봐요. 적국의 기밀과 기술정보를 빼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유리하겠어요?”
“도둑질당한 이들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그거 짱개가 각국의 기술을 도둑질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경완의 말에 김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미 세상은 조용히 전쟁 중이랍니다.”
우웅거리며 장비에 전기가 들어왔다. 회로에 전압이 가해지며 발생하는 고주파음(音)이었다.
“마음 편안하게 먹고 감각을 끌어올려요. 좀 이질적인 감각이 들어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해요.”
마리아가 컴퓨터를 조작하며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아무래도 개인차가 큰 장비이니만큼 경완에게 맞도록 조정작업부터 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경완은 연구소에서 점심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뿐인가? 마리아가 중간에 이것저것 던진 질문에 대답도 해야 했다.
“이제 거의 다 됐어요.”
“방금 전에도 그렇게 들었거든요.”
“이번엔 진짜예요. 마지막으로 약물 사용에 관한 것만 남았거든요.”
“약물이요?”
경완은 반문하며 생각했다. 썅년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는 걸 저 여자는 알고 있을까?
“일종의 최면 유도제 같은 거예요. 본격적으로 작동을 시작하면 이질감이 더욱 커져서 동기화가 깨질 우려가 있거든요. 그 이질감을 완화해주는 거죠.”
일종의 향정신성 의약품인가?
“그거 안 쓰면 안 돼요?”
경완이 말했다. 약물로 사람 정신 가지고 노는 거 요령만 알면 의외로 간단한 일이었다. 그가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탐탁지 않아 하는 반응을 보이자 마리아는 이렇게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럼 일단 약물 없이 해보고 안 되면 써보기로 해요.”
끝까지 약물을 안 쓰겠다는 말은 안 하는 것을 봐서는 역시 위험한 년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면 그때 발뺌을 해도 늦지 않았다. 설마 강제로 약물을 주입하겠는가? 뒤질라고.
곧 천리안 장비가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코일에서 발산된 자기장이 뇌에 활성전류를 유도하고 뇌파를 자극했다.
경완의 오래된 기억이 이와 비슷한 감각을 떠올렸다.
어느 전생이었더라? 그래, 거의 모든 사람의 뇌에 칩과 나노 와이어를 박아 넣은 첨단 전자문명의 세상, 전자정보로 이루어진 세계에 뇌를 다이렉트로 연결할 수 있던 세계에서 종종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이었다.
경완은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장비와, 소위 동기화하는 작업의 이질감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점차 감각이 넓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S입자가 풀어 헤쳐지며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마리아가 물었다.
“어때요? 새로운 감각이 느껴져요? 다른 피험자들 말로는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 같다거나 눈이 따로 날개 달린 듯이 움직이라는 느낌이라는데.”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이에 그녀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경완 앞에 여자의 사진 하나를 태블릿으로 보여주었다. 장발의 제법 예쁘장한 여인이었다.
“이 사람이 한영미 씨예요. 그리고 이건 그녀의 체취가 남은 옷과 머리칼 샘플이고요.”
마리아가 밀봉된 상자를 열어 경완의 코앞까지 가져왔다. 머리칼은 그렇다고 쳐도 속옷은 진짜.. 누굴 변태로 만들려고 그러나?
“확인했어요?”
“확인했으니 좀 치워줄래요?”
“.. 놀랍네요. 방금 대답할 때 동기화 수치가 전혀 떨어지지 않은 거 알아요?”
그러한 반응도 체크하는 걸 보면 이 여자의 목적이 정말 납치된 여자를 찾는 것인지 경완을 이용해 실험하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됐고,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돼요?”
“여기서부터요.”
마리아는 어제 한영미를 납치한 괴한들이 모습을 감춘 장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밤중에 산으로 들어가 뿔뿔이 흩어지며 도주했기에 추적이 쉽지 않았다.
“잡힌 놈들은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거예요. 대부분 청부업자였으니까요.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초능력으로 크게 한탕 해 먹으려고 입국한 놈들이 전부였어요.”
초능력 각성 현상으로 인한 혼란은 현재진행형이었고 자신의 능력으로 한탕 해 먹으려는 밑바닥 인생은 넘쳐났다.
마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럼 집중해요. 멀리까지 추적하려면 S입자의 밀집도와 구성 및 활성도를 높여야 하니까요.”
경완은 그녀의 말대로 집중했다. 장비가 특정 부위의 뉴런을 자극하는 방법은 아마 경험적으로 습득한 기술일 것이다. 아마 천리안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뇌활성 자료를 이용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자극하면 그와 비슷한 능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발상에서 얻어낸 기술로 보였다.
물론 S입자의 활성과 사용은 그보다 훨씬 복합했기에 운 좋게 얻어걸린 기술에 가깝지만, 순전히 사람에게만 의존해야 하는 초능력에 과학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선 큰 쾌거이기는 했다.
장비가 주는 뇌파의 이질감이 경완의 사고능력에 녹아들었다. 이것은 장비에선 높은 싱크로 수치로 표현되었다.
더 이상 그는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S입자를 퍼뜨리고 그것을 활성화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뇌가 직접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정보량은 일순간 뇌를 태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났지만 특정 패턴을 보이는 S입자를 통해 한 차례 걸러지고 또 뇌에서 한 차례 걸러져 시각과 후각, 청각의 정보 형태만으로 뇌에 적용되었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멀미나 환각을 볼 수 있는 대량의 감각이었지만 경완의 의식은 빠르게 거기에 익숙해지며 여러 장소를 움직였다. 마치 유령이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무의식의 수면 아래로 자의식이 가라앉고 오직 목적의식이 작은 부표처럼 떠올랐다. 경완의 의식은 어젯밤 교전이 일어나고, 침입자들이 빠져나간 장소로 이동해 그들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그들의 흔적은 마리아가 보여준, 숲으로 들어가는 장소에서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넓게 퍼진 S입자는 마치 인공후각세포처럼 작동해 한영미의 체취를 찾아 경완에게 전달했다.
경완의 의식이 그 체취가 점점 강해지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산을 넘어 도로까지 쫓았는데 갑자기 체취가 끊어졌다.
차량을 타고 이동한 모양이었다.
경완은 거기서 장비의 사용을 멈췄다.
“뭐요? 싱크로율이 떨어졌어요.”
“중간에 흔적이 끊겼어요.”
“흔적이 끊기다니요?”
경완은 납치된 한영미의 체취가 어느 도로에서 끊긴 사실을 알려주었고, 김마리아는 그 도로를 확인한 후에 여기저기에 전화하더니 경완에게 말했다.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니까 그동안 우리는 장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그냥 기다리라고요?”
“최대한 빨리 쫓아야 하니까요. 이건 일반적인 납치가 아니라 국가 중요기밀에 대한 탈취잖아요. 그리고 그동안 가만히 있으면 뭐해요? 알뜰하게 시간을 써야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경완에게 천리안 장비의 사용경험에 관해서 자세히 물었다.
경완은 지루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대답에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 상대가 지루해하든, 싫어하든, 곤란해하든 아랑곳하지 않는 눈앞의 여성 과학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끼가 다분한 에고이스트였다.
그렇게 한 30분쯤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는 전화를 받았고 경완에게 납치범들이 사용한 것으로 유력한 차량이 목격된 지점을 보여주었다.
경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또 천리안 장비를 가동했고 그의 정신은 멀리, 교도소에서 차량으로 서너 시간이 걸리는 장소로 날아갔다. 차량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CCTV가 설치된 장소였다.
도착하니 넓게 퍼뜨린 S입자로부터 한영미의 체취가 느껴졌다. 다시 그 체취를 쫓아 의식을 이동하던 경완은 계곡 안 부지에 있는, 어떤 기도원 같은 곳에서 납치된 한영미라는 여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꽤 많이 이상했다.
“찾았어요.”
“오! 훌륭해요! 전 며칠 걸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한영미라는 여자 납치된 거 맞아요?”
“왜요?”
“납치한 사람들이 성녀님이라고 숭배하던데요?”
경완의 말에 마리아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검지를 턱 끝에 댔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소녀틱한 행동이었지만 여전히 미모가 남아있는 그녀가 하니 퍽 잘 어울렸다.
그녀가 대답했다.
“한영미 씨는 이울 교회라는 사이비 교단에서 성녀로 활동했어요. 어제 침입한 사람들이 아마 거기 소속 초능력자인 모양이에요.”
치료능력을 각성한 한영미는 교회목사인 의붓삼촌의 아래에서 성녀의 역할을 했고, 이울 단물이라는 것을 팔아먹다가 의료법 위반, 사기, 횡령 등의 죄목으로 3년 형을 받고 수감되었다.
그 설명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는 외국에서 저지른 사보타주라면서요?”
경완의 말에 마리아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직 그 가능성을 지울 순 없어요. 광신도들은 이용하기 딱 좋거든요.”
세상에는 프렌드 쉴드만이 아니라 사이비 쉴드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광신도처럼 똥오줌 못 가리고 비이성적인 자들은 나름 이용해 먹기 좋은 패였다.
경완은 그녀의 설명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더 따져 묻기엔 저녁 먹을 때도 다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제 할 일은 여기서 끝난 거죠?”
“그렇기는 하지만 우린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있지 않나요?”
“저는 모르겠는데요?”
경완이 시치미를 떼자 마리아는 그런 그를 귀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결국 경완은 삼겹살 구이라는 그녀의 조건에 수긍하면서 연구소에서의 첫 저녁 식사를 경험했다.
하지만 경완이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한영미는 연구소로 돌아오지 못했고, 경완은 다음날 또 마리아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미안하지만 또 천리안 장비를 사용해줘야겠어요.”
“또요?”
“어제 거기서 큰일이 발생했어요.”
경완이 알아낸 한영미의 위치는 곧장 경찰 등에 전달되었고 경찰특공대가 출동했다. 교도소를 습격한 놈들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경찰특공대만 출동한 것이 아니라 ‘일성경비’를 비롯한 경비업체들로부터 초능력 경비들까지 지원받았다.
하지만 경찰특공대가 교회를 덮쳤을 때, 한영미의 의붓삼촌인 목사는 괴기스런 형태로 죽어있었고 한영미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교인들을 모두 잡아 심문하니, 목사인 공정식이 러시아나 동남아 등에서 성녀를 구하기 위한 인재들을 고용했다고 하네요.”
“그럼 그들이 그 사이비를 죽이고 여자를 데려갔다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