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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95화 (95/367)

094-10-빌드업 히어로즈

“그건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한영미 씨가 어디 있는지 추적할 수 있는 수단이 우리에겐 있죠.”

안 그런가요?

경완을 보는 그녀의 시선에 담긴 물음이었다.

경완은 눼예눼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 빨리 해치웁시다.”

이런 일을 질질 끄는 건 딱 질색인 경완이었다.

다시 천리안 장비를 사용한 경완의 의식은 한영미가 있었던 이울 교회의 기도원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천리안 장비를 사용하는 건 꽤나 재밌었다.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의식이 중력과 지형에 상관없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유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짜릿했다. 그나마 비벼볼 수 있는 스포츠가 있다면 윙슈트 정도일까?

하지만 그보다 더 자유롭고, 훨씬 안전했다.

경완의 의식이 한영미의 체취를 따라 계속 동쪽으로 이동했다.

체취를 추적하던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왜냐면 역설적으로 체취가 계속해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간에 차량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도주에는 차량이 더 적합할 텐데?

그리고 더 이상한 건 경완이 추적한 거리였다. 차량 없이 맨몸으로 이동했다기엔 단시간에 너무나 많은 거리를 이동했다.

더구나 지나온 경로는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숲이었다. 그저 동쪽으로 일직선으로 무지성으로 질주를 한 느낌이었다.

결국, 추적은 경완의 의식이 동해에 도착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한영미의 체취는 파도에 녹고 바다냄새에 덮여서 사라져버렸다.

“실패했어요.”

“실패요?”

“동해바닷가에서 끊겼어요.”

“어머? 거기까지 갔어요?! 대단하네요! 신기록이에요!”

경완의 말에 마리아는 이미 한영미의 존재를 잊은 듯했다.

“경완 씨의 의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한번 측정해봐요.”

“전 실험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닌 거로 아는데요?”

“아.. 그렇죠?”

경완이 허락한 것은 납치된 여자의 행적을 추적하는 일이지 천리안 장비 실험이 아니었다.

아쉬워하는 마리아를 향한 경완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다시 생각해봐도 저 여자는 한영미를 찾는 겸 겸사겸사 자신을 이용해 장비 성능 테스트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경완의 시선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혼잣말하듯 고민했다.

“흐음.. 조력자가 있었던 걸까요? 동쪽에는 일본이 있는데.. 일본이 끼어든 걸까요?”

“불가능하진 않죠.”

국정원까지 돈을 먹여 놓은 일본이라면 충분히 한영미의 존재를 파악하고 납치를 기도할 수 있었다. 비록 일본의 위상이 과거보다 낮아진 것은 확실하지만, 부자는 3대를 가고, 아직 일본은 3대가 교체되지 않았다.

마리아가 섭섭한 듯 입맛을 다셨다.

“아쉽네요.. 치료능력연구는 후원자가 많이 붙는데.”

“아무튼 전 가면 되죠?”

“네. 수고했어요. 약속했던 건 며칠 안에 준비가 될 거예요.”

이렇게 경완은 세립 연구소 습격 사건에서 한 발 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 외로 마리아가 약속에 철저한 편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오직 경완만을 위해 지어진 작은 독방이 약속대로 며칠 만에 지어진 것이다.

교도소와 연구소의 경계면의 한쪽 구석, 연구소의 코너 부분 땅에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작은 창고 크기의 감옥이 지어졌다. 문은 교도소 방향으로 나 있었다.

자신을 위해 지어진 감방으로 들어온 경완은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호!”

최신 게임기와 그것이 연결된 벽걸이 TV는 물론이고 침대를 겸하는 푹신한 소파와 에어컨까지!

경완의 뒤를 따라온 홍 소장은 황당한 표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감방이야 원룸이야?”

싱크대와 조리시설만 설치되어 있으면 원룸이라고 해도 좋은 정도였다.

경완이 그런 홍 소장의 감상에 한 마디를 더했다.

“벽지도 단열 벽지인데요?”

홍 소장은 눈을 감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진정시키려고 심호흡을 했다.

이건 감옥이 아니다. 이건 감옥이 아니다.

하지만 저번에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받은 전화가 떠올랐다. 내용은 김마리아 연구소장의 제안에 따를 것.

교정직 공무원으로서 가진 홍 소장의 신념은 공무원이라는 신분 자체의 한계에 패배했다.

그가 현타에 멍 때릴 때 경완은 어느새 신발을 신발장에 넣고 들어가 TV와 게임기를 켰다.

그리고는 감탄했다.

“이야~. 최신게임에 고티 게임까지 다 넣어놨네?”

으마으마한 썅년의 냄새를 풍긴다고 폄하(?)했던 과거의 자신에게 꿀밤을 먹여주고 싶을 정도로 세심한 배려였다.

홍 소장은 패드를 쥐고 소파에 앉는 경완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았다.

“야. 넌 이게 옳다고 생각하냐?”

“누구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괜찮지 않아요?”

“아니, 이게 옳냐고!”

교정직 공무원으로서의 가치관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아노미 현상이라도 찾아온 걸까?

경완같이 세상만사 심드렁한 인간이 홍 소장처럼 혼란에 빠진 사람에게 줄 것은 팩트 폭행밖에 없었다.

“친모의 세 살 유아 살해랑 표창장 위조랑 같은 형량을 받는 시대인데 옳든 말든 무슨 상관있겠어요?”

누구는 라면 하나 훔쳐도 빽 없다고 징역 3년 6개월을 받고, 누구는 집행유예 기간에 또 음주운전을 해도 바로 구속도 안 되고 며칠이나 걸린 ‘협의’ 후에야 구속되는 세상인데 경완이 이런 특혜를 받는 게 뭐가 문제겠는가?

부모 빽 쓰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그의 능력이 탐이 나서 이렇게 해준다는데?

경완의 말에 홍 소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나는 모르겠다.”

“너무 그렇게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스트레스받으면 더 빠져요.”

경완의 말에 홍 소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경완을 째려보았다.

방금 그 말에 머리칼 몇 가닥이 더 빠진 것 같았다.

= = = = =

초능력자 교도소 습격 사건은 초능력 보안, 초능력 치안, 초능력 경비, 초능력 경호 등의 용어들을 생산했다.

관련 기업들의 광고료를 받은 언론들의 설레발이기도 했지만 반쯤 사실이었다. 이미 세상은 초능력이 만연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 또 사망기자의 기레기 납치 및 폭로 사건이 또 발생했다.

현재 한국 수사기관에서 인지하고 있는 초능력 범죄자, 일명 빌런은 샌드맨, 흑야, 그리고 재벌 3세와 국회의원의 거시기를 잘라간 거세범,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망기자였다.

사망기자는 초능력자라는 증거가 없지만, 수사기관은 그를 빌런으로 분류했다.

왜냐면 그 범죄의 특징 때문이었다.

현재에도 초능력을 이용한 범죄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지만, 그건 기존의 범죄에 초능력을 토핑처럼 얹은 것에 불과했다.

치정, 이권, 도벽, 가난 등 원인이 될 만한 이유가 만들어낸 범죄였다.

하지만 소위 빌런으로 분류한 이들은 달랐다. 이들의 범죄동기는 그들만의 ‘신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그 신념은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국가 질서의 파괴를 시도한다...라는 것이 수사기관의 입장이었다.

뭐, 그렇게도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본질에는 감히 ‘강상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반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

‘감히 우리에게 덤벼?’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무장한 코리안 엘리트 카르텔이 이런 불법적인 무력에 쉽게 굴복할 리 있겠는가? 쿠데타도 아니고 말이다.

다행히 대기업들도 거액을 투자해 초능력 경비업체 등을 세운 상태지만 무척이나 협조적이었다.

당연히 그들도 기득권이었으니까.

초능력을 각성한 서민들이 힘 좀 생겼다고 날뛰는 세상보다는 자신이 아주 크게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강력한 초능력자들이 얌전히 굴종하는 세상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상엔 미친놈들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차분하게 미친놈들도 있었다.

퍼벙!

“아 씨발 깜짝이야!”

푹 자다가 난데없이 일어난 폭음에 경완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폭음이 저 멀리서 일어난 것도 아니고 지척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누군가 철문을 강제로 열고 있었다.

끼이익! 하고 소리를 내던 잠금장치가 결국 금속 깨지는 소리를 내더니 철문이 활짝 열렸다.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건 두 사람의 그림자였다. 하나는 평범했지만 하나는 체격이 매우 훌륭했다. 그림자로도 존재감을 드러낸 근육이 그가 머슬러라는 것을 충분히 알려주었다.

경완은 머슬러라는 명칭을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자는 중입니다. 문 닫고 나가세요.”

그런 경완의 말에 두 사람은 할 말을 못 찾은 듯이 잠시 멍해졌다. 설마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더구나 이렇게 사방에서 웨에엥 사이렌을 울리고 있는데 자려고?

평범한 체격의 그림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캐주얼한 정장 느낌 차림의 젊은 남성이었다.

“반갑습니다, 이경완 씨.”

“잡상인 안 받아요. 나가세요.”

“.. 하하하! 듣던 대로 재밌는 분이시군요.”

“누가 그래요?”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다큐를 보니까 저도 이해가 되더군요.”

그렇게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데 때마침 사이렌이 멎었다. 비상이 종료된 것이 아니라 지금 무슨 일인지 상황파악을 하고 대응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갑자기 교도소에 나타난 괴한들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경완 씨. 저희는 경완 씨의 합류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말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비질란스? 비질란스라면 영입은 그 텔레파시 능력자가 할 텐데? 혹시 비질란스 내부의 분열인가?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저희는 위버멘쉬라고 하는 조직입니다. 이 세상 모든 초인의 권익을 위해서 활동하죠.”

“초인들의 권익이라면 이런 침입을 하면 안 되지 않나요?”

“글쎄요? 경완 씨가 받은 부당한 대우를 생각하면 이런 침입은 저들이 치러야 하는 마땅한 대가죠.”

뭔 대우?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혼거실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넓은 방과 소파, 그리고 무엇보다도 게임기가 연결된 커다란 벽걸이 TV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런 차별적 특혜를 받는데도 부당한 대우 운운하니까 경완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남자가 말하는 부당한 대우란 지금 경완이 받는 대우가 아니라 과거의 대우에 있었다.

“당신이 뭘 잘못했기에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합니까? 당신은 옳은 일을 했습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을 이렇게 가둬두는 건 합당하지 못하죠.”

뭐지 이 새끼?

경완은 혹시나 해서 한 번 물었다.

“정말 제가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 말에 젊은 남자는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당신이 저지른 일 중에 잘못한 일이 있었다면 너무 무모했다는 겁니다.”

“??? 뭐가요?”

“저라면 그렇게 국회에 난입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양승태 그자를 납치해서 소리 없이 묻어버렸을 겁니다.”

아.. 그래서 그게 잘못한 거다?

경완은 그 순간 눈앞에 있는 이 새끼도 보통 또라이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또라이는 상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경완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를 향해 남자는 아주 자부심 넘치는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당신이 그 능력을 마음껏 발,”

하지만 그는 채 말을 끝낼 수가 없었다. 경완이 제 손으로 철문을 턱하고 닫았기 때문이다.

“순순히 따라와 줬으면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군요.”

남자가 철문을 향해 턱짓하자 근육질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철문을 잡아 뜯듯이 거칠게 열었다. 튼튼한 철문이 열리다 못해 떨어져 나갔다.

“갑시다.”

“아! 안 간다니까!”

경완이 고개를 저으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지만, 근육질의 남자가 경완을 이불에 말듯이 감싸서는 그대로 어깨에 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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