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10-빌드업 히어로즈
그 모습에 제프리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명색이 한국인인데 도대체 눈치는 어디에 엿 바꿔 먹은 걸까? 보라! 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장님의 표정을!
하지만 눈치가 없는 건 렛토보안의 경호원이라는 박해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고기도 못 먹고 쫓겨나는 거예요?”
그 모습에 제프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상(正常)은 본인밖에 없는 건가?
다행히 사장은 더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간 자영업을 하며 여러 진상을 겪었던 경험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그 경험이 딱히 고맙지는 않았다.
사장이 자본주의적인 미소를 유지하며 서빙을 하고 돌아가자(존경스러울 정도다) 세 사람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많이 들어요.”
경완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집게를 제프리에게 쥐여 주었다.
“미국인이니 바비큐 정도는 할 줄 알겠죠?”
물주가 시키면 해야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제프리에겐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한국식 바비큐, 소위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어본 적은 없었다.
“이건 그릴이 아닌데..”
“에이 고기 굽는 거 다 똑같아요.”
고기 마니아가 들으면 정색할 발언을 한 경완은 제프리가 고기를 뒤집는 동안 잔소리를 했다.
“30초마다 뒤집어야 육즙이 가둬지죠.”
“마이야르 반응이랑 고기가 타는 거랑 달라요.”
“고기가 거의 다 익었을 때 잘라야 잘 잘리는데...”
제프리는 경완의 잔소리를 참으며 고기를 구웠다. 왜 김준이 경완에게 종종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까칠한 모습을 보이는 걸 이해하게 되면서 말이다.
아무튼 다 구워진 고기를 열심히 처묵처묵할 때 어떤 여성이 다가왔다.
“저기요~오.”
“?”
경완은 쌈을 입에 넣고 우물 씹으며 그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여자가 말했다.
“이경완 씨 맞죠?”
끄덕끄덕.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뭐라고 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었다. 적어도 이번 생에서만큼은 말이다.
“저기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돼요?”
“왜요?”
“.. 안 돼요?”
여성의 표정이 좀 어색해졌다.
경완이 다시 물었다.
“사진 찍어서 뭐 하려고요?”
“SNS에 올리려고요.”
“이야~. 대단하네요.”
경완의 감탄에 여자는 수줍게 웃었다.
아니, 댁 말고 SNS가 대단하다고.
사람에게 무모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유도하는 비약물적 방법이 있다면 SNS가 단연코 최고이지 않을까? 어떨 땐 마약보다 더 강력했다. 테러범조차 자발적으로 정보를 노출할 정도니 말이다.
경완이 물었다.
“어떻게 찍으실 건데요?”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뭐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경완의 허락에 여성은 화색을 띠더니 얼른 휴대폰을 셀카모드로 한 후에 경완의 옆으로 와서는 같이 셀카를 찍었다.
한 화면에서 여성이 웃는데 경완이 뻘쭘하게 딱딱하게 무표정하게 있을 수 있나? 그래서 그도 활짝 미소를 지었다.
찰칵! 찰칵찰칵!
그렇게 여성은 세 방 연속으로 찍더니 사진을 확인하며 좋아서 방방 뛰었다.
“어머 어머 어떡해! TV에서 나온 거랑 똑같아요!”
“뭐가요?”
“웃는 거요!”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빈이 찍었던 다큐에서 자신이 이렇게 활짝 웃은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이렇게 활짝 웃었을 때는 양승태 허리에 칼침을 쑤시고 난 뒤 얌전히 투항할 때밖에 없었다.
경완이 물었다.
“혹시 국회TV 영상에 나온 거요?”
“네! 네! 맞아요!”
여자는 아예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어~무 섬뜩했던 거 있죠? 그런데 이 사진은 완전히 느낌이 다르네요.”
상황이 달라서 그런가? 아니면 핏방울이 얼굴에 안 묻어서 그런가?라며 혼자 웅얼거리는 그녀를 보며 경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미친년.
좀 어딘가 맛이 간 년 틀림없었다. 혹시 SNS가 이렇게 만든 건 아니겠지?
경완은 미친놈, 미친년은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되새기며 예의 바르게 축객령을 내렸다.
“죄송한데 이제 슬슬 식사를 하고 싶어서요.”
“아, 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다행히 여자는 질척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돌아갔다. 그리고는 같이 온 남자에게 경완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남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호들갑 떠는 여자에게 애써 웃어 보였다. 연애하는 사이인가 썸타는 사이인가?
아무튼 여자의 행동에 제프리는 홀로 외국에 뚝 떨어진 사람처럼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세상 참...”
요지경이구나.
경완이 입을 열었다.
“먹어요.”
왜 그 말이 제프리에겐 먹기나 하세요라는 말로 들릴까?
그의 시선이 박해진에게 향했다. 그는 방금의 일이 전혀 이상하지도 않은 듯이 연신 고기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더 시켜줄 테니까 천천히 먹어요.”
“감사합니다!”
경완의 말에 박해진은 절도 있는 대답으로 감사 표현을 했지만 젓가락질을 늦추진 않았다.
그동안 고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었다. 렛토보안은 도대체 얼마나 월급이 짜길래 명색이 초능력자라는 인재가 생전 처음 고기맛 본 땡중처럼 게걸스러울까?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입구에서 사장이 어색한 미소로 계산을 도왔다.
경완이 그런 사장을 향해 엄지를 쳐들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과연 맛집이네요.”
“하, 하. 감사합니다.”
어색하게 웃는 사장은 이때는 몰랐다. 국회의원 테러범인 이경완도 나름 유명인이랍시고 손님과 매출이 그렇게나 늘어날 줄은.. 아니 국회의원 테러범이라서인가?
아무튼, 그 고깃집이 맛집 투어의 시작이었다. 경완은 배가 불렀지만 식도락 여행 계획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고깃집을 나온 일행은 냉면 맛집, 케이크 맛집, 홍차 맛집, 한식 맛집 등을 순회했다. 잠은 모텔에서 해결했고 운전은 제프리와 박해진이 해결했다.
경완은 뭐 했냐고?
“저 면허 없어요.”
그의 말에 제프리는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경완이 운전을 못 한다고?
“하지만 예전에 국회의사당 사건에서....”
제프리를 말하다가 뭔가 떠오르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
경완이 말했다.
“아 그때도 무면허였어요. 상식적으로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 그렇게 운전하진 않잖아요.”
“....”
미친놈. 그건 운전면허 유무의 문제가 아닐 텐데...
태클 걸 곳은 많았지만 제프리는 정신적으로 피곤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굳이 그러진 않았다.
어쨌든 비용은 경완이 다 부담했고, 식도락 여행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도 나름 마음 편히 움직였다.
그렇다고 마냥 풀어지진 않았다. 위버멘쉬같은 놈들이 또 경완을 노리고 올 수도 있으니까.
SNS에 ‘이경완이 선택한 맛집’이라는 태그가 달린 글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할 때쯤 살짝 사고가 날 뻔했다.
“야이 씨발! 운전 똑바로 안 해?!”
상대가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경완이 본 상황은 이러했다.
우리는 좌회전 신호를 받고 진행했는데 저 성질 급한 새끼가 빨간불 기다리는 게 싫어서 노란불에 악셀을 막 밟다가 부딪힐 뻔한 거 아닌가?
경완은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퉷!
하얀 거품이 섞인 무언가가 허공을 날아 남자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 반점액질의 액체가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갑작스런 모욕에 넋이 나간 남자를 두고 경완이 창문을 올리며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무시하고 갑시다. .. 뭐해요? 안 밟고?”
제프리는 경완의 예의 없는 행동에 멍해졌다가 이어진 재촉에 얼른 악셀을 밟았다.
솔직히 그러고 싶기도 했다. 자신이 운전을 잘못한 게 아니라 저쪽이 빨간불인데도 꼬리 물기 하겠다고 무리하게 악셀을 밟다가 사고가 날뻔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괜히 내려서 얽히면 분명히 소란이 일어날 것이 뻔한데 그것도 피하고 싶었다.
“야, 야 씹새끼야! 거기 안 서?!”
얼굴에 침을 맞은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리며 경완이 탄 뒷좌석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이미 악셀을 밟은 차에 손잡이를 놓쳐버렸다.
박해진은 사이드미러로 그들을 향해 썅욕을 날리고 있는 남자를 확인하며 경완에게 감탄했다. 그 와중에 또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고 중지를 올리고 있었다.
“이야~. 정말 뒤가 없네요.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살기 싫으면 이렇게 살아져요.”
“.. 그런 거 치고는 식도락 여행도 하고 나름 재밌게 사는 것 같은데요?”
박해진의 질문에 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죽지 못해 사는 인생, 이런 재미라고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거든요.”
“....”
박해진은 경완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경호 대상인 경완이 어찌 살아왔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뒤가 없는 또라이.
차량은 침묵을 싣고 다음 맛집에 도착했다.
= = = = =
3박 4일간의 식도락 여행 마지막 날.
경완과 일행은 국산 양고기로 거하게 목구멍에 기름칠했다. 양고기는 생각보다 훨씬 기름이 많은 고기였다.
맛은 만족스러웠다.
이제 남은 건 교도소로 돌아가는 일뿐.
“별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박해진이 운전대를 잡고 말했다. 제프리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위버멘쉬가 다시 경완을 노리고 나타날 수도 있었으니까.
경완이 말했다.
“그런 말을 보고 인터넷에선 플래그를 꽂는다고 하더라고요.”
“플래그? 그게 뭡니까?”
“그 뭐 있잖아요? 용사 일행이 마왕을 처치하고 난 뒤에 ‘죽었나?’ 같은 소리를 하면 마왕이 살아나서 최후의 페이즈가 시작되는, 그런 거 말이에요.”
“불길하게 그 무슨,”
콰앙!
제프리가 불길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할 때 그들이 탄 차량의 옆구리에 1.5톤 트럭이 머리를 박았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차량이 구르고 경완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어두운 창고 안이었다. 천장에 달린 전등 하나가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그를 내리비추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었지만, 타박상이 남아있는지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식도락 여행 중에 워낙 잘 먹어서인지 체력도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살아남은 것이 용했다. 역시 NSA 요원. 차가 무척 튼튼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철제 의자에 워낙 단단히 묶여 있어 손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경완은 주변으로 주의를 돌렸다. 어두웠지만 S입자는 놔뒀다가 국 끓여 먹는 용도가 아니었다.
S입자가 퍼지며 경완의 시각을 대신했다. 저번에 천리안 장비를 사용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창고 주변에 S입자에 다섯 명의 남자가 감지되었다.
그들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경완은 조용히 S입자를 움직여보며 상황을 주시했다. 자신을 구속한 이 강철수갑을 풀고 나가는 건 가능했지만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의 근원이 있다면 삭초제근해야했다.
“형님! 저 새끼 깼는데요?!”
한 놈이 들어와 눈뜬 경완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형님이라 불린 자가 쫄다구들에게 이거저거 지시하는 게 들렸다.
“저거 수상한 짓 못 하게 잘 감시해 접근하지는 말고.”
형님이라 불리는 자의 마지막 당부의 말이었다.
그리고 두 남자가 들어왔다.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어린놈과 후덕한 살집에 건달끼 그윽한 양아치 한 사람이었다.
경완이 그 둘에게 물었다.
“그래, 누가 형님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