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10-빌드업 히어로즈
하지만 두 사람은 반응하지 않았다. 경완의 말에 대꾸하지 말라는 당부도 단단히 받았기 때문이다.
경완은 도발을 계속했다.
“귓구멍에 좆 박으셨어요? 누구 좆이길래 그 작은 구멍에 박혀요? 혹시 느그 형님 좆?”
“.. 저 씹새끼가.”
경완의 도발에 노랑머리가 욕설을 내뱉었다.
옳지! 자~알한다!
경완은 흥분하는 노랑머리를 속으로 응원하면서 계속 입을 털었다.
“거시기 크기로 형아우를 따지면 막내가 되어야 할 사람이 형님 노릇을 하고 있으니 참 거시기하죠? 남자로서 자존심도 안 상해요? 오~. 안 상한다고요? 왜요? 아! 몰래 형수님 따먹고 있다고요?”
“이 시발놈이. 입 닥쳐라.”
“아이고~~오. 기껏 거시기 크게 낳아줬더니만 어디 실좆 밑에서 똘마니 노릇이나 하고 있는 자식새끼 보고 어머님이 어찌 생각하실꼬~~~오?”
더 이상 참지 못한 노랑머리가 각목을 들고 다가왔다. 어이! 이봐! 네 거시기 크다고 칭찬하는 중이잖아?
아무튼, 노랑머리가 도발에 넘어와 경완이 의도한 변수를 만들려고 할 때 그 옆에 있던 후덕한 남자가 놈을 붙잡았다.
“참아라.”
“하지만 저런 소리 듣고도 참아야 합니까?”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저 새끼 존나 무서운 놈이다. 저 새끼가 괴력 초능력자 이긴 거 봤냐? 저 새끼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다.”
너무나 침착한 태도로 도발에 넘어오지 않자 경완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래! 유명해지면 이게 안 좋다니까. 상대가 방심을 안 해줘요.
경완은 도발을 포기하고 물었다.
“하나 물어봅시다. 이거 하는데 얼마 받았어요?”
“... 그건 왜?”
“내 몸값 내가 낼 수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그 말에 후덕한 남자가 쓰게 웃었다.
“흐흐. 너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받았다.”
“백억 정도 받았어요?”
“그보다 조금 더?”
“에이~. 보니까 댁이 받은 것도 아니구만. 솔직히 말해서 댁들 형님만 정확히 알지 댁들은 진짜로 얼마 받았는지 모르죠?”
“... 이간질하지 마라.”
잔뜩 경계심이 어린 말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간질 같으면 댁들 형님하고 얼굴이나 보게 해줘요. 댁들한텐 이게 다~아 비즈니스 아니오? 내가 몸값 더 많이 낼 수 있으면 그쪽이 댁들에게 더 좋은 거 아니에요?”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래 봬도 비행기 납치 테러를 막은 영웅이에요. 그거 보상금이랑 그동안 내가 미국 수사기관을 도와주면서 받은 돈, 그리고 요번에 히트친 다큐멘터리 영화 출연료 등을 다 생각하면 장난이 아닐걸요?”
경완의 말에 후덕한 남자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노랑머리에게 말했다.
“나 형님 불러올 테니까 넌 여기에서 저 새끼 감시해라.”
“저 새끼 말대로 할 거예요?”
“선택지가 많은 건 나쁘지 않아.”
선배 깡패의 말에 노랑머리는 표정을 관리하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경완의 더러운 도발에 심히 기분이 상한 상태라 경완의 말대로 한다는 것에 반감이 있었다.
경완과 노랑머리의 시선이 교차했다. 노랑머리는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이 눈꺼풀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경완을 노려보았다.
그런 노랑머리를 보는 경완은 지루해서 하품을 했다.
그렇게 그가 크게 하품을 하며 폐 속에 쌓인 이산화탄소를 내뱉었을 때 머리를 빡빡 깎고 금목걸이를 한 후덕한 양복의 사내가 방금 나갔던 후덕한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양복의 건달이 경완에게 물었다.
“그래. 몸값을 내시겠다고?”
“멀어서 잘 안 들려요. 좀 가까이 오시면 안 돼요?”
경완의 말에 양복 건달은 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걸어왔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오지는 않고 약 다섯 걸음 정도 멈춘 곳에서 멈췄다.
“거기서 잘 들리시겠어요?”
“이봐. 난 멍청이가 아니야. 야.”
양복이 뒤를 보며 턱짓했다. 그의 뒤를 따라 장대를 들고 들어온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빙 둘러 경완의 뒤로 갔다. 그리고 장대 끝으로 경완이 구속구를 쿡쿡 찔러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이상 없습니다.”
그들은 경완을 마치 맹수처럼 다루었다.
“건달이 너무 쪼는 거 아니에요?”
“내가 비록 건달이라지만 미친놈 옆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건 알지.”
“미친놈 옆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건 알면서 미친놈 건들면 안 된다는 건 모르세요?”
“그러기엔 너무 돈이 많았거든.”
“얼마나 많았기에 그래요?”
“흐흐흐.”
양복 건달이 유쾌하게 웃었다. 말해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누구일까? 그를 초능력 연구의 재료로 삼고 싶어 하는 이들일까?
생각해봐도 후자는 너무 개연성이 약했다. 미국이 주시하며 또 한국이 관리하는 초능력자를 국가적으로 납치해서 괜히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를 만든다?
아무리 경완이 귀하신 몸이라도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외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가지.
“절 뭐 죽여 달라거나 그런 거예요?”
“아무리 내가 법이 그은 선을 왔다리갔다리 하는 인간이라지만 함부로 사람을 죽이진 않아. 난 그냥 넘겨줄 뿐이야. 아! 그렇다고 의뢰인이 널 살려둘 것 같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한 때문에 이러는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 저들에게 사주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한을 가진 이를 떠올려보니 제법 많았다.
“그럼 얼마나 기다리면 그 양반을 볼 수 있어요?”
“.. 그건 왜 묻는데?”
“그전에 협상해서 잽싸게 튀어야죠.”
“푸하하하!”
경완의 말에 양복건달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낼 수 있는데?”
“선 제시해보세요.”
“허허. 돈이 많은가 보지?”
“바이아웃은 아세요?”
“바이아웃?”
생뚱맞게 나온 말에 양복건달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대충 밀고 당기는 협상 없이 바로 거래가 성사되는 걸 말해요. 그래서 바이아웃 가격은 협상가보다 항상 높죠.”
“오호~!”
“한 번 꺼내 봐요. 얼마가 되어야 고민도 없이 기존의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지.”
그 말에 양복건달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300억.”
“와~. 로또네 로또야.”
“그래서 낼 수 있어 없어?”
“너무 양심이 없는 거 아니에요?”
경완의 항의에 그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내 동생들만 다섯이다. 퇴직금 50억의 시대에 그 정도는 받아야 나랑 내 동생들이 손을 씻을 거 아니냐?”
이게 뭔 개소리야? 경완은 황당해서 어리둥절했다.
“아니! 누가 퇴직금을 50억이나 받아요? 대기업 회장이라도 돼요?”
“아니. 어디 듣도 보도 못한 기업 대리라던데?”
“회장님 핏줄이라도 된대요?”
“아니.”
“혹시 사생아?”
“그것도 아니래.”
“이야~. 세상 참...”
세상에는 참 신기한 일이 많다.
경완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예요. 제 통장을 다 털어도 그 정도는 없어요.”
그런 솔직한 대답이 양복건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럼 얼마나 낼 수 있는데?”
“3억 정도?”
3억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성실히 살아도 억을 모으기 힘든 현실에서 경완 같은 놈이 3억이나 벌었다고 하니 양복건달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범죄자 주제에 어떻게 그리 돈 벌었냐? 뉴스 보면 어디 돈 벌 데도 없어 보이는구만.”
“국정원이 뇌물 받은 것 좀 뜯고, 미국이 일 시킬 때마다 조금씩 받았죠. 아! 다큐에 출연한 것도 있네요.”
사실 그 돈 거의 다 강우빈이 만든다는 피해자 보호 재단에 기부했지만, 설령 기부를 안 했다손 쳐도 300억은 무리였다.
솔직히 3억도 없었다. 1억이면 백 년 동안 매주 2만 원어치 치맥을 할 수 있는 액수인데 괜히 쓸데없이 많은 돈을 계좌에 쟁여둘 리가 있겠는가? 돈이 돌아야 서민이 살고 나라 경제가 살고 교도소도 예산타고 경완 입에 배식이 들어가지.
하지만 경완의 혼이 실린 구라(?)에 양복건달은 의심조차 못 하고 그저 혀를 내둘렀다.
뭐? 국정원이 뇌물 받은 거 뜯어냈다고? 뉴스에도 안 나온 일인데? 이쯤 되니 건달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난놈은 난놈이네.”
그래도 감탄은 감탄이고 사업은 사업이다.
“아무튼 몸값을 못 낸다니 쫑이네.”
“그러네요.”
“그런데 넌 두렵지도 않냐?”
“저요?”
“그래. 넌 이 상황에서도 겁을 저~언혀 안 먹은 것 같거든.”
경완이 대답했다.
“저도 두려운 건 있어요.”
“뭔데?”
“미쳐가는 거요.”
“.....”
경완의 대답에 양복건달은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를 보며 경완이 헤~에 하고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날 제정신으로 유지해주고 있는 가치관과 신념들이 점차 마모되어가는 느낌이 어떤지 아세요?”
“.. 음.. 너 혹시 정신병원엔 가봤냐?”
“정신병원은 이 문제를 해결 못 해요. 비유하자면 순진무구한 소년이 세상의 온갖 더러운 꼴을 보고 겪으면서 냉소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거랑 비슷한 거죠.”
“다들 그러지 않나?”
“하지만 세상 전부에 냉소하다 못해 자기자신에게까지 냉소적이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 글쎄?”
“죽지 못해 사는 꼴이 되는 거예요. 그게 지옥이랑 다를 바가 있나요?”
“.....”
양복건달은 복잡한 표정으로 경완을 보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저 미친놈이랑 이런 대화를 나눌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암튼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온다.”
복잡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칼날 위에 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삶. 어차피 한 번 살다가 갈 거 경완과 같은 고민은 그에게 도움이 안 된다.
“형님! 왔습니다!”
“오! 그래?”
부하가 창고의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의뢰인의 도착을 알리자 양복건달이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창고 밖으로 나갔다.
이것도 그에겐 비즈니스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 변호사님!’
‘놈은요?’
‘잘 잡아놨습니다.’
밖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건달들이 경완 주변에 비닐을 깔기 시작했다. 비닐만 깔았나? 아니다. 근처에 철제 테이블을 가져다 두더니 그 위에 여러 연장들을 가져다 놓았다.
망치, 각목, 나이프, 톱, 못.
입이 근질거리다 참다못한 경완이 물었다.
“철물점 차리세요?”
하지만 사내들은 경완의 물음에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할 일만 했다. 경완의 도발에 화를 냈던 노랑머리만 이죽거렸다.
“쫄았냐?”
킹받네?
경완이 노란머리를 향해 막 뭐라뭐라 대꾸를 해주려고 할 때 다른 이들이 들어왔다. 경완은 기억에 있는 이들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야~!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들은 다름 아닌 육고자 사건의 피해자, 어린 여섯 윤간미수범의 부모들이었다.
경완의 인사에 눈앞에 선 이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잘 지냈냐고?! 잘 지냈냐고오~?!”
그중에 언성을 높이는 중년 여성을 보며 경완이 물었다.
“아줌마도 오랜만이에요. 법정에서 뵙고 도대체 이게 얼마 만이에요? 그때 기절하셔서 못 물어봤는데 제 코딱지는 짭짤했어요?”
“이야아아아!”
여성이 미친년처럼 달려들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남자에게 허리를 붙잡혔다.
“여보! 진정해! 진정하라고!”
“진정 못 해! 저 새끼 당장 갈아 마셔버릴 거야!”
“많이 비릴 텐데..”
‘비위는 좋으세요? 걱정돼요’라며 걱정하는 투로 하는 말이 마치 남일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때 안경을 쓴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자 아줌마가 진정하며 소란이 멎었다.
경완은 그 남자의 얼굴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