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02화 (102/367)

101-10-빌드업 히어로즈

물론 그렇게 되면 수입은 정부에서 주는 것이 전부가 되기에 사업가들은 머리를 한 번 더 굴렸다. 수익이 정부의 지출로만 충당되면 정부가 갑이고 회사가 을이 될 수밖에 없어서 정부에 끌려갈 수 있었다. 그래서 수익의 다변화는 사업가들에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 수입의 다변화를 위한 아이디어가 바로 '히어로'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는 묘수였다. 히어로 활동으로 정부로부터 치안 비용을 받고, 히어로가 인기를 얻으면 관련 상품을 팔아먹고, 광고도 팔아먹을 수 있었다.

그뿐인가? '히어로'의 존재에 민중의 지지가 얽히면 정부가 함부로 갑질을 할 여지도 줄어든다. 거기에 '치안의 민영화'라는 용어보다 '히어로 활동'이라는 용어가 훨씬 어감이 좋고 대중 친화적이지 않은가?

히어로 활동을 하는 초능력자 개인에게도 좋다. 단순히 정부의 강압이나 평범한 이들이 경원(敬遠)시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부와 명예, 선망까지 받을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기는 거니까.

“미국은 그렇다고 쳐도 한국에서 그게 가능하대요?”

“가능하더군요.”

대기업 공화국이다.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을 줄 알아서 동네 상권까지 거침없이 진출하는 그들에게 미국식 히어로 산업은 또 다른 블루오션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정부 영역의 민영화란 정경유착의 꽃이자 예전부터 막대한 차익을 남겨온 검증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이 아닌가? 이런 기회를 놓치면 사업가가 아니었다. 그동안 향응이나 친인척 취업청탁, 강연 후원 등으로 관리해온 여러 고위 공직자들도 그동안 처먹은 걸 토해놓을 때가 됐다.

단순히 기업의 논리로 밀어붙이면 안 그래도 반대기업 정서가 좀 있는 대한민국이라 저항감이 좀 있겠지만 여기에는 외교적 사항이 얽혀 있었기에 든든했다. 미국은 이 히어로 산업을 이용해서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할 생각이었다.

국가 간의 동맹 관계는 단순히 국익만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동질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공산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가 결코 동맹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미국이 그리는 밑그림은 히어로 산업이 활성화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를 이질감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 미국이 외교적으로 한국에 히어로 산업 육성을 바라는 것은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계획이었다. 중국에선 중국 공산당이 아닌, 중국 공산당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권력자가 아닌 이가 민중의 추앙을 받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을 테니까.

즉, 히어로 산업은 중국 공산당으로선 하기 힘든 사업이었다.

초능력자는 본질적으로 일반 연예인이 아니라 초능력이란 무기를 든 개인이었고, 미국 같은 자유주의 국가는 그런 초능력자를 영입하기 위해서 기꺼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협상’을 할 수 있으나 권력의 독점이 지상과제인 중국 공산당 입장에선 그런 ‘협상’은 곧 독약이 든 성배였으니, 마실 수 있을 리 없었다.

경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일본도 있잖아요?”

일본도 전대물을 비롯해 여러 히어로물이 많았다. 하지만 김준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일본 히어로는 미국 히어로랑 결이 달라서요. 그리고 일본의 문화 자체가 튀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히어로 컴퍼니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연예인을 아티스트가 아니라 사원 취급하는 일본 연예계를 생각하면 미국식 히어로 산업이 일본에 정착할 가능성은 작았다.

그리고 정말 진지하게 일본에도 히어로 산업을 정착을 시키고자 한다면 우선 한국부터 히어로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왜요?”

“일본은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나라니까요.”

“그거참 대단하네요.”

김준의 뼈있는 농담에 경완은 헛헛하게 웃었다.

사실 세계에서 한국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혐한 서적이니 뭐니해도 특정 국가에 관한 책이 수시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일본 외에 또 있을까?

그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나라이니 한국에서 히어로 산업이 육성된다면 일본도 따라 하려고 한다는 것에 김준을 자신의 불알 두 쪽을 다 걸 수 있었다. 강력한 초능력자 다수를 민간자본으로 육성, 보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만으로 국력과 국위 선양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니까.

또한 한국은 아시아에서 할리우드식 히어로 무비가 인구대비 가장 성공한 곳이다. 미국식 히어로에 대한 이질감이 적다는 뜻이었다. 물론 현재 한국의 시국이 히어로 산업이 육성되기 좋은 시기라는 점도 있었다.

한국의 사회 지도층도 사망기자, 흑연, 거세남, 샌드맨 등의 빌런이 여전히 종적을 찾을 수 없어 사회적 혼란(?)이 이는 와중에 미국의 의중을 쉽게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또 모르지 않은가? 히어로 컴퍼니를 설립하면 그런 빌런을 잡아줄 재야의 인재가 툭 하고 튀어나올지.

“세상 참 하루가 다르게 바뀌네요.”

경완은 현대사회의 활발함에 감탄했다.

그렇게 그 주제는 마무리가 되었고 다른 주로 넘어갔다.

김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경완에게 물었다.

“경완 씨. 이번에 일어난 사건에서.. 혹시 괴력 능력을 사용하셨습니까?”

그 말에 경완은 김준의 표정을 보았다. 보아하니 이미 증거와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오리발 내밀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았다.

“네.”

“어떻게요?”

“잘?”

“···.”

그거까지 가르쳐줄 의무나 친절함은 없다는 경완의 태도에 김준은 잔뜩 고구마를 먹은 듯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내린 듯이 경완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혹시.. 미국인이 될 생각이 있습니까?”

표정을 보아하니 방금의 제안은 저~얼대로 김준의 생각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상부에서 고심해서 나온 제안인 모양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경완의 능력은 권총으로 저격이 가능할 정도의 감각 강화, 즉 에스퍼 계열의 능력이었는데, 거기에 괴력 능력이 추가되었다.

경완이 지금까지 괴력 능력을 감춰왔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프로파일러의 분석에 의해서도 경완은 가진 힘이 있으면 굳이 감추기보다는 일단 쓰고 보는 타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쓰지 않았다'라는 주장보다 '갑작스레 쓸 수 있게 되었다'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앞으로 경완이 다른 능력을 더 터득하거나 익힐 가능성을 암시했고, 이는 초능력 발현의 원리를 규명하는데 커다란 단서가 될 수 있었다.

만일 그 원리를 규명할 수 있다면, 그 비밀을 독점할 수 있다면, 앞으로 예정된 초능력 시대의 패권을 잡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으며, 미국이라면 현재의 패권을 100년은 더 거뜬히 연장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경완의 가치가 수직상승한 것이다. 그가 미국에서 사고를 칠 가능성마저 어느 정도 각오할 만큼 말이다.

경완은 뜻밖의 말을 들은 듯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오! 미국에서 웬일이래요?”

“그러게 말입니다.”

김준이 피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일이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경완이 미국인이 된 후 사고를 치면 자신이 수습하게 될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피곤했다.

“흐음.. 미국 가기 귀찮은데...”

경완이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김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습니까?”

역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하긴 경완 같이 사고 칠 때 빼고는 묘하게 게으른 구석이 있는 인간이 미국 가자는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미 한 번 퇴짜를 놓은 적도 있지 않았던가?

참 표정 관리 못하는, 아니 안 하는 김준이었다. 하긴 경완같이 눈치 빠른 독심술사 앞에서 괜히 표정관 리하려고 드는 것이 괜한 심력 낭비 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는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그런데 제가 미국인이 안 되면 그러한 의견을 제안하신 분들이 내심 불안해하지 않겠어요?”

“.. 그건 그렇습니다.”

그답지 않게 혓바닥이 길어진 경완 때문에 김준은 그가 무슨 소리를 하려나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분명 귀화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요구할 텐데 좀 복잡하지 않겠어요? 혹시나 적성국이나 경쟁국에 제가 회유를 당할까 봐 걱정이 많아질 텐데..”

“그것도 그렇습니다.”

무려 미친놈을 귀화시키자는 결정을 한 상층부다. 경완이 미국 귀화를 거부했을 때 저런 걱정을 할 개연성은 충분했다.

“그렇다고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라고 나올 수도 없지 않겠어요? 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경완이 웃으며 말꼬리를 흐리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는 김준이었다.

복합능력자로 밝혀진 경완이었다. 그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끔찍했다.

더욱 끔찍한 건 딱히 초능력이 없을 때에도 검사를 납치해 교도소를 탈옥하고, 그저 사시미 한 자루를 들고 국회에 쳐들어가 국회의원 한 명을 아작 낸 전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만한 계획력과 실행력을 가진 미친놈이 위협적인 초능력까지 가졌다? 건드렸다가 날뛰기 시작하면 어떻게 감당할 건가?

김준의 뇌리에 경완은 ‘차분하게 미친놈’이었다.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라는 의미였다.

경완의 말이 이어졌다.

“오랜 고객인 미국의 입장을 생각해서 미국국적 정도는 받을게요.”

“.. 네?”

“아, 국적은 미국인이 되는데, 생활은 여기 한국에서 한다고요.”

“···.”

“나도 검머외 한 번 되어봅시다.”

멍해진 표정을 지은 김준을 향해 경완은 상큼한 미소와 함께 엄지를 쳐들었다.

= = = = =

며칠 후 홍 소장이 사무실로 경완을 불렀다. 경완이 한창 재밌는 파트를 플레이하는 중에 부른다며 구시렁거리며 사무실을 방문했다.

“야! 너 미국인 된다며!”

“네.”

“왜?!”

살짝 언성이 높아진 홍 소장의 표정에는 ‘나 머리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받아서 죽을 것 같다’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검머외 한 번 되어보고 싶었어요.”

“검머외?”

“검은 머리 외국인 말이에요.”

동포라고 꿀 빨고, 외국인이라고 꿀 빨고, 이중으로 꿀 빠는 검머외 타이틀은 인생 날로 먹고 싶은 경완이 한 번쯤 수집하고 싶은 명찰 아니겠는가?

물론 안 그런 검머외도 있겠지만 군대 안 간 검머외들은 일단 군역에서 꿀을 빨았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었다.

경완의 말에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황당해하는 홍 소장에게 경완이 그 특유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좋지 않아요? 이제 한국도 미국인을 한국 교도소에 가둘 수 있게 되는 거니까.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미국인을 한국 법정에 세우는 전례도 만들어지고요. 아참! 이번에 저 납치한 새끼들 때린 거 아직 재판 시작 안 했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야 재소자 출입 현황이 소장님 업무니까요.”

골 때리는 놈이다. 팩트로 맞아서 더 아팠다. 경완의 말대로 경완이 이번에 조진 놈들 때문에 상해죄 재판이 있었다.

“아무튼, 너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하긴 외국 국적 재소자는 함부로 다루면 외교적 사안이 되잖아요.”

“그걸 아는 녀석이 그래?!”

홍 소장에겐 경완에게 미국국적을 부여할 생각을 한 미국 새끼들도 미친놈들이었지만 이쪽이 곤란해질 걸 알면서도 수락한 경완도 개시키였다. 자기를 힘들게 만드는 개시키!

“너 때문에 내 탈모가 심해진다.”

그 말에 경완은 힐끗 홍 소장의 머리를 보았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는 동정 어린 표정에 홍 소장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그래, 탈모는 유전이지. 나도 알아, 이 새끼야!

홍 소장의 골치와 곤란함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경완의 미국국적 수여는 성사되고 말았다. 물론 결코 칭찬받을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광고하진 않고 경완 리 담당(?)인 김준이 조용히 국내로 들어와 처리결과를 알려왔다.

“이제부터 당신은 미국인입니다.”

“땡큐! 땡큐우!”

경완은 두 손을 맞잡고 들어 올리며 마치 좌중에 관객들이 존재하는 양 감사인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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