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05화 (105/367)

104-11-초인충돌

이철의 말에 행복원 원장의 목소리에 갑자기 찬 기운이 서렸다.

[경찰이 무슨 부수입? 뻔히 수입이 정해져 있는데.]

그놈의 씨발 부수입.

행복원에 조폭이 들러붙어도 그놈의 씨발 부수입에 눈을 가린 짭새들이 생각난 원장의 목소리엔 저절로 날이 섰다.

그러한 원장의 목소리에 이철은 아뿔싸! 하고는 급히 변명을 지어냈다.

“제가 초능력 범죄 수사대에 들어갔잖아요. 그래서 특별 수당을 받고 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험해서 그런 거니?]

“범인 잡는 일에 안 위험한 게 어디 있어요? 그리고 저 경찰관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해요.”

[그렇구나..]

전화기 너머로 원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려왔다.

그리고는 원장이 새삼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나라가 웬일이라니?]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지들끼리만 해 처먹기 바쁘신 분들이 신경을 써준다고 하니 어찌 놀랍지 않을쏘냐?

이철은 원장의 생각이 다른 곳으로 돌려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에요.”

정확히는 썬더보이 활동에 따른 수당이었지만 차마 자신의 입으로 그 사실을 밝힐 순 없었던 이철은 얼른 본제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큰 부담이 안 돼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있어요?”

이철의 말에 원장이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요즘 남자아이들은 썬더보이인가 뭔가 하는 히어로를 좋아한다더구나. 여자아이들은 크러쉬 레이디라고 하는 여성히어로를 좋아하고.]

“.. 아..”

애들이 썬더보이를 좋아한다고? 그 촌스러운걸?

이철은 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차마 자신이 썬더보이라고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설사 상부에서 정체를 밝혀도 좋다고 해도 그러지 못하리라..

원장이 그런 그의 심정을 일부라도 이해하는 듯 말을 이었다.

[참 세상 빠르게 변하는구나. 네가 여기 있을 때만 해도 그런 거 관심 있던 애들이 없었는데 말이다.]

“매스컴에서 하도 포장을 하니 그렇겠죠.”

어디 매스컴뿐인가? SNS, 스트리밍, 유튜브 등 전방위적으로 히어로 홍보를 일삼(?)으며 긍정적 이미지를 부추기고 있으니 좋다고 하는 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은 더 그럴 테고 말이다.

이철은 원장과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네, 알겠어요. 그럼 비번 날에 뵐게요.”

그는 통화를 끝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담당하는 매니저(?)에게 연락해서 사소하지만은 않은 부탁을 했다.

“저기 혹시 썬더보이 관련 상품 중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거 싸게 살 수 있을까요?”

히어로 수당이 나온다고 하지만 절약할 수 있으면 최대한 절약하는 고아 이철이었다.

= = = = =

11-초인 충돌

전직 쿠데타 사령관이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노환.

그러나 반성이나 사죄는 없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흑노야나 흑연이 요구했던 바는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전직 쿠데타 사령관을 조부로 둔 청년은 흑연의 방문을 받았다.

“대체 왜 이러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죽었잖아!”

창백한 얼굴로 악을 지르는 청년을 향해 흑연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결국 사과 안 했잖아.”

청년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으면서도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결국 자신의 다리를 또 부러뜨리겠다는 소리였으니까.

청년이 소리를 질렀다.

“나보고 어쩌라고?! 죽은 사람 되살려오라고?!”

흑연이 대답했다.

“그냥 네가 평생 져야 할 업보가 된 거지.”

“지랄하지 마!”

청년이 악을 썼다. 흑노야에게 부모를 잃고, 또 조부도 노환으로 죽고, 이렇게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도 기가 죽지 않는 것을 보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지능수준을 가지고 있거나 평생 제멋대로 살아와서 겁이란 걸 먹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흑연은 더 이상 대화하기 귀찮다는 듯 검은 연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때였다.

“거기까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제삼자.

가슴에 노란 번개 마크가 붙고 양손에 특수한 금속 장갑을 장착한 한국의 히어로 1호! 그 이름하야,

“썬더보이!”

“..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네가 하는 말은 너에게 불리한...”

이철은 청년이 반색한 얼굴로 자신의 히어로 명을 외치자 잠시 멈칫했지만 침착하게 흑연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흑연은 썬더보이를 보았다가 청년을 보았다. 솔직히 자신에게 사지가 부러졌던 주제에 여전히 기가 안 죽은 게 이상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부러진 뼈마디가 다 붙을 때마다 찾아왔으니 잠복일을 정하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흑연은 썬더보이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것을 다 듣고는 문득 떠오르는 궁금함에 질문을 던졌다.

“안 쪽팔리냐?”

“... 얌전히 투항해라.”

쪽팔리지만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쪽팔렸기에 썬더보이는 흑연의 물음을 씹고 항복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말을 얌전히 들을 흑연이 아니었다.

휘리릭!

“히익!”

흑연의 몸을 감고 있던 검은 연기 한 줄기가 짙어지면서 마치 뱀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다 목표했던 청년에게 채찍처럼 날아갔다.

청년이 급히 피하려 뒤로 몸을 던져보았지만 초음속의 속도로 뻗어오는 검은 촉수의 끝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퍼억!

썬더보이의 주먹이 청년에게 향하는 촉수의 중간을 뚫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끊어져 떨어져 나간 부분이 연기처럼 확! 하고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흑연이 썬더보이를 보았다.

이철은 흑연이 자신을 주의하고 경계심을 잔뜩 끌어올린 것을 느꼈다. 한편으론 안심이 되고, 또 한편으론 자부심도 느꼈다.

그는 두 손을 끌어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너의 염동력을 끊어내기 위한 특수장갑이다. 네 염동력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

“그렇군.”

흑연은 순순히 인정했다.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의 역량은 대단했다. 벌써 이렇게 자신의 염동력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다니..

저 특수장갑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만든 검은 연기의 촉수는 뚫려도 끊어지거나 흩어지지 않고 그저 뚫린 채로 목표를 향해 그 끝을 뻗었을 것이다.

이내 상황을 파악한 흑연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일어나며 검은 연기 줄기가 다량으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의 촉수는 썬더보이를 우회에 청년을 목표로 빠르게 뻗어 나갔다.

이철은 언성을 높였다.

“비겁한 놈!”

“난 댁이랑 푸닥거리하고 싶지 않아. 그냥 저놈 다리몽둥이만 부러뜨리고 싶을 뿐이라고.”

흑연의 말과 다가오는 검은 촉수에 청년이 악을 썼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죽었는데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

흑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 심정 이해해. 우리 모두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게 업(業)이라는 거다. 우리 모두는 모두 우리가 원치 않은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나지. 하지만 넌 네 조부의 손자라는 운명 앞에서 떳떳하게 살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지?”

“닥쳐! 닥치라고!”

“넌 네 운명에서 그저 풍족한 부분을 누리기만 했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한 적이 없어. 그래서 일어난 결과가 이것이다.”

“지랄하지 마! 다른 놈들도 많은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형평성을 따지지 마.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 거야.”

두 사람이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썬더보이, 그러니까 이철이 청년을 보호하며 그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촉수를 끊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특수 장갑 덕분에 맞서 싸우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누군가를 보호하기엔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뿐.

확실히 시간은 이철의 편이었다. 점점 다급해지고 성급해지는 촉수들의 움직임은 흑연의 초조함을 드러났다.

결국 먼저 포기한 건 흑연이었다.

“안 되겠군. 오늘은 여기까지.”

“도망 못 쳐!”

이철이 달려들었지만 예전에 크게 당할 뻔했던 흑연은 그간 도망가는 것만 연습했는지 아주 기민하게 도망쳤다.

검은 연기로 시야를 가린 틈을 타서 검은 연기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니 이철이 하늘을 나는 재주라도 있지 않은 이상 잡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한국의 공권력은 그를 잡기 위해 단단히 준비했다.

투두두두두!

헬기가 날아왔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가는 검은 연기를 향해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바주카포 같은 것을 쏘았다.

검은 연기를 향해 날아가던 탄자가 분해되며 확 하고 펼쳐졌다.

그물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물을 이용하는 청부업자들과 힘겹게 싸워본 경험이 있는 흑연은 이미 그에 대한 대처법을 습득한 상태였다.

검은 연기 끝이 길쭉하게 뻗어져 그물을 밀어냈다. 하지만 경찰 헬기는 포기하지 않고 흑연을 추적하며 그물포를 쏘아댔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추격전에 흑연은 초조해졌다. 그에겐 흑연 말고 평범하고 멀쩡하게 살아가는 얼굴이 있었다. 이 추적을 뿌리치지 못하면 결코 평범한 일상으론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

[도와줘요.]

[물론이죠.]

의식의 한 자락에 남은 기묘한 감각. 이것을 남긴 텔레파시 초능력자는 채널이라고 했다. 자신과 텔레파시로 통신할 수 있는 일종의 비물질적 전화기라고 말이다.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어요.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가요. 거기서 샌드맨이 도와줄 거예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무고한 사람의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죠? 그 마음은 이해해요. 우리도 그러고 싶으니까. 노력해 볼 테니 어서 가요.]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흑연은 방향을 바꾸어 남쪽으로 날아갔다. 능선을 넘자 작은 소도시가 보였다.

그리고 헬기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조종사! 조종사 정신 차려!]

[졸려요... 얼른 착륙해야...]

[샌드맨이다! 샌드맨이 흑연을 도우러 왔어!]

경찰의 통신망에 다시 혼선이 가해졌다.

샌드맨. 어떤 면에선 염동력을 사용하는 흑연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였다. 흑연은 그 능력을 사용할 때 눈에 띄지만 샌드맨은 그 능력의 발현이 은밀해서 감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강제 수면이라 진짜로 졸려서 잠이 드는 건지 아니면 초능력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도 위협적이었다. 고속도로 같은 곳에서 강제로 잠을 재우면 그대로 사고가 아닌가?

암살을 사고사로 위장할 수 있는 위험한 인간.

그것이 샌드맨에 대한 평가였다.

헬기 조종사는 졸음에 시달리면서도 용케 근처 운동장에 착륙했다. 그리고 쿨쿨 졸기 시작했다. 함께 탑승했던 이들도 곯아떨어졌다.

공권력의 추적을 뿌리친 흑연이 어두운 밤하늘로 모습을 숨겼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뭘요. 하지만 우려되는 게 있어요.]

[뭐가요?]

[당신의 태도요.]

[뭔가 문제 있어요?]

흑연의 물음에 목소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일상이 중요하다면.. 흑연으로서의 활동은 더 이상 하지 말아요.]

[.. 샌드맨은요? 다들 일상은 포기한 겁니까?]

[그에게 그의 일상은 샌드맨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위장에 불과해요. 정체가 들켜도 일상에 대한 미련이 없죠. 하지만 당신은... 일상을 포기할 수 있나요?]

[....]

목소리의 물음에 흑연은 말없이 생각에 빠졌다.

그가 흑노야의 능력을 계승하게 된 이유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왜냐면 그 능력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을 때 능력을 감싸고 있던 흑노야라는 노인의 염(念)이 영화처럼 그의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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