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11-초인충돌
당연히 경찰과 검찰에선 난리가 났다. 초능력 범죄 수사대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흑연이라는 빌런이 노렸던 피해자는 매우 소수였는데 이번엔 폭주라도 했는지 다수의 피해자를 만들었다.
“이 새끼가 드디어 미쳤나?”
초능력 범죄 수사대의 책임자인 권오등이 한마디 했지만 사실 경찰 내에 흑연이 지금처럼 폭주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흑연의 목적은 전직 독재자가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일은 성사되기 직전에 누군가에 의해 방해받았다. 그것도 살인이라는 범죄적 수단으로.
당연히 그를 자극하기엔 충분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폭주하기 시작한 흑연은 과거 어느 수사원이 추측한 대로 골치 아픈 존재가 되었다. 피해자가 많아진 만큼 그만큼 공권력을 휘두르는 입장에서도 모두 보호하기엔 부담이 커진 것이다.
더 골치가 아픈 점은 여태 흑연의 행동방식을 보았을 때 이런 폭행 상해가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이일의 주모자인 늙은이들이 자수하거나, 잡혀가서 처벌받지 않는 이상 그들의 핏줄에게 계속해서 상해를 가할 것이라는 게 분석팀의 중론이었다.
흑연을 진정시키는 가장 효율적 방법은 독살을 주모한 자들을 잡아넣는 것이지만, 일이 그렇게 편하게 돌아갈 리가 있겠는가?
그들이 정말로 독살을 꾸몄다는 증거는 없었고(진짜 없었는지 없앤 것인지는 모르지만), 흑연은 분명한 범법자였다. 국민의 감정이 어떻든, 여론이 어떻든 흑연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에 명분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힘 있는 자들이 그것을 원했으니까.
그리고 그 몫은 온전히 공권력의 책임이었다.
그래서 초능력 범죄 수사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비록 그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도 윗사람에게 면피할 명분은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김 과장. 세립 초능력 연구소던가? 거기에 천리안이라는 장비가 있다지? 그걸 그 시커먼 새끼 추적하는 데 쓰면 어때?”
그 천리안인가 하는 장비가 교도소를 습격했던 사이비 일당을 추적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관계자들 사이에 다 퍼진 상황이었다.
김 과장이 권오등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그렇긴 합니다만…….”
“왜 말꼬리를 흐려? 뭐가 문제야?”
“이미 문의해 봤는데…… 저번과 같은 성과를 얻으려면 매우 뛰어난 에스퍼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번에는 어떻게 했는데?”
“그으…… 그 새끼 있지 않습니까?”
“누구?”
“그 국회의사당 난입해서 국회의원 허리에 칼침 놓은 놈이요.”
권오등의 눈이 껌벅였다. ‘왜 그 새끼가 거기서 나와?’라는 느낌이랄까?
천리안의 성과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성과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는 별로 없었다.
연구소장인 김마리아가 굳이 홍보하지 않았고, 집요하게 물어본 사람에게만 밝혔기 때문이다.
“하아…….”
권오등의 입에선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경완이 소위 사망기자나 흑연 등의, 소위 빌런에 대한 수사 협조를 거부한 건 이미 수사관들 사이에선 유명한 이야기였다.
본인이 빌런이나 마찬가지인 놈이라서 소위 동류를 체포하는 일에 협조하는 게 싫었던 걸까?
“그놈 말고는 안 돼?”
“연구소장의 설명에 의하면 천리안 장비를 소형화시키면 움직이면서 사용할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다른 에스퍼를 기용할 여지가 생길 수 있는데, 그러기에는 개발 기간이 많이 필요하답니다.”
“그럼……”
“네. 그러니 당장에는 그놈만 한 에스퍼가 없다는 겁니다. 사건 현장도 천리안 장비가 있는 연구소랑 멀어서 웬만한 에스퍼로는 힘들다고…….”
“그놈 파일 한 번 보내봐.”
권오등은 혹시나 뭔가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직접 경완에 대한 정보를 검토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행복원? 우리 히어로가 행복원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철이요? 네, 맞습니다.”
“그래?”
그렇게 썬더보이 이철이 권오등에게 불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아, 그래. 긴히 이야기할 게 있어서 불렀네.”
권오등은 이철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용건을 꺼냈다.
“이런 말 하면 예의가 없겠지만 자네 행복원 나온 거 맞지?”
“네, 맞습니다.”
“이경완 그자도 행복원 출신이고?”
“……네.”
이철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인정했다. 언제고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건 각오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런 질문을 지금에 와서 들었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친분은 있어?”
“룸메이트였습니다.”
“당시에 녀석은 어땠어?”
상관의 질문에 이철은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게으르지만 착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래? 흐음……. 흑연의 추적을 위해선 그의 도움이 필요해. 설득할 수 있겠나?”
“…….”
이철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과연 자신이 할 수 있을까? 이미 여러 수사관이 실패한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내 답이 나왔다. 폭주하는 흑연을 가만히 놔둘 순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는 경찰이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부탁하지.”
* * *
상관의 지시를 받은 이철은 다음날 바로 경완이 사는 교도소까지 내려와 접견을 신청했다.
“여어! 오랜만이네?”
경완은 마치 종종 만나는 친구마냥 그렇게 인사를 했다. 이철이 행복원을 나간 이후로는 처음으로 만나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 경완의 인사에 이철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넌 여전하구나.”
“사람은 변하면 죽는데.”
저 실없는 농담도 여전하고 말이다. 이철은 행복원 시절의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 것 같았다.
경완이 본론을 요구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안부도 안 물어보고 대뜸 용건이냐?”
“얼굴색 안 나쁘면 그걸로 충분하지.”
“나 경찰 됐다.”
“알아.”
“어떻게?”
“내 다큐 안 봤어? 미연이한테 들었지.”
“아……”
이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굳이 다큐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자신은 경찰이 되었는데 자신과 한방을 쓰던 동생이 ‘그런 짓’을 한 범죄자가 되어 있다니…….
궁금하기는 했지만 차마 다큐를 볼 용기가 나진 않았다.
그런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경완이 이렇게 말했다.
“이야~ 영화 같네. 같은 시설에서 같은 방을 쓴 형 아우가 한 사람은 법질서를 수호하는 경찰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빌런 같은 범죄자가 되었으니 말이야. 형 혹시 초능력 경찰 그런 건 아니겠지?”
이철은 감탄했다. 과거 행복원 시절에도 경완은 이렇게 깜짝 놀랄 정도의 직감을 발휘하고는 했다.
“맞아, 나 초능력 각성했다.”
“이야~ 완전 클리셰네, 클리셰야. 혹시 뭐 요즘 유행하는 히어로 같은 건 아니지?”
“…….”
이철은 순간 썬더보이라는 자신의 히어로 명이 떠올라 순간 말을 못했고 경완은 그 망설임을 놓치지 않았다.
“진짜? 히어로? 경찰이? 와~ 소설도 이것보다는 전개가 참신하겠다. 그래서 어떤 히어론데?”
경완의 말에 이철은 솔직하게 말했다.
“쪽팔려서 말 못 하겠다.”
“뭐, 그러시다면야.”
경완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이런 면에선 참 깔끔한 부분이 있었다.
“암튼 그래서 용건은?”
“흑연의…….”
“안 돼.”
경완은 이철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저어버렸다.
이철의 표정이 굳었다.
“왜?”
“불쌍하잖아?”
“누가?”
이철의 음성이 뾰족해졌다. 경찰로서 흑연이 여러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조금 핀트가 어긋난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내가 흑노야의 임종을 지켜준 사람이라는 건 알지?”
경찰이니까.
이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에 대해 알고 흑연을 조사하는 사람은 흑노야에 대해서도 알 수밖에 없었다. 흑연이 지금 상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역량은 흑노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까.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흑연을 잡는 데 내가 도움을 줄 리 없잖아? 사람이 도리가 있지.”
“난 네가 시크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감상적인 녀석일 줄이야.”
“원래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게 정상적인 사람의 감성이잖아?”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한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입이나 그 말을 적용하는 상황이 좀 안 맞는 것 같았다.
“피해자? 살인을 저지른 흑노야가?”
“피해자 맞잖아? 초법적 권력에 의해 피붙이를 잃은 피해자. 그 뒤에 법으로도 제대로 처벌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결국 안 됐잖아? 오죽하면 그렇게 미쳐서 살인을 저질렀을까?”
“죽은 자식은 죄가 없잖아?”
“그 노인네 자식도 죽을죄는 안 지었지. 억울한데 법은 무용지물이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고 있잖아?”
“누가 무고한데?”
“죄를 저지른 이의 자식들.”
“그게 다~ 업보지. 형도 알잖아? 세상 돌아가는 게 법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아. 연좌제가 문제가 많다는 것도. 경찰인 형은 특히 불편하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연좌제를 겪고 있잖아? 고아 출신인 형도 잘 알고 있을 텐데?”
흙수저, 다이아몬드 수저 논란이야말로 경제적 연좌제의 상징이 아니던가? 정작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그것이 연좌제나 마찬가지라는 걸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재산은 상속하고 싶지만 죄는 상속하고 싶지 않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인가?
경완의 말에 이철은 눈을 감았다. 논리적으로는 설득이 불가능함을 느낀 것이다.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말하곤 싶지 않았는데……
“내 얼굴을 봐서도 안 되겠니?”
친분을, 과거의 정을 핑계 삼아 부탁해 봤지만 경완은 단호했다.
“응, 안 돼.”
그 단호함에 이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같은 방에 살 때부터 느낀 거지만 경완은 그 선 긋기가 너무 날카로웠다. 자칫 마음이 베여 상처 날 만큼 말이다.
“넌 진짜 변한 게 없구나.”
그 한 마디는 이철이 경완의 도움을 얻는 걸 내심 포기했다는 의미였다.
이에 경완은 예의 그 시답잖고 시니컬한 농담을 다시 내뱉었다.
“말했잖아.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 * *
한 달쯤 뒤, 흑연의 이차 습격이 벌어졌다. 피해자의 뼈가 붙을 때쯤 다시 습격한 것이다.
경찰과 경호 업체는 이미 흑연의 재습격을 확신하고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경호 시스템 및 흑연을 체포하기 위한 작전도 세웠다. 썬더보이의 장갑에 사용된 대(對) 흑연용 특수 장비까지 초능력 경호원들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이미 그럴 줄 예상했다는 듯이 흑연은 마치 딴사람이 된 것마냥 예전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간추리자면 두 마디로 축약할 수 있었다.
은밀하고 집요하게.
그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야밤에 움직였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명적인 기습을 가했다.
염동력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전술 앞에서 초능력 경찰들과 초능력 경호원들은 순식간에 당했다. 투시능력이 있지 않은 한 벽과 문 너머에서, 머리 위나 등 뒤의 사각에서 가해오는 공격을 신속히 발견하고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흑연이 발휘하는 염동력의 상징인 검은 연기는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그 틈으로 파고들어 왔고, 틈이 없으면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들어와 사각에서 공격해 경찰병력과 경호인력을 무력화했다.
아무리 흑연의 염동력을 파훼할 장비를 지급해도 집요할 정도로 사각을 노려서 들어오는 공격을 모두가 막아낼 순 없었다.
“내가!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데!”
간신히 석고를 풀고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청년이 눈앞에 뭉쳐지는 검은 연기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