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11-초인충돌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검은 연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다리를 휘감고 뚝! 하고 부러뜨렸다. 부러진 뼈마디가 붙으면 더 튼튼하게 붙는다는 말이 있지만 흑연의 염력 앞에서는 수수깡이나 다름없었다.
“아아악!”
경호의 효율성과 체포인력을 집중시킨다고 피해자들을 되도록 한곳에 모아둔 것이 더 큰 피해를 일으켰다.
집중된 전력으로 흑연을 유인해 체포하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끝내 흑연 체포 작전은 실패했고 피해자들만 양산했으니, 자신만만하게 작전을 입안했던 책임자들은 모조리 견책당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공권력은 물론 한국 초능력 경호의 무능함에 질려버린 허동세와 그 동료들은 자식과 손주들을 외국으로 피신시키기로 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이 무능한 새끼들아!”
경찰의 위신이 깎이는 걸 막으려는 이와 빌런 새끼 하나 못 잡아서 자식들과 손주들이 병원 신세 지게 되어 분통 터진 유력자들 사이에서 잠깐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연하게도 이 짧은 갈등은 유력자의 승리로 끝났다.
아무리 군부독재가 끝났다고 하더라고 그 시절 이루어 놓은 거대한 부와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결합은 여전히 그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보유하도록 해주었다.
그들이 권력을 쥐었던 시기야말로 정경유착, 정언유착, 검언유착, 토건족 개발 카르텔, 사법 카르텔 등 온갖 유착과 다양한 엘리트 카르텔의 시작점이 아니었던가?
그들은 경찰의 체면을 깔아뭉개는 걸 전혀 주저하지 않고 흑연을 피하고자 자식들을 모두 미국에 보냈다. 미국이라면 초능력 PMC도 있으니 그들을 고용해서 자식들과 손주들을 보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전 독재자에 대한 그들의 살인모의 및 실행 때문에 흑연이 비질란스에 가입하기로 결심했으며 비질란스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Hi~”
“후, 후아유!”
“Vigilance.”
“와, 와이?!”
과거 매니 페이스가 죽었을 때 모습을 보였던 헐크맨이라는 남자와 전(前) 미 대통령의 가면을 쓴 의문의 초능력자가 이번에도 다시 나타났다.
그 둘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피신해 온 이들에게 원한은 없는지 이렇게 말했다.
“I’m sorry.”
하지만 입과는 다르게 그들의 손은 자비 없이 피난 온 자들의 사지를 부러뜨렸다.
이 사건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흑연이 비질란스와 손을 잡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미국보다는 한국이 받은 충격이 더 컸다. 아니?! 한국의 빌런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가도 소용이 없다고?!
경찰은 무너진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발표했다.
[흑연이 미국으로 가기는 힘든 처지라 비질란스와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미국으로 도피한 이들 때문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식이었다.
과거 군부 독재시절이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발언이었지만, 그때 같은 시대도 아니고 사정도 달랐다. 비질란스라는 조직에 비상한 관심이 있었던 미국이 끼어든 것이다.
미국이 한국 경찰에게 과거 군부독재시절부터 생존한 유력자들에게 대들 용기를 준 이유?
어렵지 않았다. 그들을 미끼 삼아 흑연을 유인해 비질란스라는 조직의 꼬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은 이내 가라앉았다. 또 다른 초능력자가 큰 사건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 * *
김석철.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학대와 착취였다.
고아로서 한 양부모에게 입양되었으나 폭력과 학대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양부모에 의해 지적장애인으로 허위 등록되어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한국의 장애인 교육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김석철은 세상 물정 모르는 노예로 길러졌다. 감금은 기본이었다.
그러다 나이가 차자 양부모는 아이에게 알바를 시키고 그 돈을 갈취했다.
하루는 감금당하고 매 맞는 것이 싫어서 탈출해 경찰에게 사정을 알렸지만, 경찰의 반응은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어딨냐는 비웃음과…… 귀가조치였다.
“이 자식이! 날 엿 먹이려 들어?!”
경찰 앞에서는 네네 거리며 멀쩡한 인간인 척하던 양부모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악마가 되었다.
김석철은 간절히 바랐다. 눈앞의 악마들이 사라지기를…….
그리고 그 소원은 실현되었다.
“흐에엑! 끄에엑!”
양부모들의 육체가 이상하게 변했다.
살거죽은 흘러내린 촛농이 굳은 듯했고, 뼈는 기이하게 뒤틀렸다. 마치 처음부터 돌연변이였던 것처럼 기괴하게 생긴 몰골이 된 것이다.
비단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들 근처에 있는 사물들도 녹아내린 듯이 이상하게 변형되었다.
김석철은 그것이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런 공포SF영화에서나 볼법한 일을 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자신의 능력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는 빠르게 상황에 적응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 쇠사슬에 묶인 코끼리는 다 자라 그 쇠사슬쯤 가볍게 뽑을 수 있게 되어도 쇠사슬을 벗어날 생각을 못 하지만, 그는 양부모에게 학대받고 갈취 받는 상황에서도 경찰을 찾아가 신고할 정도로 충분한 자의식과 사고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경찰이란 공권력이 그런 그를 외면했을 뿐.
그는 우선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집안의 여러 물건, 그리고 흉측하게 변한 양부모는 훌륭한 실험대상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열중해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탐구한 그는 자신의 능력이 정확히 무엇인지 깨달은 이후 양부모라는 존재를 플라스틱 블록으로 만들어 쓰레기통에 담아 버릴 수 있었다.
그의 능력이란,
‘주변 사물의 물성을 일시적으로 변이시키는 것.’
그는 자신의 능력에 만상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장은 고체를 잠시 액체로 바꾸는 능력에 불과했지만 장차 무엇이든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양부모를 치워버린 후, 그는 갑작스러운 자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잘 먹고 잘사는 거?
양부모의 학대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당장 더 높은 기준의 생활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양부모가 자신을 갈취해 쌓아 놓은 돈으로 놀고먹었다. 밖에서 놀기에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기에, 자연히 컴퓨터와 인터넷, TV에 빠졌다.
자신에게 결코 허락된 적이 없었던 유흥.
그러다 히어로라는 걸 접했다. 재난에서 시민을 구하는 히어로, 범죄에서 시민을 구하는 히어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 하는 히어로, 재능기부하는 히어로.
김석철은 히어로라는 단어에 빠져들었다. 어렸을 적 양부모에게 맞으면서 자신을 구해줄 영웅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처음에는 아동보호 기관에서 나와 아동학대인지 확인해 보러 왔을 때, 두 번째는 경찰이 왔을 때, 그들이 자신의 영웅이 되어주길 바랐지만 영웅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김석철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럼 내가 히어로가 되자!’
이미 히어로 컴퍼니가 히어로들을 육성하고 있었지만 김석철이 공권력으로부터 외면당했던 경험은 그에게 그런 거창한 무언가에 소속된 이들은 진짜 히어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할 때, 아동보호 기관이라는 곳에서 찾아왔을 때에는 양부모가 보고 듣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학대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공포에 질린 그는 그저 양부모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나중에 이웃이 아동학대를 의심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때, 경찰은 미리 그의 양부모에게 전화를 하고서는 찾아왔다. 그때가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깨끗한 옷을 입어본 순간이었다. 당연히 그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찰서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무시당하고 귀가조치 당한 것까지.
세 번 속았으면 충분했다.
김석철은 히어로 컴퍼니가 내세우는 히어로를 히어로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모두가 외면하는 이들을 위해 히어로가 되기로 했다.
그가 그런 결심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에서 초능력에 의한 일로 보이는 의문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코스믹 호러의 잔재마냥 뒤틀리고 녹아내린 물건들. 엉겨 붙은 것 같이 뭉쳐진 돌, 철, 나무, 천 조각.
경찰들은 경악하게 만든 것은 사람이 엉겨 붙은 덩어리였다.
인간의 육체와 돌, 나무, 철근 등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것 같은, 마치 세기말 코스믹 호러가 만들어낸 것 같은 기괴하고 흉물스러운 형상들.
팔다리의 뼈가 나뭇가지처럼 몸 밖으로 자라나 꼬여 있거나, 척추뼈가 거대한 바위와 하나가 되어 있다던가, 온몸이 녹아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천이 피부 대신 온몸 전체를 뒤덮었다든가 하는 등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형태였다.
사람들을 더욱 경악하게 만든 것은 그것의 재료가 된 인간이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점이었다.
“죽……여……줘…….”
라고 애원하면서 말이다.
이는 명백한 초능력 범죄였다.
처음에 사람들은 너무나 기괴한 꼴이 된 피해자들 때문에 범인이 분명 특별한 초능력을 각성한 변태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과거가 하나둘씩 알려지면서 범죄에 대한 보복범죄, 불법적인 자경활동으로 규정지어졌다.
범죄의 대상이 된 이들이 하나 같이 매스컴에 뜨기도 했던 유명 전과자였기 때문이었다.
사기꾼, 폭행치사범, 아동성범죄자, 강간범 등, 기괴한 초능력의 피해자가 된 그들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게 너무나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사건들이 세상에 알려지자 세간에선 이 범죄자를 트위스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엉겨 붙은 덩어리에서 발견되는 특유의 나선 패턴 때문에 말이다.
당연히 트위스터는 빌런으로 분류되었다. 아무리 피해자가 국민정서상 가벼운 벌을 받은 이들이라고 하나 트위스터가 그들에게 한 짓은 분명한 범죄였다.
트위스터에 대한 수사와 추적이 진행되던 와중에 트위스터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경완과 무관하지 않았다.
마리아 소장에게 부탁해 받은 OTT서비스로 최신 인기작들을 보다가 잠든 경완은 갑작스러운 찬바람에 인상을 찡그렸다. 혹시 이 감방을 지을 때 급하게 짓는다고 단열시공을 개차반으로 한 걸까?
내일 아침이 되면 꼭 그년에게 따져야지.
경완이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저어…….”
경완은 천천히 고개를 꺾어 찌푸린 인상으로 목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청년 하나가 커다란 마대자루를 발치에 두고 있었다. 경완을 두려움 섞인 시선으로 보면서 말이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신박한 캐릭터래? 무려 교도소를 이렇게 침입할 정도로 간 큰 놈이 왜 두려워한대?
경완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뭔데요?”
“……저기 이경완 씨 맞으시죠?”
“맞으니까 용건만.”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어요?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에요.”
“뭔데요?”
“이 사람에게 진실의 스무고개를 사용해 주세요.”
청년이 그렇게 말하며 마대 자루를 푸니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얼굴에 약간 살집이 있는 남자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눈알만 뒤룩거리고 있었다.
경완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왜요?”
“그러니까…….”
청년이 경완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강간을 당했지만 사회에서 외면을 당하고 자살로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렸던 한 자매의 이야기와 그가 잡아 온 남자가 그 자매를 강간한 자들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