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10화 (110/367)

109-11-초인충돌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초능력의 발생으로 인한 이러한 변화를 이미 예측한 바가 있었다.

히어로 컴퍼니에 대한 정부 허가가 떨어진 것은 비단 기업들의 로비 때문만은 아니라 기존의 질서에 초능력자들을 융합해 변화의 속도를 늦춰보고자 하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업의 로비는 그러한 시도를 그저 거들었을 뿐이었다.

정부의 이러한 방향성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초능력의 등장은 단순히 경제의 변화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부분의 변화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부분의 변화야말로 가장 격렬한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내다보고 있었다.

소련과 미국의 냉전 시대는 이념을 그리 간단히, 가볍게 다루어선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그렇군요.”

경완은 이해가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김준은 답답해졌다. 그 한 마디에 ‘나는 관심이 없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내면의 심리가 깔린 걸 김준이 못 느낄 리 없었다.

김준이 걱정과 우려를 담아 말했다.

“초능력 조직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몸집을 불려갈수록 당신을 향한 습격도 많아질 겁니다.”

“그렇게나 제가 탐이 나나요?”

“초능력자들의 이합집산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는 새로운 시대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 투쟁입니다. 과거 냉전 시대에 소련과 미국의 첩보전이 치열했던 만큼, 서로의 조직에 스파이를 심어둔다는 발상은 새롭지도 않죠. 위버멘쉬가 당신을 영입하려고 한 것은 아마 내부의 배신자나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거 당신의 생각이에요, 아니면 위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상부의 생각입니다.”

“흐음…….”

경완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즉 빌런 같은 놈들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종종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저보고 미국으로 오라고요?”

“……얌전히 지내실 수 있으십니까?”

“장담을 못 하겠는데요.”

김준이 신중한 태도로 묻자 경완 역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럼 그렇지.

김준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못 들으신 거로 하죠.”

“그러죠.”

“아무튼 좋습니다. 비질란스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부디 위버멘쉬와는 거리를 둬주십시오.”

“왜요?”

“비질란스가 법망을 빠져나가는 범죄자를 노리는 자경단이라면, 위버멘쉬 이자들은 체제의 전복을 노리는 혁명가니까요. 저희로선 비질란스보다는 위버멘쉬를 더욱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완이 대답했다.

“저로서는 이기는 편 내 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요.”

“……무슨 말씀이신지…….”

“전미(全美) 초능력 협회라고 했죠? 과연 거기에 위버멘쉬 회원이 전혀 없을까요?”

“…….”

김준은 뒤통수를 맞은 표정을 지었다.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놈들이 단순히 아래에서의 혁명만 노릴 정도로 단순하진 않겠죠. 내부에서 힘을 얻어서 기존 체제로부터 얻은 합법적인 권한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어……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혹시 그렇다면 미스터 리,”

“싫어요.”

“……아직 말도 안 꺼냈습니다만…….”

“뻔하죠. 위버멘쉬를 적발해 달라는 거 아니에요.”

“…….”

경완이 말 없는 김준을 보며 말을 이었다.

“미래가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괜히 야망 큰 애들이랑 척지면 피곤해요.”

“미국이 패배할 거라 생각합니까?”

“미국이 그들과 영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김준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경완이 말을 이었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위버멘쉬와도 타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합니다.”

“에이~. 겉모습은 그렇죠. 하지만 반쯤 금권주의 국가잖아요?”

슈퍼팩, 합법화된 로비 등 미국의 정계는 이미 거대한 자본에 의해서 휘둘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소수에게 집중된 자본, 그리고 그 자본과 결탁한 워싱턴 정가는 위버멘쉬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과 갈등을 빚는 것보다 그들을 끌어안는 것이 더 이익이며 국익과 자본가들에게 도움이 되고 또 그것이 가능할 거라는 판단이 드는 순간, 미국이라는 나라는 위버멘쉬라는 조직을 용인하게 될 것이라는 게 경완의 견해였다. 금권주의는 그런 부분에선 자유민주주의보다 더 유연하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자란 김준은 경완보다 미국의 구조를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위버멘쉬가 범법 행위를 했다고 해도 미국에는 사법 거래 제도도 있잖은가?

지금이야 많은 이들이 위버멘쉬라는 조직에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권력을 지향한다는 점에선 공통분모가 있었으니 분명 합의점이 있을 것이다.

초능력이야말로 앞으로의 권력에 있어 핵심키이지 않은가?

권력자가 진정으로 증오하는 것은 정적이 아니라 그 권력이 유지되는 시스템을 뒤집어엎을 혁명가였다.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혁명가를 때려잡을 수 있다면 기꺼이 미래의 정적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권력자라는 인종이었다.

“당장 위버멘쉬가 비합법적인 조직인 것 같지만 그렇게 크게 반인륜적인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잖아요?”

“……살인도 반인륜적인 범죄입니다만…….”

치안이 안 좋은 국가에선 위버멘쉬 소속이라고 밝힌 초능력자가 저지른 살인 사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경완은 손사래를 쳤다.

“살인도 똑같은 살인이 아니에요. 동기가 중요하죠. 경쟁에 의한 살인이냐, 아니면 그저 약자를 죽이기 좋아해서 저지르는 살인이냐는 그 의의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이렇게 저렇게 따져도, 위버멘쉬라는 조직이 미국과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건 아니었다. 단지 미국이라는 나라와 협상을 하기엔 아직 몸집이 약해서 몸집을 불리며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 뿐.

경완은 그렇게 보고 있었다.

지금 위버멘쉬가 일으키는 소란은 그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나오는 잡음에 불과하지 않을까?

“당신과 대화를 나누면 종종 정말 크게 놀라게 됩니다.”

김준은 애당초 경완을 찾아온 이유를 떠올렸다.

경완의 독심술 능력의 가치가 나날이 증가하는 지금의 혼란기에서 미국이든, 한국 내에 있는 모종의 장소든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한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제안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지지 않았는가?

위버멘쉬에 대한 완전히 다른 견해에 김준 자신의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방문한 목적을 상기한 김준이 경완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잠시 어딘가 숨어 있을 생각은 없으십니까?”

“글쎄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요.”

떨거지들이 무섭다고 도망 다니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보다 귀찮은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도망만 다니면 문제는 언제 해결하나? 귀찮고 번거롭기만 하지.

“그럼…….”

김준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고 경완은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충분히 이해했다.

“영입 제안이 들어오면 감사한 마음으로 거절하고, 납치를 시도하면 조져보죠, 뭐.”

그러한 대답에 김준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빌런의 체포에도 그렇게 협조해 줬으면 좋을 텐데…….”

경완이 위버멘쉬 같은 조직에 납치될까 딱히 걱정되진 않았다.

힉스남과의 싸움에서 보여준 경완의 초능력 제압 능력은 적절한 공권력의 지원이 있다면 빌런 조직이 그를 납치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결국 계속 여기에 있겠다는 거군요.”

“네. 이번에 신작 게임 나왔거든요. 괜찮은 게 제법 나왔더라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위치 추적용 마이크로 칩이나 하나 심읍시다.”

“……뭐요?”

“다 들었으면서 왜 못 들은 척합니까? 노파심 많은 분들을 안심시켜야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하죠.”

하긴.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암귀라고, 사람은 불안이 많아지면 괜한 망상도 많아진다. 그만큼 오해도 쉽게 하게 되고.

“그런데 피부밑에 심는 거 말고 딴 거 없어요?”

“언제는 전자발찌 같은 건 성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다고 싫다면서요?”

그 말에 경완은 그냥 얌전히 위치 추적용 마이크로칩 하나를 왼팔 상박에 심기로 했다.

그는 마이크로칩을 심으면서 혹시 밖에 나갈 일이 있어 전자발찌 찬 새끼들을 발견하면 문답무용으로 뚝배기를 깨주겠다 마음먹었다.

그 새끼들이 전자발찌 이미지를 X창 내지 않았으면 이렇게 찜찜하게 마이크로칩 삽입 시술을 받지도 않았을 거 아닌가?

그런데 뭐? 답답해? 짐승 취급받는 것 같아? 인권을 유린당하는 것 같아? 진짜 이 새끼들은 살처분을 해줘야 짐승 취급이 뭔지 깨달을까?

아무튼, 그렇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한 김준이 보고서에 쓸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경완은 주한중국대사와 외교부 차관이라는 사람과 접견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외교부 차관 한중벽이라고 하고 이분은 주한중국대사이신 주영태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세요?”

외교부 차관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중국에서 연쇄살인 용의자를 붙잡았는데, 마지막으로 납치된 피해자가 당 간부의 딸이라 용의자를 심문하고 있지만 당최 입을 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어……. 그래요? 쉽네요. 그 새끼 데려오면 제가 그놈이 하는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확인해 줄게요.”

경완의 말에 외교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자가 죽인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그자가 외국으로 나가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그냥 거짓말 테스트를 하는 것일 뿐인데도요?”

“혹시나 이송 과정에서 탈출할 수도 있고, 또한 심문 과정에서 민감한 수사 내용이 국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미 이런 이야기를 중국 측과 해보셨어요?”

“물론입니다.”

경완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아는 정부였다. 그들도 괜히 경완을 국외로 돌리고 싶진 않았을 것이니 그 용의자를 한국으로 데려와 거짓말 테스트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진즉 제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중국 측의 대답은 지금 경완이 외교부 차관이라는 사람에게서 듣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경완을 중국으로 데려가 그 용의자를 심문하게 하는 대가로 다른 걸 추가로 제안받았으려나?

“그래서 뭘 받기로 했어요?”

경완이 물었다.

그걸 나라가 다 먹게 할 순 없지. 암!

재주 부리는 곰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는 경완이었다.

어느 영화의 말마따나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지? 그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냄으로써 호의를 권리로 아는 상황을 미리 방지하기로 했다.

경완의 말에 외교부 차관의 표정은 곤란함이 가득했다.

“그게…… 국가 간의 일이라 대외비입니다.”

“그래서 나한테는 뭐가 좋은데요?”

결국 콩고물을 원한다는 걸 알아챈 차관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얼마나 원하십니까?”

“연 1회 귀휴권.”

“차라리 돈으로,”

“참~나. 제가 돈이 있어 봤자 언제 그걸 써요? 그리고 돈 안 받아도 제힘으로 충분히 돈 벌 수 있거든요.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한 회고록만 써도 얼마야? 제목은 테러범의 추억. 어때요? 아니면 그놈 허리 쑤실 때라든지?”

외교부 차관이라는 사람은 경완의 말에 눈을 껌벅이다가 갑자기 뒷골이 당기는지 눈을 감고 뒷목을 잡았다가 간신히 눈을 똑바로 뜨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힘들 것 같습니다.”

귀휴가 힘들다는 말일까? 책이 히트 치는 게 힘들다는 말일까? 아니면 그런 책을 못 쓰게 막겠다는 것일까?

경완은 자기 유리한 대로 받아들였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