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11-초인충돌
“왓추얼 네임?”
“와, 왕샤홍.”
드디어 인질의 이름을 알아낸 경완은 놈의 정수리를 잡고 창문 밖으로 내밀며 밖에 있는 짱개 새끼들이 다 들으라고 소리쳤다.
“This is 왕샤홍! This is 왕샤홍! This is 왕샤홍! 알아처먹었냐?! 이 짱개새끼들아!”
신분 높은 놈이 인질이니 함부로 지랄하지 마라!
과연 그런 엄포가 먹혀들었는지 초감각에 지휘부가 우왕좌왕 망설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경완은 아직까지 시간을 질질 끌 수 있을 만큼 소강상태에 도달하진 못했다고 보았다. 인권보다 공산당의 권위가 더 중요한 나라 아닌가? 한 번쯤 인질범을 제압하기 위해서 공격을 시도할 것이 분명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바쁘게 움직이는 무리가 있었다. 그가 분명 특경대라고 판별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양쪽 복도 계단을 통해 포위하듯 올라왔다. 그중에는 어깨에 로프를 짊어지고 있는 이도 있는 것이, 양쪽 복도에 서둘러 자리를 잡고 일부는 옥상으로 올려보내겠다는 의도가 명백했다.
복도 양쪽에서 압박하여 인질범의 신경이 복도 쪽으로 쏠려 있을 때 로프를 타고 창문으로 들어와 배후를 치겠다는 것이다.
짜증 날 정도로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아무리 경완이였지만 삼면에서 들어오는 압박을 앉은 자리에서 감당하긴 힘들었으니까.
그는 전술을 점검했다.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로 승리하는 방법은 기동력을 살린 각개격파가 최선이었다.
농성과 기동력이라…… 모순된 개념이지만, 모순성은 영역의 설정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저 훤한 베이징 시내에서의 기동성은 헬기와 차량, 위성을 동원할 수 있는 저들이 강하겠지만, 이 건물 안, 적어도 경완이 있는 이 층에서만큼은 그의 기동성을 따라잡을 수 없게 만들면 된다.
경완은 우선 인질의 입을 막고 손발을 뒤로 묶어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놈을 구석에 박아 꿈틀거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창문을 완전히 가렸다.
그 후 산탄총 하나와 책상에서 꺼낸 테이프를 이용해 부비트랩을 만들었다. 함부로 창문으로 들어올 이들을 위한 저승행 편도티켓이었다.
작업을 끝낼 때쯤 특경대가 두 층 아래까지 도착했다.
경완은 수류탄이나 폭발물이 없어서 아쉬웠다. 만약 있었으면 부비트랩을 만들어서 저들의 기동력에 제한을 가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특경대가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경완은 모퉁이에 숨어 손목만 내밀고 방아쇠를 당겨댔다.
다들 방탄모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를 노리진 않았다. 어깨와 목덜미를 파고들어간 총알도 상대를 무력화하기엔 충분했다.
“!$!%[email protected]#$”
머리 위에서의 갑작스러운 사격에 계단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던 놈들이 소리를 지르며 대응 사격을 했다. 하지만 손만 슬쩍슬쩍 내밀어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경완의 사격 능력 때문에 밀어붙이지 못하고 엄폐해야 했다.
교전 소리를 들었는지 무전을 들었는지 반대편 계단으로 올라오던 특경대가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속도를 높였다. 여기서 교전하며 경완을 붙들고 있는 사이에 뒤를 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반쯤 앉아서 벽에 등을 기댄 채 좌우로 팔을 활짝 펼쳐 그쪽을 향해서도 권총을 조준했다.
아래쪽에서 있는 놈들이 올라오려고 시도할 때마다 총알을 먹여주면서 말이다.
반대쪽 계단으로 올라오던 놈들이 마침내 경완과 같은 층에 도착했다. 그중 로프를 든 몇 명은 그대로 옥상으로 향했다. 경완의 예상대로였다.
탕!
두루루룩!
계단에서 몸을 숙이고 방아쇠를 당기며 복도로 튀어나오려던 특경대가 안면에 총알을 맞고 뒤로 넘어졌다.
기관총이 위로 들리며 총알을 흩뿌렸다.
“펑솨아이!”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쓰러진 자의 이름이었던 모양이다.
쓰러진 동료를 끌고 가기 위해 앞으로 나왔던 특경은 경완이 쏜 총알에 팔꿈치를 맞고 후송되었다.
그야말로 백발백중인 신기의 사격술은 어느 한 쪽도 뚫리지 않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잠깐의 소강상태. 경완은 서둘러 자동권총의 탄창을 갈아 끼웠다. 아직 탄창에 총알이 남아있었지만 두 손 바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총알이 떨어지는 건 위험했다.
탄창에 든 총알의 수가 건물 안으로 들어온 특경대의 수보다 많아지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한 발에 한 놈씩.
S입자를 다룰 수 있는 경완은 능히 그럴 자신이 있었다.
그의 감각에 옥상에 올라간 놈들이 로프를 설치하고 내려올 준비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두 놈이 로프에 몸을 싣는 순간 반대쪽 계단에서 무언가를 힘차게 던졌다. 시야를 가리는 하얀 연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느껴졌다. 최루탄이었다.
“이 씨발 새끼들이.”
테러 진압에 최루탄을 쓰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지만 경완에게 방독면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계단 아래로 돌격했다. 마침 아래쪽 놈들도 최루탄을 쓰려는지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경완이 인질을 내버려두고 계단 아래로 내려올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경완의 쌍권총이 방독면을 쓴다고 무방비한 놈들에게 불을 뿜어댔다.
막 쏜 것 같지만 백발백중의 안면 샷이었다. 앞에 있던 동료 덕분에 살아남은 특경도 쓰러지는 동료의 머리를 스치고 날아온 총알에 안면을 맞고 쓰러졌다.
그렇게 신기의 사격술로 계단 아래쪽을 뚫은 경완은 그대로 달리듯 계단을 내려가 아래층 복도에 내려섰다.
각개격파의 기회였다. 최루탄은 위기 같았지만 적에게 심리적 허점을 만들어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분명 저들은 인질범에게 마스크가 없다는 것에 안심했으리라.
그런데 니들이 이런다고 인질을 무사히 구출해 갈 수 있을 것 같냐?
경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타앙!
산탄총 소리가 울렸다. 경완의 감각에는 창문을 깨고 들어온 한 놈이 부비트랩으로 설치해 놓은 산탄총을 맞고 공자님 뵈러 가는 것이 느껴졌다.
계단 아래에 있던 특경대가 몰살당하고 인질범의 모습도 확인할 수 없는 혼란 상태.
서둘러 죽은 특경대에게서 방독면을 탈취한 경완은 얼른 방독면을 쓰고 자세를 최대한 낮추어 복도를 달렸다.
초능력으로 강화된 각력이 단 3초 만에 복도를 주파하게 해주었다.
“헉!”
최루탄을 던지고 올라온 특경대는 복도를 점거하고 방을 확인하고 있었고 맨 뒤에 있던 특경이 사주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밑에서 나타난 경완의 모습에 기겁했다.
가엽게도 경완의 손가락이 한발 빨랐다.
탕탕탕탕탕!
쌍권총이 교대로 불을 뿜었다. 방을 확인하고 서둘러 나오던 놈도, 급히 자세를 낮추어 대응하려고 했던 놈도 모조리 머리와 목에 총을 맞고 침묵했다.
심지어 괴력 능력자도 섞여 있었지만 방탄 능력이 없었던 탓인지 쇳조각이 뇌수에 박히며 절명했다. 뭐, 방탄 능력이 있었더라고 경완이 총알에 듬뿍 담은 S입자 덩어리 때문에 방탄 능력이 교란되어 두개골이 뚫려버렸겠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놈들을 정리한 경완은 총기와 탄약을 확보하고 시신은 창밖으로 던졌다.
복도 중간쯤에 시체로 바리케이드를 쌓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소모하는 것보다는 밖에 던져서 저들의 실패와 무력감, 그리고 이쪽의 우월성을 부각하는 편이 시간을 끄는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시체들이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내던져지자 예상대로 밖을 포위한 공안들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이제 힘으로 안 되니 협상을 시도하려고 하겠지? 그러면 밤이 될 때까지 협상을 질질 끌고 가면서 충분히 쉬면 된다.
경완은 시체를 정리한 후 총경감인지 부총경감인지 모를 왕샤홍을 끌고 와 다시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야~아! 이 씹새들아! 인질의 목숨이 소중하지도 않냐?!”
탕! 탕!
경완이 인질의 머리 옆에 권총을 바짝 대고 허공으로 총을 발사했다. 포위하고 있던 공안이 일제히 자세를 낮추었다.
“통역 데려와 통역! 삼십 분 준다!”
경완은 그렇게 외치고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인질이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거 주둥이를 막고 구석에 처박았다.
경완의 초감각에 밖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재차 공격하려는 시도로 보이진 않았고 그의 한국어를 알아들었는지 교섭전문가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였다. 경완은 안심하고 총기와 탄약을 점검하며 숨을 골랐다.
약 30분 후 통역 겸 교섭전문가가 도착했다.
[범인은 들으시오! 당신은 이미 포위되었소! 무리한 짓 하지 말고 지금이라고 투항하시오!]
경완은 교섭전문가의 등장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쏼라쏼라 중국어가 아니라 대화가 좀 통하는 상대랑 이야기 할 수 있으니까.
경완은 원활한 대화를 위해 다시 한번 인질을 활용하기로 했고 인질은 다시 창문 밖으로 면상이 팔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협상가는 들어와라! 안전을 보장한다!”
[우리가 어떻게 당신 말을 믿을 수 있나?]
“소리 지르기 힘들다고! 이 씹새야!”
경완이 소리를 팍 지르고 도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뒤 교섭전문가라는 인간이 두 명의 무장한 수행원과 함께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이 계단을 올라 경완이 있는 층에 도착했을 때, 경완은 문밖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그들을 반겼다.
“반갑습니다,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만주라고 하오!”
순간 멈칫하는 것이 경완의 공손한 말투에 적잖이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경완이 물었다.
“조선족이세요?”
“그렇소!”
“조선족치고 서울 말씨가 훌륭하십니다!”
“과찬이오!”
“이런 곳에서 동포를 만나니 적잖이 안심이 되네요!”
“…….”
상대의 침묵에서 적잖은 당황이 느껴졌다.
왜? 뷔페니즘식 좋은 거 골라먹기 하려고 중국동포 모드와 중국인 모드를 지들 마음대로 온오프 하더니 새삼 역지사지를 강제로 당해서 그런가?
하긴 이 지랄을 떤 범인이 조선동포라고 말하기엔 중국 공산당과 극성 링링허우 세대들이 무섭긴 하겠다.
하지만 이만주는 금방 냉정을 찾아 협상을 시도했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당신에게 안 좋은 건 알고 있소?”
“물론 알고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인질을 풀어주고 투항할 것이오?!”
“그전에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니까 대화가 힘든데 거리를 좀 좁힐까요?”
“그쪽을 어떻게 믿고?”
“믿을 필요는 없고, 그냥 한 칸 떨어진 방으로 들어오면 되잖아요.”
경완의 말에 이만주는 수행원들이 총을 겨누며 엄호를 하는 사이에 자세를 낮추고 빈방으로 들어왔다.
“왔소!”
“이제 좀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겠네요.”
“목적이 뭐요?”
“목적이요? 당연히 자유죠.”
경완의 말에 이만주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런 짓을 했으면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왜요? 못 할 것 같아요? 원래 이런 일이 시작된 이유가 그쪽에 있는데?”
“……뭔 소리요?”
“협상을 한다면서 제가 누군지도 모르고 들어왔나요?”
“……그건 아니오.”
“그렇다면 제가 중국의 요청으로 연쇄 살인범의 심문을 돕기 위해 입국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겠죠?”
“……그건 몰랐소.”
경완은 이만주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S입자 초감각을 통해 탐지한 그의 신체반응이 그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경완은 사정을 설명했고 이만주는 당황했다.
연쇄 살인 용의자라는 자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죽을 뻔했던 일, 그리고 그놈에게 권총까지 넘겨주며 협력하던 공안이라니?!
114-11-초인충돌
사정을 다 들은 이만주는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매우 복잡한 상황임을 파악하고 머리가 아파졌다. 처음엔 그냥 옆나라에서 온 미치광이 범죄자가 미친 짓을 하는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들어보니 자신은 모르는 모종의 일이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혹시 이경완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의심하진 않았다. 이 와중에 거짓말을 해서 그에게 무슨 득이 있겠는가?
경완이 굳은 그의 얼굴을 보고 입을 열었다.
“복잡한 상황인 건 이해하셨죠?”
끄덕.
“제가 잡은 왕샤홍이란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긴 해요?”
“그렇소. 부총경감이니.”
“그럼 왜 날 죽이려고 들었는지 알 수도 있겠네요?”
“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오.”
“그럼 그냥 통역만 해줘요.”
경완은 그렇게 말한 후에 잠시 안으로 사라졌다가 한 사람을 끌고 왔다. 왕샤홍 부총경감이었다.
“읍! [email protected]$!%^!”
재갈을 풀자 왕샤홍이 뭐라뭐라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경완은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자신이 궁금한 것만 물었다.
“왜 날 죽이고 했냐?”
“…….”
“뭐해요? 통역 안 하고.”
“해주면 당신은 무엇을 해줄 거요?”
교섭전문가로서 어떻게든 주도권을 쥐고 싶은 모양인데 완전히 잘못 짚었다. 경완의 목적이 그저 포위된 상황에서 벗어나기 용이한 밤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경완의 착잡한 듯 입맛을 다시며 이렇게 말했다.
“짱개 새끼들이랑 대화를 하려고 했던 내가 병신이지.”
한국말 할 줄 안다고 다 한국인은 아니다. 한국말하고 세종대왕님이 만든 한글을 쓰면서도 굳이 자기들은 중국인이라고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 훈민정음 서문에, ‘나랏말쌈이 중귁과 달라’라는 문구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최소 500년 전부터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라는 인식이 존재했음을 말이다.
탕탕탕!
“으아악! 으아아악!”
왕샤홍은 머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경완이 쏜 총알이 왕사홍의 양 관자놀이 부근과 정수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피부를 찢었다.
피를 흘리는 왕샤홍을 보며 이만주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말했다.
“알았소! 알았으니까 그만!”
“이보세요, 이만주 씨. 일의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 알아야 협상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았으니까 인질을 다치게 하지 마시오!”
그렇게 합의(?)가 이루어지자 경완이 왕샤홍을 보며 물었다.
“나 알지?”
“으아아! 으아아!”
“아직 안 죽었어, 새꺄.”
찰싹! 찰싹!
좌우로 싸다구를 날려주니까 그제야 정신이 좀 돌아온 왕샤홍에게 경완은 다시 물었다.
“나 알지?”
“!$!#!!%!”
“????”
이만주가 경완의 말을 통역하자 왕샤홍은 당황하는 와중에도 어리둥절했다.
경완이 이만주를 향해 물었다.
“이 사람 영어 할 줄 알죠?”
“그럴 거요.”
“그럼 영어로도 물어봐요.”
“어째서?”
“그야 당신이 날 속일 수도 있으니까.”
경완의 말을 제대로 통역하지 않으면 진실의 스무고개도 소용없었다.
이만주가 되물었다.
“그럼 굳이 중국어로 통역할 필요가 있소?”
“이 사람이 영어에 그리 능숙하진 않은 것 같아서 말이에요.”
왓 추얼 네임, 이 간단한 한마디를 얼마나 처맞아야 알아듣던지. 쯧쯧.
경완의 말에 이만주는 어쩔 수 없이 영어로도 통역했다. 경완은 이만주라는 비협력적인 통역을 끼고 하나하나 이 일에 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왕샤홍은 경완을 알고 있었고, 그를 데리고 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그를 한국에서 데려오는 일이 상부에서 내려온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상부란 당연히 중국 공산당이었다.
여기까지 오케이. 경완은 책임소재가 어디까지 뻗쳐있는지 확인했다.
그다음은 그를 굳이 중국까지 불러서 죽이려고 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 부분을 알아내려고 하니 조금 복잡했다.
경완은 우선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남자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다. 왕샤홍은 입을 꾹 다물었지만 경완의 예리한 눈치로 보아 분명 그 구속복을 입은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럼 그 남자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도 알고 있겠지.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남자였나?”
속내를 읽듯 연속되는 경완의 물음을 이만주가 통역해주자 왕샤홍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이만주를 보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 컥!”
하지만 채 입을 열기도 전에 경완에게 도로 재갈이 물렸다.
왕샤홍의 태도는 아주 다급했다. 이만주에게 뭔가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경완이 매우 민감한 질문을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거짓을 말하라거나 침묵하라고 요구하려 한 것이 분명했다.
경완은 생각을 정리했다.
여러 키워드가 머리에 떠올랐다. 특별한 능력, 중국, 미국, 갈등, 패권, 국익 등등.
그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이 오는 어떤 가설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능력이라는 게 초능력자의 능력을 죽여서 빼앗는 그런 능력은 아니겠지?”
“…….”
“뭐해요? 통역 안 하고?”
이만주는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질문이 여기까지 진행되었는데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면 병신이었다.
분명 지금의 상태는 중국이 이경완이라는 희대의 빌런이 가진 능력을 빼앗기 위해 수작을 부리다가 이 지경까지 온 것임이 분명했다.
단순히 그 정도라면 이만주가 이렇게까지 굳어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능력을 빼앗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중국의 장기밀매와 인육 거래의 실태를 생각하면 중국이란 나라에서 국익을 위해 사람 목숨 하나 촛불 꺼버리듯 꺼버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경완이 미국국적을 가진 미국인이라는 점이었다. 이 위험한 협상에 나서기 전 교섭대상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이만주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즉, 미국이 미국국적을 부여할 정도로 가치 있는 초능력자의 능력을 빼앗기 위해 이 사달이 났다는 것이 사건의 전모임을 이만주는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건 자신 같은 인간이 끼어들 건수가 아니었다.
경완은 입술을 달싹이지만 차마 말을 못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저 조선족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통역 안 해줄 거면 가세요.”
“그래도 됩니까?!”
이만주의 얼굴이 반색을 띠었다. 그로서는 차라리 교섭실패라는 딱지가 붙을지언정 거대한 두 국가가 맞붙을 것이 뻔한 사건이 끼어들어 고래 싸움의 새우 꼴이 되고 싶진 않았다. 미국 유학 중인 자식들은 어쩌라고?
“일단 가면 음식이나 잔뜩 배달해 달라고 해줘요. 여기 인질이랑 같이 먹을 거니까 비싼 거로요. 알았죠?”
이만주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 살려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는 빠르게 경완의 요구를 현장책임자에게 전달하고는 지병을 핑계로 다른 교섭전문가에게 짐을 떠넘기고는 얼른 그 자리를 떴다.
약 한 시간 후 으파룽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교섭전문가가 와서는 어눌한 한국어와 유창한 영어로 뭐라뭐라하는데 경완은 대충 한 귀로 흘려들으며 주문한 음식이 언젠데 아직도 안 오냐고 따졌다.
으파룽은 고압적인 태도로 중국은 결코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다며 얼른 항복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경완은 인질인 왕샤홍의 새끼손가락 하나를 그가 보이는 데에서 그대로 꺾어버렸다.
우득!
“아아악!”
“인질이 병신이 되어도 계속 그런 소리 할 거야? 내가 인질한테 손 안 댄다는 전제로 음식 좀 가져오라고 이미 얘기가 끝났는데 이렇게 약속을 파기하면 기분 나쁘지.”
구체적으로 그런 말이 확실하게 오가지는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소위 눈치라는 것이 있잖은가?
거기에 더해 부총경감의 귀에 경완이 영어로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저쪽에선 아무래도 당신 건강이나 안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이다.
전형적인 남 탓하기였지만 정신적으로 몰려있는 왕샤홍은 으파룽을 향해 살기 어린 시선을 보냈다. 경완에게 그런 의기를 보이기엔 많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긴, 당장 경완은 자신의 목숨줄을 잡고 있는 미친놈이었지만 으파룽은 그저 한낱 교섭 전문가, 그러니까 부총경감인 자신보다 아래 지위에 있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고 상대 봐가면서 화풀이하는 속성은 인간의 비겁한 본성 중 하나였다.
문답무용으로 인간의 손가락을 꺾고 그 탓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완의 똘끼와 철면피를 경험한 으파룽은 당황해하며 얼른 이미 합의했던 상황을 들어주겠다고 확답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저기. 인질의 부상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
“대가는?”
“음식으로는 부족하나?”
“그럼 음식 나 혼자 먹을까? 얘는 굶기고?”
“무엇을 원하나?”
“글쎄. 지금으로서는 딱히 음식 말고는 원하는 게 없는데…….”
경완의 말에 으파룽의 표정은 안 좋아졌다. 완전히 포위한 상황이고 소국(小國)의 국민이라 위압과 겁을 주어 주도권을 쥐려고 했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그렇다면 전략을 수정해서 라포(rapport)를 형성해야 했는데, 앞의 실패가 너무 컸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으파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중에 생각나면 말하기로 하고 의사를 먼저 들여도 되겠나?”
“아니? 난 외상 같은 거 안 해.”
“…….”
얄짤 없이 돌아간 으파룽은 인질범과의 라포 형성과 인질을 치료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수단을 고민하다가 결국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래서 농성현장에 도착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노정택 주중한국대사였다.
그는 중국에서 테러가 벌어진 현장으로 오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왜 자신이 불려 가는지, 인질범이 누구인지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에서 부탁을 해왔을 때에는 그저 한국 출신의 인질범에게 항복을 권고하기 위해 도움을 달라고 들었지만 북경을 봉쇄한 며칠 동안 알 만한 사람은 이 사태를 일으킨 범인이 누군지 다 알고 있었다.
주중한국대사인 노정택도 마찬가지로, 그는 이미 한국정부로부터 이 상황에 대한 정보를 듣고 나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경완 이놈이 일본에서 사고를 쳤을 때에는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마구 저격질 해댄 공안 요원은 물론이고 진압을 위해 돌입한 특경대까지.
과연 중국이 순순히 경완을 놓아줄까?
“선생님께 원하는 것은 그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제안을 대가로 인질에 대한 치료를 요구하는 거죠.”
교섭 전문가라는 으파룽의 말에 노정택은 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그는 지금 인질범을 벌이고 있는 이가 누구인 줄 모르고 있는 척하다가 으파룽이 인질범이 누구인지 밝히자 놀라는 척했다.
“왜 그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야 저도 모릅니다.”
“그는 건들지 않으면 얌전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죽인 적도 없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 사항이 있으시다면 공유해 주십시오. 그를 설득하는데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흐음. 그게…….”
으파룽은 망설였다. 공산당 고위직의 혈통으로서 인맥을 통해 사건의 전후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순순히 주중한국대사에게 말해줄 순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선 중국이 국가적 자산을 강탈해가려고 한 시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완이 미국국적을 가지고 있다지만 겉포장을 바꾼다고 내용물이 바뀔 리가 있나? 과연 다른 나라에 이민 간 중국인들이 스파이짓을 해주는 나라다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