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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15화 (115/367)

115-11-초인충돌

아무튼 그래서 으파룽은 주중미국대사가 아닌 주중한국대사를 부른 것이다. 물론 경완이 명목상으로나마 미국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미국이 개입할 여지를 최대한 주지 않으려는 점도 노린 바였다.

안 그래도 그들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중국이 한국에 깔아놓은 인맥, 다른 말로는 첩보자원을 대거 동원해서 경완을 빼낸 일에 대해서 지금도 핫라인으로 연신 미국의 분노어린 항의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끼어들 빌미를 원천 차단하려 하는 건 중국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작전에 들인 그 첩보자산들을 생각해도 중국으로서는 도저히 이번 일을 없었다는 듯이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이미 입에 밀어 넣은 음식을 어쩌려고? 배라도 째려고? 이런 마인드로 밀어붙이고 있는 실정이었으니, 진짜 그런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경완을 잡아야 했다.

노정택은 으파룽과 잠시 탐색전을 벌였지만, 노정택은 이 일이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확신하고 있었다. 이경완이 미친놈은 맞지만 여태까지 결코 먼저 시작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으파룽은 상부로부터 경완에 대한 어떤 작전 지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구체적인 건 모른다고 끝까지 숨기면서 말이다.

정말 모르는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노정택은 적어도 본국에 체면치레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는 얻었다.

“그렇군요.”

“범인이 한국인이지 않습니까? 설득 좀 도와주십시오.”

한국인? 이미 중국도 경완이 미국국적 소유자라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괜히 한국 탓으로 떠넘기려는 짱개 새끼의 심보에 노정택의 심기가 불편해졌지만 표정관리는 외교관의 기본이었기에 노정택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말은 그랬지만 속으로는 한숨이 나왔다. 이경완이 사고를 적당히 쳤다면 의욕이 좀 생겼을 것이다.

공안본부 건물로 향하는 그는 주일한국대사가 부러웠다. 주일한국대사는 경완이 일본에서 인질극을 벌일 때 그의 태도를 부드럽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꿀을 빨고 있지만, 자신이 그와 같은 기회를 누리기는 힘들어 보였다.

사방에 있는 핏자국을 보라. 도대체 얼마나 죽여댔단 말인가?

중국 같은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국가가 아니라도 경완이 저지른 짓은 절대 용서하지 못할 중범죄였다. 더구나 공안이라니? 이건 권위주의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꼴이 아닌가?

노정택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경완이 온전히 한국국적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국적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만일 중국이 이경완이 한국인이라고 물고 늘어지며 한국에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면 한국은 미국을 끌어들일 구실이 있었다.

“누구세요?”

“주중한국대사 노정택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어. 음. 일단 인질의 치료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저한텐 뭘 줄 건데요?”

“뭘 원하십니까?”

“C4 두 덩이와 뇌관 및 격발장치 5개요.”

미친놈인가? 뭘 달라고?

“……뭐라고요?”

자신의 청각을 의심한 노정택이 되물어보았지만 경완의 요구 조건은 변하질 않았다. 오히려 한술 더 떴다.

“C4 두 덩이는 좀 적죠? 세 덩이랑 뇌관 및 격발장치 5개요.”

“왜, 왜요?!”

“주중한국대사님이 찾아올 정도로 일이 커졌잖아요.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것 같아요?”

“…….”

그렇진 않죠.

“대치가 길어지면 저도 졸려서 잠을 자야 하는데 그사이에 진압하러 들어오면 새되잖아요? 그래서 함부로 못 들어오게 부비트랩을 만들어 놓으려는 겁니다.”

합리적인 이유다. 하지만 단지 합리적인 이유라고 폭탄으로 부비트랩을 깔아놓는다? 그 태연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광기에 노정택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낯선 것도 아니며 심지어 법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는 상황도 있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나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 아무리 경쟁사회라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도 아니고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경완이 내민 제안은 노정택이 수락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결국 그는 교섭전문가인 으파룽에게 경완의 조건을 전달했고, 그것으로 그의 임무는 조건적으로 완수되었다. 으파룽이 그에게 부탁한 것은 인질을 치료할 수 있는 빌미를 만들기 위해 경완이 조건을 내놓도록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제 공은 중국 측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폭발물을 달라는 조건은 결코 수락할 수 없으리라.

노정택은 그렇게 확신하고는 조심스럽게 경완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까지 하려고 하는 거요?”

“그건 저도 몰라요. 결정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저쪽에서 하는 거니까요.”

“당신이 결정할 수도 있는 거 아니오?”

협상과 양보, 혹은 도주를 암시하는 물음이었지만 경완은 그 어떤 것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럼 개처럼 끌려다니다 죽게 되겠죠. 제가 시작한 일도 아닌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전 그냥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것뿐이에요.”

노정택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 이런 태도가 문제였다.

그가 보기엔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경완이 죽든지, 중국의 체면이 구겨지든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후자보다는 전자의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노정택은 안타까웠지만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딱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소.”

“조심히 가세요.”

경완은 무던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혹시나 했던 불안감은 가라앉았다. 무사히, 몸 건강히 위험한 곳을 빠져나왔다. 이것만으로 한국은 중국에 체면치레를 했으며 노정택은 자신의 직무를 충분히 수행했다 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노정택이 전달한 경완의 제안은 거부되었다. 안 그래도 특경대가 착용하고 있던 무기와 방탄복 등을 빼앗겨서 미칠 것 같은데 거기에 폭발물까지 더하라고? 괴물에게 날카로운 이빨마저 줄 작정인가?

그래도 약속했던 음식물은 제공했다. 일본이 당한 교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음식에 수작을 부리진 않았다. 그저 범인이 배가 불러 조금이나마 성격이 누그러지길 바랐을 뿐이다.

중국도 배달이 발달했는지 꽤나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배달되었다. 경완은 인질범의 손을 풀어주고 테이블 맞은편에 앉혀 같이 식사했다.

왕샤홍은 경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식사를 했다. 다행히 꺾인 새끼손가락이 왼손이라 젓가락질에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과연 상부에서 자신의 생사를 어디까지 챙겨줄까 생각하니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맛을 음미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경완에게 어설픈 영어로 질문했다.

[원하는 게 뭔가?]

[내가 원하는 거? 뻔하지 않아? 내가 당신들 요청을 받고 이 땅에 온 게 부귀영화를 원해서 왔다고 생각해?]

왕샤홍은 막막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가 있는 법. 어차피 능력 강탈 초능력자는 사망했다. 그렇다면 경완이 저지른 짓을 빌미로 그를 중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어떨까?

[정말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딱히?]

[그렇다면 투항도 생각해보게. 내가 자네를 위해 변호를 하지.]

[왜?]

[자네는 우리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짐작하고 있지 않나?]

[아니, 모르는데?]

경완은 시치미를 뚝 뗐지만 큰일을 겪어 담이 커진 왕샤홍은 동요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모든 일은 결국 국익과 관련된 일이지. 자네의 가치를 알고 빼내려고 했을 때 이미 자네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미국국적까지 가지고 있었네. 우리로서는 향후 100년의 패권을 또다시 서양세력이 점유하게 놔둘 순 없었어. 아편전쟁의 치욕을 또다시 겪을 순 없지.]

[그래서?]

[자네를 공격했던 초능력자의 능력은 식심차력이라고 명명된 매우 희귀한 능력이야. 죽인 초능력자의 능력을 빼앗는 것이지.]

[내 능력을 빼앗겠다?]

[하지만 이미 과거의 일이 아닌가? 내가 알기로는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진 자는 중국 내에는 또 없다네. 즉, 자네는 자네의 능력을 하나의 거래 수단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거야. 그 가치는 자네의 상상 이상일걸세.]

[내 가치가 어느 정도인데?]

[초능력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패권을 쥘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

[나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는데?]

허풍 심한 중국인인 걸 알고 있어도 너무 과장되게 들려서 별로 와닿지 않았다. 경완의 판단으론 기껏해야 몇 분야에서 선두를 잡을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자네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왕샤홍이 하나하나 기밀에 해당하는 것을 꺼냈다. 경완 본인만이 알고 있는 사실도 있을 거라 꺼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저격이 가능할 정도의 초감각, 거기에 괴력 능력과 힉스남을 곤란하게 했던 초능력 방해 능력까지.

하지만 그들이 주목한 것은 흑노야와 흑연, 그리고 경완과의 관계였다.

여러 청부업자에게 공격을 당한 흑노야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왜 마저 복수를 끝내지 않고 굳이 경완에게 달려간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흑연은 흑노야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나타난 것일까?

초능력이 승계된 경우는 전 세계에 딱 한 케이스뿐이었다. 바로 흑노야와 흑연.

그리고 그 케이스에서 특별히 눈여겨볼 사항이라곤 경완이라는 특이점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 특이점을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건 그가 이미 복수(複數)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본인이 밝히진 않았지만 다른 능력자의 능력을 다른 이에게 승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초능력 군대를 가지고 싶은 나라에겐 꿈과 같은 능력이었다. 특히 중국 공산당 같은 일당 독재의 국가에선 자기들에게 반하는 자들의 능력을 빼앗아 자기들 편에게 초능력을 줄 수 있다면 이미 게임 끝이다.

희망과 장밋빛 미래로 점철된 뇌피셜이었지만 이미 다른 이의 초능력을 빼앗는 능력자가 존재하는, 아니 존재했던 마당에 초능력을 남에게 부여할 수 있는 초능력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공산당의 입장에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만에 하나 이러한 가설이 사실이라면 어떻게든 그의 신변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러한 시도가 실패해도, 또는 신변의 확보가 성공해도 그러한 능력이 경완에게 없을 경우라도 리스크는 성공했을 때의 성과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했다.

아무리 미국의 영웅이자 뛰어난 범죄자라고 하지만 결국엔 법을 어기고 여러 사람을 병신으로 만든 범죄자 아니겠는가?

그러니 무마할 방법은 많았다. 뭐하면 한국에 귀중한 치유능력자를 대여해줘도 되고 말이다.

그렇게 해주면 경완에게 당했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중국의 편을 들어줄 것이 분명할 테니 한국 정부도 강하게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게 왕샤홍의 생각이었다.

아마 상부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왕샤홍이 부총경감이라는 높은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 윗사람의 생각을 잘 읽어낸 판단력 덕분이었으니까.

다만 왕샤홍은 중국 당국이 경완을 죽여 그 능력을 빼앗자는 결정을 내린 그 사고과정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패권과 공산당의 권력유지란 거대한 판돈이 걸린 상황에서 경완의 능력이 매우 가능성 높은 열쇠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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