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1-초인충돌
편의점 앞에서 배를 채우던 그는 저 멀리서 공안이 오는 것을 느끼고 곧장 자리를 떴다.
CCTV가 없는 어두운 골목에서 다시 옥상으로 점프한 그는 휴대폰을 이용해 주변을 검색했다. 지리적 정보와 주변 환경을 숙지한 경완은 공안 사무실의 위치를 검색해 지도와 함께 머리에 집어넣었다.
배도 채웠겠다, 그럼 슬슬 다시 일을 저질러 보실까?
상하이 밤에 공포의 총소리가 울렸다.
* * *
희대의 빌런 이경완이 상하이에 상륙했다.
모방범죄가 아니라 본인이 저지른 짓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증거는 차고도 넘쳤다.
밤마다 공안들이 저격당해 쓰러지고, 공안 사무실이 습격당해 총기와 탄약이 탈취당하고 CCTV가 계속해서 파손되는 상황은 북경에서 이경완이 벌인 짓이랑 똑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비슷한 능력을 가진 빌런의 짓은 아닐까? 아니었다. CCTV가 망가지기 직전에 찍은 사진 중에 이경완이 환하게 웃으며 가운뎃손가락을 쳐들고 선전포고하듯 찍은 사진이 있었으니까.
이는 분명한 도발이었다.
중국은 당장 상하이에 군대를 파견해 이번에야말로 경완을 잡아 죽이고 싶었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뉴욕이 미국에게 그러하듯 상하이는 베이징과 투톱을 이루는 중국의 경제 중심지였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하이양 원전 테러로 인해 전력수급과 방사능 오염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데 테러범을 잡자고 상하이를 봉쇄한다니…….
그건 공산당의 입장에선 쥐새끼 잡겠다고 곳간에 불을 지르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경완이 희대의 테러리스트인 건 맞았다. 하지만 군대로 그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은 이미 공산당 상층부에선 사라져 있었다. 이미 군대를 가지고 한 번 지랄을 떨지 않았던가?
농지가 많은 평야에서 그 지랄을 했는데도 못 잡았는데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같은 지랄을 해도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부수적 피해가 어마어마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어도 말이다.
그들에게 경완은 치명적인 악성 종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군대라는 커다란 칼로는 암 절제 수술을 할 순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래서 군대가 아닌 다른 수단을 탐색했다.
탕!
“빵야!”
경완의 초감각에 쓰러지는 공안이 느껴졌다.
‘살인자!’
경완의 귀에 이름 모를 익명의 목소리가 스치는 듯했지만, 그는 그저 실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미 이것은 전쟁이었다. 전쟁에 살인이니 인륜이니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거 아닌가?
경완은 인륜과 도덕을 찾다가 중국 같은 나라에 굴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죄수들 장기나 팔아먹는 나라와 인륜과 도덕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그는 지붕을 뛰어넘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물론 CCTV를 쏘아서 부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초감각에 초능력자 여럿이 경완이 그랬던 것처럼 건물 옥상을 뛰어넘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수는 총 다섯.
그들은 정확히 경완이 있는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특별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완은 먼저 공격하진 않았다. 그래서 저들이 왜 어떻게 무슨 이유로 다가오는지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는 생각에 제자리에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보다는 드러난 변수가 차라리 나았으니까.
그의 앞에 도착한 다섯은 현대적 감성으로 디자인된 장포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경완을 향해 포권으로 인사를 하고는 영어로 물었다.
[귀하의 성함이 이경완이 틀림없소?]
“Yes.”
[나는 흑룡방의 고권이라고 하오. 여기는 내 아우들이고.]
“So what?”
[본론만 말하겠소. 귀하에게 살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왔소이다.]
호오~ 살길이라?
경완의 표정에 호기심이 서렸다.
“I’m listening.”
계속해 보라는 경완의 말에 고권이라는 사내는 자신들이 이렇게 경완을 찾아온 경위를 설명했다.
중국 공산당은 경완을 잡기 위해 상하이에 군을 투입하다간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어디 그 빈대가 보통 빈대인가? 이미 큰일 하나 저지른 빈대 아니던가?
그래서 중국은 경완을 제압할 만한 소수의 능력자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찾은 자가 바로 중국 흑룡방의 초능력자들이었다.
아무리 중국이 초능력자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하려 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큰 뜻과 큰 능력을 가진 이들 전부에게 목줄을 채울 순 없었다. 비범한 능력과 지략을 갖춘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그런 이들은 본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서 영리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당국의 강압과 구속을 피해 권력자들의 비호를 받는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일종의 타협책이었다.
중국처럼 꽌시가 중요한 사회에서 불법조직과 권력자의 영합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고권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이를 통해 흑룡방에 들어가 중요한 위치를 꿰찼다.
그의 능력은 강력했다. 아마 단순한 신체강화 능력이었다면 차라리 군에 들어갔겠지만 그러기엔 몇 가지 능력을 더 타고난 터라 그는 자신이 각성한 능력이 너무 아까웠다.
그의 복합적인 능력은 흑룡방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은밀하게 해결해 주었고 빠른 시간에 조직의 중요한 자리로 오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흑룡방의 해결사 노릇을 하던 고권에게 최근 하나의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그것이 바로 이경완과 관련된 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당신에게 죽음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소?]
고권의 물음에 경완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고권은 당황해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 상황에서 죽을 생각을 안 한다고?
그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자신감에 고권에게 자신의 판단 착오를 인정했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의 생사 따윈 고민하지도 않는 인물임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이런 자가 가장 무서웠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눈앞의 남자는 이미 원전 두 기를 테러한 괴물이었다.
고권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궁극적으로 당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오?]
[중국의 사과.]
[그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소?]
[알고 나온 거 아냐? 일의 전모를 알게 되면 공산당이 당신들 입을 막으려고 들 텐데?]
[우리는 입이 아주 무겁소.]
[내 입은 무겁고?]
[…….]
경완은 자신의 짓궂은 장난에 표정을 굳히는 고권을 보며 키득대다가 사실을 말해주었다.
[난 범죄수사를 도우러 왔는데 공안은 날 죽여서 내 능력을 빼앗으려고 들었지.]
[흐음…….]
고권은 침음성을 흘렸다.
경완이 왜 중국을 적대하고 공안들을 죽여 댔는지 이해가 되었다. 은원은 중국인에겐 삶의 지침이나 마찬가지인 가치였으니 감히 내 목숨을 노린 이를 살려둘 순 없다는 경완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고권이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여기서 그만둬 줄 순 없소?]
[그만두면?]
[우리가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돕겠소.]
[날 잡으러 온 거 아니었나?]
[상하이에 문제가 없었으면 할 뿐이오.]
흐음…….
경완은 턱을 쓰다듬었다. 혹시 이거 지역갈등인가? 상하이 세력과 베이징 세력 사이에?
땅덩이 넓은 대륙이었다. 원래부터 지역감정이 장난이 아닐 것이다. 공산당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같은 지연을 가진 사람을 밀어주는 일 따위로 경쟁도 할 테고 말이다.
어쩌면 경완에게 수작질을 부린 놈들은 베이징 세력 쪽일 수도 있었다. 경완이 뒤통수를 맞은 곳도 베이징이지 않은가? 일을 실패하고 어마어마한 피해를 낸 그들의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을 터.
그런 생각을 하자 경완은 문득 마음이 편해졌다. 솔직히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내려오면서 참 많이 힘들고 피곤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중국이랑 끝까지 가면 통쾌한 만큼이나 피곤한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막말로 몇억을 죽여야 끝이 날까? 일 초에 한 명씩 죽여도 한세월이었다. 총알은 또 어디서 구하고? 핵폭탄이 있으면 또 모르겠지만 그걸 구하는 일조차 지금보다 더 어려우면 어렵지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는 건 어떨까?라는 유혹이 고개를 쳐들었다. 원전을 좀 터뜨리니 열이 올랐던 머리가 좀 식기도 했고.
눈앞에 있는 고권이라는 자의 제안이 혹시 등 따숩고 배부르던 감방으로 돌아갈 기회가 아닐까? 엔딩을 못 본 게임 타이틀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고권은 경완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굳었던 표정이 조금을 풀어졌다. 대화가 통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이경완을 중국 밖으로 보내버리면 된다.
물론 이경완이 저지른 짓으로 인한 외교적, 정치적 문제가 얽혀 있기는 하지만 그것까지 해결하는 건 고권의 몫이 아니었다.
그가 흑룡방에 들어와 배운 한 가지가 정치인의 뒤를 닦아줄 때는 적당히 닦아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깨끗하게 닦아줬다가는 마치 변소 들어가기 전과 후가 다른 것처럼 뒤 닦아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가지기는커녕 부담스럽거나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토사구팽.
고권같이 음지에서 활동하는 사람일수록 유념해야 하는 단어였으니, 조금 찝찝함을 느낄 정도로 덜 닦아줘야 조변석개하는 그들의 마음을 붙들 수 있었다. 휴지 귀한 줄 알아야지.
한편, 고민에 잠긴 경완은 미래를 생각했다. 일단 중국에 크게 한 방, 아니 두 방을 먹여줬으니 원한은 가질지언정 자신을 만만한 호구로 생각하진 않을 것은 분명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책임자를 색출해서 책임을 물을 때까지 윗대가리를 잡아다가 병신으로 만들어줬겠지만, 중국어 능력이 부족해 정보를 캐내기 곤란하고 번거로운 상황이라 결국 기분 내키는 대로 분탕질만 친 것이 아닌가?
중국 속담에 청산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이 없다지? 공산당 놈들이 어디 가는 건 아닐 테니 잠시 귀국했다가 중국어를 공부하고 다시 돌아오는 건 어떨까?
솔직히 공안 요원들을 죽여대봤자 원흉이 되는 놈들을 곤란하게 하거나 분통을 터뜨리게 만들 뿐, 고통과 공포로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후회하도록 만들어주긴 힘들었다.
그들에게 인민은 그저 공산당의 권력과 영광을 위한 소모품일 뿐이었다.
여기에 동의 못 하는 인민은 모종의 장소에 끌려가 뇌가 깔끔하게 세탁되고 공산당의 위대함이 주입되어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못하면 어디 전시회에 전시될 정도로 신비해질 뿐이었다.
경완의 생각이 기울었다. 어쩌면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그는 끝내 고권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하고 조용하게 중국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한 건 아니었다.
[좋아. 그런데 어떻게 날 한국으로 보내줄 건데?]
[밀항선이 있…….]
방법을 말하려고 하던 고권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진 7명의 초능력자 때문이었다.
곤충의 껍질을 연상시키는 단단하고 반들반들한 재질이 붙어있는 전투복은 그들이 어느 이름 있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어느 정도 재력 있는 조직이 아니라면 척 봐도 저리 비싸 보이는 장비를 마련해줄 순 없었다.
「뇌룡(雷龍)은 빠져라.」
「흑선(黑線)…….」
올빽 머리의 단호한 말에도 고권은 그저 흑선이라는 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올빽 머리의 남자 흑선이 고권에게 말했다.
「네가 받은 명령은 저자를 잡아 바치는 것이 아니었나?」
「글쎄…… 너랑 나는 입장이 달라.」
고권은 항상 토사구팽을 염려하지만 흑선은 항상 위로 올라갈 기회를 엿보는 자였다.
그에게 이경완을 생사불문하고 제압하는 일은 공산당에게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로 보였다.
그에게 고권의 신중함은 유약함으로 비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