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23화 (123/367)

124-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그는 배를 타면서 고권의 호의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에게 약조했다.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딱히 사례할 것이 없으니…… 적어도 세 번, 아니, 적어도 열 번은 당신의 그림자만 봐도 피해 다니기로 하지.]

고권은 그 말에 담긴 암시를 읽어냈다.

[……다시 중국으로 올 생각이오?]

[내가 중국어를 못해서 대가리를 못 자른 게 너무 아쉬워서 그래. 내가 중국어만 할 줄 알았으면 괜히 공안에게 화풀이하진 않았을 거야.]

고권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그간 공안 요원들을 죽이고 원전을 폭파시킨 게 고작 화풀이였던 말인가?

그는 이대로 악당 이경완을 순순히 보내줘야 하는지 회의감을 느꼈지만 그는 한번 내린 결정은 되돌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심히 가시오.]

[부디 다시 만나지 않기를.]

경완의 말에 고권은 그만 실소를 짓고 말았다. 경완의 말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진실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와 자신이 좋은 일로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경완은 후드와 마스크로 얼굴을 감추고 밀항선에 올라탔다. 냄새가 지독했지만 별수 없었다.

흔들리는 밀항선 안에서 경완은 고권을 떠올렸다. 과연 이 밀항선에는 수작질을 해놓지 않았을까?

하지만 경완이 본 고권은 그렇게까지 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전형적인 반골의 상. 설사 출세하지 못할지언정 권력자의 개가 되어 더러운 짓을 할 성품으론 보이지 않았다.

인재임은 확실했다. 그런데 그런 인재가 토사구팽을 두려워하여 나라에 큰 피해를 입힌 외적을 잡는 일을 외면하다니..

이게 바로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고 하는 게 아닐까?

경완의 머리에 중국의 미래가 그려지는 듯했다. 난세의 다른 말은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그는 등에 입은 상처 때문에 벽에 등을 기대지 못하고 면벽수련을 하듯 벽을 보고 이마를 기대고 앉았다. 눕고 싶었지만 바닥이 더러워서 차마 누울 생각이 나진 않았다. 그러다 감염이라도 되면 짜증 난다.

그는 성질이 더러우면 몸이 고생이라는 교훈을 곱씹으며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반성했다. 괜히 혼자 몸으로 거대한 나라에 대들려고 한 짓은 확실히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또 똑같은 짓을 하겠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경완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너무 잘 알았다.

그저 눈을 감고 쉬고 있던 그가 무의식적으로 초감각을 돌렸다. 이번 중국에서의 일 때문에 반쯤 습관이 되었다. 아마 중국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습관이 유지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 감각에 선장과 선원들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싶었던 경완은 혹시나 해서 멀리까지 초감각을 뻗었다. 그리고 욕설을 내뱉었다.

군함이었다. 군함이 정확히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선장은 계속 무전을 받고 있었는데 결국 엔진을 끄고 정지했다.

경완은 곧장 움직였다. 그는 괴력으로 좁은 입구를 비집고 나갔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중국 선원들이 뭐라고 소리쳤지만 경완은 무시하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 초감각에 포착된 전함이 함포를 이쪽으로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퍼벙!

하늘 위에 조명탄이 빛나고 함포가 폭음과 함께 노란 불꽃을 토해냈다.

경완의 몸은 발끝이 수면을 차자 물에 빠지지 않고 튀어 올랐다. 중국선원들이 봤다면 ‘등평도수’라며 무협영화를 떠올렸겠지만 어두운 밤바다에서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을 환하게 비추는 공중의 조명탄과 저 멀리 어두운 바다에서 뿜어지는 노란 불꽃뿐이었다.

경완이 밀항선과 거리를 약간 벌렸을 때 포탄을 맞은 밀항선이 폭발했다. 함포의 고폭탄은 작은 어선 정도는 산산조각 낼 정도로 막강했다.

경완은 어두운 밤바다 위를 뛰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식한 새끼들. 이거 졸지에 뛰어서 바다를 건너야 할 판이었다.

그는 부지런히 발로 수면을 차며 무작정 동쪽으로 향했다. 마침 파도가 잔잔해서 방금 전의 함포사격에 관해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그건 분명 자신을 노리고 쏜 것이었다.

다짜고짜 함포사격이라니? 하지만 생각해보면 납득이 갔다.

엄청난 대인교전능력을 보여준 그를 사로잡는 건 어려웠다. 그러다가 함선에 올라타서 난리 치면 감당이 가능하겠는가? 첨단 무기가 주력인 함선에 초능력 군인들이 많을 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수도 없으니 그냥 함포 사격으로 죽여버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경완이 저들의 입장이라도 기꺼이 그리했을 것이다.

딱히 근거는 없지만 그러한 가설이 가장 타당했다. 아무리 밀항선이라지만 자국의 배에 다짜고짜 대포를 쏠 이유가 그거 외에는 딱히 없지 않은가?

밀항선의 중국인들? 공산당의 입장에선 나라에 해를 끼친 외적에 협조한 반동분자에 불과했다.

경완은 고권을 떠올렸다. 그가 밀항선을 타고 나간다는 걸 중국 당국에서 알아차렸는데 그와는 무슨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밀고? 적발?

지금 당장 판단할 순 없었다. 뭐, 나중에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되면 물어보면 되겠지.

경완에게 인연이란 그렇게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가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뛴 것일까? 상처가 아물지 않은 등이 쑤시고 새벽 해가 떠오를 때쯤, 경완은 해변에 도착했다.

그는 끼니도 해결할 겸, 도와줄 만한 사람에게 연락도 할 겸, 인가가 있는 곳을 찾았지만 인가를 발견한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렇게 마치 19세기를 옮겨놓은 듯한 시골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지나가는 군인의 군복을 확인한 경완의 입에선 나지막하게 욕설이 흘러나왔다.

“시벌.”

그가 상륙한 곳은 북한이었다.

* * *

북한에 상륙했던 경완이 다시 남한으로 넘어오는 일은 고되기는 하지만 어렵진 않았다.

아무리 휴전선에 젊은이들의 청춘을 갈아 넣어도 사람의 눈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그저 밤이 되었을 때 철조망을 펄쩍 뛰어넘으면 그게 바로 월남이었다.

철조망 앞 지뢰지대? 초능력으로 가벼워진 경완의 몸무게에는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감시 센서? CCTV? 노크귀순, 어선귀순, 수영귀순, 숙박귀순, 심지어 점프귀순까지 하는 시대에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은 이미 증명되었다.

더 비싼 장비를 쓰면 혹시 또 모르지만 휴전선을 걸쳐 다~ 깔기엔 예산이 부족하지 않겠는가? 간부님들이 생계형 비리를 저지를 수 있도록 예산을 잘 배분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남한에 도착한 경완은 교도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당장에 돌아가 봤자 교도소 식구(?)들에게 폐만 끼친다. 중국의 꼬장을 한국정부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아무리 한한령 운운해도 중국에 대한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가 너무나 달달했다.

한국정부도 따뜻한 중국의 젖꼭지를 빨려면 눈치 보는 시늉은 해야지 않겠는가?

아무리 치사하고 더러워도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리면 저절로 눈치를 보게 되기 마련이었으니 이는 국가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 클리어하지 못한 게임 타이틀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경완은 눈물겨운 자기희생정신(?)으로 외면했다. 어차피 감방에 들어가자마자 게임도 못 하게 온갖 인간들이 귀찮게 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괜히 또 노숙을 할 순 없었다. 다시 노숙자를 하기엔 노숙자 쉼터가 여기저기에 있었고 또 경완의 얼굴이 너무나 유명했다. 안 그래도 유명했지만 원전을 테러한 극악한 테러리스트로 이미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어떻게든 자신을 이리 만든 당사자 놈들과 결판을 보는 게 깔끔했다. 놈들이 죽든지, 자신이 죽든지.

물론 자신은 아직 죽을 생각이 없었으며, 놈들을 죽일 생각뿐이었지만 말이다. 이 일의 책임자 놈들을 다 죽여 버리면 중국도 이경완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냉정하게 다시 판단해 보겠지.

하지만 당장 도움이 필요한 경완은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여보세요? 텔레파시 능력자님?’

그는 비질란스의 일원이며 여태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목소리가 연락하기를 기도하며 마음속으로 불러보았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도 목소리가 들려오진 않았다. 무지 바쁜 모양이었다.

중국의 눈치가 보여서 그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질란스야말로 법치라는 국가의 권위를 무시하는 빌런 집단이지 않은가?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처럼 필요할 때는 필요한 것이 제자리에 없기 마련이었다.

간절한 기도에도 텔레파시를 영접하지 못한 경완은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누가 있나 머리를 굴렸다.

행복원의 원장님? 에이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그럼 미연이? 인기스타 앞날에 초칠일이 있나? 이철 형? 그 양반 경찰 겸 히어론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경완은 고민하다가 결국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강우빈이었다.

왜 강우빈인가?

왜냐면 그가 바로 비질란스의 일원인 샌드맨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본인은 경완이 그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경완이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정 뭣 하면 협박을 해서라도 협조를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양아치 같다고? 어차피 서로 범죄자나 마찬가지인데 체면 차릴 틈이 어디 있나?

경완은 안면몰수하고 강우빈에게 연락을 취했다. 마침 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공중전화 부스 찾는 것도 일이었다. 그는 희귀한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다니다가 요즘 같은 첨단 기술 문명 시대에 기술에서 소외된 사람은 어떻게 사나 싶었다.

그러다 마침내 시내에서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내는 쾌거를 이루고는 서둘러 다이얼을 눌렀다.

뚜루루룩!

[상대방 전화번호와 우물 정(#)자를 눌러주세요.]

삑삑삑삑!

[잠시 연결되는 동안 자신을 알려주세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강우빈 씨. 저 이경완입니다.”

[상대방의 통화 의사를 묻고 있습니다.]

[경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다행히 강우빈은 경완의 전화를 끊지 않고 통화를 받아주었다. 무려 수신자 부담 통화인데도 말이다.

경완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어떻게 되긴요? 거하게 통수를 맞았다가 빡쳐서 확 저질러 버렸죠.”

감사한 마음치고는 참 성의가 없는 대답이었다. 그 엄청난 사건을 단 한 문장으로 축약하다니.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음 말이 급했던 것이다.

“잠시 숨어 지낼 곳이 필요한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그럼 어떻게, 제가 데리러 갈까요?]

다행이었다. 네 정체를 알고 있다며 협박을 할 필요가 없어서 말이다.

시답잖은 일로 협박했다가 혹시나 저 사람이 원한을 품지 않을까 마음 한구석에 의심을 품고 있는 것도 찜찜하고 피곤한 일이었다.

“아니요. 위치만 알려주시면 제가 갈게요.”

강우빈은 순순히 주소를 알려주었다. 보니까 어느 지방의 산에 있는 펜션? 별장 같은 곳이었다.

경완은 중국 대륙을 질주했던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다음 날 낮에 그 장소에 도착했다.

흙과 벽돌로 지어진, 그리 크지 않은 별장은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졌는데 한국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경완은 혹시나 함정이지 않을까 초감각으로 주변을 탐색해 보았지만 사람은 한 명, 강우빈뿐이었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저 왔어요.”

“어서 와요. 혹시 추적이 붙진 않았죠?”

“물론이죠.”

강우빈은 경완을 안에 들이고는 문밖을 살피더니 도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경완을 소파에 앉히고는 물었다.

“도대체 중국에서 무슨 일을 당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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