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경완은 팔을 쓰다듬어 돋아난 소름을 가라앉혔다. 이 아줌마가 자신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니 마치 스토커가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의 말은 타당했고 경완으로서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내가 싼 똥을 남이 치워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인지하고 있을 뿐.
쓰레기 같다고? 인간은 편의를 추구하는 동물이었다. 내가 싼 똥을 남이 치워주는 것만큼 편한 것이 어디 있나?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남에게 치우라고 싸지르기만 하는 새끼를 받아주는 공동체는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싼 똥을 자기가 수습하는 게 미덕이고 당연한 일이 된 것이다. 뭐, 힘과 권력이 있으면 약한 사람에게 떠넘길 순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경완은 스스로 그런 새끼들과 비슷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던가?
“하아. 알았어요. 참여하죠. 그러면…….”
“헤드셋은 이틀 내로 올 거예요.”
“감사합니다.”
경완은 마리아의 배려가 전혀 감사하진 않지만 돈 드는 일도 아니니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자기 속내를 너무 잘 읽는다고 말이다. 솔직히 찜찜하지만 이렇게까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몇 없었다.
그래서 더 찜찜한 면도 있었다. 자신과 대화가 잘 통한다? 저 여자 제정신인가?
아무튼 경완은 거래의 대가로 헤드셋을 얻었고 시끄러운 시위 소리에서 벗어나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쯤 후 마리아는 초능력 신기술을 발표했다.
[이런 자리에 설 수 있어서 영광스럽군요. 오늘 발표할 기술은 초능력 공학의 첫 번째 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능력이 공학적으로 응용되어 만인의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첫 사례일 테니까요.]
그녀가 발표한 초능력 신기술의 명칭은 ‘스마트 포스필드’였다.
특정 물질을 염동력장을 이용해 걸러내는 기술로 각종 산업에 응용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방사성 재해의 수습에도 크게 기여할 거라고 발표했다.
다만 현재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서 능력 있고 잘 훈련 받은 초능력자만이 기대만큼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녀의 발표에서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에 이경완이라는 매우 재능 있는 초능력자가 기여에 했다는 사실은 쏙 빠져 있었다.
한 달 만에 실용화가 가능할 정도의 데이터를 얻은 것은 바로 그의 공로 덕분이었지만 마리아는 곧바로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왜? 새삼 명성이 욕심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경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뜸을 들였을 뿐이다.
바로 그 사실을 밝혀봤자 기술에 대한 주목도를 더 이상 높이지 못하고 여론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좋은 소재만 허비할 뿐이었다.
그런데 굳이 여론의 이목을 모으겠답시고 지금 밝힐 필요가 있나? 이것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이경완이라는 이름을 꺼내 쓰지 않더라도 반응은 충분히 좋았다. 벌써부터 발표 현장에 있던 일본인들이 흥분해서 그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 후쿠시마에도 사용이 가능하겠느냐, 방사능 오염수 처리에도 응용이 가능하겠느냐며 물어대고 있었으니까.
겉치레와 속치레가 중요한 일본인의 화법에 따르자면 그건 사실상 ‘Help me!’라는 의미와 같았지만 마리아는 즉답하지 않았다.
그저 발표를 마치며 앞으로 초능력 공학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마무리 멘트를 날릴 뿐.
하지만 정말 거기서 끝냈다면 비난 여론이 가라앉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경완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연구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를 붙잡는 기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세요. 편서풍을 타고 날아올 방사능도 이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이라면 걱정 없답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커버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이죠.”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우리나라는 그것이 가능한 초능력자를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그 사람의 이름이 뭡니까? 박사님? 박사님! 말씀해 주십시오!”
그녀는 더 이상 답변하지 않고 차량에 올라탔다.
그녀는 언론을 안달 나게 만들 줄 알았다. 자연스럽게 경완의 존재를 부각할 똑똑한 발언이었다.
* * *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이 가져올 혁신!]
[세계는 지금 초능력 공학 혁명 중!]
[스마트 포스필드로 가능한 것들!]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의 발표와 시연은 그야말로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허공에 뿌려진 광석 분말이 철 원소의 함유량에 따라 그라데이션을 그리는 모습은 모든 정제, 정련 기업이 꿈꾸는 광경이었다.
이제 잘게 분쇄한 원광에서 금속원소의 함유량을 높이기 위해 비눗거품 따위를 활용하는 과정이 필요 없어졌다.
그저 저 스마트 포스필드에 한 번 거르면 그걸로 충분.
하지만 그건 관련 기업의 관심사였고, 국민들은 다른 쪽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요즘엔 이슈가 되는 것이 옆나라에서 날아오는 방사능 물질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방사능을 막을, 그것도 나라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기술이 갖추어졌다니 당연히 사용해야지.
국민들의 이런 요구가 정치권에 전달되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정부 관계자들은 당황했다.
왜냐면 그 기술이 가능한지, 그리고 어떻게 가능한지 기술의 개발자인 김마리아 연구소장에 문의해 봤더니 이런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경완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경완이 누군가?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에게 상해를 입힌 희대의 상해범이 아닌가? 그리고 이번 중국 방사능 황사의 원흉이고.
그런데 그가 있다면 가능하다고?
솔직히 못 들은 셈 치고 싶었다. 사실을 밝혔을 때 일어날 논란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지금 이렇게 국민적 우려의 원인인 방사능 황사의 원흉이 해결책이란다. 그런데 그놈이 있으면 방사능 황사를 막을 수 있단다. 이게 무슨 병 주고 약 주고인가?
그래서 모른 척 어물쩍 넘어가고 싶었지만 한국사회는 정치인들이 정치하기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찍어준다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이익에 민감했다.
결국 시민단체와 언론의 집요함에 이경완의 이름 석 자가 스마트 포스필드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유출되고 말았다.
대번에 여론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어떤 방향성이 있기보단 혼란함이 더 컸다.
이경완을 끌고 와서 무료봉사를 시키자는 의견, 그놈이 무료봉사를 하겠냐고 현실을 직시하라며 뭔가 대가를 챙겨줘야 한다는 의견, 그럼 돈을 챙겨주자는 의견, 죄수에게 무슨 돈이 필요하냐 사면이 아니면 효과 없다는 의견, 그딴 새끼에게 사면을 줄 순 없으니 다른 초능력자를 찾거나 아니면 초능력자 여럿을 동원해 보자는 의견, 그게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하거나 초능력 공학적으로 합당한지 우선 확인해 보자는 의견 등 아무튼 혼란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경완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하긴 아무리 똥을 싸지른 새끼라지만 그 똥을 치울 능력이 있는 놈을 마냥 욕하고 비난하면 똥은 언제 치운단 말인가?
김마리아는 그런 식으로 확실히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되자 경완을 사이에 둔 미중 양국 간의 갈등이 한층 고조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미국이 경완을 중국에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정한 것이었다.
그전에 중국이 경완의 신변 인도를 요구할 때에는 답변을 주저하면서 시간 끌기에 급급한(사실은 지연전술) 모습을 보였지만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이 발표된 이후엔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명확한 증거 없이 중국에 보낼 수 없다고 완강한 태도를 취했다.
그런 갑작스러운 미국의 변화에는 중국도 당황했다. 그리고 눈치를 챘다. 경완의 몸값이 한층 더 올라갔다는 것을.
왜 갑자기 올라갔을까?
최근에 생긴 특이동향은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뿐이었다. 공산당 상무위원들까지 주목하던 특이성, 위버멘쉬가 탐을 내던 재능, 미국의 주목, 그리고 한국의 대한세립 연구소.
다양한 요소들을 조립해 보니 드디어 한국이 기술적 진보에 이경완이라는 초능력자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마 김마리아라는 연구자와 관련이 있으리라.
아무튼, 경완의 가치가 한층 상승하자 그에 대한 신병요구도 한층 거세졌다.
중국은 갖가지 증거를 들이밀었지만 미국은 변신 위장 능력자도 존재하는 와중에 어떻게 중국을 믿느냐며 반박했다. 짝퉁의 나라 중국 아닌가? 짝퉁 이경완을 만들어 조작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않은가?
속 터진 중국은 한국에게 총구를 돌렸지만 한국의 태도 역시 전과 조금 달라졌다. 역시 경완의 신병을 중국에 보내기엔 그를 통해 얻을 이익이 아쉬워진 모양이었다.
중국은 속이 터졌다.
「이 자라 새끼들아! 그 새끼가 테러한 원전 확 방치해 버린다!」
한국과 한국인들이 받아들인 말은 이러했지만 공식적인 내용은 테러범 이경완이 저지른 원전 테러는 그를 보호하는 한국이 수습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한국 정부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싶어도 그러한 주장만큼은 외면할 수 없었다. 진짜 중국과 단교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중국 시장의 달달한 젖꼭지를 빨고 있는 한국기업이 도대체 얼마나 많단 말인가?
한국 정부는 계산기를 두들겼다. 미국과 척을 치고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단기적 큰 손실에 장기적 폭망이었다.
중국이 뜨는 해라고? 일대일로를 통해 거대한 차이나 경제블록을 만든다는 구상은 야심 찼지만 그러한 경제블록에 문화와 인종이 다른 나라를 참여시키기엔 중국인은, 그리고 중국 공산당은 속이 너무 좁았다.
자기 나라 국민들까지 탱크로 밀어버리는 나라인데 다른 나라 국민감정을 다스리는 소프트파워 따위가 있을 리가 있겠는가? 기실 일대일로란 중국 중심의 ‘신세기 제국주의형 경제 식민지’라는 구상인 것이다.
아무튼 이경완을 중국에 보낼 순 없다는 방향으로 중론이 모이자 다음은 어떻게 단기적인 빅 손해인 중국의 개꼬장을 버텨낼지 방안을 구상했다.
아무래도 그럴듯한 핑계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리고 머리 좋은 누군가는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을 만들었고 전격적인 승인을 받아 진행되었다.
“……중국에 가기 싫으면 스마트 포스필드로 방사능 황사를 막아내라고요?”
경완은 가느다란 눈초리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나온 3급 행정관이라는 사람을 주시했다.
그는 경완의 말에 오해 말라는 듯이 급히 손사래를 쳤다.
“혀, 협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와대에선 이미 당신을 중국에 보내지 않겠다고 내부적으로 결정을 내렸어요. 하지만 그러한 결정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악영향을 주니까…….”
“악영향을 주니까?”
“명분이 필요합니다.”
“그 명분이라는 게 제가 방사능 황사를 막아내는 거다?”
경완의 말에 공무원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자신에겐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뭔가 눈앞의 3급 행정관이 다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흐음…….”
경완이 흔쾌히 대답하지 않고 고민을 하자 3급 행정관은 답답해졌다. 아니! 뭘 고민하고 자빠졌어?! 이렇게 국가가 나서서 비호해주겠다는데 그 조그만 역할도 하기 싫다는 건가?
3급 행정관이 초조해져서 어떻게 더 혓바닥을 놀릴지 고민할 때 경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관의 표정이 환해졌다.
“수락하신 겁니까?”
“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면……?”
“디테일한 조건이라 좀 까다로울 수 있으니 잘 들어보세요.”
경완의 입에서 나온 조건은 근무조건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