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31화 (131/367)

133-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오랜만에 미국 갑시다.”

김준이 오랜만에 접견을 와서 하는 소리였다.

“오랜만에 와놓고서는 대뜸 꺼내는 말이 그거예요?”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많이 쌓여있어요.”

“과로시키겠다는 말이에요?”

‘그럼 안 가요’라는 의미가 담긴 물음에 김준은 입맛을 다시며 정정했다.

“사실 초능력 수사관의 증강으로 경완 씨에 대한 필요성이 많이 낮아지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만큼 미결로 빠질 것 같은 사건도 생겼죠.”

히어로다 뭐다 말이 많았지만 히어로가 전지(全知)하진 않았다. 히어로에게 요구되는 것은 위험한 초능력 범죄자를 잡아들일 수 있는 능력과 스타성, 팬서비스였다.

그러니 히어로가 커버할 수 없는 부분, 즉, 엔터테이먼트적인 요소가 없어서 돈이 안 되는 부분은 그대로 기존 수사기관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사기관은 요즘 트랜드인 초능력 시대에 걸맞은 수사관을 선발하게 되었는데, 특히 감각이 예민한 에스퍼들을 수사관으로 삼아 사건현장에 투입했다.

그러자 미세한 증거들까지 찾아낼 수 있었고 이 증거를 과학적으로 보강하여 수사속도도 빨라지고 미결 사건도 줄이는 쾌거를 이루었단다.

하지만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는 법. 초능력으로 수혜를 입은 만큼 초능력이 얽혀 난항에 빠져든 사건도 많으니, 결국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드디어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조국으로 귀국하는 건가요?”

경완의 농담에 김준은 걱정 어린 당부를 섞었다.

“제발 사고 치지 말아주세요. 경완 씨는 지금 하이양 원전 테러로 인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 상황이니까요.”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개수작만 부리지 않는다면 얌전히 협조할 거라는 거 다 알잖아요?”

“알아도 이해관계에 따라서 수작을 부리는 사람은 있을 수 있죠.”

뭔가를 알고 있다는 뉘앙스에 경완은 대놓고 물었다.

“어느 간 큰 새끼예요?”

“하아~ 그런 태도라서 알려드릴 수 없는 겁니다.”

“무방비로 뒤통수 맞으면 기분 나쁘잖아요?”

“그냥 경완 씨를 불러들이는 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경완 씨에게 손을 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에요. 물론 기분 나쁘라고 시비를 거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제가 운을 띄운 건 참아달라고 부탁하려고 한 거지 사고 치라고 말한 거 아닙니다.”

김준의 말에 경완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서를 달았다.

“그래도 헛소리하면 한 대 쳐도 되죠?”

“……제발 눈치껏 적당히 해주세요.”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더 엿 먹이고 싶어 하는 경완의 심술보를 잘 알고 있는 김준이 내놓은 타협안에 그는 미소와 함께 엄지를 척! 하고 내밀었다.

“걱정 마세요. 충분히 수습할 수 있을 정도만 할 테니까요.”

“…….”

퍽이나 고맙다, 이 머더뻐꺼야.

김준이 목구멍으로 삼킨 말이었다.

* * *

경완이 미국으로 와서 살펴야 했던 일은 어떤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심문하는 일이었다.

[당신이 죽였어요?]

[그래! 내가 죽였어!]

경완의 말에 건장한 흑인 남성이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침을 튀기며 자백했다.

하지만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본인이 그랬다고 자백했는데 왜 자신의 심문이 필요한가? 그 이유는 현장에 있던 거의 모든 증거가 눈앞의 흑인 남성이 용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흉기인 권총에서 그의 지문이 나왔다고 하지만 그의 몸 어디에서도 초연반응은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 남아 있던 다른 증거로는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FBI에선 자신이 용의자라고 주장하는 이를 신문(訊問)해 그 이유를 파헤치면 진범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왜, 누구를, 어째서 감싸는가?

그런 신문(訊問)에 있어선 치트키라고 할 수 있는 경완이 있었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경완의 표정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좌우로 갸웃거리는 중이었다.

[뭐로 죽였어요?]

[총으로!]

[총으로 어딜 쏴서 죽였어요?]

[머리! 머리를 쐈어!]

경완은 고개를 반대로 갸웃했다. 피해자는 가슴에 총알을 맞았다. 머리는 멀쩡했다.

[총구를 머리에 대고 쐈어요? 아니면 그냥 좀 떨어진 곳에서 조준하고 쐈어요?]

[머리! 머리를 조준했어!]

이번에도 이상했다. 총구를 머리에 대고 쏘면 총구 화염으로 인해 화상을 입는데 피해자의 총상에선 화상 자국 따위는 1도 없었다.

[왜 쐈는데요?]

[배신! 배신했어!]

[어떻게 배신했는데요?]

그 말에 심문을 받던 용의자를 눈알을 굴리며 혼란스러워했다.

[뭐지? 뭐였더라?]

그러더니 생각이 안 나는지 이내 화를 냈다.

[배신했어! 배신자라고!]

경완은 심문을 포기하고는 매직미러 너머에 있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검지를 머리에 대로 빙글빙글 돌리는 건 덤이었다.

심문실에서 나온 경완에게 김준이 물었다.

[뭔가 알아낸 거 있습니까?]

[네.]

[뭡니까?]

[저 사람 완전히 미쳤다는 거요.]

[네?]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니 미친 거죠. 자신이 피해자를 죽일 때 머리를 쏴서 죽였다고 굳게 믿고 있더라고요.]

[과도한 흥분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거 아닌가요?]

[자신이 그랬다는 것에 한 점 의심도 없는 게 문제예요. 자신이 분명히 한 일이라고 해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사소한 디테일을 캐물으면 일말의 의심이라도 품거든요. 그런데 저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심지어 자신이 진술한 내용에서 허점이 다 드러나도 그렇죠. 일종의 광신도 같은 상태랄까?]

“Fanatics?”

김준의 물음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더해요. 아무리 광신도라도 그 일방적인 믿음이 항상 지속되는 건 아니거든요. 환경이 바뀌면 그들의 믿음은 시험에 들죠.]

하나님만 믿으면 판데믹도 피해간다는 목사의 설교를 믿고 나대는 맛 간 광신도라도 병원 청구서를 받게 되거나 국가의 구상권 청구 등의 금융치료를 받게 되면 갑작스러운 회의감과 혼란이 밀려오게 마련이었다.

중세시대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종교적 환경에 있다가 갑자기 최첨단 자본주의의 맛을 보게 되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저런 사람은 제가 심문을 해봤자 소용없어요. 거짓을 진실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흐음.”

김준은 침음성을 흘렸다. 예전에 경완의 독심술 능력에 관한 능력을 분석한 보고서 한구석에 적혀 있던 내용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의 능력은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발생하는 무의식적인 신체 반응을 읽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거짓말쟁이라면 진실의 스무고개를 회피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다. 진실의 스무고개는 질문을 여럿 던질 수 있기에 질문이 거듭될 때마다 진실에 수렴할 확률은 충분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한계가 또 드러난 것이다. 미쳐 버린 사람에겐 불가능하다니?

[그럼 저 사람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에요.]

경완의 말에 김준은 담당수사관과 대화를 나누었다. 담당수사관은 김준과 이야기를 하면서 경완을 힐끔거리더니 그을 보고 물었다.

[……혹시 초능력이 사용된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요?]

[강력한 에스퍼라고 알고 있습니다. 에스퍼는 능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초능력자는 물론 초능력의 흔적도 찾아낼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그렇게 중요한 사건인가요?]

[이 사실은 기밀이지만…… 살해된 피해자는 초능력자를 추적하는 기술을 연구하시던 분입니다.]

[오우. 빌런들이 엄청나게 싫어하는 연구를 하셨네요.]

대번에 자신들이 진범이 빌런이라고 의심하는 이유를 짚는 통찰력에 수사관은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

[……네. 그래서 저희도 초능력자에 의한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보기는 하죠.]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으면 다음부터 미국 출장을 무슨 낯으로 오고, 어떤 염치로 중간에 군것질하는 재미를 누리나?

경완은 공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염치는 있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용의자라고 주장하는 남자의 두개골을 관조했다.

솔직히 적잖이 어려웠다. 일반인도 어느 정도 S입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S입자를 뚫고 뇌를 스캔하려면 S입자를 강하게 투사해야 했다.

하지만 S입자를 강하게 많이 투사할수록 섬세한 스캔이 힘들어졌다. 소 잡는 칼로 작은 용종(茸腫)을 제거하기 어려운 것처럼 섬세한 스캔을 위해선 섬세하게 다룰 수 있을 양만큼 S입자를 투사해야 했다.

그러나 양이 너무 적어도 사람이 가진 S입자를 뚫기 힘들어진다. 이건 뭐 무슨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도 아니고…….

경완은 S입자의 한계에 구시렁거리며 작업을 진행했다.

다행히 흑인 남성이 가진 S입자의 양은 뇌를 섬세하게 스캔하기에 적당한 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보다 좀 더 많았다면 현대과학장비의 힘을 빌려야 했을 수도 있었다.

흑인 남성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가 3초쯤 뒤에 뗀 경완이 말했다.

[흐음. 기억중추에 데미지가 있기는 하네요.]

[초능력에 의한 겁니까?]

[글쎄요……. 확실히 인위적이면서도 초능력이 아닌 현대 기술로는 불가능한 것 같기는 하니 초능력이 가장 유력하기는 하겠죠.]

[회복은 가능하겠습니까?]

혹시나 하는 기대 어린 질문에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그 회복이 이런 일을 당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걸 의미하는 거라면 저도 말하기 어렵네요.]

어떤 변화는 가역적이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불가역적이었다. 우주의 법칙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경완의 확언에 수사관은 고민이 깊은 표정을 지었고, 김준은 경완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김준은 경완에게 총기를 지급했다.

“……?”

“경호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서요.”

김준이 사정을 설명했다.

“누가 절 노린대요?”

“당신의 손이라도 필요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대통령이라도 온대요?”

“그건 아니고 대통령의 목숨도 한 번쯤 구할 수 있는 사람이죠.”

경완은 머리를 굴렸다. 미국을 뒤에서 주무르는 흑막이라도 오나?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과 조건에선 그보다 더 높은 가능성을 가진 시나리오가 있었다.

“대단한 치유능력자라도 오나 보죠?”

“맞습니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건 저도 모릅니다. 다만 높으신 분들이 애지중지한다는 것밖에.”

“노리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죠?”

“치유능력자니까요.”

치유능력. 그것 하나만으로 이렇게 경완에게까지 총을 쥐여 준 이유가 납득이 된다. 그가 중국에서 보여준 실력의 반만 보여줘도 마음이 든든할 테니까.

“그럼 보너스는요?”

“어……. 데이비스 팀장이 화끈한 보상을 기대해도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 포상을 언급하기 싫어하는 김준의 표정에서 경완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그건가?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손 보태기로 하죠.”

“부탁드립니다.”

감사를 표하는 김준의 표정은 안심과 찝찝함 사이를 오갔다.

아무튼 경호에 한 손 보태기로 했으니 경호대상의 얼굴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경완이 기다리는 와중에 리무진이 척하니 갓길에 멈추더니 보석으로 장식된 새하얀 하이힐이 인도(人道) 위에 내려섰다.

그 하이힐을 신은 가느다란 발목 위로 검은 스타킹에 쌓인 각선미, 블루 계열의 비싸 보이는 드레스와 풍성한 펄 목도리는 마치 전신으로 이렇게 주장하는 듯했다.

‘나 잘나가는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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