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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32화 (132/367)

134-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잘 꾸미기는 했지만 경완의 예리한 관찰력은 거기서 풍기는 졸부의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필시 최근에 부자가 된 집안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녀는 수트를 걸친 몸 좋은 보디가드를 대동한 채 수사관의 안내를 따라 또각또각 걸었다.

그녀는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경완은 그녀가 가까워지면서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 같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문득 머리에 떠오른 이름을 꺼냈다.

“한영미 씨?”

자신의 이름을 들었는지 자신을 두고 그렇게 불렀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착각하신 것 같은데 제 이름은 스텔라예요.”

하지만 그것은 경완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고 시선을 김준에게 향했다.

무표정하지만 이게 무슨 일이냐는 의미가 분명히 담긴 그의 시선에 김준의 시선 역시 여자에게 향했다가 눈알을 굴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김준은 FBI요원이지만 이경완 전담 요원이기도 했다. 즉, 그와 관련된 사항을 많이 알고 있었으며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파악하는 것도 주요업무에 들어가다 보니 한영미라는 이름과 얼굴을 모를 수 없었다.

과거 대한 세립 연구소 침입 및 납치 사건에서 납치되고 사라진 사람, 그리고 김마리아 소장의 부탁을 받아 경완이 천리안 장비로 탐색까지 했지만 결국 되찾지 못한 피랍인이 바로 한영미였다.

김준의 눈에도 스스로 스텔라라고 밝힌 여자는 한영미로 보였다. 쌍둥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예이예이 한영미 씨.”

하지만 경완은 비꼬는 조로 대꾸했다. 그는 이미 그녀가 한영미라고 확신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체취가 그때 천리안으로 추적한다고 썼던 체취와 동일했다. 그때 동해까지 똥개 훈련한 걸 생각하면 얼굴에 윤기가 좌르르 흐를 정도로 잘살고 있는 장본인에게 비꼬는 말 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김준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경완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한국의 뒤통수를 치고 치료능력자를 빼낸 것이 자신의 조국일 줄은 그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경완이 재차 자신을 한영미라고 부르자 스텔라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여자는 더 이상 부정하지 않고 팔짱을 끼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서요? 절 잡아가겠다는 거예요?”

“아니요. 설마 동맹국의 뒤통수를 친 게 놀라워서요.”

그 말에 한영미, 아니 스텔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라고 하지 마세요. 한국은 X같은 곳이고 날 그 시궁창에서 꺼내 준 게 미국이니까.”

“한국에서 인체실험이라도 했어요?”

대뜸 수위 높은 질문을 던지니까 스텔라는 뭐 이상한 새끼를 보는 눈으로 경완을 보면서 대답했다.

“그건 아니지만 그 미친년이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았어요. 아주 그냥 형기 끝날 때까지 뽑아먹을 생각으로 눈이 번들거리는 게 어찌나 소름 끼치던지…….”

미친년이라. 경완은 마리아 소장을 떠올리며 공감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라면 그럴 만하지.

하지만 굳이 한영미의 편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누가 그의 주머니에 한 푼이라도 더 넣어주었는가, 그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사이비 교단의 성녀라서 그런가? 입이 아주 더러우시네.”

“허! 내가 그 X같은 나라를 떠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거였어요. 내가 그 씨발 사이비 교단에 붙잡혀서 어릴 때부터 무슨 짓을 겪었는지 알기나 해요? 하지만 그 빌어먹을 나라는 사이비와 사기꾼에게 아주 관대하시죠.”

그녀가 삼촌에 의해 강제로 사이비 교단의 일원이 된 후에 교단을 무너뜨리기 위해 몰래 투서를 넣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하지만 경찰은 종교의 자유 지랄하며 슬쩍 보고 가기만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울 단물이라는 이름의 회개약이라는 걸 팔아먹는 걸 뻔히 보고도 말이다.

뭐? 회개약을 먹고 천국 간다고 믿는 것도 신앙이라고? 이게 사람이 달에 가고 화성에 로봇을 보내는 지금 시대에 말이나 되나?

그밖에 온갖 부조리한 일들이 일어났지만 한영미는 그걸 입에 담기도 싫을 정도였다.

경완이 딴죽을 걸었다.

“미국도 사이비는 만만찮을 텐데요?”

그 말도 맞았다. 미국의 문맹률과 천사의 존재를 믿는 성인의 통계를 확인해 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하지만 한영미, 아니 스텔라는 코웃음을 쳤을 뿐이다.

“나랑 얽히지만 않으면 무슨 상관?”

선글라스를 벗고 눈썹을 꿈틀거리며 비꼬는 표정이 사람 킹받게 하는데 무척이나 재능 있어 보였다. 사이비 교단에서 그 품위를 지키던 때와 완전 딴판이었으니 지금이 본모습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그게 불가능했죠. 교주라는 새끼가 명색이 삼촌이라는 놈이었으니까. 기껏 가출했더니 빌어먹을 짭새놈들이 양육권이 있답시고 함부로 거주지를 알려줘서 도로 잡혀가기나 했죠.”

그녀가 속에 든 울분을 토하듯 더 말하려고 하자 보디가드가 끼어들었다. 시간이 없단다.

이에 그녀는 경완을 한 번 째려보고는 흑인 남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치유는 금방 끝났다. 경완은 복잡한 S입자 패턴이 그녀의 손에서 흑인 남성에게 전달되고 흑인 남성이 가진 S입자가 잠시 활성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흑인 남성에게 임시로 치유 능력을 부여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흑인 남자는 으어어하고 이상한 신음소리를 흘리더니 이내 맑아진 눈빛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안 죽였어. 교수님! 흐어엉!]

그는 살해당한 교수의 조교수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상당한 관계였다.

이내 수사관이 그를 데리고 가서 새롭게 진술서를 작성하는 동안 스텔라는 경완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봐요.”

“뭔데요?”

그의 반문에 그녀가 뾰족하게 말했다.

“혹시나 나에 관한 거 함부로 떠들지 말아요.”

“왜요?”

“허! 그럼 그걸 함부로 떠들 거예요? 날 협박이라도 하시게?”

경완은 눈을 껌벅이며 이년이 왜 이러나 싶었다. 피해망상증이라도 있나? 이야, 사이비 후유증 심각하네.

그녀의 물음에 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협박을 잘하기는 하지만 그런 거창한 짓을 굳이 당신에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녀를 보는 그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한영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썩소를 지었다.

“헛수고하지 말아요. 이미 윗선에서 다 이야기 끝났으니까.”

“한국정부랑 미국정부랑요?”

“그래요. 나도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데 내가 미국에 있는 걸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 것 같아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미 짝짜꿍이 된 것이 아니라면 저 여자가 이렇게 모두의 이목을 끄는 졸부스타일로 나돌아 댕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그녀의 킹 받는 표정에 한마디 해주고 싶어졌다.

“짧은 시간에 애국자 다 되셨네.”

“내 몸에 걸친 거 봐요. 내 연봉이 얼마고 보너스가 얼만 줄 알아요? 한국에선 꿈도 못 꿀 일이죠.”

그의 비꼬는 어조에 그녀는 보란 듯이 가슴을 내밀며 반박했다. 흐음…… 자연산인가?

경완은 시선을 관리하며 공감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충성을 바친다지 않는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봉만큼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수단은 없었다.

한영미는 여자라고? PC와 페미니즘이 번성하는 지금 시대야말로 남녀평등의 시대 아니겠는가?

경완은 슬슬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왜 안 가요?”

“허! 내가 가라면 가는 사람인 줄 알아요?”

“음. 당신 영어 잘 못하죠?”

“그, 그게 왜요?”

거짓말을 하면 금방 들킬 것이 분명한 사항이라 당황하면서도 사실대로 대답하는 그녀였다.

경완은 그녀에게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제대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으니까 이렇게 대화할 기회가 생기니 놓치기 싫겠죠.”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녀가 빼액 언성을 높였지만 시뻘게진 얼굴을 가릴 생각은 못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딱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그저 딱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찰 뿐이었다.

“쯧쯧쯧.”

“이익!”

그녀는 더 말해봤자 자기 꼴만 우스운 꼴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씩씩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뭐가 아쉬운지 자리를 뜨진 않았다.

그때 전화를 마치고 온 김준이 끼어들었다.

“너무 그리 놀리진 마세요. 오늘 하루 같이 있게 될 테니까요.”

“응? 왜요?”

“누군가 스텔라 씨를 노리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마침 여기에 최고의 에스퍼가 있으니 안심이네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경완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난 처음 듣는데요?“

“어차피 다음 일정으로 가는 동선이 겹칩니다. 원래 경호 계획에 우리가 추가되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만큼만 하면 됩니다.”

“제 롸끈한 포상은요?”

“……그건 일정이 끝나면 데이비드 팀장님이 알아서 챙겨주실 겁니다.”

경완의 질문에 김준은 스텔라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그런’ 포상에 민감해하는 여성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는 롸끈한 포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롸끈한? 뭔 그런 말이 있데?”

“몰라도 돼요.”

경완이 일축하지 이익! 또 한 마디를 내뱉으려는 한영미에게 김준이 끼어들어 이상해지는 분위기를 무마시켰다.

“그러지 말고 이동합시다. 피해자가 더 있으니까요.”

그 말에 경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럼 어차피 내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이 여자가 필요한 거지.”

“경완 씨의 능력으로 피해자의 상태가 이번과 비슷한지 확인이 필요하다는군요.”

“흐음. 조직적인 범죄라는 말이군요.”

“네. 이번 피해자는 국방부의 용역을 받아 초능력 무력화를 연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냄새가 난다. 거대한 음모의 냄새가.

하지만 경완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 * *

마인드 브레이커.

FBI에서 그런 이름을 붙인 얼굴 모를 용의자는 분명 빌런이 분명하다고 추측되고 있었다.

그것도 히어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음모를 꾸미는 악의 조직 소속이라고 말이다.

그런 추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이 마인드 브레이커라는 정신계 초능력자가 살해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초능력 범죄 대응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초능력자 탐지 시스템과 초능력자 구속 기술, 이 두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연구자들을 노리고 있는 범죄자를 상대로 당국은 서둘러 범인에 대해 추적수사를 진행하고 다음 목표로 예상되는 연구자들을 잠시 피신시켰다.

여기에서 한영미, 아니 스텔라의 역할은 정신계 초능력으로 공격받아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것이었고, 경완이 할 일은 그전에 그들의 뇌를 스캔해 뇌가 받은 데미지의 유형이 다른 피해자들과 어느 만큼의 유사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스텔라를 경호하라고 총을 받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덤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허으으엉!”

마인드 브레이커가 가한 정신이상에서 회복된 이들은 예외 없이 후유증으로 오열했다.

경완은 우는 피해자를 힐끔 보고는 김준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치유능력자가 쟤밖에 없어요? 어째 쟤 혼자 다 고치는 것 같은데?”

하루만 보고 말 줄 알았는데 벌써 이틀째였다. 거기다 움직이는 동선도 길었고 경호를 위해 행적도 복잡하게 했기 때문에 그 행선을 따라다니느라 고생하는 경완은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있었다.

김준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스텔라 씨는 좀 다른 모양입니다.”

“능력의 결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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