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33화 (133/367)

135-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네. 마인드 브레이커에게 당한 피해자들을 회복시키는 건 그녀의 능력이 가장 효과가 좋다더군요.”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스텔라가 사용하는 능력을 자세히 관찰했을 때 자신의 힘을 소모해 대상을 치료한다기보다는 대상자에게 일시적으로 자가회복력 버프를 걸어준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일반인에게 회복 초능력을 부여해 주는 느낌?

그게 차이의 원인인 모양이었다. 아직 다른 치유 능력자를 만난 적은 없지만 말이다.

“끝났어요.”

두 사람의 대화에 스텔라가 끼어들었다.

“그럼 가죠.”

다음이 오늘 일정의 마지막이었다.

세 사람은 육중한 방탄 승합차를 타고 이동했다. 스텔라는 옆에 보디가드 한 명을 대동하고 있었고 경완과 김준은 심심한 와중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범인은 누구고 목적은 무엇일까요?”

김준이 물었다. 심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상한 통찰력을 가진 경완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경완은 무상한 어조로 대답했다.

“원한이 아니라면 이득일 테니 이득 보는 놈이 범인이겠죠.”

“이득이라…… 이 사람들을 해쳐서 이득 볼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음지에서 음모를 꾸미는 악의 조직이나 자기 밥그릇이 줄어드는 걸 막고 싶은 사람들이겠죠.”

경완의 말에 담긴 암시에 김준의 표정은 굳어졌다.

“설마 히어로 컴퍼니가 관련되어 있진 않겠죠?”

공권력의 초능력 범죄 제압력이 올라가면 치안에 대한 히어로 컴퍼니의 지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심해지면 히어로 무용론이 대두될 수도 있었다. 마치 영웅의 시대가 끝나면 평범한 사람들의 시절이 오는 것 같이 말이다.

말 그대로 설마에 불과한 가설이었지만 김준은 경완이 중국에서 당한 일 때문에 뭐든 상상 이상의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히어로 컴퍼니보다는 그 뒤에 있는 쪽이 더 가능성 있죠.”

“뒤에 있다면…… 전미 초능력 협회 말인가요?”

“그렇죠. 히어로 컴퍼니는 명색이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설립한 곳인데 그렇게 뒤가 구린 짓을 시키면 누군가 양심선언을 할 위험성도 커지거든요. 그리고 원래 남몰래 뒤 구린 짓을 하려면 그만큼 조직이 방대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야 편하잖아요.”

“전미 초능력 협회는 매우 유명한 조직입니다만…….”

“설립 초기에는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 관심은 죄다 히어로 컴퍼니로 옮겨가지 않았어요?”

경완의 말대로 전미 초능력 협회에 대한 관심은 히어로 컴퍼니가 설립된 이후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전미 초능력 협회가 쪼그라들었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그들은 히어로 컴퍼니의 외주를 받아서 사람들의 초능력 잠재 유무를 검사하고, 또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초기 자격 심사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히어로로서는 불충분하지만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초능력자들을 확보, 여러 분야에 공급하고 있었다. 전미 초능력 협회는 초능력자란 유니크한 인재를 독점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지금의 지위를 구축했다. 아마 거기서 떨어지는 부수입들과 영향력은 보통이 아닐 것이다.

경완이 무심하게 첨언했다.

“원래 기술이 발달하면 사람은 소외되게 마련이죠.”

초능력자 감별 기술이 개발되면 초능력자를 감별하는 인력의 수요가 줄어든다. 초능력자 구속 장치가 개발되면 히어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산업혁명부터 시작하여 사무자동화, AI 등이 개발되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기술의 개발은 분명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킨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먹여 살리는 체제는 없었다.

초능력 인력 파견 회사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누리고 있는 전미 초능력 협회로서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협할 기술의 발전을 반기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순 없잖아요?”

그때 한영미가 끼어들었고,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전미 초능력 협회가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의미인가?

하지만 경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투자한 돈만큼은 뽑아먹어야죠. 그게 자본주의 아니겠습니까?”

“경완 씨는 협회를 강력하게 의심하는 겁니까?”

진지한 김준의 말에 경완은 어유~ 왜 이렇게 진지 빠세요라는 태도로 대답했다.

“증거도 없는데 제가 왜 그러겠어요? 그냥 그러면 재밌겠다 싶어서 상상해본 거죠.”

“전혀 재밌지 않습니다!”

김준의 언성이 높아졌다.

악의 조직, 배후에서 암약하는 거대 조직.

모두 실제로 존재하면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이다. 전혀 재밌지 않았다.

하지만 경완은 능글거리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왜 그리 진지해요? 유우머 감각 없는 남자는 인기 없다고요.”

“…….”

유머 감각? 유우머 감가악?

김준이 눈빛으로 욕을 하고 있을 때 경완이 한영미에게 동의를 요구했다.

“안 그래요, 쓰뗄라 상?”

“발음 똑바로 해요.”

그녀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그를 보며 대꾸하고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유머는 진지하니 마니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그럼요?”

“얼굴로 결정되는 거죠.”

천년 덕심도 식어버릴 아재 개그도 미남이 하면 포복절도한다. 혹시 그런 의미일까? 아니 그런 의미임이 확실했다.

“……와우.”

“…….”

경완은 감탄했고 김준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한영미는 김준을 보더니 새초롬한 태도로 말했다.

“당신이 왜 충격을 받아요?”

“……충격받으면 안 됩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는 김준의 옆구리를 경완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검지로 푹푹 찔렀다.

“아이고, 이 양반아. 댁 잘생겼다고 칭찬하는 거잖아.”

“그, 그런 겁니까?”

놀라서 두 눈이 커지는 김준에게 한영미는 차갑게 대꾸했다.

“아니요. 평소에 얼마나 거울을 안 보고 살았으면 그렇게나 자기 얼굴에 대한 객관화가 안 됐을까 의문스러워서요.”

그녀의 독설에 김준의 무표정한 얼굴이 도로 경완을 향했다.

왜 쓸데없는 소리로 괜한 오해를 하게 만들었냐고 따지는 시선에 경완은 배꼽을 잡고 소리 죽여 흐느끼듯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김준이 뚱한 태도로 경완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저 사람은요?”

저 인간에게도 한마디 해달라는 소망이 가득했다.

그의 기대가 무색하지 않게 한영미가 독설을 내뱉었다.

“얼굴로 웃기는 개그맨조차 절대로 못 됐을 인간.”

“풉! 들으셨죠?”

김준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경완을 보았고 그는 딱하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저 여자가 우리 둘을 동시에 멕였다는 것이 팩트이거늘. 쯧쯧. 둔하기는.

그렇게 잡담을 하는 사이에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시 근교에 있는 정신병원이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그리 좋은 곳은 아니었다. 누구의 탈출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듯이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는 높은 담벼락은 환자들의 멘탈 보호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산뜻하고 화사하게 꾸미는 요즘 정신병동의 트랜드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달까?

일행은 FBI수사관의 안내를 받아 내부로 들어갔다.

안은 환하게 꾸며놓아서인지 분위기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옛날 수용소같이 단순하고 수감에 편리한 구조는 여전했다. 내부 구조만 봐도 정신적 안정보다는 수용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기능미(?)가 넘쳤다.

[어서 오세요, 여러분.]

정신병원 원장이라는 닥터 콥슨이라는 사람이 일행을 반겼다. 약간 길쭉한 두상에 M자형의 머리카락 경계선과 안경이 그에게 딱 봐도 머리 좋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부여했다.

그가 직접 일행을 환자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며 한영미가 치료하게 될 환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글랜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을 겪고 있습니다.]

[망상증인가요?]

[일반적인 망상 장애와 다른 점은, 그가 겪은 환상이 매우 주기적이며 때로는 본인이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종 어느 것이 현실이고 환상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괴로워하지만 말이죠.]

그렇게 환자에 대해 설명한 그는 한영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성적인 관심이 아니라 순전히 의사로서의 호기심인 것 같았다.

[초능력으로 사람의 정신적인 문제를 고칠 수 있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 말은 초능력이 사람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하긴 이상한 일은 아니죠. 초능력의 근원이라는 S입자 자체가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의 정신이란 무엇일까요? 그간 신경과학이나 인지과학 등의 학문에 따르자면 인간의 정신은 복잡하게 얽힌 시냅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전기 스파크의 흐름에 불과하거든요. 그런데…….]

말이 길었다. 한영미는 어려운 전문용어가 나오자 제대로 못 알아듣고 어버버했고, 김준은 닥터 콥슨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서 살짝 떨어졌다. 경완만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닥터 콥슨이 말미에 경완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무슨 말을 했더라?

생각이 나진 않았지만 대충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전 어려운 말은 몰라요.]

참 성의 없는 답변이었지만 하도 이상한 환자를 접하는 정신병원의 원장이라서 그런지 닥터 콥슨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들어가실까요?]

그가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속복을 입은 환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라틴 계열에, 그리 잘생겼다 할 수 없는 남자는 정신병동에 있는 환자답지 않게 매우 침착하게, 또 한편으로는 꽤나 지친 기색을 풍겼다.

[맞습니다.]

일행을 인솔해 온 수사관이 환자의 얼굴과 서류를 살피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치료하죠.]

한영미가 어눌한 영어 발음으로 말하자 수사관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전에 먼저 확인부터 해야죠.]

이번 환자가 한영미의 치유대상이 된 건 그가 얽힌 사건이 마인드 브레이커가 일으킨 사건과 연관되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도 비슷했고.

[그럼 미스터 리?]

수사관의 부름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에게 다가가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뇌를 스캔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멀쩡한데?”

“멀쩡하다고요?”

김준이 놀라고 이어서 한영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을 인솔한 FBI수사관이 물었다.

[뭐라는 겁니까?]

[저 사람 멀쩡하다는데요?]

한영미의 대답에 수사관은 어이없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말도 안 됩니다. 정상이었다면 이 사람을 정신병원에 보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닥터 콥슨?]

[…….]

그런데 분위기가 요상하게도 닥터 콥슨은 수사관의 말에 대답 없이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닥터 콥슨?]

수사관이 다시 한 번 물었지만 닥터 콥슨은 듣지 못한 것인지 그저 그 오묘한 미소를 유지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보디가드가 한영미에게 붙고 경완과 김준이 총기를 꺼내 들었을 때, 닥터 콥슨과 환자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안타깝군. 수상하다는 걸 이렇게 들켜 버리다니…….]

기묘한 광경이었다. 둘이 어떻게 한 사람인 것처럼 말할 수가 있는 것이지?

경완이 다시 초감각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방금 전 뇌를 스캔할 때 느낄 수 없었던 S입자의 실이 환자의 머리와 닥터 콥슨의 머리와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 투명하고 존재감이 없어서 그저 뇌내 시냅스 구조를 스캔하기 위해 집중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다.

그는 즉시 그 실에 농도 짙은 S입자를 주입해 정확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능력을 무력화시키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대신 환자와 닥터 콥슨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아. S입자를 강제로 주입해서 상대의 초능력 발현을 방해하는 능력. 매우 성가시지.]

성가시다는 걸 보니 놈에게 소용이 없거나 이미 대처법을 아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경완을 보면서 동시에 말을 이었다.

[넌 매스컴이 띄워주니까 자신이 대단한 초능력자인 줄 아는 모양인데, 그런 방해 기술은 이미 트랜드가 지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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