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34화 (134/367)

136-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경완은 글랜이라는 이름의 환자, 아니 누군가의 꼭두각시를 보았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경완은 쓰잘데기 없는 말이나 늘어놓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소중해서 빌런 같은 놈에게 할애할 시간은 없었다. 영화나 게임, 소설 같은 문화생활에 할애할 시간도 없는데 빌런은 무슨.

그의 물음에 글랜과 닥터 콥슨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언터처블. 너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리고는 한영미를 보는 것이 아닌가? 참 기묘한 광경이었다.

[어이. bitch. 요즘 네가 하는 짓이 놀랍더군.]

[뭐래? mother fucker가?]

[앙칼지군.]

탕!

순간 울리는 총소리에 김준이 경완이 소리를 질렀다.

[뭐 하시는 겁니까?!]

다짜고짜 구속복을 입은 환자의 머리에 총을 쏘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당당했다.

[계속 말을 돌리면서 질질 시간을 끌려고 하잖아요? 정신에 무슨 짓을 하는 위험한 놈인데 기회를 주면 안 되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그리고 이 새끼 아직 안 죽었어요.]

[네?]

반문하는 김준의 목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놀랍군. 이것까지 간파한 건가?]

놀랍게도 죽은 줄 알았던 환자가 멀쩡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머리에 총을 맞은 자국도 없었다.

[우리 대가리에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도 파악했지.]

경완은 자신의 머리에 연결된 S입자의 끈을 건드렸다. 보이지 않게 은폐된 투명한 실이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통상적인 S입자 탐지로는 알아차리지 못한 능력. 분명 경완이 여태 보지 못한, 한 차원 높은 초능력 기술이었다.

그의 말에 자신들이 정신계 초능력에 걸려 있다는 암시를 읽어낸 김준이 불안해하며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말인가? 경완이 쏜 총에 맞은 것도? 과연 어디서부터가 환상이었고, 어디서부터가 진실이었단 말이지?

하지만 경완은 언제 능력에 걸렸는지보다는 자신의 초감각을 벗어나 능력을 발현한 방법이 더 궁금했다.

자신에게 환상을 보여줄 정도로 패스를 연결했는데도 멀쩡한 이유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궁리를 해봤더니 금방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담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다중으로 사람의 정신을 만지는 놈이다. 여러 사람의 기억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잘 대처하지 못하면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거기다 온갖 무의식이 활동하는 수면 상태와 지금처럼 멀쩡히 깨어있는 상태의 차이도 가만해야지.

그보다는 자신의 초감각을 벗어나는 S입자 운용 테크닉이 궁금했다.

[요즘 빌런은 이런 것도 배우냐? 어떻게 몰래 능력을 사용하지?]

[하도 에스퍼들이 설치니까 걸리지 않으려고 자연적으로 배워지더군.]

베이징에서 중국 에스퍼의 감각을 피해 돌아다니던 일이 떠오른 경완은 너무나 공감이 된 나머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네.]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하지 않나? S입자는 신의 입자야. 상상하는 대로 모든 게 이루어지지.]

[글쎄? 보아 하니까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물론 재능과 환경의 차이가, 방금 뭐한 거지?]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던 글랜은 경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경완은 한 귀로 흘리며 감탄을 늘어놓았다.

[이야~ 이거 대단하네. 이건 레볼루션 내지는 에볼루션이라 해야 할 정도인데?]

경완은 S입자를 촉수처럼 만들어 글랜의 뇌에서 뻗어 나온 또 다른 투명한 S입자의 선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벽을 뚫고 저 멀리 남쪽으로 향해 있는 투명한 라인은 먼저 발견한 라인보다 더욱 은밀했으며 마찬가지로 S입자를 주입해서 구조를 흩트리는 것으로는 파훼할 수 없었다.

입자 자체가 성질이 변해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으며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항상성을 유지하려 했다. 그것은 단순히 S입자 구조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 마치 또 하나의 육체와도 같다고 해야 할까? 초능력 테크닉의 혁명이자, 초능력자의 진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야, 너 그거 네 몸 아니지? 그것도 강탈해서 사용하고 있는 거지?]

[……너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놈이었군.]

[라틴계와 남쪽이라…… 치열하게 생존경쟁하다가 능력이 진화한 건가?]

경완은 예전에 김준으로부터 들은 남미의 치열한 군소 초능력 범죄집단의 경쟁을 떠올리며 나름 유추해 보았는데 완전히 핵심을 짚은 모양이었다.

놈이 경고했다.

[……거기까지.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아무튼 빨리 용건부터 꺼내. 이렇게 기력을 소모해 가면서 괜히 접촉한 건 아닐 테니까.]

그러자 글랜, 아니 이름 모를 정신계 초능력자는 한영미가 아니라 경완을 보며 말했다.

드디어 경완을 만만하지 않은 놈이라 인식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저 치유능력자가 필요하다.]

[왜? 그쪽에는 치유능력자가 없나 보지?]

[없진 않지만 저 여자만 한 능력자는 없지.]

[아하! 이게 함정이었구나? 저 여자의 정신을 제압해서 마음대로 움직이게 한 후에 빼돌리려고?]

[거기까지는 아니야.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전미 초능력 협회와 완전히 척을 질 순 없으니까.]

[그럼?]

[우리 쪽 사람이 얼마 전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서 저 여자가 필요하다.]

전미 초능력 협회가 왜 나와? 혹시 한영미를 동해 쪽으로 빼돌린 게 거기 소행인가?

경완은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으레 커다란 이권단체들이 여기저기에 구린내 풍기고 다니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에서 죽은 사람은 사이비 교주 단 한 명뿐이었고 그것도 그들이 했다는 확신도 없었다.

사이비 새끼 하나 죽은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보아하니까 부탁이 아니라 협박을 하려고 했군. 어떻게든 약점이나 인질을 잡아서 말이야.]

[…….]

[잘 안 되는 거 보니까 이쪽 능력이 만만하지 않은 모양이지?]

환상까지는 걸었어도 정신지배나 세뇌까지 걸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글랜의 머리에서 일행의 머리에 이어진 초능력 패스의 중간을 경완이 만든 S입자의 촉수가 조여 그 이상의 능력 발현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걸린 능력을 끊어내는 건 힘들었지만 이미 걸린 능력이 강화되지 않도록 막는 건 다행히 경완의 능력으로도 가능했다.

그는 악당처럼 음충맞게 웃었다.

[흐흐흐. 내가 없었으면 진즉에 죄다 세뇌 걸고 납치를 했겠지? 아마 모종의 장소에 댁 동료들이 이 여자를 빼돌리려고 대기하고 있을 것이고. 안 봐도 뻔하지 뭐.]

[우리를 방해하면 후회할 거다.]

[내가 엿 먹인 새끼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이 새끼야. 나 때문에 손해 본 범죄조직하고 테러 조직이 몇인데? 그리고 너 중국은 엿 먹여 봤니?]

[…….]

[도대체 뭔 깡으로 내가 경호하는 와중에 이 지랄을 떨었대? 아! 이때 말고는 딱히 납치할 기회가 없는 모양이구나?]

경완은 김준을 보았다. 방금 말한 사항을 잘 기억해 두라는 눈빛이었다. 그래야 FBI가 알아서 자료를 취합하고 가설을 세워서 증거를 찾는 등 알아서 노력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 경완의 태도에 글랜의 입에선 협박이 튀어나왔다.

[아니면 이자들은 죽을 거야.]

글랜과 닥터 콥스가 동시에 말하면서 서로를 가리켰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섬뜩했지만 경완은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니들은 꼭 협상을 그렇게 하냐? 이쪽에서 주면 그쪽에서도 뭔가 줘야 하는 거 아냐? 이쪽 실적을 채워줄 만한 걸로 말이야.]

[웃기는 소리 하는군. 너희가 우리와 협상을 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돼.]

[왜? 사법거래 많이 하잖아?]

[사법거래란 결국 형량을 감해주는 조건으로 범죄사실을 인정하라는 짓인 걸 알고 있나?]

범죄자인 놈에게 경완이 말한 사법거래는 일단 구속되고 보라는 말로 들렸다.

경완은 그거 좋다는 듯이 한술 더 떴다.

[그거 좋네. 그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람을 자수시키면 우리가 치료해 줄게.]

이런 공작을 할 정도로 중요한 작자일 테니 좋은 협상이 아닌가? 저들은 중요한 동료의 목숨을 구하고 이쪽은 중요한 범죄자를 잡고.

이것이야말로 윈윈 아니겠는가?

물론 상대방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소리였다.

[개소리 하지 마라.]

[이렇게 공정한 협상을 못 받아들이냐? 하긴 범죄자 새끼에게 뭘 바라겠냐?]

[누가 죽어야 정신을 차릴,]

놈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왜냐면 정신제압과 세뇌를 위해 사용된 S입자의 선이 결국 경완에 의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여태 못 끊었던 걸 끊어낼 수 있었던 바탕에는 중국에서의 경험에서 배운 흑선의 능력 덕분이었다. 흑선의 검기가 가지고 있던 절단의 속성은 저 투명하고 질긴 S입자의 줄기도 잘라낼 수 있었다.

정신계 능력이 끊어지자 글랜은 책상에 고개를 박으며 기절했고, 닥터 콥슨도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김준이나 수사관이 쓰러지는 닥터 콥슨을 받아내 바닥에 눕혔고 경완은 그들의 머리에 스캔을 사용해보고는 입을 열었다.

“두뇌에 남아 있는 데미지는 비슷하네요.”

“그놈이 마인드 브레이커일까요?”

김준의 물음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이들의 뇌에 있는 데미지가 정신 계열 초능력에 당한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일 수도 있죠.”

“무섭네요.”

한영미가 팔로 자신의 몸을 안으며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기는 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의 몸과 정신을 지배한다고 한다면 말이다.

아무튼, 뒤늦게 도착한 FBI에 일행은 현장을 넘기고 놀란 심신을 추슬러 하루 일과를 마치기 위해 근처 호텔로 향했다.

룸서비스로 함께 식사하게 된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오늘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경완 씨는 그자가 이 일련의 사건의 범인이라고 생각합니까?”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기는 하죠.”

“어떻게 추적한 방법은요?”

“저기 있잖아요.”

경완의 턱끝이 한영미를 가리키자 스테이크를 썰던 그녀가 밥맛이 떨어지는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표정을 굳혔다.

“설마 지금 절 미끼 삼겠다는 건가요?”

“오올~ 그걸 바로 파악한 걸 보니 경험이 있나 봐요?”

“허!”

기가 찬다는 헛웃음도 경완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난 그냥 현실을 말하는 것뿐이에요. 아무래도 그놈이 댁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진 않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보디가드들은 믿을 만해요? FBI나 히어로 컴퍼니의 같은 곳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경완의 말에 한영미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더니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보디가드들은 전미 초능력 협회에서 파견해 준 초능력자예요.”

그렇게 운을 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녀의 사정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 체포되기 전에 이미 전미 초능력 협회와 몰래 접촉했다는 점이라든지, 그들의 도움으로 지긋지긋한 한국을 벗어났다는 점이라든지, 그리고 현재 그녀도 전미 초능력 협회 소속의 초능력자라든지 말이다.

김준은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한 가지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그들이 접촉했을 때 바로 교단을 벗어날 수 있지 않았습니까? 왜 굳이 있다가 한국 경찰에 체포된 겁니까?”

“…….”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고 경완이 김준의 옆구리를 찌르며 한마디 했다.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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