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경완의 초감각이 두 차량을 훑고 방아쇠가 날아갔다. 당장의 화력으론 엔진을 뚫기엔 턱없이 약했지만, 두 차량의 연료계통이나 전기계통을 망가뜨리기엔 충분했다.
차량에 이상이 생기자 두 차량이 느려졌다. 하지만 경완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좌석에 앉아 있는 놈들을 노렸다.
트럭의 운전석에 앉아 있던 놈은 어깨에 총알을 맞고는 피를 흘렸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놈은 신체강화능력자인지 충격만 먹었다.
그렇게 트럭은 막았지만 승용차에 탄 이인조의 경우에는 여의치 않았다. 놀랍게도 승용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던 놈을 노리고 쏜 총알이 조수석에 앉아 있던 놈이 번개같이 뻗은 손에 붙잡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방탄 능력이 있는지 총알은 놈의 손바닥을 뚫지 못하고 막히고 말았다.
차 안에서도 날아오는 총알을 감지할 정도의 예리한 감각을 가진 신체강화능력자라?
주의해야 할 놈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염동능력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나마 차량을 무력화시켜서 다행이랄까?
경완이 총알을 네 발 정도 더 쏜 후 김준이 급하게 말했다.
“한영미 씨에게 이쪽의 의도를 전달했습니다!”
뒤통수를 치겠다는 경완의 전략도 한영미 쪽이 버텨주지 않으면 소용없었다.
경완이 물었다.
“그런데 무전으로 그런 이야기해도 돼요? 투입된 초능력자의 수준을 보면 감청될 가능성도 있을 텐데요?”
“한영미 씨에게 한국어로 직접 말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저놈들에게 한국어 사용자가 있겠는가?
스테이시는 한 템포 늦게 김준으로부터 계획을 듣고는 핸들을 꺾어 한영미 팀과 거리를 벌렸다. 자신의 의견도 묻지 않고 진행한 것이 좀 불만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전투를 총기화력에 의존하는 그녀의 팀을 생각하면 확실히 경완이 내놓은 ‘뒤통수 저격’ 전략이 더 효과적인 건 인정해야 했다.
한 가지 불안한 건 한영미의 경호원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였다.
“이럴 때 대물저격총 같은 게 있으면 얼마나 좋아?”
경완이 푸념을 하면서 탄창을 점검한 후 다시 상체를 창문 밖으로 빼냈다. 김준은 총알과 탄창을 챙겨주는 담당으로 전락(?)했다.
다행히 탄약은 넉넉했다. 찰스가 넉넉히 챙겨온 걸 나눠준 덕분이었다.
경완은 가장 위협이 되는 염동능력자를 향해 화력을 집중했다.
탕탕탕! 탕탕탕! 탕탕탕탕탕탕탕!
“지금이 장난할 때에요?!”
김준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지금 이 순간에 삼삼칠 박수라도 치는 건가?
하지만 경완은 억울했다.
“아니, 김준 씨는 삼삼칠 박자로 안 맞아봤어요?”
누구라도 삼삼칠 박자로 처맞게 되면 정신이 혼미해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탕탕탕이 두 번 반복된 후에 연달아 일곱 번을 갈기며 몰아치는 것은 이론적으로 봐도 방심을 노리는 괜찮은 콤보이지 않은가?
뭐, 그렇지만 염동능력자에게 효과는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콰앙!
기어코 염동능력자가 도착해 한영미가 탄 차량을 염동력으로 밀었다. 옆으로 밀쳐진 자동차는 비틀거리다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집히고 말았다.
그 모습에 경완은 급히 차량을 멈춰 세웠다.
[두 사람은 어디 안 위험한 곳에서 상황을 지켜봐요.]
[경완 씨는요?]
스테이시의 물음에 경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뒤통수 따끔하게 해줘야죠.]
그러면서 그는 탄약이 든 가방을 챙겨서 근처 엄폐가 가능한 곳을 찾아 몸을 숨겼다. 아무리 워싱턴이 근처라지만 근교지역에 불과해서 건물이 그리 많지 않았고 2층을 넘는 건물조차 없었다.
그렇게 일행이 주변에 은엄폐하는 와중에 뒤집어진 차량에서 뛰쳐나온 경호원이 날아오는 염동능력자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경호원은 한영미를 차에서 빼내서 서둘러 어디론가 도망갔다.
염동능력자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경호원을 멀리 밀어버리고 서둘러 한영미를 쫓으려고 했지만 멀리 던져진 경호원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어떻게든 한영미가 도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몸이 무척이나 튼튼한지 강력한 염동력을 가진 괴한조차 쉽게 그를 무력화할 순 없었다. 남자 보디가드는 검은 양복이 걸레짝이 되도록 나뒹굴어도 생채기 하나 난 곳 없이 습격자에게 달려들었고 경완은 둘의 실랑이를 관찰했다.
그러면서 염동능력자가 발휘하는 염동력의 강도와 범위를 가늠하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어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나 보자.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총알은 그대로 염동능력자의 뒤통수로 향했다. 하지만 총알은 염동능력자의 몸 근처에서 급속도로 속도가 줄어들더니 뒤통수에서 한 뼘쯤 떨어진 거리에서 땅에 떨어졌다.
탁!
조용한 지역이라 소음이 많지 않아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들렸다. 놈은 바닥에 구른 탄환을 보고는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경완은 이미 건물 모퉁이 뒤에 숨어서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이로써 경완은 두 가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놈은 혹시 모를 저격에 대비해 항상 몸 근처에 염동력 배리어를 두르고 있다는 것이고, 이 염동력 배리어는 놈의 힘을 많이 소모한다는 것을 말이다.
놈에게 타격을 주는 방법을 알아내서 좋았지만 한 편으로는 짜증도 났다. 결국 놈의 초능력이 소진될 때까지 싸우는 소모전 양상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는 걸 확인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경완은 자신의 총알을 잡아챈 신체강화능력자를 떠올렸다. 놈이 도착하기 전에 지원이 도착할까? 놈이 도착하면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버텨보는 수밖에.
경완은 건물을 돌아 반대편 모퉁이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몰래 염동능력자의 뒤통수를 노리고 총을 쏘았다.
삼점사로 쏜 총알은 이번에도 염동력 배리어에 막혀 떨어졌지만 놈의 초능력을 눈에 띄게 소모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만큼 놈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했고 말이다.
놈이 짜증과 분노로 일그러진 인상으로 급히 고개를 돌아보았지만 또 이미 경완은 모퉁이 뒤로 모습을 감추고 다음 저격 포인트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신경이 분산된 틈을 타 보디가드가 달려들었다.
“옳지 잘한다.”
경완은 품종 좋은 사냥개처럼 용맹하게 달려드는 보디가드를 칭찬하면서 힘껏 발을 굴렀다. 근력강화를 통해 지붕으로 올라간 경완은 몰래 총구만 내놓고 방아쇠를 당겼다.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은신 저격으로 염동능력자의 신경을 분산시키고 초능력을 소모시킨다는 전략은 매우 유효해 보였다.
경완이 우려했던 신체강화 능력자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라틴계열의 근육질 남자는 도착하자마자 보디가드에게 달려들었고 염동능력자는 한영미가 도망간 방향으로 날아갔다. 경완이 염동능력자의 뒤통수에다 대고 연신 총알을 쏘았지만 엉겨 붙는 보디가드가 없으니 별로 위협이 되지 못했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째려보는 놈의 눈빛은 살기로 번들거렸지만 그래도 목표를 우선하는 프로의식(?)은 있는 놈이었다.
경완은 혀를 차면서 움직였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저놈의 신경을 긁어서 조금이라도 발목을 잡을까 궁리하면서 말이다.
딱히 의무감이 솟거나 한영미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는 아니었다. 그저 단지 대낮에 납치 따위나 하려는 놈들에게 엿 먹이고 싶은 반골 심보의 발로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보디가드에게 안면 원투를 날린 신체강화능력자가 경완의 앞에 뚝 하고 착지함으로써 무산되었다.
쓸모없기는…….
경완은 언제 잘한다고 칭찬했냐는 듯 속으로 혀를 차며 원투펀치를 맞고 실신한 보디가드를 욕했다. 비슷한 신체강화계열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신체강화계열, 머슬러인 주제에 주먹에 맞고 쓰러진단 말인가?
경완은 자신을 향해 놈이 손을 뻗자 슬쩍 뒤로 물러나 피했다.
그러나 놈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뻗은 손은 마치 딱총새우의 집게발처럼 빨랐는데 마치 어디로 손을 뻗을지 미리 알고 있는 듯 영 점 몇 초 먼저 허리를 비틀고 몸을 젖히는 것으로 자신의 손아귀를 피해냈기 때문이었다.
“!#$!%”
놈이 뭐라고 지껄였다. 표정과 어감을 들어서는 ‘쥐새끼 같은 놈’과 비슷한 의미인 것 같았기에 경완의 입도 가만있지 않았다.
“머더퍽커.”
“Fuck you!”
경완은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놈을 보면서 기절한 보디가드와 여태 지원을 보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당국의 무능함에 혀를 차며 손날을 그었다.
순간 놈의 표정이 굳어지며 달려들다 말고 펄쩍 뒤로 뛰었다. 놈의 가슴팍이 베여 옷이 벌어지고 튼튼한 가슴팍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예리한 자상과 함께 핏물이 흘러내렸다.
경완이 입술에 침을 발랐다.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날아든 총알을 잡아챌 때부터 느꼈지만 감이 예민한 놈이었다. 기습적으로 가한 검기능력을 감지하고 뒤로 물러나다니.
피하지만 않았어도 죽든가 아니면 심각한 부상에 기절했을 텐데 아쉬웠다.
이거 쫄딱 근접전으로 드잡이질을 해야 하는 걸까? 피곤한데?
급귀찮음에 경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때,
“헬로우~”
김치 냄새 나는 영어 발음에 둘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옆에 누군가가 탁하니 착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과묵한 머슬러를 대동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정체를 확인한 경완은 기가 막혔다.
‘얼씨구?’
“이야~. 오랜만에 뵙습니다.”
힉스남, 빌런명 매스 이펙터가 경완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근육질의 라틴남은 경완과 그가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경계했다. 경완도 마찬가지로 슬쩍 몸의 각도를 틀며 세 명을 동시에 마주했다.
힉스남은 경완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마세요. 오늘은 댁을 데리러 온 건 아니니까요.”
“그럼요?”
“미국의 의뢰를 받아서 왔습니다.”
득의양양한 미소에 경완은 헐하고 기가 찼다. 막연하게 가능성은 점쳤지만 진짜 미국이 위버멘쉬를 이용한다는 생각을 실행할 줄은 몰랐다.
“대가는요?”
“사법거래요.”
힉스남의 말에 사면권을 떠올렸다. 위버멘쉬가 양지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경완이 몇 가지 더 물어보려고 입술을 열었을 때 라틴계 머슬러가 힉스남에게 달려들었다. 서로 자기가 모르는 언어도 대화하니 둘이 같은 편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힉스남 옆에 있던 머슬러가 달려들어 놈과 맞섰다.
“잘했어, 곤잘레스.”
힉스남의 칭찬에 경완은 생뚱맞은 의문이 들었다. 동남아계와 한국계의 혼혈로 보이는데 이름이 곤잘레스란다.
“동양계로 보이는데 왜 이름이 그래요?”
“자기가 그렇게 불러달라는데 어쩌겠어요?”
곤잘레스가 진짜 이름인가? 설마 아니겠지?
경완이 의심할 때 두 사람은 라틴계 머슬러를 손쉽게 처리했다. 힉스남이 놈의 몸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동시에 곤잘레스라는 동양계가 놈을 붙잡아 하늘 멀리 던져버린 것이다.
부웅! 팡!
음속돌파 특유의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죽진 않을 것이다. 딱 봐도 능력 있는 머슬러로 보였으니까.
그 모습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같이 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둘의 시너지가 매우 훌륭했다. 그라도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확실히 힉스남의 능력은 직접적인 공격이나 방어보다는 버퍼, 디버퍼로서의 가치가 더 컸다.
그래서 경완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곤잘레스의 시선에 언제든 뒤로 물러날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을 뒤로 슬쩍 옮겼다.
힉스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쫄 것 없습니다. 당장에 당신을 공격할 마음은 없으니까요.”
무한전생-더 빌런 14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