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38화 (138/367)

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안 쫄았거든, 이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경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도 상대가 믿을 리 없었다.

바보는 자신이 바보라는 말을 부정한다. 괜히 솔직하게 말했다간 쫄았다고 믿을 것이다. 아니라고 항변할수록 본인만 쪽팔린다.

놈이 말을 이었다.

“그냥 경완 씨가 저번에 기습적으로 목을 졸라 기절시킨 일에 앙심이 남아 있을 뿐이죠.”

그러니까 덤비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오늘은 바빠서 말이죠. 그럼 이만. 저희 위버멘쉬는 항상 이경완 씨의 가입을 환영하겠습니다. 곤잘레스. 가자.”

이랬다저랬다, 하여간 전부터 예의 바른 말투로 사람 신경 긁는 재주가 있는 놈이었다.

곤잘레스는 힉스남의 말에 경완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도 그를 따라 움직였다. 두 사람은 펄쩍 뛰어 염동력자가 간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에 경완은 급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무리 강력한 염동력자라고 해도 저 두 사람의 조합이라면 충분히 맞대응이 가능할 테니까

그렇게 현장에서 위험요소가 사라지자 김준와 스테이시가 급히 경완에게 달려왔다.

“괜찮습니까?”

[저 사람들 누구예요? 아는 사이예요?]

경완과 김준은 스테이시에게 힉스남과 근육남에 대해서 설명했고 그녀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드러났다. 자국이 빌런 조직과 손을 잡았다고?

[그럴 리 없어요.]

[뭐, 진실이야 나중에 드러나겠죠.]

경완은 억지로 납득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의 시야에 6대의 헬기가 한영미가 도주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으로 경완이 더 할 일은 없어졌다.

* * *

한영미는 무사히 구출되었다.

습격해온 이들은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도주했지만, 그 한 명에게서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남미에서 초능력을 이용해 몰래 밀입국한 납치팀은 남미에서 해결사 비슷한 일을 하는 폭력조직으로, 현재 콜롬비아 등지에서 주름을 잡기 시작한 볼라스라는 마약조직의 의뢰를 받아 한영미를 납치하기 위해 밀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솔직히 조직의 리더이자 탐정 출신의 해결사, 그리고 강력한 염동력자인 헤세가 있었기에 일이 매우 쉬울 줄 알았다. 염동력이라는 것의 범용성과 유용성 덕분에 그간의 의뢰해결이 날로 먹는 수준으로 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영미를 지킬 생각이 매우 강했던 전미 초능력 협회가 범죄조직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위버멘쉬에 의뢰를 할 줄은 그들도 몰랐다.

위버멘쉬의 조직원들은 인간 초월을 지향한다는 조직의 이념에 걸맞게 하나 같이 매우 강력한 면모를 보여주었는데 이번에 염동력자의 손에서 한영미를 구해냄으로써 다시 한번 그것을 증명했다.

[전미 초능력 협회가 그런 의뢰를 했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스테이시의 말에 김준이 대꾸했다.

[경완 씨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요.]

[무슨 말을 했는데요?]

이에 김준은 미국이 국익을 위해 위버멘쉬와도 협상이나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경완의 견해를 이미 예전에 내놓은 적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스테이시는 감탄 어린 눈으로 경완을 보았고 경완은 턱을 들어 올리며 콧대를 높였다.

그 모습에 찰스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지만, 경완은 두꺼운 낯가죽의 소유자였으므로 오히려 김준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한영미 씨는 어떻게 되었고 또 마인드 브레이커라는 놈은 또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습격이 더 발생하기 전에 일단 모종의 장소로 옮겼고, 마인드 브레이커를 추적하는 전담팀이 신설된답니다. 정신계 능력자를 위주로 구성된다더군요.”

“그럼 저는요?”

바로 이 물음이 경완이 묻고자 하는 본론이었다.

“…….”

김준이 말없이 경완을 응시했다. 이 하찮은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하는 자신의 입장에 현타가 오는 모양이었다.

“…….”

경완 역시 말없이 김준이 대답해주기를 바라며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현타가 와서 뭐?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하여튼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있나?

[뭐하는 거예요?]

그런 두 사람의 눈싸움에 스테이시가 의아해하며 끼어들었고 김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경완 씨의 일정은 여기까지입니다.]

“롸끈하게 준다는 포상은요?”

[……데이비스 팀장에게 말해 보겠습니다.]

[무슨 얘기하냐고 묻잖아요.]

마치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은 스테이시가 눈을 가늘게 뜨고 김준과 경완을 쳐다보다 김준은 그만 손으로 눈을 가리고 말았다.

향후 미국에서 귀국하는 경완의 얼굴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흡족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던 것은 여담이었다.

* * *

미국이 위버멘쉬를 이용했다는 사실은 감추어졌다. 아무리 위버멘쉬가 양지로 나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해도 이미지라는 건 금방 바꿀 수 없었으니 부담감을 느낀 관계자들이 사실을 덮어버린 것이다.

물론 위버멘쉬는 억울해하지 않았다. 당국을 쪼아봤자 관계만 악화될 뿐 양지로 올라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은 그저 시간만 보내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 정권! 무너지다!]

[남미 마약 카르텔에 대한 위버멘쉬의 습격!]

그들은 돈과 권력 없이 오직 무력만으로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마치 여태 음지에서 숨죽이고 있은 이유가 이 순간을 위해서라는 듯이 말이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에서 위버멘쉬는 여전히 불법조직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힘을 필요로 하는 제3세계에서 그들은 희망이요 구원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해나갔다.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을 해낸 것이다.

“저는 별로 마음에 안 듭니다.”

“으에여?”

경완은 통통한 치킨 다리를 뜯으며 눈앞의 사내에게 반응해 주었다.

강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그저 권력에 영합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철학도, 정의도 찾아볼 수 없죠.”

“힘 자체가 그들의 철학이잖아요?”

경완이 닭날개를 들며 대꾸했다.

인간의 초월을 지향하는 조직이니 힘과 권력에 가까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경완의 말에 강우빈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대신 종이 한 장을 꺼내서 경완 앞에 내밀었다.

그런데 종이의 내용은 여태 꺼낸 주제와는 또 달랐다.

“불씨재단? 이게 뭐예요?”

“경완 씨가 출연(出捐)했던 재단의 기금 사용 내역입니다.”

“이런 거 봐도 제가 뭘 아나요? 그냥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항목과 숫자를 읽고 분석하기 귀찮아서 해본 말에 강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씨재단에서 직장을 잃은 공익제보자들을 인터뷰해서 지원할 만한 이들을 선정한 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경제적 지원을 했습니다. 여기 있는 이정수 씨는,”

“아유~ 그 뒷얘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네요.”

“하지만 경완 씨 돈이지 않습니까?”

“뭐 열심히 노력해서 번 돈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 감흥이 없네요.”

경완은 강우빈에게 정 돈이 모자라면 책이나 써내면 된다고 말했고 강우빈은 그 계획에 눈을 빛냈다.

“그거 흥미롭군요.”

“너무 욕심내지 말아요. 차관이나 되는 양반이 안절부절못하는 꼴을 구경하는 것도 제법 재미있으니까요.”

“풉!”

경완의 말에 강우빈은 참 재밌는지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건 경완 씨 나름의 재미로 남겨두죠. 하지만 출판하고 싶으시다면 저를 불러주세요. 그치들이 순순히 출판되도록 놔둘 리가 없을 테니까요. 미국이라면 한국 정계의 외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도 시간문제죠. 원래 한국에서 찬밥 취급당하다가 해외에서 성공하고 역수입되는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땐 잘 부탁드립니다.”

경완은 강우빈의 제안을 넙죽 받았다. 접견을 감시하기 위해 문 옆에 서 있던 교도관이 저도 모르게 턱을 좌우로 저었다. 꼴이 마치 악당들 작당모의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강우빈이 화제를 바꾸자 사라졌다.

“혹시 요즘 미연 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있습니까?”

“글쎄요? 게임하느라 바빠서.”

인생은 짧고 즐길 건 많았다. 게임이라는 즐길 거리가 생긴 경완에게 인터넷은 딱히 매력적인 여가 생활이 되지 못했다.

세상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세상 돌아가는 걸 좀 알아보겠지만 경완에게 그런 건 남는 시간에나 하는 후순위 여가에 불과했다.

강우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큐에 출연한 게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일거리가 떨어졌나 봐요?”

“적어도 한국에서는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배우가 그 모국에서 활동을 못 하게 됐다는 건 커리어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연 배우에 대한 비난은 경완 씨가 원전 테러를 한 직후 절정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그거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로 무마된 거 아니에요?”

“한 번 흠집 난 이미지라는 게 그렇게 쉽게 회복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러게 걔는 왜 하필 나 같은 거랑 엮여서는 쯧쯧쯧.”

경완이 혀를 찼고 강우빈은 대꾸했다.

“그만큼 경완 씨가 그녀의 인생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거죠. 이번에 귀휴권도 얻었다고 하니까 한 번 그녀를 방문해서 사정을 알아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제가 미리 말해놓죠.”

“에이. 안 그래도 저하고 얽혀서 골치 썩고 있는 애잖아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그녀가 경완 씨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는지도.”

“……혹시 강우빈 씨, 뭔가 알고 있는 건 아니죠?”

경완이 갸름한 시선으로 강우빈을 훑어보자 그는 뜨끔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제 입으로 말할 순 없는 이야기입니다. 듣는 귀도 있고요.”

그의 시선이 교도관에게 향했다. 그러자 경완의 시선도 교도관에게 향했다.

교도관은 갑자기 억울해졌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는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 뿐이었다.

* * *

“아이고~ 또 놀러 나가십니까?”

귀휴허가서에 도장을 찍어주는 홍 소장의 말투에는 비꼼이 가득했다.

여기서 멋쩍어하면 경완이 아니었다.

“아이고~ 그렇습니다아~”

“쯧쯧쯧. 말세다, 말세야. 나라 꼴이 어찌 되려고.”

홍 소장이 혀를 찼다. 그의 입장에선 대한민국 역사에 경완과 같은 범죄자가 이렇게 매년 귀휴권을 받아 나간다는 것 자체가 나라에 망조가 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완은 그런 홍 소장에게 염장지르는 소리를 남기며 일어섰다.

“말씀하신 대로 말세가 되려나 보죠.”

말세면 말세라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세상이 말세인데도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애써 태평가를 부르는 인간들의 추태를 보면 저절로 혀가 차지고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왜 추잡하냐면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내로남불이기 때문이었다.

응, 너희들에게 유리하면 말세, 나한테 유리하면 태평성대.

물론, 홍 소장이 그 정도로 사리분별 못 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꼰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교도소를 나온 경완에게 달라붙은 건 제프리였다. 김준은 이번 마인드 브레이커 사건으로 인해 위버멘쉬와 전미 초능력 협회와의 밀월 관계가 드러나자 관련 조사를 한다고 무척이나 바빴다.

경완에게 마이크로칩도 다시 박고 원거리 경호도 강화했기에 저번처럼 한적한 곳에서 트럭 돌진에 납치당하는 일 따윈 절대 없을 거라고 제프리는 장담했다.

“그렇구나. 그럼 다들 수고하라고 전해주세요.”

경완은 1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을 위해 덕담 한마디 해줄 줄은 아는 인품(?)의 소유자였다.

내가 입 좀 털어 상대의 기분이 좋아진다면, 이것 역시 덕과 평판을 쌓는 일이 아니겠는가?

무한전생-더 빌런 1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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