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39화 (139/367)

12-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음

그는 제프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강우빈과 사전에 약속이 된 장소로 이동했다.

미연의 소속사 JB엔터 앞에 도착한 경완은 강우빈에게 연락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JB엔터 관련자와 연락처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미리 안에 연통을 넣으려면 강우빈이라는 관련업계 종사자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제프리의 강력한 주장 때문에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커다랗고 짙은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낀 경완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JB엔터 측에서는 미리 연락을 받아서 그런지 남들이 보기 전에 경완을 얼른 위로 올려보냈다.

경완이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기획사 대표실.

미연도 거기에 있었다.

“오빠아~! 나 이제 어떡해!”

그녀는 경완을 보자마자 울상을 지으며 경완의 가슴팍에 안겼다.

그리고 경완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입을 열었다.

“연기 잘하네. 역시 연기자.”

“……어떻게 알았어?”

샐쭉한 표정으로 떨어지는 그녀의 매력적인 모습에 경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는지 까먹었구나.”

“흥!”

그녀가 삐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가 긴장한 모습으로 경완에게 다가왔다. 살집이 좀 있는 후덕한 인상의 중년남이었다.

“바, 반갑습니다. JB엔터 대표 김길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경완이라고 합니다.”

“하. 하. 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미연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너무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 선량한 사람에겐 기본적으로 얌전하거든요.”

“하, 하, 하.”

기본적으로 얌전한 사람이 원전을 폭파하나?

김길상은 어색하게 웃으며 악수한 손을 놓았다.

이후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프리가 미연이 해준 사인지를 품에 고이 넣을 때 경완이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요?”

“음. 그게…….”

“발정 난 껄떡이가 문제야.”

김길상이 좀처럼 이야기를 하지 못하자 미연이 대답했다.

경완은 동정 어린 눈을 김길상에게 향하며 말했다.

“쟤 때문에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군요.”

“……아닙니다.”

입은 거짓말을 해도 몸은 솔직한 법. 경완을 보는 김길상의 눈빛에는 자신의 노고와 어려움을 이해해 준 이에 대한 감동과 감사가 서려 있었다.

제프리는 입맛만 다셨다. 원전 테러범의 칭찬을 받고 감동하는 엔터 사장이라…….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꾹 참아야지.

“요즘 백수 신세라며? 이유가 뭐야?”

경완이 미연에게 묻자 그녀가 반문했다.

“어떻게 알았어?”

“강 감독님에게 들었지.”

“강 감독님? 강우빈 감독님?”

“응.”

“참 그분도 오지랖이 넓단 말이야.”

그렇게 푸념을 내뱉은 미연이 사정을 설명했다.

사실 경완과의 과거의 인연으로 인해 그녀에게 피해를 받는 일은 별로 없었다. 광고가 좀 떨어지기는 했지만 피해자 입장이었던 만큼 동정표도 많이 얻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접근해 와서 껄떡대기 시작했으니, 아마 그때가 경완이 중국 하이양 원전을 폭발시킨 주범이라는 사실을 한국 언론이 대서특필했을 당시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흠집 난 년이니 따먹고 가지고 놀아도 후환이 두렵지 않다는 거지.”

“아이고, 미연아! 제발 입 좀!”

미연의 말에 김길상 대표가 답답해서 가슴을 치며 주의를 주었지만 미연은 그저 얼굴에 약간의 무안함만을 비친 후 이내 화난 얼굴로 그 남자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지가 언론사주 손자면 단가? 유부남 주제에 광고 밀어줄 테니 만나자고 하잖아?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 뒤부터 이상한 일이 계속 생기지 뭐야?”

공연장 대여도 딱히 이유 없이 거절당하거나, 미연의 콘서트를 도와주는 업체나 사람들에게 자꾸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스크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투자자가 뚜렷한 이유 없이 그녀를 캐스팅에서 제외하거나 오디션에서도 번번이 탈락했다.

아마 그녀가 열심히 노력하면서 쌓아 올렸던 평판과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수작질 뒤에 ○○일보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겨우 언론사주 손자놈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나도 몰라. 그렇게 들었을 뿐이니까.”

미연의 대꾸에 김길상 대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재벌 등과 혼맥으로 얽힌 유서 깊은 언론이니까요.”

“기득권과 붙어먹어 왔다는 말이군요.”

경완의 일축에 제프리가 기억났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아, 일제시대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6.25 땐 김일성을 환영하고, 쿠데타 때에는 쿠데타 사령관을 찬양했다는 거긴가 보내요”

“커흠!”

제프리도 한러 혼혈의 미국인이지만 아버지가 한국인이다 보니 한국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국으로의 파견이 결정되고 나서는 한국 물정에 대해서 더 공부하기도 했고 말이다.

뭐,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그들의 치부를 대놓고 말하는 상황이 엔터업체 대표인 김길상으로서는 불편한지 헛기침으로 주의를 환기했다.

하지만 그래도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냐면 소위 기존 언론이라는 곳은 인터넷의 발달로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쇄하자마자 곧장 계란판 제조 공장으로 직행하는 신문지라도 찍어내서 부수 조작을 해야 정부 보조금이라도 타 먹을 수 있는 곳이 인기 여배우를 엿 먹일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요? 지들 생존을 위해서라도 아등바등하느라 바쁠 텐데 이렇게 여기저기 업계를 들쑤시고 인기 연예인을 방해하고 다닌다고요? 전 납득하기 어려운데요?”

“그럼…… 경완 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 새끼는 얼굴마담이고 뒤에 딴 놈이 있다는 게 저의 합리적 추측입니다.”

“저기, 근거가 없지 않습니까?”

“원래 ○○일보가 기득권과 권력자들, 돈만 많은 기업들 똥꼬 빨아주며 버텨온 그런 곳이잖아요? 그 기질이 어디 가겠습니까? 이번에도 누구 똥꼬 빨아준다고 나섰겠죠.”

근거는 없지만 묘하게 그럴듯해서 설득이 되는 것 같았다.

경완이 물었다.

“해결책은 생각해 보셨어요?”

“일단 버티는 쪽으로 가고 있기는 합니다. 우리 미연이만 계속 괴롭힐 순 없거든요. 정 뭣하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서 올려도 됩니다.”

김 대표의 계획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미연에게 물었다.

“해외진출한다며?”

“에플릭스에 들어온 대본 중에 괜찮은 거 있는지 찾는 중이야.”

경완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뼉을 쳤다.

“다들 잘하고 있는데 도대체 내가 왜 필요한 거야?”

“응? 오빠가 걱정된다고 찾아온 거 아니야?”

“……난 네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해서 온 건데?”

“내가?”

“응, 네가.”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속으로는 강우빈의 말장난에 넘어갔다는 걸 깨달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미연은 남자 하나 잡아먹을 것 같은 눈웃음을 지었다.

“흐응~ 걱정이 됐나 보네?”

“걱정이야 되지. 날 노리고 내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거라면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 지켜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복수는 오지게 해줘야지.”

“그거 선미한테도 했던 이야기 아니야?”

“선미? 선미가 누구지?”

“오빠 때문에 양아치에게 잡혔던 여자애. 기억 안 나?”

경완은 그 말에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어 아! 하고 입을 벌렸다.

그러다가 제프리를 보며 물었다.

“암튼, 이거 FBI에 부탁하면 조사해줘요?”

“어…… 저희는 흥신소가 아닙니다만…….”

“쩝. 그럼 직접 조사해 봐야,”

“자, 잠깐! 잠깐만요! 일단 물어보겠습니다.”

제프리는 다급히 경완을 제지하며 상부에 문의해 보기로 했다. 경완이 직접 나서면 일이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경완이 대꾸했다.

“한 시간 내로 답장 안 오면 제가 바로 나설 거예요.”

그 말에 제프리가 사색이 되어서 급히 폰으로 어디론가 연락을 했고 김 대표는 불안해했으며 미연은 걱정되는 말투로 물었다.

“오빠, 그냥 기다리면 안 돼?”

“이렇게 귀휴 나와 있을 때 처리해야지, 탈옥해서 처리하면 여러 사람한테 폐 끼친단 말이야.”

여기서 제프리는 뜨끔했다. 상부에서 경완의 게으름을 파악하고 요청을 뭉개며 시간을 끌 수도 있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연이 경완에게 재차 요청했다.

“……그냥 가만있으면 안 될까?”

“응, 안 돼. 내 주변 사람을 이용해서 간접적으로 날 엿 먹이려고 든 거라면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만들어줘야지.”

경완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 지금 무지 악당 같은 거 알아?”

미연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경완은 이렇게 대꾸했다.

“나 악당 맞아.”

자타가 공인하는 원전 테러리스트가 악당이 아니면 누가 악당이랴?

* * *

“저, 저기 경완 씨!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프리가 다급한 얼굴로 경완을 붙잡았지만 경완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 시간 지났잖아요.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어요. 빨리 처리하고 맛집 돌아다녀야죠.”

“일을 저지르면 어차피 맛집 못 돌아다닙니다!”

제프리가 열심히 설득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괜찮아요. 조용히 처리하면 되니까요. 놈이 결백하다면 아무 일이 없을 것이고 놈이 유죄라 해도 입을 다물 거예요.”

“진짜 가만히 있을까?”

미연이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경완은 자신이 있었다.

“응, 자신 있어. 입 다물게 할 자신이.”

그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쌍엄지를 척 들며 상큼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미연은 어딘지 서늘한 느낌에 소름이 돋을 것 같은 자신의 미끈한 팔뚝을 얼른 문질렀다.

“오빠, 그냥 가만 있어 주면 안 돼?”

“응, 안 돼. 몰랐으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찜찜하게 둘 순 없지.”

“그냥 교도소에 있을 때처럼 게으름을 부리면 안 됩니까?”

제프리가 안타까운 목소리고 경완의 옷깃을 잡았다. 차마 멱살을 잡기엔 그가 무서웠다.

경완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걱정 말라니까요. 아무로 모를 거예요.”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제프리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칠 때 경완은 재빨리 움직였다.

“앗!”

“잡아!”

“경완 씨! 안 돼요!”

순식간에 대표실 문을 열고 나가는 경완의 모습에 미연이 놀라고, 김 대표는 사색이 되었고, 제프리가 기겁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지만 어느 누구도 경완을 붙잡을 순 없었다.

“비상! 비상! A팀, B팀 모두 마구니를 쫓아라!”

제프리가 급히 경호 및 감시팀을 불러들였지만 도심의 어두운 밤하늘로 사라진 경완을 찾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경완의 목표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건물 옥상에서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참 쉽다니까. 그런데 마구니는 또 뭐야?”

혹시 자기에게 붙인 별명 같은 건가?

그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조용히 그들의 뒤를 쫓았다. 사실상 미국 정보조직에서 보낸 자들이니 자신을 그 미연에게 껄떡거린다는 언론사주 삼세에게 인도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한전생-더 빌런 1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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