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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40화 (140/367)

13-세상은 요지경

○○○클럽은 물 좋기로 유명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클럽인 만큼 물관리가 끝내주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유구한 역사의 민족정론지(자칭 혹은 사칭), ○○일보 사주의 손자 박흥태는 오늘도 안면 있는 집안 자식들과 유흥을 즐겼다.

유흥의 핵심은 결국 여자 아니겠는가? 그들 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여자가 있었다.

“야, 흥태야. 어떻게 됐냐?”

“거참. 좀만 더 기다려 봐. 거의 다 됐으니까.”

박흥태는 재촉하는 놈을 다독였다. 다른 놈들 같았으면 존나 성질 급한 놈이라고 면박을 줬겠지만, 놈은 외조부가 검찰 높은 자리를 지내 검찰 쪽에 끈끈한 연이 있었고, 조부는 한국 재계 서열 30대 안에 들어가는 경영자였다. 한쪽으론 검언유착의 끈끈한 동지이자, 또 한쪽으로는 광고비 주시는 클라이언트 되시겠다. 박흥태가 유화적으로 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좀 더 기다려 보라고 하자 놈이 지껄이길,

“너 요즘 예전만큼 쌈빡하질 않아.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데?”

“이년이 밑바닥에서부터 아득바득 기어 올라와서 그런지 끈질기더라.”

“그런 년이 더 쉽지 않아? 돈이면 뭐든 하잖아?”

“지 몸값 올리려고 하는 거겠지. 요즘 애들 발랑 까진 만큼 똑똑하거든.”

“그년 회사 대표하고는 얘기해 봤어?”

“그거 완전 호구더니만. 그년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더라고. 내가 똑똑하다고 한 말 이해하겠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끼어들었다.

“정 안 되면 슬슬 네가 끼어들어 봐. 백마 탄 왕자님이 위기의 순간에 뿅뿅 등장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걸?”

“이야~ 그거 괜찮네.”

“괜찮긴 지랄로 괜찮아?”

별안간 들린 낯선 목소리에 세 남자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낯선 목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하이~”

천장에 뚫린 구멍에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의 남자가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하더니 뚝 하고 떨어져 테이블 위로 착지했다.

다름 아닌 경완이었다.

“너, 너 뭐야?!”

생각지도 못한 일에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경완은 박흥태만 확인하고 놈의 정수리를 붙잡았다.

“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칼을 쥔 손을 떼어내 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살려줘!”

박흥태가 다리를 버둥거리며 소리를 질렀지만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라졌다.

“FBI다! 문 열어!”

뒤늦게 제프리 일행이 도착해 문을 박차며 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룸에서 사라진 박흥태는 정수리가 붙잡힌 채 하늘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으아악! 아아악!”

“인생은 즐겁구나~ 산 넘어 산~ 병신들이 울창한 이 산에~ 가면 갈~수록 병신들이 나대며 지랄해~”

경완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늘을 날아 근처 건물 옥상에 착지했다.

“너, 넌 누구야!”

드디어 민머리가 될 것 같은 고통에서 벗어난 박흥태가 소리를 지르자 경완은 고개를 갸름하게 기울이며 오히려 되물었다.

“나 몰라요?”

“니가 뭐…….”

두려운 눈으로 경완의 얼굴을 쳐다보면 박흥태는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세상이 무너진 듯 흔들리는 그의 눈빛은 마치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

‘아니지아니지아니지?! 아니지아니지?!’

경완은 그의 표정에 흡족했다.

“내가 누군지 알았다면 내가 왜 왔는지도 알겠죠?”

박흥태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자기는 죄가 없다는 무의미한 변명일까?

“왜 몰라요? 내 다큐 안 봤어요?”

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따위 거 볼 시간에 여자 한 명 더 따먹는 게 인생의 개이득이 아니겠는가?

경완은 놈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소 놀라고 부끄러웠다.

“내가 별로 안 유명한 모양이네.”

그런 줄도 모르고 이경완이라고 하면 대충 어떤 사람인지 다 알 거라고 착각하다니……. 중2병이 따로 없어 쪽팔렸다.

하지만 박흥태는 혹시나 자신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나 겁을 먹고는 격하게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당신은 유명합니다’라고 몸짓했다.

잠시 자뻑의 부끄러움에 젖어있던 경완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프리가 자신을 찾고 있을 테니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미연 알아요?”

끄덕끄덕!

찰싹!

“윽!”

“입이 뚫려 있는데 왜 말을 못 해요? 입이 하나라서 부족해요? 하나 더 뚫어줘요?”

“아, 아닙니다!”

손바닥으로 대가리를 처맞은 박흥태는 국회의원을 쑤시고 원전까지 폭파해 버린 미친놈을 상대로 괜한 발뺌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대한민국에서 한가락 하는 언론사주의 혈육이라지만 같이 어울려 다니는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리 ○○일보가 ‘저희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습니다’라며 으름장을 놓아도 그건 선거철에나 통용되는 이야기고, 그때 빼고는 재벌에 굽실거리고 그 재벌이 좋아하는 정치가에게 굽실거려야 하는 신세에 불과했다.

물고 물리는 관계가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주류 언론은 기본적으로 저널리즘이 아니라 마케팅으로 먹고사는 것이 현실이라 갑보다는 을의 입장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돈 받고 쓰는 기사형 광고 건수를 세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전격적으로 협조할 의사를 보이는 박흥태의 태도에 경완은 흡족해하면서 물었다.

“암튼 이미연 알죠?”

“압니다!”

“누구예요?”

“네?”

“걔 건드리라고 한 놈이요.”

“…오, 오수민이요!”

클라이언트의 신원은 업계 비밀인 것이 관례인 이 바닥이었기에 일순 입이 다물어진 박흥태였지만 말없이 들리는 경완의 손바닥을 보고는 급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손바닥은 용서치 않고 그대로 그의 싸다구를 갈겼다.

쫙!

“악!”

“앞으론 눈알도 대가리도 굴리지 말고, 뜸도 들이지 않고 바로 대답하는 거예요. 알았죠?”

끄덕끄덕.

박흥태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경완은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사건의 전말은 정말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까 외조부가 검찰의 높으신 자리를 역임했고, 조부는 한국 재계 서열 30대 안에 있는 재벌가문의 애새끼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탑여배우 겸 인기 여가수를 따먹고 싶어서 의뢰를 넣었다, 이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구해주러 올 사람 없으니까 조용히 대답해요.”

경완의 경고에 박흥태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긴 경완의 눈치를 살폈다.

이상하다? 이 미친 테러범은 진실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다지 않았나? 자신은 분명 솔직히 아는 대로 다 말했는데 왜 안 보내주지?

생각에 잠겨 있던 경완이 입을 열었다.

“걔랑 나랑 같은 시설 출신인 거 알아요?”

도리도리. 짝!

“모, 몰랐습니다!”

입을 안 열고 고갯짓하다 한 대 처맞은 박흥태가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알았다면 절대 안 그랬을 겁니다!”

아씨, 그 다큐를 좀 봐두는 건데. 아니면 평소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좀 가지던가. 솔직히 여배우 일에 희대의 범죄자가 이렇게 나설 정도로 친분이 있을 줄을 몰랐다.

친분이 아니라면 혹시,

“혹시 속으로 솔직히 둘이 무슨 섬씽이 있어서 이렇게 끼어드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거죠?”

“……입을 다물겠습니다!”

마치 속마음을 읽힌 듯한 경완의 말에 섬뜩해진 박흥태가 솔직하게 말하자 경완은 그래 니가 생각하는 게 뻔하지라는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썸씽 같은 건 없어요. 걔가 나한테 신세를 진 일이 있을 뿐이지. 그런데 고작 그렇다면 내가 왜 이렇게 끼어들어서 지랄인지 궁금하지 않아요?”

“…….”

지랄인 건 본인도 아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전혀 안 궁금한데요?’라고 솔직히 말하면 저 미친놈의 심기를 어지럽힐 것 같았고, 그렇다고 궁금하다고 하면 거짓말했다고 처맞을 것 같아서 갈피를 못 잡는 박흥태에게 경완이 친절하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내가 중국에서 겪은 일 때문에 좀 예민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일도 혹시 누가 내 주변을 건드리며 간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좀 날카로워진 거뿐이에요.”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약간 의아해하는 박흥태의 눈치에 경완이 말을 이었다.

“중국에 초능력자를 죽여서 그 능력을 빼앗는 능력자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 새끼들이 미쳤나, 그놈을 나한테 써먹으려고 했어요. 어때요? 내가 괜히 원전에다 그 지랄을 한 거 아니죠?”

그런 거에 동의를 구하지 말아주세요.

박흥태는 마음속으로 외치면서도 중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알게 되자 뭔가 시원해졌다.

경완이 중국에서 저지른 짓은 항간에는 미친 또라이가 뭔가 꼴 받는 일을 겪어서 미쳐 날뛰었다 수준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지, 그 꼴 받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알려진 바도 없고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박흥태는 알지 못했지만 그 비밀을 지켜주는 것마저 한국은 중국의 화를 식히기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했다. 그쪽도 잘한 거 없으니까 조용히 넘어가자는 제안에 곤란에 빠진 공산당이 내심 좋다고 수긍했다는 건 입 무거운 소수의 사람만 아는 진실이었다.

아무튼, 박흥태가 더는 아는 것이 없어 보이자 경완은 이 지루한 대화를 끝내기로 했다.

“자 그럼 그 애한테 나쁜 짓을 한 거 정산 좀 받아볼까요? 솔직히 아는 거 다 불었는데 갑자기 왜 그러냐고요? 그래서 저도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해줬잖아요. 그거 함부로 발설하면 무서운 사람들이 잡아가는 국가기밀이랍니다.”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았어!

표정으로 외치는 박흥태였지만 위기의 순간일수록 주둥이를 조심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의 조부가 누누이 가르치지 않았던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고. 글줄 몇 개와 말 몇 마디로 잘 먹고 잘살게 된 집안의 자손으로서 뼈에 새겨두어야 하는 교훈이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비밀은 비밀로 갈음했으니까 괜히 무고한 연예인을 괴롭힌 벌은 당연히 따로 갈음해야지 않겠어요? 뭐라고요? 안 들은 셈 치고 싶다고요? 미안하지만 내가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주는 재주는 없어서.”

표정만 보고 속내를 다 읽는 경완의 재주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도 피어났다. 저런 공감능력이 있는데 왜 내 입장은 생각해주지 않는 것인가?

경완이 그의 억울해하는 표정을 보고는 물었다.

“아, 그걸로 혼나기는 억울하다? 그럼 과거에 나쁜 짓을 한 것도 소급해서 맞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 말에 박흥태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억울해서 펄쩍 뛰고 싶었다. 그저 억울하다는 생각만 했는데도 긁어 부스럼이라고?!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요. 존나 두들겨 팼는데 혹시나 착한 사람이면 내가 얼마나 양심에 가책을 받겠어요.”

존나 두들겨 팰 생각인 거냐?! 그런 거냐!

차마 양심이 있는지, 아니면 개소리하다 더 처맞을 것이 우려되는지, 본인이 사실은 착한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던 박흥태의 어깨에 경완의 손이 올라갔다.

“자. 당신이 여태 살아오면서 했던 가장 나쁜 짓이 뭔지 말해 봐요.”

어차피 미연에게 건 수작질의 음습함만 봐도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박흥태였다.

밝은 야경을 배경으로 상큼하게 웃는 그의 미소를 올려다보는 박흥태의 표정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무한전생-더 빌런 1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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