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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42화 (142/367)

13-세상은 요지경

“좋군, 좋아. 생명의 위기를 경험했다는 공감대도 쌓을 수 있고 잊었던 기억도 되살릴 수 있고. 이게 일석이조라는 건가?”

뭐가 일석이조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야!

“으아아아! 사람 살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오수민은 벌떡 일어나서는 소리 지르며 도주를 시도했다.

물론 그러한 시도가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경완이 힉스장 간섭 능력을 이용해서 도망가는 오수민 주변의 중력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의 다리힘을 제대로 조절 못하고 천장에 머리를 처박았다가 바닥에 추락해 쓰러졌다.

경완이 손바닥을 비벼서 손을 뜨끈뜨끈하게 데우며 신음을 흘리는 그에게 다가갔다. 신바람이 나는지 요상하게 개사한 동요를 흥얼거렸다.

“둥글게 둥글게 짝! 둥글게 둥글게 짝! 빙글빙글 돌아가며 맞아 봅시다, 짝! 발버둥 치면서 짝! 비명을 지르며 짝! 랄랄랄라 즐거웁게 처맞자~”

즐거운 가락과 그렇지 못한 가사가 이렇게나 섬뜩할 수가…….

곧 오수민의 입에서 비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악!”

* * *

여윽시 비싼 오피스텔이라 층간소음 문제로 윗집이나 아랫집이 찾아오거나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이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층간 소음이나 이웃집 소음 문제는 이웃과의 문제라기보다는 건설사의 책임임이 확실했다. 오수민처럼 비싼 집에서 살면 그런 문제와는 영영 안녕이라는 말이다.

물론 몇억씩이나 주고 산 집에 층간소음 문제가 심하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건설사들이 원가도 비밀로 하고, 시공도 엉망으로 해놓고, 또 그런 놈들에게 뒤통수를 처맞아도, 집값 떨어질까 봐 쉬쉬하면서 사는 것이 헬조선의 흔한 일상 아니겠는가?

그러다 못 참으면 괜히 윗집에 올라가 칼부림이나 하고 말이다. 정작 칼 맞아야 하는 놈들은 따로 있는데.

“그래, 그 새끼가 부추겼다고?”

“우우, 우우우.”

경완의 물음에 얼굴이 시퍼르딩딩 하게 부어올라서 원래 얼굴은 알아보기도 힘들어진 오수민이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과 볼도 부풀어서 그런지 발음도 제대로 못 했다.

“이야. 세상 참 재밌네. 이래서 내가 직감을 쉽게 흘려버릴 수가 없다니까.”

경완은 세상은 참 요지경이라는 걸 느꼈다. 혹시나 했는데, 혹시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이 나왔으니까.

그의 주마등 학습법의 도움(?)을 받아 미연과 얽히게 된 일의 전후를 필사적으로 떠올린 오수민은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이완호. 일본 이름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튼 ○○클럽에서 오수민을 만난 이완호는 그에게 자신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엔터 관련 일을 한다고 소개했고 오수민은 그 말을 믿었다.

아는 사람의 소개가 없으면 들어올 수 없는 비밀 클럽에서 만났으니만큼 잡상인 같은 놈들은 미리 걸러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 여자가 필요했던 오수민은 이완호에게 괜찮은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일본 여자…… 좋지 않은가? 아랫도리 사정에 완전히 관대한 일본 문화와 순종적인 일본 여자를 생각하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놈은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기분 좋게 술자리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이미연의 이름이 나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누가 이미연에게 대쉬했다가 차였다더라, 아무하고 안 만나는 년이라더라, 그런 년이 침대 위에서는 화끈하다더라.

근거가 없는 카더라라는 썰이었지만 엔터계에서 일한다는 이완호의 말이었기에 오수민은 별다른 의구심 없이 그의 말을 귀에 집어넣었고, 점차 일본녀에 대한 건 잊고 이미연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경완이 물었다.

“그 새끼 어떻게 만날 수 있어?”

“스, 스.”

퉁퉁 불은 입술로 제대로 발음을 못 하는 꼴이 답답해서 경완이 대신 말해주었다.

“스마트폰?”

끄덕끄덕.

경완은 오수민이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잠금해제한 휴대폰의 전화번호 목록을 뒤져 이완호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카톡을 날렸다.

[완호야.]

오수민은 이완호를 그렇게 불렀으니 경완도 그리해 보았다.

늦은 밤이었지만 답장은 바로 왔다.

[네,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어디냐?]

[일본입니다, 형님.]

[그러냐 아쉽네. 오늘 클럽 물이 좋아서 너도 불러줄까 했는데.]

[아이고 정말 안타깝습니다, 형님.]

경완이야말로 아쉽고 안타까웠다. 일본에 있다고? 귀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일본까지 가라고?

그래서 그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포기했으면 당연히 취해야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완호와의 까톡을 짧게 끝내고 오수민에게 폰을 넘겨주며 말했다.

“오늘 아무 일 없었던 거다?”

“우우.”

오수민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퉁퉁 부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경완은 얘가 그냥 너무 맞아서 조건반사적으로 대답하는 건 아닌지 걱정해서 재차 다짐을 받았다. 이러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골치 아팠다.

“나중에 아무 일 없으려면 오늘 아무 일이 없었던 거가 되어야 해. 이해돼?”

협박인 걸 이해하겠니?

“우우.”

다행히 오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일을 시작했으면 마무리하는 게 최고지만, 못한다면 차선책은 마치 그 일을 벌이지 않은 것처럼 만드는 것이니까.

“그래, 이해했다니 다행이다. 그럼 몸조리 잘하고. 뼈는 안 다치고 골병도 안 들었으니까 붓기만 가라앉히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남이 봤다면 양아치 새끼라고 욕설을 한마디 해주었을 장면이었다.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가면 마음의 상처도 없었던 일이 된단 말인가?

확실한 한 가지는 오수민이 설사 오늘의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고 해도 절대 잊진 못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아참!”

흠칫!

얼마나 쥐어박았는지 문으로 향하던 경완이 뭔가 생각나서 몸을 돌리자마자 오수민의 몸이 절로 흠칫 펄쩍 뛰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한마디 할게.”

마법의 ‘그래도’는 일말의 위로를 담은 말도 ‘일단 내 할 말 할 테니 너는 처들어’라고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인생에서 여자는 정말 별거 아니야. 인간은 종국에는 모두가 다 고독한 법이거든. 여자에게 집착하는 남자만큼 꼴불견은 없다는 걸 깨달으면 더 멋있는 남자가 되어 알아서 여자가 꼬일 거야. 넌 재벌이잖아?”

이 정도면 미연이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를 충분히 알아듣겠지?

이것으로 경완은 미역이에 대한 의리는 다 지켰다고 보고 그 자리를 나섰다.

늦은 밤이었다. 보람찬 업무(?)를 마치고 난 그는 문득 출출함을 느끼고는 가장 가까운 상가로 향했다.

문득 뜨끈한 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싶어서 국밥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와중에 제프리가 검은 양복의 무리와 우르르 몰려왔다.

“경완 씨! 대체 어디 있었던 겁니까?!”

“오우~ 빨리 찾았네요?”

경완의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냈다. 결국 자신의 몸에 심은 마이크로칩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 그게 문제에요?! 이러시면 저희 경완 씨 경호 못 합니다!”

“에이~ 제가 무슨 경호가 필요하겠어요? 그냥 무슨 사고를 칠지 걱정되어서 옆에서 딴죽 걸라고 붙여놓은 거겠죠.”

“…….”

팩트 폭행에 제프리는 입을 다물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호, 혹시 벌써 사고 친 건 아니죠?”

이미 누군가 이미연을 음습하게 괴롭히던 원흉인 박흥태를 납치해 폭행한 사건은 보고되었다. 그 일을 저지른 당사자가 경완이라는 건 불 보듯 뻔했지만 제프리로서는 어떻게든 면피할 구실을 원했다.

김준이라면 당당하게 욕바가지 시원하게 쏟아내고 시말서나 경위서를 작성했겠지만 그에 비해 제프리는 좀 구질구질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경완은 제프리가 좀 더 편했다.

“에이, 사고 안 쳤어요.”

이렇게 구라를 까면 믿고 싶어서라도 그렇게 받아들일 테니까. 물론 경완이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박흥태, 오수민. 두 사람 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합의(?)했으니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니 ‘사고’도 발생했을 리가 없었다.

아무 사고도 없었는데 두 사람 얼굴은 왜 그 모양이냐고 따질 사람이 분명 나오겠지만, ‘어쨌든 경완에겐’ 아무 일도 없지 않은가?

경완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기보단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다급히 물어보는 제프리에게 경완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일의 배후에 일본이 있어요.”

제프리의 눈이 황당함으로 껌벅였다.

* * *

각국의 주요 초능력 자원에 대한 회유, 탈취, 사보타주 등의 공작은 현재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초능력을 이용한 기술 탈취도 종종 일어나고 있는 와중이라 경완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식질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적을 꿰뚫어 보고 백발백중으로 총을 맞추는 탐지능력과 저격능력, 일반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도약을 반복하는 능력, 거기에 거짓말을 판별하는 능력 등 정말이지 여러 분야에서 탐나는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체술이나 전술판단력은 그를 포섭해서 얻어낼 수 있는 소득을 생각하면 곁가지에 불과했다.

가장 탐나는 건 초능력 연구와의 시너지였지만 그건 걸출한 연구자 김마리아 소장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요소였다.

“일본이 왜 그랬다고 생각합니까?”

근사한 와인바에서 스테이크를 안주 삼아 와인의 맛과 향을 음미하고 있던 경완의 귀에 제프리의 질문이 들어왔다.

“뭐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후쿠시마일걸요?”

“하지만 장비를 이미 열 대나 사 갔잖습니까?”

제프리가 되물었다.

그의 말마따나 얼마 전 일본에서는 대한 세립 초능력 연구소로부터 스마트 포스필드 장비를 한 대 천억이라는 가격으로 열 대, 무려 1조 원 어치나 사 갔다. 당연하게도 후쿠시마 방사능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구입 과정에서 연구소 측에 라이센스 생산 계약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세립 초능력 연구소 소속의 능력자가 된 김한철이 만들어내는 초능력 자석이 필요했기 때문에 여전히 한국이 갑인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이 거래는 한일 양국의 언론에서는 물론 외신에도 대서특필되었는데 초능력 공학의 경제적 가치는 물론 초능력자의 가치가 클 것이라는 추측에 방점을 찍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스마트 포스필드의 필수 소재, 초능력 자석의 생산자인 김한철의 몸값은 어마어마하게 뛰었으며 그에 대한 외국의 회유나 납치를 막기 위해 국정원이 24시간 경호 중이었다.

아무튼 제프리의 의구심에 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장비 저도 사용해 봤는데, 사용자에 따라서 효율이 천차만별이더라고요.”

아무리 뇌파유도 시스템으로 뇌파를 유도한다고 해도 스마트 포스필드 장비를 사용하는 주체는 결국 초능력자 본인이었다.

기상청에서 중국에서 중금속+방사능 황사가 날아올 것을 예보할 때마다 경완이 태안으로 불려가는 것도 스마트 포스필드 장비 한 대로 대한민국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자가 오직 그 한 명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을 많이 쓰면 되지 않을까?

그렇진 않았다. 이 분야에서 1등인 경완과 2등인 이름 모를 초능력자 사이의 격차는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다.

간신히 중소도시 하나 커버할 수 있는 2등과 제주도 빼고 전부 커버할 수 있는 경완의 능력은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났다.

이는 스마트 포스필스를 사용하기 위해 들어가는 전력비용, 유지보수 비용, 그 이외 감가상각 등을 생각하면 여러 대를 만들어서 운용하는 것보다 더럽고 아니꼬와도 이경완이라는 죄수를, 그 편의를 봐주면서라도 이용하는 편이 확실히 이득이라는 경제적 결론을 도출했다.

무한전생-더 빌런 1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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