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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43화 (143/367)

13-세상은 요지경

물론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경완을 이용할 경우에 절감되는 예산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한 마디로 굳이 법의 형평성을 훼손하면서까지 그래야 하냐고 반대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얼른 후쿠시마를 원상복구 하고 싶은 일본의 입장에선 그것만으로 경완을 포섭하려고 하는 동기로는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제프리는 쉽게 납득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좀 근거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일본 전역에서 방사능 제염 작업이 진행 중인 걸로 아는데요.”

그의 말대로 일본은 일본부흥을 위해서 그간 방사능에 대해서 쉬쉬하던 풍토도 버리고 스마트 포스필드 장비로 열심히 제염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그야말로 일본 전역이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로 인해 부흥에 대한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완은 그에 관해서 좀 비관적이었다.

“후쿠시마 부흥이니 방사능 제염 페스티벌이니 해도 윗대가리들은 그대로잖아요? 중국이 그 두꺼운 낯짝으로 대놓고 뻔뻔한 짓을 한다면 일본은 이지메도 그렇고 우회적으로 찔러보는 것도 그렇고 음습한 수작질을 즐겨한단 말이죠.”

제프리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경완의 말은 다소 인종차별적인 편견이 섞여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국인인 제프리에게 인종차별은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경완은 그런 그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납득이 안 되면 직접 조사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허어~”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할지 막막한 제프리가 한숨을 내쉬자 경완이 팁을 하나 주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엔터 사업을 한다는 이완호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습니까?”

“전화번호를 알려드릴 테니까 한 번 그쪽부터 캐보세요. 아! 혹시 대놓고 전화해서 물어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겠죠? 이거 첩보상황일 수 있어요.”

첩보는 미확인 상태의 지식이라 확인이라는 가공절차를 거쳐야 했다.

제프리는 알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경완이 귀휴날 잠시 종적을 감췄던 사건 이후 김준이 오랜만에 접견을 왔다. 다행히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경완에게는 말이다.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김준 씨는 볼 때마다 더 죽어가는 것 같네요. 휴가 안 가요?”

김준이 우묵한 눈으로 경완을 쳐다보며 대꾸했다.

“휴가 갈 타이밍만 되면 일거리를 던져주는 누구 덕분에…….”

에둘러 말하는 비난에도 경완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또 김준이 듣기에는 궤변인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일해야죠. 일을 잘하면 일이 는다는 법칙도 몰라요?”

자매품으로 돈이 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참으로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문구가 아닐 수 없었다.

일을 잘하면 월급이 올라간다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열심히 일해서 ‘승진’해야 월급이 느는 것이다.

그런데 승진은 그냥 시켜주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승진시켜 주는 본질적인 이유는 일을 더 열심히 해서 돈 벌어오라는 의미였다. 솔직히 승진하면 아랫사람보다 책임도 크고 일도 많아지는데 월급이 같으면 누가 승진하려고 하겠는가?

김준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더는 그에 관해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지금 정신상태는 경완의 궤변에 일일이 대꾸하기엔 많이 피곤했다.

“일단 제가 왜 왔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련히 알아서 말해주실 텐데 재촉할 필요 있나요? 저 그렇게 성질 급한 사람 아니에요. 더구나 우리가 남입니까?”

그럼 남이지 형제냐?

김준은 한 마디 쏘아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경완의 능글능글함에 울컥하기엔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이었다.

“이완호…… 라는 이름이었죠?”

“그렇죠.”

“일본 이름으로 야마모토 시구치라고 합니다.”

일본 오사카 출생의 재일동포로 연예계에서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과거엔 일본 방송을 한국에 수출하다가 요즘엔 한류를 일본에 들이는 통로 역할을 한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자의 뒤에 내각정보조사실이 관여되어 있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내각정보조사실이란 한국의 국정원과 같은 것이었다.

“어떻게요?”

“그건…… 모릅니다.”

“모르는 거예요, 말 안 해주는 거예요?”

예리한 찌르기에 김준은 급히 대답했다.

“정말 모릅니다.”

경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양반 참 거짓말 못 한다고 말이다.

보아하니 사실대로 말하면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예측이 안 되니 입을 다무는 것 같았다.

아마 일본에는 이걸로 딜을 걸려고 하겠지?

그럼 자신도 뭔가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그간 쌓은 신용에도 말을 안 해주는 게 조금 서운? 조금 꼴받? 암튼 좀 신경이 거슬려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는요?”

“……네?”

“아. 이런 건 FBI가 아니라 CIA나 NSA랑 이야기를 해야 하나?”

FBI는 범죄정보 담당이라서 첩보에 대한 대가를 제공하는 일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을 수 있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김준은 그런 뒤통수에 뒤통수를 무는 의심 가득한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때 김준의 머리에 지나가듯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디까지 추측하고 있습니까?”

“뭐 추측이라고까지야…… 그냥 그걸로 일본이랑 딜할 것 같다는 느낌?”

점쟁이네 점쟁이야. 김준은 그제야 경완이 ‘저는요?’라고 뜬금없는 한 마디를 내뱉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 덕분에 일본의 약점을 잡았으니 자기에게도 콩고물을 나눠달라는 뜻이었다.

다행히도 김준에겐 내밀 것이 있었다. 어차피 경완에게 주기로 한 것이 있었다.

“이미연 씨의 미국 진출을 돕기로 했습니다.”

결국 이 일의 시작은 결국 탑스타 이미연이 겪은 부당함 때문이 아니겠는가?

원룸이나 마찬가지인 감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경완이 이렇게 식도락을 즐기는 귀휴시간을 소모하면서 이 일에 끼어든 것은 이미연이 마음에 걸려서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그녀가 다시 문제없이 활동하게 되면 경완도 조금은 안심하고 얌전히,

“왜요?”

경완의 반문에 김준의 상념이 멈췄다. 그는 껌벅이며 말을 이었다.

“네? 당연히 이미연 씨가 미국에 진출하면 한국 연예계에서 받는 부당한 압박을,”

“아니 걔는 걔고 저는 전데요.”

경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더 이상 오수민이라든가 박흥태가 미연을 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아무 일’도 없었다지만 그들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헛짓거리를 지속한다면 경완은 그들의 비대한 간에 감탄하여 얼마나 간이 큰지 직접 확인해볼 용의가 충분했다.

사람이 그렇게 처맞고도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무한전생자인 경완조차 충분히 궁금하게 만들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완이 이 일에 나선 건 이미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어디까지 반응하려는지 간을 보려는 놈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 아닌가?

“어, 음…….”

생각지 못한 상황에 김준은 당황했지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이내 침착함을 찾아 경완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뭘 원하십니까?”

“음. 글쎄요.”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받은 경완이 고민했다. 요즘 너무 몸과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딱히 원하는 바가 없었다.

좀 심심한 것만 빼고 말이다.

“달아두면 안 돼요? 나중에 생각나면,”

“안 됩니다.”

무슨 구멍가게에서 외상하는 것도 아니고 명색이 국가기관인데 달아둔다는 게 뭐냐 달아둔다는 게.

그리고 김준은 경완에게 빚을 졌다는 명분을 만들어 놓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자존심 문제 이전에 위험한 일이었다.

얼마나 위험하냐고 생각하냐면, CIA가 경완이 벌인 경악스런 테러에 건들지 말라는 노골적인 경고의 의미로 부비트랩이란 별명을 지었다면 국정원이 붙인 별명은 노다지라는 좀 더 중의적인 의미였다.

노다지, 가치 있는 광맥처럼 경완의 능력은 굉장한 가치가 있지만, 노다지와 비슷한 발음의 노터치라는 경고처럼 건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건들면 어떻게 어떤 식으로 터질지 모르니까. 누군지 몰라도 노터치가 노다지의 어원이라는 썰을 떠올려서 만든 모양이었다.

아무튼, 두 나라의 정보기관에서 경완을 유의인물로 설정할 정도다. 단순히 그 능력만이 아니라 핵심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이 그를 더 위험한 인물로 만들었다.

김준은 내심 안 된다고 말하면서 긴장했다. 혹여나 경완이 그런 게 어딨냐고 따지면 상부에 문의해 보겠다는 면피성 발언을 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그럼 돈으로 줘요.”

경완의 말에 김준은 내심 안도했다. 혹여나 들어주기 곤란한 요구를 하면 어쩌나 했는데 돈을 요구하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필요해서 받는 게 아니라 성의껏 받는 거니까 알아서 주세요.”

“…….”

돈으로 편하게 갈음하나 싶었더니 요런 복병이? 세상에서 가장 곤란하고 귀찮은 주문이 ‘아무거나 알아서 주세요’가 아니겠는가?

너무 많이 주면 예산 줄어드는 곳이 생겨서 내부적으로 갈등이 생기고, 그렇다고 아예 적게 주면 경완에게 자린고비라고 욕을 처먹을 수 있었다.

왜 돈을 주고도 욕을 처먹냐 싶겠지만 인간에게 그런 쓰레기 같은 본성이 있는 걸 어쩌겠나?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받을 사람의 욕심을 가늠한 후에 거기서 조금 넉넉하게 주는 것인데, 문제는 경완이라는 종자의 유별남에 있었다.

이 변덕쟁이는 과연 얼마를 받아야 섭섭해하지 않을까?

김준은 문득 왜 자신이 이런 걸 고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렇게 말했다.

“상부에 전달하겠습니다.”

“아! 이번에는 노동장려금 형태로 주지 말고 제가 지정하는 공익재단에 다이렉트로 꽂아주세요.”

“……혹시 탈세입니까? 아니면 재산 도피?”

김준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보자 경완의 얼굴엔 보기 드문 황당함이 드러났다.

“뭔 소리예요? 제가 그렇게나 쓰레기로 보여요?”

“아니요.”

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고 괴팍하고 비틀린 구석이 있지만 돈 몇 푼 빼돌리겠다고 재단까지 이용할 것 같은 인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재단입니까?”

“제 자금흐름 추적 안 해봤어요?”

당연히 민간인 사찰을 할 것이라는 편견에 김준은 한숨이 푹 나왔다.

“저희 그렇게 막나가는 기관 아닙니다. 긴급하게 개인정보 조회를 해도 그만큼 신속하게 당사자에게 사유를 전달합니다. 더구나 경완 씨는 명색이 미국 시민권자지 않습니까?”

“한국 검찰은 거의 민간인 사찰 수준으로 민간재단 입출금 내역을 은행에서 받아보고도 당사자에겐 통지도 안 해서 법 집행 기관은 다 그러나 싶었죠.”

“하, 하.”

김준이 어색하게 웃었다. 한국의 정치검찰이 특정 정치세력의 약점을 잡기 위해 무단으로 거의 민간인 사찰이나 다름없는 짓을 벌인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담당하는 이경완이 한국에 살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 소식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모르신다니 말씀드릴게요. 제 생활비, 용돈 정도 빼고 거의 다 그 재단에 넣었어요.”

“…….”

“아, 진짜 탈세 같은 거 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공익재단이라고 하면 사회환원, 공익을 위해 활동한다고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 모든 제도는 허점이 있고, 인간이란 그 허점을 이용해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법을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존재였다.

특히 대기업 같은 곳에서 사회환원을 명목으로 공익재단을 설립해도 그러한 공익재단이 재벌님들 우회상속, 탈세 및 유흥을 위한 자금 유용에 이용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경완이 이어서 설명했다.

무한전생-더 빌런 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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