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44화 (144/367)

13-세상은 요지경

“불씨 재단이라고 경제적 곤궁에 빠진 공익재보자들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에요.”

“그래요?”

김준의 눈에 놀라움으로 커졌다.

세상에! 여태 그가 관찰해왔던 경완의 행동 중에 가장 이타적인 행동이 아닐까?

경완은 왠지 기분이 나빴지만 마음 넓은 자신이 이해해 주기로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제 영치금 한도를 넘는 금액은 죄다 거기로 보내주시면 돼요.”

그때 김준은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그 불씨 재단이라는 곳은 누가 운영하나요? 혹시 경완 씨가 주인이라는 건 아니죠?”

“에이. 공익재단에 주인이 어딨어요? 그리고 제가 주인이면 제대로 운영이나 되겠어요? 지금 재단을 관리하고 계신 분이 있어요. 김준 씨도 아실걸요? 강우빈 감독님이라고. 기억나요?”

“어? 그분이요?”

“네, 제안은 그분이 먼저 하셨어요. 이야기 들어보니까 참 공감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전 재산을 다 집어넣으신 거예요?”

“어차피 쓸 일도 없잖아요?”

경완의 말에 김준은 이렇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완 씨는 밖에서 자유롭게 살 생각은 없나요?”

그러자 경완은 피식 웃었다.

“밖에 있는 사람 중에 누가 자유로운데요?”

“……감옥에 있으면 행동에 제약이 있잖아요.”

“밖에선 제약이 없나요? 회사 안 짤리려면 꼬박꼬박 출근해야죠, 벌금 안 내려면 교통법규 잘 지켜야죠, 남자는 군대에 끌려가죠, 저는 도대체 어디에 자유가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물론 감옥보다는 자유롭겠죠. 하지만 저는 유의미한 차이를 못 느끼겠네요.”

“…….”

그야 댁이 감옥을 원룸처럼 여기고 일 있을 때마다 밖에 싸돌아다녀서 그렇지. 한 일 년쯤 꼬박 독방에 박아두면 호강에 받혀서 요강에 똥 싸는 줄 모르는(?) 경완의 생각도 수정되지 않을까?

경완이 그의 표정을 지적했다.

“표정이 어딘가 불순해 보이는데요.”

“……그냥 감옥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요.”

김준은 얼른 변명을 지어냈지만 경완에게 면박만 당했다.

“어이구! 밖에 가난한 노인네들이 살기 힘들어서 좀도둑질하고 감옥에 들어오려는 거 몰라요?”

아무튼, 미국이 경완이 물어다 준 이완호, 아마모토 시구치에 대한 일정 수준의 첩보료를 그가 원하는 대로 불씨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연이 경완을 접견 왔다.

탑스타가 교도소로 희대의 테러범을 접견하러 온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넌 파파라치가 무섭지도 않냐?

“오빠랑 나랑 무슨 사이인지 다들 아는데 뭐.”

“무슨 사인데?”

“힘든 시간을 공유한 사이?”

고개를 갸웃하는 미녀 탑스타를 향해 경완이 혀를 찼다.

“쯧쯧.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졌구나.”

“그럼 오빠가 말해 봐.”

가늘어진 눈으로 항의하는 그녀에게 경완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게 일축했다.

“네가 좋다고 달려드는 사이지.”

정말이지 희대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탑여배우가 희대의 테러범을 좋아한다? 스캔들도 이런 스캔들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경완의 적나라한 말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어머. 잘 알고 있네.”

“너 나 더 욕먹게 하려고 작정했구나.”

“내가 뭘 어쨌는데?”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 네가 진짜 날 좋아하리라고 생각하겠냐? 아니지. 내가 어린 시절부터 널 가스라이팅해서 세뇌했다고 생각하겠지.”

남부러울 것이 없이 남자를 골라잡을 수 있는 탑여배우가 절세미남도 아니고 희대의 범죄자에게 푹 빠져있다는 상황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악당이 악당 짓했다는 식의 말밖엔 없었다. 그게 탑여배우가 희대의 테러범을 좋아한다는 말보다는 납득이 쉽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녀의 대꾸가 가관이었다.

“그럼 나한테 동정표가 더 많이 몰려오겠네.”

이 정도로 뻔뻔함을 보이자 경완도 살짝 질릴 수밖에 없었다.

“너 혹시 정신병 있니?”

“오빠! 여배우에게 그런 말을 하면 돼?!”

“아니 좀 그렇잖아. 솔직히 연예인 중에 공황증세라든지 여러 가지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도 많고 말이야. 그런데 너라고 예외일까?”

“나 지극히 정상이거든.”

원래 바보는 자신이 바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바보라서 본인이 바보라는 걸 모를 수도 있지만 본인이 바보라는 점을 알면 그 사실을 결코 인정하기 힘들게 된다. 바보라서 서러운데 바보 소리까지 듣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저었다.

“그래, 너 정상이라고 인정할 테니까 용건이 뭔지 말해봐.”

“내가 용건이 있을 때만 찾아오겠어? 감사인사하러 왔지.”

“뭔 감사?”

경완은 시치미를 뚝 뗐지만 그녀에게 통하진 않았다.

“고마워.”

“그러니까 뭐가?”

“이제 다시 일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 그거 오빠가 한 일이지?”

“아니, 내가 연예계에 무슨 인맥이 있다고 그러겠냐?”

경완은 끝까지 시치미를 뗐지만 그녀에게 통하진 않았고,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아무튼, 동시에 미국에서도 일이 들어왔어. 에플릭스가 아니라 할리우드더라. 대표님도 놀라던데?”

그 말에 경완도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의 지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려 했다가 식겁할 뻔했으니 미국에서도 챙겨주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축하한다. 감사인사도 받았으니까 이만 가라.”

“정말? 후회 안 해?”

“안 하는데?”

“이래도?”

미연은 챙겨왔던 바구니를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바구니에서 나온 것은 플라스틱통에 잘 밀봉된 치킨이었다. 그에 더해 드라이아이스로 차갑게 식힌 캔맥주까지.

“후회한다.”

경완의 즉각적인 변화에 미연은 쿡쿡 웃었다.

경완은 캔을 따고 닭다리를 들며 말했다.

“냄새라도 풍기지. 그랬으면 더 반겨줬을 텐데.”

“치킨을 반기는지 날 반기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당연히 치킨이 더 반갑지.”

그 한 마디에 그를 보는 미연의 눈은 가늘어졌지만 그는 그저 치맥에 열중할 뿐이었다.

* * *

“다, 다녀왔니?”

“대표님, 제 눈치 좀 그만 보세요.”

경완을 접견하고 회사인 JB엔터로 돌아온 미연에게 김길상 대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걱정돼서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중소엔터 나부랭이 취급도 못 받던 회사가 이렇게 커질 수 있었던 저변에는 그녀의 역할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회사의 기둥인 그녀와 희대의 원전 테러리스트라니.. 이건 회사가 한 번에 날아갈 정도로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반적인 대표라면 당장 무슨 수단을 강구했겠지만 김길상은 미연마저 인정한 호구 중의 호구일 정도로 마냥 사람 좋은 사람이라 뭐라 강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기껏 감정에 호소하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미연아. 그 사람과 더 이상 얽히면 안 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며? 그 사람은 평생 교도소에서 있을 사람이야. 자칫 네 커리어도 망가진다고.”

그러자 미연은 고요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표님. 세상이 변하고 있어요.”

“……?”

왜 뜬금없는 소리일까? 궁금해하는 김길상 대표를 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제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세상 어느 죄수가 휴가받듯 교도소 밖을 나돌아다니고 귀휴비라고 돈도 받고 그러겠어요? 그 오빠가 받는 편의가 상식적이에요?”

“그건 아니지.”

김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왜? 세상은 점점 초능력이 중요해지고 있으니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경완이 조언했던 것처럼 비싼 년이 되기 위해서 틈틈이 책도 읽으며 교양도 쌓았다. 그렇게 공부도 하다 보니 느낀 것이 있었다.

초능력이 등장하기 이전의 세상에선 사람들의 능력은 죄다 고만고만했다. 사실상 사람들 사이에 큰 격차를 만들어낸 것은 쌓아놓은 부와 재산이었다.

사마천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질투하고, 만 배 많으면 두려워하고, 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하고, 만 배가 많으면 그의 노예가 된다고.

이는 빈부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힘의 격차, 인간관계의 구성을 설명하며, 동시에 재산이란 것이 인간의 힘과 능력을 외연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 재산은 곧 능력이며 자본주의란 그 외연적인 힘을 인정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었다.

돈이 곧 힘이니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추구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힘을 추구하는 본능이 없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초능력이 등장했다. 초능력은 인간 개인의 능력 차이를 엄청나게 벌려놨다. 초능력 이전에는 성인의 평균 신체능력치가 평균에 쏠려 있다면 초능력이 생긴 이후에는 그 능력이 천차만별이 되었다. 통계학적으로 표준편차가 커졌다는 말이다.

여태까지는 다수의 지지를 받는 공권력이 그 다수의 힘을 빌려 질서를 유지했지만, 초능력이 만연해질 미래에는 그 다수를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능력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공권력은 유명무실하게 되는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고작 초능력 하나만으로 그렇게 될까 싶겠지만 이미 초능력이 없어도 지구상엔 그런 사례가 있었다. 공권력 따위 길가는 똥개 취급을 하는 남미 마약 카르텔을 보라. 자기 아들 체포했다고 정부랑 전쟁을 벌이고 결국 놈의 아들을 풀어주는 것으로 굴복한 정부가 있지 않은가?

정부조차 힘이 없으면 그런 꼴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미국은 정말 똑똑했다. 히어로 컴퍼니 같은 걸 만들어서 자칫 카르텔화 될 수 있는 초능력자들을 사회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닌가?

“두고 봐요. 앞으로 강력한 초능력자의 지지 없이는 사회질서가 무너지는 세상이 올 테니까요.”

“그거랑 그 사람이랑 무슨 상관이 있니?”

“그런 세상이 오게 되면 오빠는 죄수라는 딱지 따윈 언제든 떼어낼 수 있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도 과연 사람들이 그를 좋게 생각할까?”

“요즘 위버멘쉬라는 곳이 논란되는 거 보세요. 우리나라같이 치안 좋은 나라라면 몰라도 치안이 안 좋고 혼란스러운 곳에선 그곳의 질서를 잡아 이미 인정받는 단체가 됐잖아요. 그들도 그렇게 이미지 세탁을 기가 막히게 하는데 오빠라고 불가능하겠어요?”

“그래도……. 범죄자잖니.”

“그 범죄로부터 절 구해준 게 바로 그 오빠예요.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경완 오빠에게는 한 가지 기질이 있어요.”

“그게 뭔데?”

“경완 오빠에겐 협객의 기질이 있어요. 눈앞에 쓰레기 같은 놈들이 쓰레기 짓을 하면 가만 놔두지 않죠.”

“협객? 미연아, 현실과 무협지는 구별을 좀 해야,”

“대표님. 제가 여태 흰소리한 적 있어요?”

“……없지…….”

미연이 눈썹을 올리자 김길상은 기가 죽었다.

사실 그와 미연의 관계는 소속사 사장과 소속 연예인의 관계라기보다는 매니저와 연예인의 관계에 가까웠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김길상은 미연의 판단력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마 그녀가 아니었다면 진즉 사기 따위를 당해서 망해버렸을 것이다.

그렇다. 그녀에게 김길상이 은인이듯, 그에게도 그녀는 은인이었다.

미연이 말을 이었다.

“높으신 분들도 생각이 많을걸요? 그런 세상이 오게 되면 어떻게든 경완 오빠의 도움을 받고 싶어지거나 오빠에게 문제 해결을 맡기고 싶어지겠죠. 지금부터 오빠를 담당하는 담당자를 붙여둔 게 다 그때 인정에 호소하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럼 더욱 가까이하면 위험한 거 아니니?”

무한전생-더 빌런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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