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46화 (146/367)

13-세상은 요지경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보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네요.”

“그런데 경완 씨는 뭐가 걱정되는 걸까요?”

“흐음.”

걱정이라. 마리아 소장의 눈엔 경완이 걱정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일까?

오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을 향한 그녀의 집요한 관찰력을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경완은 손끝으로 귀찮아서 깎지 않은 턱수염을 문지르며 순식간에 뇌를 스쳐 지나간 자신의 상념을 되돌려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걱정이 맞았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우려를 솔직하게 말했다.

“시대가 격변하면 원치 않아도 휩쓸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제가 본 경완 씨는 거기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요.”

“에헤이. 무슨 말씀을. 저도 맞으면 아프고, 간질이면 웃는 사람이라고요.”

자극을 하면 반응을 한다. 사람이기 이전에 생물이면 당연한 거 아닐까?

“아하. 그러니까 본인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겠다는 거죠?”

“누가 제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후후.”

경완의 반박에 마리아는 조용히 웃었고 그 미소에 경완은 머릿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썅년.

왜 누가 그를 건드리는 걸 먼저 생각하지 않고 왜 그가 사고 치는 것부터 우려한단 말인가?

누가 건들지 않으면 조용히 소리소문없이 살아갈,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바로 자신이 아니냔 말이다.

그때 나탈리가 두 사람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마리아가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충분히 둘러봤어요?”

“연구실이 참으로 흥미롭더군요. 유럽에 있는 저희 연구소만큼이나요.”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경완 씨가 부디 저희 연구소에도 방문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싫어요.”

경완의 대답은 이미 예상한 바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마리아를 보았다.

“그래서 제가 마리아 소장님과 협약을 맺은 거 아니겠어요?”

“무슨 겸양의 말씀을. 위버멘쉬 쪽에서도 참신한 연구와 그로 인한 성과가 많아서 기대가 돼요.”

“저희는 초능력과 초능력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소장님처럼 초능력 공학이라는 분야는 약해요.”

“초능력 공학이라고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기존 학문 간의 융합에 불과해요. 결국 초능력에 대한 탐구 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분야죠.”

두 여자가 서로의 얼굴에 금칠하는 광경에 피곤해진 경완이 끼어들었다.

“이제 실험이 끝났으니 가 봐도 돼요?”

그가 끼어들자 두 여자는 그를 힐끗 보더니 다시 저들끼리 말을 이었다.

“경완 씨의 능력을 연구에 사용할 수 있다니 참으로 부러워요.”

“부럽긴요. 그나마 장치 테스트라서 경완 씨도 받아들인 것이지 본인의 능력과 역량을 조사해 보자고 하면 당장에 태만한 작태를 보일걸요? 말도 지지리 안 들을 거고요.”

“그 정도라도 대단하지 않나요? 우리 위버멘쉬의 회원들은 초능력에 간섭하는 장비 자체를 싫어해요. 장비의 도움을 받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고요. 장비에 의존하면 순수한 능력의 발전에 방해된다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좋은 장비가 안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생물이고 초능력과 시너지가 좋은 장비는 아직 나오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경완 씨의 경우를 생각하면 결국 장비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죠. 경완 씨의 장비 가동률은 다른 사용자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수준이지만, 그 차이를 줄일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할 수 있다면, 초능력을 보조해 주거나 확장해 주는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대세가 될 거예요.”

경완은 자신이 꿰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건 둘째 치고 귀에 거슬리는 용어가 들려와서 미간을 좁히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소장님. 장비 가동률은 또 뭔가요?”

“어~ 뭐라고 할까. 일종의 싱크로율이에요. 사용자가 초능력 장비를 어느 정도 효율로 가동하는 지표죠.”

그러면서 그녀가 첨언하길 경완이 장비 하나로 한국 지역 대부분에 걸쳐 황사를 막아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한다. 장비의 내재적인 한계를 설계 의도에 가깝게 뽑아낸다나?

다른 초능력자들이 잘못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본인의 초능력을 끌어내는 데 급급해서 오히려 장비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개념이 단순히 자신과 밀접하게 관련 있어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 난 그런 얘기를 처음 듣죠?”

진즉에 들었다면 좀 적당히 할걸. 괜히 또 이렇게 주목받을 이유만 하나 늘리다니. 때로 과도하게 잘나서 여러 일에 얽히는 것보다는 힘숨찐이 차라리 더 나을 때가 있었다.

그런 경완을 향해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며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경완 씨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설명이 길어지면 귀찮다고 빨리하고 가고 싶다고 한 적도 적지 않잖아요.”

“…….”

경완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분명 자신의 잘못이 맞았다. 하지만 솔직한 감정이 뿜어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은 이러했다.

이년이.

“다음부터 그런 중요한 건 쓸데없이 긴 잡소리 사이에 끼워 넣지 말고 두괄식으로 가장 먼저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글쎄요. 저는 제가 해주려고 했던 이야기가 쓸데없는 잡소리라고는 생각 안 하는데요. 다 경완 씨를 위해서 큰맘 먹고 연구 기밀까지 말해준 거라고요.”

대학도 못 들어가진 재소자에게 첨단 초능력 공학에 대한 복잡한 이론지식까지 일일이 설명하는 게 말이 되냐 이 미친년아.

경완이 마리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탈리는 그런 두 사람을 아주 흥미로운 시선으로 관찰했다.

만일 경완이 유체이탈을 해서 제3자의 시선으로 보았다면 또라이와 썅년과 의뭉스런 년이 쌩쑈를 한다고 혀를 찼을 것이다.

“하아~”

경완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괴짜들을 싫어하진 않지만 이럴 땐 피곤했다. 감성 포인트가 달라서 그런지 비꼬는 말도 제대로 안 먹혔다.

그런 경완을 달래고자 마리아가 한마디 했다.

“최신 VR기기를 새해 선물로 준비했어요.”

“감사합니다.”

아무리 썅년이라도 고마운 일에는 솔직히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적어도) 이 한국사회의 트랜드였다. 죄 없는 민간인을 수없이 학살한 독재자에 대해서도 공과(功過)는 구분해야 한다지 않는가?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리 위인이라고 해도 완벽하지 않고 천하에 다시없을 씨발놈이라고 해도 잘한 일이 전혀 없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행동으로 평가받는 법. 잘한 일에는 잘했다고 우쭈쭈 해주고, 못한 일에는 욕을 처먹여줘야 사회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애들 키울 때 다들 그러지 않는가? 하물며 개새끼를 조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완은 이 연구자로서 능력이 없었다면 과연 어찌 살았을지 궁금한 여자가 부디 사회화가 잘 되어 경완 본인에게 잘 대해줬으면 했다.

“추가로 VR게임도 잔뜩 넣어놨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경완은 넙죽 고개를 숙였다.

* * *

해가 바뀌고 봄이 지났다. 어느새 마리아 소장이 사줬던 VR게임을 다 하고, 기존의 게임 중에서 다회차를 할 만한 것도 다한 경완은 심한 현타에 빠져 있었다.

현타와 함께 몰려오는 건 심심함이었다. 심심함이 어찌나 심했던지 온몸을 비틀 정도였다. 오죽하면 마리아의 연구소에 요즘엔 뭐하나 구경하러 갈 생각까지 했을까?

하지만 그녀가 위버멘쉬와 손을 잡은 시점이라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생각은 곧장 폐기했다. 되도록 위버멘쉬와 거리를 벌리는 것이 덜 귀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문득 미연이를 괴롭혔던 놈들의 얼굴과 의문이 떠올랐다.

왜 놈들의 집안은 가만히 있을까? 명색이 한국을 주름잡는 기득권 세력이지 않은가?

그는 주기적으로 그를 접견하러 오는 김준에게 그 얘기를 했다가 그만 그로부터 ‘이런 멍청이가 있나?’라는 시선을 받고 말았다.

“경완 씨는 본인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전혀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개또라이 테러리스트라고 하던데요?”

“겨우요?”

경완의 대답에 김준은 어이없어하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중국 상무위원들이 그리되고 나서 경완 씨는 진짜 농담이 아니라 리얼 언터처블이 되었습니다.”

“제가요?”

“네. 경완 씨가요.”

그 삼엄한 호위를 뚫고 무려 중국 상무위원을 병신으로 만들어버린 인간이 바로 이경완이라는 범죄자였다. 과연 그럴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오죽하면 미국에서도 경완을 미국으로 그만 부르자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 그가 작정하고 미쳐서 사고를 치면 감당이 힘들다는 것이다.

“어쩐지. 요즘 일이 너무 없다 했어요.”

슬슬 이맘때쯤 미국에서 독심술 발휘 요청이 올 때였는데 여태 잠잠한 이유가 그러한 의견이 나와서라니.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 사람들 혹시 저에게 수상한 짓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떳떳한 사람에겐 아무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경완에겐 자신을 아무 이유 없이 두려워하는 자들은 뭔가 수상한 짓을 도모하는 자들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억측일 수도 있지만 경완 나름으로는 합리적 의심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김준은 큰일이라도 날듯이 펄쩍 뛸 뻔했지만, 오히려 과민반응하면 의심만 깊어지게 할 뿐이라는 생각에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했다.

“수상한 짓이라기보다는 평소에 경완 씨의 능력을 이용하는 일을 많이 비판하던 이들이기 때문이겠죠. 수사를 전과자에게 맡길 순 없다는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나 꼰대나 있기는 마련이었으니까.

“제가 그렇게 무도한 사람은 아닌데 말이죠.”

원리원칙대로 했다고 앙심을 품을 정도로 속 좁진 않았다.

김준이 한 마디 했다.

“법이란 규칙을 무시하며 엄청난 폭력 사건을 일으킨 자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겠죠.”

“아니, 나보다 법 없이 살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래요?”

경완은 억울했지만 김준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었다.

“교도소에서 지내는 사람이 하니 퍽이나 설득력이 있군요.”

재미교포 출신치고 매우 훌륭한 반어법이었다. 역시 그의 혈관에도 풍자와 해학의 피가 흐르는가?

“세상이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고요.”

경완은 어깨를 으쓱하며 항변해 보았지만 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세상의 불합리를 마주하고서도 규칙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변명은 그만하시죠.”

“원래 개인과 세상은 갈등하고 서로에게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김준은 눈을 감았다. 경완의 궤변이 시작되면 한 귀로 흘려버리는 편이 정신건강에 유리했다.

“……인 겁니다. 아시겠어요?”

“알겠습니다만 슬슬 화제를 바꾸죠.”

경완의 화술에 말려 어느새 질질 시간을 끌게 된 김준은 간신히 오늘의 용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드디어 미국에 가는 건가요?”

경완이 기대에 찬 어조로 물었다. 저번의 롸끈했던 포상을 생각하면 데이비드 팀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그 나이대에, 그 지위에 있으면서도 꼰대가 되지 않기란 쉽지 않을 텐데 참 대단한 양반이었다.

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 이번에 부탁은 한국에서 진행되는 일입니다.”

“뭔데요?”

“한영미 씨 기억나십니까?”

“스텔라로 개명하신 분 말이죠?”

무한전생-더 빌런 1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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