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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47화 (147/367)

13-세상은 요지경

김준이 설명하길, 미국은 경호에 어려움이 있어 잠시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그녀가 한국에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뭔가 일이 좀 안 풀리는 모양이죠?”

“문제의 원인이 미국 안에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김준의 말에 경완은 마인드 브레이커라고 불리는 의문의 정신계 능력자를 떠올렸다.

타인의 정신을 제압해서 그 육체를 자신의 것처럼 조종하다니…… 가진 것이 많은 상류층의 입장에서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언제 자신의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홀라당 빼앗아 갈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가 남미의 무법지대에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이라 함부로 뭔가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CIA 같은 곳에서 남미에 장난질 많이 치지 않았어요?”

블랙옵스, 이른바 흑색 작전.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절대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작전을 칭한다.

미국에 들어오는 마약의 대부분이 남미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했고 수많은 장난질이 들어갔다. 하지만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고 오히려 통제를 벗어나 악화되기 일쑤였다.

당연하게도 남미의 마약 생산은 미국의 대(對) 남미 정책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약 문제에 대한 책임에선 미국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정신계 능력자인 만큼 몸이 약할 테니까 폭격이나 미사일, 하다못해 대물저격총으로 초장거리에서 한방, 아. 아직 소재지를 못 찾았구나.”

경완이 말을 잇다가 왜 아직 해결을 못했는지 스스로 답을 찾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자문자답하는 경완의 모습에 김준은 그저 피식 실소를 머금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에 대해선 저는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원래 현장에서 뛰는 사람에게 다 알려주는 윗대가리는 많이 없어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거죠.”

“그리고 저희 미국은 타국의 주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습니다.”

“왜 이래요? 미국이 한두 번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본인도 이미 인정하고 있지 않아요? ‘함부로’ 침해하지 않아도 ‘신중히’ 침해하고 있다고요.”

“…….”

그 말에 김준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경완은 본인이 대화를 진행시켰다.

“그래서 그 여자가 한국에 들어오는 거랑 저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전미 초능력 협회의 공식적이면서도 비공식적인 요청이 청와대에 들어갈 겁니다. 당분간 경완 씨에게 한영미 씨에 대한 경호를 도와달라고 말이죠.”

“오우~ 청와대라. 참 거창하네요. 그런데 저 같은 재소자가 그런 일을 해도 돼요?”

“그래서 공식적이면서도 비공식적인 요청이라고 한 겁니다. 서류상 경완 씨는 여기를 나간 것이 아니게 되니까요.”

경완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다른 사람인 척 위장해서 잠시 경호 업무를 보라는 뜻이었다. 따로 지어진 독방에 생활하고 있기에 어렵진 않은 일이었다.

경완이 이어서 물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국내에 들어올 수는 있어요?”

들어오면 다시 감옥에 갇혀야 하는 거 아닌가?

이에 김준은 쓰게 웃었다.

“한영미 씨의 말대로 이미 윗선에선 다 정리가 된 모양입니다.”

아무리 국익을 위해서라지만 그는 어느 정도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 찜찜함을 완전히 벗어던질 순 없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경완은 잠시 한영미의 경호원이 되기 위해 교도소를 나왔다. 솔직히 귀찮았지만 자신을 향한 중국의 꼬장을 전면에서 탱킹하고 있는 미국의 성의를 생각했다.

뭐, 수수방관했다가 미국에서마저도 밉보여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면 더 피곤해질 것 같기는 했으니까.

평소에 날백수 같은 분위기의 경완이라 할지라도 검은 정장을 입히고, 인이어를 귀에 끼우고, 검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머리까지 왁스를 발라 쫙 넘기니 누가 봐도 보디가드 같았다.

그런 그의 옆에 똑같이 경호원 차림을 한 제프리가 따라붙었다.

그는 경완 옆에서 푸념했다.

“왜 하필 접니까. 전 경호훈련도 받은 적 없는데…….”

“경호하라고 붙인 게 아니라 절 감시하라고 붙인 거잖아요.”

“그걸 누가 모릅니까? 경호가 골치 아파서 그런 거지.”

항상 경호대상보다 날이 서 있어야 하고 사방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경호 대상보다 빨리 일어나고 늦게 자야 하는 건 물론이고 밤새 불침번을 서야 할 수도 있어요.”

“난 안 함.”

이어진 제프리의 설명에 경완은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런 그를 보며 제프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역할은 결국 경완을 감시하는 것이니 팔자에도 없는 경호원 생활을 하진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신이 여기에 왜 있어요?”

차에서 내린 한영미가 경완을 보자마자 대뜸 물었다. 평소 그녀의 태도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시비 거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못 들었어요?”

“……한국에서 경호 지원이 붙을 거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게 당신일 줄은 몰랐죠.”

“저도 얼마 전에 들었어요.”

한영미는 대꾸하는 경완을 물끄러미 보더니 물었다.

“왜 받아들였어요?”

“신세 진 게 있어서.”

그 신세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중국에선 연신 한국 때리기와 이경환 인도 요청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사실상 미국에서 이를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완의 말에 한영미는 그의 얼굴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팩 돌렸고 그녀의 경호원이 경완에게 다가왔다.

이미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한영미를 호송하던 남녀 이인조 중 남자 쪽이었다.

[당분간 잘 부탁합니다.]

그는 경완에게 인사를 하며 이번에야말로 이름을 알려주었다. 남자 쪽은 켈리 아담스, 여자 쪽은 넬리 아담스.

부부 사이로 둘 다 강력한 신체강화능력자였다. 방탄 능력과 재생능력, 그리고 출중한 초능력 용량으로 전미 초능력 협회에서 유망한 인재로 인정받고 있었다. 연예인 기질이 좀 있었다면 히어로가 됐을 거라나?

경완이 물었다.

[얼마나 있으실 예정인데요?]

[일단 일주일 정도 있을 생각입니다. 더 길어질 수도 있고요.]

[오!]

경완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럼 일주일 동안 밖에 나와 있는 건가? 개꿀인데?

그런 그의 내심을 읽었는지 제프리가 주의를 주었다.

“경완 씨가 밖에 나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즉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선글라스만으로는 유명한 경완의 얼굴을 다 가리기 불충분했으니 제프리의 말은 사람이 있는 곳에 되도록 나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경완이 대답했다.

“그럼 마스크도 써야겠네요.”

“그 정도면 괜찮겠죠.”

제프리가 첨언한 다음 켈리와 경완의 거취에 대해서 상의했다. 경호에 방해되지 않으면서도 유사시에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는 어디인지 서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대화의 결과는 제프리는 물론 경완까지 흡족하게 했다. 그들은 일단 한영미의 경호 자산에서 일종의 덤 같은 취급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고, 책임조차 없었다.

그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다는 애당초의 명분과 부합하는 형태였다.

다만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 여자는 위험하다고 이 나라까지 피신했으면서 왜 얌전히 숨어 있질 못하고 이리 싸돌아댕기는 거야?”

경완이 조수석에서 내리며 푸념했다.

제프리더러 들으라고 한 이야기인데 그만 당사자의 귀에 들어갔다.

“바짝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언제 벌어?”

그녀가 뾰족한 목소리로 따지듯 말하자 경완은 귀가 아파서 고개를 움츠리고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심정으로 얼른 발을 놀려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어디 졸부집 막내딸 같은 스타일의 한영미가 그런 그를 보며 씩씩거렸지만 넬리가 다가와 몇 마디 속삭이자 진정하고는 흥! 콧방귀를 끼고를 일정을 소화하러 움직였다.

인간의 정신을 마음대로 만져대는 초능력자를 피해 한국까지 피신 온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한국에서도 돈을 벌었다.

당연하게도 그 고객은 돈 많은 거부(巨富)들이었다.

의료법 위반 아니냐고요?

그래서 이렇게 몰래(?) 하는 거 아니겠는가? 아무리 초능력이 사람 생명 살리는 데 유용하다지만 의료기득권은 사람 생명보다는 자기네 밥그릇이 먼저였다.

“여윽시 사이비 교단의 성녀. 법 따위 엿 먹어라 이건가?”

“댁한테는 그런 소리 할 자격 없거든!”

빼액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향해 경완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었는데 왜 그리 눈에 불을 켜고 내 말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 말은 절대로 그녀를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닌 경완의 진심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리도 자신이 입 밖으로 꺼내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한단 말인가?

그녀는 앙칼지게 말했다. 그녀에게도 나름 논리가 있었다.

“듣지 말라고요?! 그럼 말을 하지 말든가!”

지가 말을 해놓고 듣지 말라니, 이게 말이야 방귀야?

경완은 그녀의 논리를 수긍했다.

“눼예~ 눼예~ 주의하겠습뉘드와~”

“이익!”

그의 건성인 반응에 그녀는 열불이 치솟았고 제프리는 끼어들기 싫어서 남인 척 거리를 벌렸다.

그런 두 사람의 실랑이는 의뢰인이 보낸 사람이 도착하자 멈췄다.

“스텔라 씨,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무리 열불이 치솟아도 프로의식은 있었던 것인지 그녀는 그저 경완을 한 번 째려보고는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경완와 제프리는 문 앞에서 대기했다.

“왜 자꾸 자극하고 그래요?”

제프리가 조용한 목소리로 불만을 제기했다.

경완은 순순히 사과했다.

“내가 잘못했어요.”

“…….”

잘못했다는데 더 무슨 말을 하리? 하지만 제프리는 똑같은 상황이 오면 경완이 똑같이 행동하리라는 것에 백만 달러를 걸 수도 있었다. 경완의 뻔뻔함은 제프리가 여태 만나봤던 이들 중에서, 심지어 범죄자를 통틀어서도 발군이었기 때문이다.

[이동합시다.]

켈리의 리드를 따라 불법의료팀은 다음 의뢰인으로, 그리고 또 다음 의뢰인으로 이동했다.

늦은 밤, 오늘의 마지막 클라이언트가 사는 부촌의 주택가.

경완은 으리으리한 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 한영미를 극히 반기는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얼른 치료해 주시오.”

“알겠으니 들어가시죠.”

한영미는 노인의 휠체어를 직접 밀어주는 서비스까지 보여주었다. 거액을 지불하는 고객님에게 그 정도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지 못할까?

하지만 노인을 본 제프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슬쩍 옆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경완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연신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고 있었다.

제프리는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걸 뒤엎어, 아님 말어?’

갑작스럽게 한영미에 대한 들불 같은 사랑을 자각하여 그녀가 다정한 미소를 보이는 노친네를 향한 질투가 피어났다 따위의 허무맹랑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그저 이번의 의뢰인이 과거 경완과 안면, 아니 인연, 아니 악연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찰 출신의 전 국회의원이자 이경완 국회습격사건의 피해자, 양승태 전 의원이 바로 오늘의 마지막 고객이었던 것이다.

참 세상 좁았다.

“저, 저기 진정하세요.”

“진정하고 있어요.”

제프리의 말에 경완은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과연 정말 진정하고 있는 걸까? 속으로 사고 칠 계획을 짜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제프리가 불안에 마른침을 연신 삼키고 있을 때 경완이 불쑥 뭔가를 물어보았다.

무한전생-더 빌런 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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