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상은 요지경
“치유 능력자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요?”
“네?”
“떨어진 팔다리를 붙이는 건 예사겠죠?”
“그,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라니요. 제프리 씨는 치유 능력자에 대해서 아는 게 없나 봐요?”
묘하게 까는 문장에 제프리의 머릿속엔 비상등이 켜졌다. 분명 심기 불편해진 게 맞았다. 이거 얼른 어디론가 연락을 취해야 하는 거 아닌가?
경완에 대한 관리 및 대응을 위해서 제프리와 그의 팀은 국내에 거주 중이었다.
다만 이번 경호 임무는 그들까지 같이 움직이지 않고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들이 움직이면 다른 국가의 첩보요원들에 의해서 수상한 정황이 발각될 우려가 있었다. 움직임이 크면 눈에 잘 띄기 마련이다.
제프리는 급하게 머리를 뒤졌다. 치유 능력자의 능력은 개별 차가 심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개, 개인차가 심해서 말이죠.”
“그럼 한영미의 능력은 어느 정도에요? 잘려나간 팔다리를 다시 나게 할 정돈가요?”
“어…… 음…….”
제프리가 눈알을 굴리며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네. 잘린 사지도 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선천적인 장애마저도 완화시키는 그녀의 능력은 유전자 레벨에서 인간을 치료했다. 그러니 그 많은 부자들이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그녀를 찾아오지.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이 혈맹을 엿 먹이면서까지 한영미를 빼내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영미의 치료는 금방 끝났다. 그저 손상된 신경만 재생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그간 약해진 하체 근육 때문에 재활 운동을 부지런히 해야겠지만 양승태 의원은 휠체어가 아닌 지팡이에 의지해서 설 수 있었다.
“섰다! 섰어!”
기쁨에 찬 양승태 전 의원의 목소리가 문을 뚫고 경완의 귀에 파고들었다.
경완의 양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커다랗고 짙은 선글라스와 마스크에 가려져서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제프리는 경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직감했다.
“저기 경완 씨.”
“왜요?”
“이상한 짓 하지 않을 거죠?”
“네? 제가 이상한 짓을 왜 해요?”
“약속한 겁니다.”
“물론이죠.”
경완은 제프리와 약속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잠든 제프리 몰래 방을 빠져나간 경완은 흥얼거리며 밤하늘을 질주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씹새끼들은 존나 잘만 살고, 착한 인간은 빨리 죽어 사라진~다아~~ 야 야 야들아~ 왜 이리 X같냐. 여기도 씹새 저기도 씹새. 씹새가 날~뛴다아~”
목적지는 양승태 의원의 자택.
물론 제프리와 이상한 짓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이건 절대 이상한 짓이 아니었다.
X같은 새끼는 X같이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X같은 새끼가 잘 먹고 잘 살며 X되지 않는 현실이 이상한 일이었다.
창문으로 몰래 들어간 경완은 침대에 누워있는 양승태를 내려다보았다. 드디어 반신불수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매우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경완은 놈의 표정에서 김오민 검사를 떠올렸다.
왜 충분히 살 가치가 있는 인간은 죽고 별로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은 이렇게 살아있는가?
어쩌면 세상이 지옥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원래 지옥의 속성이란 착한 사람은 배제하고 악한 인간만 모은다는 것이 아니던가?
아니, 지옥에선 지은 죄만큼 악마들이 형벌을 가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지옥이 더 세상보다 나을지 모른다.
경완이 손을 들자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연기 중 일부가 촉수 모양이 되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뚜둑! 우득! 우드득! 우득!
“……!!!!!”
다리뼈가 하나하나 2센치 간격으로 부러지는 고통에 양승태는 별안간 잠에서 깨어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검은 연기에 조종당하는 베개가 그의 얼굴을 짓누르고 있었으며 넓게 퍼진 검은색의 안개가 베개를 뚫고 나온 비명마저 붙잡았다.
경완은 발가락 끝부터 고관절까지 양승태의 두 다리뼈를 모조리 부러뜨리고는 놈의 귀에 속삭였다.
“몇 번이고 고쳐봐. 몇 번이고 부숴줄 테니까.”
“으으. 으으.”
고통에 정신이 없는 양승태가 과연 제대로 자신의 경고를 들었을까?
상관없었다. 경완은 죽을 때까지 놈이 제 발로 서도록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양승태가 두 다리를 고쳤다는 소식이 귀에 들려오게 된다면 그날이 잠시 허락 없이 감방 밖으로 외출하는 날이 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난 후 화장실에 다녀오니 제프리가 어색한 표정으로 경완에게 말을 걸었다.
“별일 없었죠?”
“물론이죠.”
경완은 상큼하게 웃으며 엄지를 내밀었다.
그런 그를 향해 제프리는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한숨만 푹 내쉬고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경완의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임시 경호원 생활이 계속되었다.
양승태가 반신불수에서 회복되었다가 채 하루가 되기도 전에 두 다리가 아작났다는 사실은 매스컴을 타지 못했다. 딱히 탈 만한 이유도 없었다.
후배나 다름없는 젊은 검사 살해모의에 연루되어 정치생명이 끝난 양승태는 이미 국민적인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검찰에 재직할 시절 쌓아둔 인맥이 딱히 끊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을 언론이 끄집어내진 않았다.
검찰과 언론이 붙어먹은 세월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던가? 공안검찰 시절부터 형사사건 정보로 언론과 유착관계를 맺어온 검찰이었다.
“죄송하지만 현재 의학 기술로는 완치가 불가능합니다.”
단순히 뼈만 부러뜨려 놨다면 어떻게든 살을 가르고 철심을 박아 고정하면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양승태의 두 다리 뼈마디를 정확히 2센티 간격으로 조각낸 범인은 흐물흐물해진 다리를 돌돌 말아 뼛조각들이 제자리에서 이탈하도록 만들어 놨다.
주치의의 설명에 양승태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치유 능력자는 없소?”
주치의는 곤란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아직 관련법이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유 능력자의 치유는 의료법 위반이…….”
“야! 사람이 이 꼴이 되었는데 그딴 법이 중요해?!”
제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는 사실을 양승태는 짧지 않은 휠체어 생활로 여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아껴놨던 인맥을 통해 어제 간신히 하반신을 고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채 해가 뜨기도 전에 끔찍한 고통과 함께 사라졌다.
양승태는 이대로 순순히 포기할 순 없었다.
고집을 부리는 그에게 주치의는 결국 냉정한 현실을 말해주었다.
“제가 알기로 이런 부상을 완벽히 치료할 수 있는 치유 능력자는 국내에 없습니다.”
차라리 의료법 때문에 못 고친다고 했다면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주치의의 말은 그런 희망마저 지워버리는 말이었다.
“꺼져! 꺼져, 이 돌팔이 새끼야!”
양승태의 히스테리와 날아오는 물품에 주치의는 다급히 도망쳤고, 홀로 남겨져 씩씩거리던 양승태는 흥분이 식은 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룩! 뚝!
[여보세요.]
“정 회장님. 저 양승태입니다.”
양승태의 전화를 받은 정 회장이라는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또 연락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에 양승태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 회장의 말은 이미 둘 사이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았냐는 물음이었다.
청산. 검사와 기업가 사이에 무슨 청산할 것이 있겠냐고 의문이 들겠지만, 법조계와 기업 간의 유착관계는 상상 이상이었다.
불법증여, 불법 상속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것도 법조계요, 중소기업 기술 갈취나 환경범죄, 담합 등 각종 기업의 불법적 이익을 옹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기업들이 관리하는 법조계 인사였다.
집행유예 기간에 마약을 또 처먹어도 표장창 위조보다 형량이 적게 나오는 건 ‘법조계와 재벌이 붙어먹었기 때문에’라는 이유 말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법조계가 마냥 기업의 딸랑이는 아니었다. 그들은 캐비닛에 쌓아둔 기업의 범법 사실 등을 이용해 그들의 약점을 잡고 거래했다.
기업의 법무부로 영전되는 자들은 사실 TOP가 아니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라니? 그건 갑에서 을이 되는 일이지 않은가?
진짜 법조계의 거물들은 결코 기업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기업을 약점을 쥔 채 프리랜서로 뛴다. 여기저기 인맥을 이용해 정부의 정책정보를 물어다 주거나 기업과 정부 인사를 연결해 주며 각종 이권을 다루는 브로커는 그 예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이익을 창출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부동산 개발이었다.
한편, 돈보다 권력에 관심이 있는 이는 정치판에 나서기도 했으니 그런 이 중 하나가 바로 양승태 같은 자였다.
정 회장과 양승태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벌과 검사가 무슨 공감대가 있다고 친하게 지내겠는가? 그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손을 잡은 비즈니스 관계일 뿐.
하지만 양승태가 정계에서 추락한 이후 둘의 관계는 비즈니스 관계조차 되지 못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은 이번에 들어드리지 않았습니까?]
정 회장의 냉랭한 목소리에 양승태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 회장의 말이 맞다. 이번에 양승태의 끊어진 허리 신경을 치료하기 위해 부른 치유 능력자가 바로 정 회장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결과가 아니던가?
“사고가…… 있었습니다.”
[무슨 사고요?]
“괴한에 의해서…….”
양승태는 어렵사리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하루도 안 돼서?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치유 능력자를 한 번 더 초청할 순 없겠습니까?”
양승태는 정 회장에게 간절한 어조로 부탁했다. 누군가 그의 귀에 ‘몇 번이고 고쳐봐라. 몇 번이고 부숴줄 테니까’라고 말한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뼈마디가 조각나는 고통에 제대로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런 그의 부탁에 정 회장은 어이없다는 어조로 대꾸했다.
[양승태 전 의원.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양보하고 정부가 무엇을 희생했는지 감이 안 오시나?]
잘린 팔다리도 재생해 준다는 강력한 치유 능력자 한유미, 아니 스텔라.
돈 있는 이들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녀가 유명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에게도 유리했다. 그래야만 돈으로 그녀의 능력을 살 수 있었으니까. 그녀가 유명해지면 결코 돈만으로는 그녀의 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랬다간 못 가진 인간들이 단체로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물론 그러한 경우에도 불똥이 자신들에게까지 튀진 않겠지만 문제는 거기에 한영미가 휩쓸리면 그녀가 치료 서비스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의 간절함은 광기와 구분이 힘든 경우도 있으니까.
다행히 그녀는 이 점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유명해지지 않기 위해서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녀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부자들에겐 그녀가 모든 환자를 긍휼히 여기는 성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소비를 즐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자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다행으로 여겨지리라.
그런데 그런 다루기 좋은 인재를 미국이 홀라당 가져가 버렸으니 한국의 유력자들은 얼마나 배가 아프겠는가? 한국에 붙잡아두었다면 참으로 편하고 싸게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생각은 한국 정부도 비슷했으며 그녀가 불법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한국에선 미국에 그녀에 대한 지분을 요구할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명분이 대폭 축소되었다. 누구 때문에? 바로 양승태 때문에.
무한전생-더 빌런 15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