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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50화 (150/367)

13-세상은 요지경

다만 그 일의 마무리를 위해 경완을 접견 온 김준이 계속 경완의 얼굴을 힐끔거리는 것이 아닌가?

보아하니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므에요?”

치킨을 뜯던 경완이 그런 그의 눈초리를 느끼며 묻자 김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작은 칭찬부터였다.

“이번에 마인드 브레이커의 습격을 잘 막아냈다고 들었습니다.”

“잘이라고까지야.”

“아닙니다. 정말 잘 막아내셨습니다.”

경완은 겸양을 떨었지만 S급 빌런으로 알려진 마인드 브레이커의 등장치고 정말 아무런 피해 없이, 그리고 이렇게나 신속하고 조용하게 일을 마무리 지은 것은 까칠한 면이 있는 김준조차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S급 빌런의 습격치고 그렇게나 조용했는데도 놈을 물리쳤다는 경완의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그가 발견했다는 라틴계 남자 때문이었다.

마인드 브레이커가 그 정신 제압 능력으로 타인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사용한다는 건 관계자들에겐 유명한 이야기였고, 경완이 놈에게 조종당했다는 남자는 마인드 브레이커의 수족임이 확실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억울한 희생자가 아니라 마인드 브레이커가 소속된 것으로 유추되는 악명 높은 마약 조직의 일원이자, 놈의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돕는 일종의 초능력 인간 중계기 중의 한 명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렇게까지 칭찬을 하신다면야 롸끈한 포상을 기대해도 될까요?”

경완이 남자들만 공유할 수 있는 음흉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이번만큼은 김준도 딴죽을 걸 순 없었다. 그가 이번에 일궈낸 성과는 충분히 포상을 노려도 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냐면 미국이었다면 아마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동원해서라도 새 신분을 주고 감옥을 벗어나게 해줄 정도라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상을 말하기 전에 물어봐야 하는 것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 질문은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말이었다. 위에 있는 의사결정권자들은 일이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해결되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 많은 자들이니 말이다.

“뭘요?”

경완이 반문하자 김준이 그러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했다.

“마인드 브레이커가 속해있는 것으로 보이는 조직이 장악하고 있는 곳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건 바로 수천 명의 조직원이 일순간에 공황 상태에 빠진 듯 미쳐 날뛰다가 일제히 자폐증상을 보인 것이다. 김준은 거기서 예전에 이 ○○교도소에서 일어났던 집단 기절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상사와 윗선에선 이미 그 사건과 이번 마인드 브레이커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믿고 있었고 아니라고 하기엔 두 사건에 얽힌 이들의 증상이 너무나 비슷했다.

그리고 마인드 브레이커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백치로 발견되기까지 했으니 경완의 감방 안에서 백치가 되어 있던, 나중 조사로 정신계 빌런으로 의심되었던 남자를 생각하면 경완이 그들의 의문을 해결해 줄 열쇠임이 분명했다.

김준이 말했다.

“예전에 당신의 방에 침입했다가 백치가 된 이가 있었죠. 혹시 그와 비슷한 겁니까?”

“에이. 자느라 기억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걸 확신해요?”

“그럼 이번엔 자고 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자꾸 그리 캐물어요?”

경완이 귀찮아하자 김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완 씨가 대체 어떻게 했는지 알면 앞으로도 이런 류의 정신계 능력자에게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솔직히 지금은 정신계 능력을 사용하는 빌런에게 대항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슬아슬해요.”

다른 정신계 능력자를 고용해 주요인물이 세뇌당해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경완으로서도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말해줘도 못 믿을 것 같은데..”

“믿겠습니다.”

“그냥 내 머리를 들이밀었어요.”

“네?”

“그냥 날 정신지배 해보라고 머리를 내밀었죠.”

“…….”

미쳤습니까, 휴먼?

경완을 보는 김준의 표정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경완은 오히려 그런 시선에 왠지 모르게 흥이 나서 신이 난 어조로 이렇게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랬더니 게거품 물고 쓰러지던데요?”

“……그게 답니까?”

“아! 그때 바로 깨달았죠. 이 새끼 이거 좆됐구나, 이제 이 새끼랑 볼일이 앞으로 영영 없겠구나.”

김준은 머리가 멍해지고 뒷골이 땡겼다. 할 말은 많았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조용하고 빠른 심호흡으로 빠르게 정신을 차린 그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딴죽을 걸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나 위험한 짓을 한 겁니까? 경완 씨에겐 이미 정신계 능력을 무효화하는 능력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기는 한데 그래 봤자 언제든 자라는 머리카락 한 올 자른 거밖에 더 있어요? 모근까지 뽑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게다가 그 새끼랑 맞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당장 저 밖에 마땅한 인간이 없으니 언젠간 이 새끼랑 맞부딪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죠.”

미국의 요청이 있든, 아니면 경완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 놈과 엮이든 어떻게든 놈과 한 번쯤 얽히게 될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아예 서로 모르고 살았거나, 조우했다고 해도 서로 무시할 관계가 되었다면 또 모를까, 놈은 악당이었고 본인의 정신 지배 능력을 끊어낸 경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음을 생각하면 언제고 놈과 마주할 순간이 다가오는 건 그저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 겁니까?”

“제가 정신계 능력자의 능력 발현 메커니즘에 관해서 좀 들은 게 있어요. 정신계 능력이란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통행이라고요.”

서로의 정신을 연결하는 패스라는 것. 그것은 양날의 칼이었다. 그래서 정신계 능력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잘 사용하고 싶으면 이 패스를 잘 다루는 것이 중요했다.

본인의 능력 특성에 따라서 패스를 얼마만큼 넓힐 것이냐, 그 질김은 어느 정도 할 것이냐 등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마인드 브레이커의 정신지배 능력은 양날의 검이었다.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능력이지만, 그렇기에 이경완의 내면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로부터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고.

패스가 질기지 않았다면 쉽게 끊어내서 피해를 최소할 수 있었겠지만 패스가 질겼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김준은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정신계 능력자의 정신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겁니까?”

이에 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딱히 공격 안 했는데요?”

“네?”

“저번에 침입한 놈의 일도 있고 해서 그냥 내 정신에 뭔가 비범한 게 있다고 생각했죠. 그걸 믿은 겁니다.”

경완은 이야기에 양념을 쳤다. 물론 믿었다는 그거란 건 단순히 비범한 것이 아닌 무한전생자의 그것이었다.

기억이라고 해야 하나 고뇌, 트라우마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그것은 비범한 무엇이라기에 충분했다. 익숙하지 않은 이에겐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듯 엄청난 충격일 테니까.

하지만 그러한 대답은 김준에게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처음에는 의심, 그 다음엔 혼란, 그리고 이내 납득까지.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당신의 머릿속이 비범하기는 하죠.”

좀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있는 이경완이라는 인간은 김준에겐 까도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은 인간이었다.

도대체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있기에 정신이 연결된 정신지배 능력자가 망가진단 말인가?

그런 의문을 상기한 김준은 문득 그가 폭발물을 터뜨린 중국 원전을 떠올렸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의 바탕엔 도대체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 미쳐버린 무언가가 저 뻔뻔한 낯가죽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경완에게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는 조금 시니컬한 궤변을 내뱉기는 하지만 건들지만 않으면 매우 얌전히 지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준은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경완이 부모가 살아 있는 화목하고 풍요로운 집안에서 성장했다면 과연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까? 아마도 원전 폭파 같은 건 고려도 하지 않았겠지?

김준이 생각에 잠겨 말을 잇지 못하자 경완이 물었다.

“그럼 그 이야기는 다 끝난 거죠?”

“음. 어……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뭔데요?”

“도대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정신계 능력자의 정신이 붕괴되어 백치가 되는지…….”

김준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끝을 흐렸다. 본능적으로 이번 질문은 오히려 부탁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쉬운 부탁보다는 어려운 부탁에 가까웠다.

그가 말을 질질 끌자 답답해진 경완이 대신 말을 받았다.

“내 정신을 분석해 보고 싶다 이거 아닙니까. 혹시나 정신계 능력에 대한 역공 방법이 나올 수 있을까 해서요.”

“맞습니다.”

김준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부탁이라 생각한 이유는 경완이 감추고 싶은 내밀한 사적비밀까지 밝히자는 부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한 인정에 경완도 순순히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나도 내 안에 광기에 가까운 뭔가가 있는 걸 알아요. 아마 그거 때문일걸요?”

한 번에 다 떠올리기도 힘든 억겁의 기억은 이미 광기의 원천이었다. 인간의 뇌가 한 번에 발휘할 수 있는 성능이 제약되어 있지 않았다면 경완은 이미 지금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뛰어난 두뇌로 태어날수록 뇌를 관리하기 힘들었다. 뇌가 잘 돌아가는 몸일수록 과거의 기억들이 더 많이, 더 잘, 더 생생히 떠오른달까?

물론 그만큼 개인의 역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지만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것도 많아졌다. 더 많은 후회와, 더 많은 자조와, 더 많은 절망이 그를 감정적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뭐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이나 뭐든 동원해도 좋아요. 하지만 쉽지 않을걸요?”

쉽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단정하지 않는 이유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의 이유를 설명하기가 곤란하거니와 어차피 시도하다 보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저들도 깨달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경완의 생각에 저들이 의도하는 바는 정신계 능력자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마인드 웨폰 같은 것이 분명할 텐데,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다들 모르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마음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한전생자인 경완조차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황인데 말이다.

김준은 경완의 설명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모양이었다. 본인은 심리학자 같은 것이 아니니 심리니 마음이니 인생이니 철학이니 하는 경완의 주절주절 잡소리에 맞장구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경완이 이쪽의 제안을 수락해줘서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뿐.

그가 고마움을 표하자 경완은 손사래를 쳤다. 경완은 개인적으로 저 고마움이 나중에 계약서 작성할 때도 계속될지 흥미로웠다.

아마 경완의 악동 같은 미소에 치를 떨지 않을까?

* * *

바다 건너 남미 대륙.

강력한 초능력자들이 마약 카르텔을 장악하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승승장구하던 한 조직에서 큰 사건이 벌어졌다.

다름 아닌 조직의 핵심이자 보스이자 억압자인 마인드 브레이커가 백치가 된 것.

무한전생-더 빌런 1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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