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러나 단순히 거기서 그쳤다면 큰 사건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는 보스가 갈아치워 지는 건 이 바닥에서 그리 보기 힘든 일도 아니었으니까.
사건이 진행된 일련의 과정은 이러했다.
마인드 브레이커가 백치가 되는 과정에서 그에게 지배당하고 있던 이들은 그 정신적 충격을 공유했다.
그 충격에 총을 들고 미쳐 날뛴 후 자폐증상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정신적 공황을 벗어나기 위해 제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도 영원하진 않았다. 소란이 가라앉자 모두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이상한 기류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무서운 정신적 공황을 공유한 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어떤 종교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자신들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던 자가 백치가 된 것은 어떤 위대한 존재의 권능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초능력 시대에 다른 초능력자가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반론은 그들 사이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이 경험한 것은 결국 정신적 차원의 문제였는데, 수천 명을 초능력으로 지배하던 강력한 초능력자마저 공포와 공황으로 백치로 만들어버리다 못해 그에게 조종당하던 이들마저도 공포와 공황에 질려 미쳐 날뛰게 만들 수 있는 존재의 정신이 어떻게 사람의 것일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존재를 올드원이라고 명명하고 숭배하기 시작했다. 교리는 없었지만 이 종교적 집단은 같은 종교적 경험을 공유한 수천 명 덕분에 아주 끈끈하고 견고한 조직이 되었다.
그렇게 조직이 형성되자 자연히 교리 역시 만들어졌다.
핵심은 간단했다.
‘공포의 제왕이 굽어보고 계시나니. 인간들아. 그 앞에 엎드려 자비를 갈구하라.’
신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교리를 가진 기독교에서조차도 인본주의를 되찾을 때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렸는데 이들의 교리는 아예 인간을 하찮은 존재로 치부했다.
인간 중심에서 신으로 회귀하는, 역사를 거꾸로 가는 행태였지만 압도적인 상념의 폭풍은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틀을 망가뜨리기에 충분했고, 어차피 대부분은 마약 카르텔에 속해 있거나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던 자들이라 소위 올바른 시민의식과는 담을 쌓고 지냈기에 망가진 가치관을 되돌려 줄 주변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마지막으로 마약을 파는 새끼들이 언제부터 그리 인류애가 넘쳤겠는가?
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공포를 마치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자신들에게 시비 거는 다른 조직에게 자신들의 깨달음을 베풀었다.
그 베풂은 끔찍했다.
목에 타이어를 걸고 휘발유를 부은 채 불을 지르는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공포의 단편에 불과했다. 마치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살인 장치에 피해자들을 집어넣거나, 아니면 직접 메스나 톱, 망치 따위를 들고 끔찍한 짓을 자행하기도 했다.
그들은 기실 피해자들에게 고통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실패에 대한 공포, 상실에 대한 공포 등 온갖 종류의 공포를 느끼게 해주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래서 사람을 잘 안 죽이게 되었다. 공포도 살아 있어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공포를 전파하는 자신들의 행동에 결코 만족을 몰랐다. 왜냐면 그들이 경험했던 압도적이고 필연적이며 운명적으로까지 느껴졌던 공포를 떠올리면, 그들이 가하는 고통에 기인한 공포는 너무나 지엽적이고 소시민적이기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발전은 결핍이 있기 때문이라 했던가?
자신들이 베푸는 공포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들은 공포에 대한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며 나날이 좀 더 정교하고 탄탄한 조직체로 거듭났고, 주변 조직들은 그런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공포의 사제들.
이들은 여태까지 남미의 국가들이 상대해 왔던 마약 조직들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집단이었다. 차라리 인간의 탈을 쓴 무언가랄까?
이 광신도 집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국제적인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이들 반대편에 있는 곳에선 큰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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