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중원이 흥하면 한반도는 망했고, 중원이 망할 때 한반도는 흥했죠. 중국이 북한 땅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입니다.”
그렇게 말해도 미국 시민권 이중 국적을 가진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는 그게 왜?라는 느낌뿐이었다.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사람에겐 거주 이전과 이민의 자유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어차피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 바로 이경완이었다.
강태수는 경완이 계속 얼굴에 ‘그러니까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라는 물음을 띠우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답답해졌다.
“선생님도 대한민국 사람 아니십니까?”
동의와 공감을 요구하는 물음이었지만 무한전생자인 자신에게 한국인 특유의 공동체 감성을 바라지 말라는 게 말 못 할 경완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라는 경완의 표정에 강태수는 속으로 탄식하면서도 직접적인 용건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요?”
“음…… 그러니까 군사적으로는 후방침투, 사보타주 같은 겁니다.”
“어디서요?”
“북한이나 중국 본토에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보고 전쟁에 참여해라?”
“전쟁이라기보다는 선생님께서 잘 하시는 거 그거 있지 않습니까. 요즘 젊은이들 표현식으로 하자면…… 분탕질이라고 하죠?”
강태수는 정말 어렵게, 정말 힘들게 그 말을 꺼냈다.
하지만 경완은 태연했다.
“아. 그러니까 정부는 관여하지 않겠다?”
경완이 들끓는 애국심이든 개소리하는 짱개에 대한 분노든 아무튼 그런 명목으로 탈옥한 척해서 중국 공산당에게 빅엿을 먹여달라는 요청이었다. 중공군이 북한땅에 있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강태수가 그런 요청을 한 사유를 밝혔다.
“정부가 관여되어 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드러나면 진짜 전면전, 아니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중국 편을 들 나라가 있나요?”
당장 러시아도 한국 편을 들고 있다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세계대전?
그런 물음에 강태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의 광기가 싹을 틔우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그 말엔 경완의 탐탁지 않아 하는 반응을 애써 지적하고 싶지 않은 심기가 묻어나왔다.
경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미국국적도 가지고 있잖아요.”
그 말에 강태수는 인상을 굳히며 진지하게,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나서주신다면 막대한 포상금과 사면을 약속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려된다면 완전히 새로운 신분과 성형수술까지 제공하죠.”
“와우.”
경완은 감탄사는 내뱉었다. 그 꼰대 대한민국이 이런 제안을?
급하기가 오지게 급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새삼 살인이나 죽음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좀 귀찮은데…….”
뭐 개인적으로 중국과의 문제는 대충 봉합한 상황이라 또 얽히기는 귀찮았다.
중국 당국에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시건방지게 그를 죽여 능력을 강탈하려고 계획하고 실행했던 책임자들에게는 마땅한 응징을 가했다. 경완의 입장에선 볼일 다 본 사이인 것이다.
뭐, 한국의 역사도 문화도 죄다 자기 꺼라고 우기는 중국놈들은 분명 한국인들에겐 밉상이겠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이 옅은 경완이 공감하긴 힘든 일이었기에 중국이 북한 땅을 넘보고 있다고 뭉뚱그려 X같은 놈이라고 치부하는 건 그의 성향이 아니었다.
X같은 놈은 X같고 착한 놈은 착하다는 그의 단순한 인생관에서 세월의 부침이란 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비바람 같은 거 아니겠는가?
그런 그에게 강태수가 강변했다. 그는 경완을 설득하기 위해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조사하고 연구한 상태였다.
“한국의 국력이 약해져서 사실상 중국의 속국처럼 되면 그때도 중국이 선생님을 가만히 놔둘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경완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강태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경완이 모를 리 없었다.
권위적인 권력자는 일반적으로 속이 좁은데, 특히 자신의 권위에 흠집을 냈거나 내려는 놈은 반드시 죽이거나 본보기로 삼으려 들었다. 그래야 누구도 감히 그런 짓을 할 생각을 또 못할 테니까.
권위적인 독재권력에서 보복행위는 권위 및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이다.
탕탕탕! 총 맞고 뒈진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도 독재 반대 시위를 제압하기 위해선 30만이든 300만이든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종자였지 않은가?
그리고 경완이 중국 공산당의 체면을 뭉개버린 원흉이라는 건 중국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사람도 무수히 죽이고 원전도 폭파하고 심지어 원한관계에 있는 고위 간부들의 눈알을 파내고 사지를 잘라 병신으로 만들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문화를 생각하면 경완은 감정적으로 분명 중화민족의 공적(公敵)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번 중국의 침략에는 선생님의 책임도 조금은 있습니다.”
“그게 왜 제 책임인가요?”
경완은 억울해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사정을 아는 강태수에겐 발뺌하는 것으로 들렸다.
“지금 중국 내에서 일어나는 신(新)혐한의 원인이 바로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중국의 혐한은 이경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었다.
그전까지의 중국의 혐한은 인구와 땅덩이가 작은 나라에 대한 무시와 평가절하, 그럼에도 높은 경제발전과 세계적으로 한류를 수출하는 성과에 대한 열등감이 뒤섞여 있었으나 이경완의 등장 이후에는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과 한민족은 중화(中華)를 배신한 동아시아의 배신자이자 중국의 체제를 위협하고, 나아가 중화민족의 번영을 저해할 턱밑의 비수로 한층 그 평가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중국이 국제사회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북한에 진출했다고 강태수는 설명했다. 이 기회에 대한민국의 국력신장을 막아내고 더 나아가 몰락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일리가 있네요.”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태수는 미리 경완이 빠져나갈 구멍을 막고자 이렇게 말했다.
“설마 미국으로 가실 생각은 없지 않습니까? 솔직히 미국 치안이 우리나라보다 좋지도 않은데 선생님이 과연 우리나라만큼 조용히 지낼 수 있겠습니까?”
“그 말도 인정.”
여자 혼자 밤에 밖에 나돌아다니면 죽을지도 몰라서 무섭다고 말하지만, 외국에선 여자 혼자 밤에 밖에 나돌아다닌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왜냐면 실제로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경완도 이 나라의 치안 수준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건 인정했다.
하지만 그래도 귀찮았다.
결국 경완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드잡이질을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 개떼처럼 몰려다니는 인해전술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상상을 해보니 절로 나오는 말이 다음과 같았다.
“귀찮은데…….”
귀찮은 겁니까, 무서운 겁니까?
강태수는 그렇게 수준 낮은 도발을 하진 않았다. 경완은 허언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수많은 프로파일러가 말했다.
귀찮다는 말은 할 수는 있는데 피곤하다는 의미였다.
본인이 본인의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그 부분에서만큼은 강태수조차 기대로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뭐든 지원하겠습니다!”
“핵미사일요.”
“……네?”
도대체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강태수는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다.
경완은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핵미사일이 아니면 핵배낭이라든지 사린가스라든지 아무튼 들고 다닐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 아, 아, 아, 아니 왜요?”
어찌나 당황했던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강태수를 향해 경완은 당연한 듯이 말했다.
“왜긴요? 대가리를 날려버리는 것만큼 깔끔한 해결책이 어디 있다고요? 공산당 주석부터 싹 다 날리면 지리절멸하지 않을까요?”
지리멸렬의 사전적 뜻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이었다.
아연해져서 입을 멍하니 벌리는 강태수에게 경완이 말을 이었다.
“생화학무기도 나쁘진 않은데 다루기가 까다로워서. 핵으로 날려버리는 게 제일 깔끔하죠.”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강태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일단 그렇다고 치고, 그럴 경우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럼 북한에 들어온 중국군을 도로 물리는 일과 종전협상은 누구랑 하고요?”
그러자 경완은 생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중국이 얼마나 사람이 많은데요. 다 죽여도 북한에 들어온 짱개군을 빼낼 수 있는 누군가는 있겠죠. 그리고 실장님도 처음에 말씀하셨잖아요? 중원이 흥하면 한반도가 망하고 중원이 망하면 한반도가 흥한다고요. 대가리가 사라지면 여기저기서 군벌이 들고일어날걸요? 오호십육국이 재현되면 한국도 흥하지 않을까요?”
“…….”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간 이야기였다. 청와대에서 상의한 건 중국에 한국이 결코 만만한 국가가 아님을 확인시켜 물러나게 만들자는 다소 온건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이경완이라는 희대의 빌런의 머릿속엔 온건한 방안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 저… 다 죽이지 않고 협박이라든지 그런 수준에서 그칠 순 없습니까?”
강태수가 애써 요청하니 경완은 김빠졌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에이~ 주석의 눈알을 파낸다고 해도 순순히 말을 듣겠어요? 바퀴벌레처럼 금방 대체할 인간이 나올 텐데?”
“계속 파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강태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한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이 전범국이 되어 국제적인 명성을 헤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지금 한류로 얼마나 뽕을 빨고 있는데.
아무튼 반쯤 실언처럼 튀어나온 강태수의 제안에 경완은 다소 감탄하면서도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 이 꼰대 같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실장님처럼 창의적인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처음 봤네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뭐랄까, 한 번에 일이 안 끝나고 좀 오랜 기간 신경 써야 하잖아요?”
그게 좀 귀찮은데.
강태수의 귀엔 경완이 말하지 않은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대학살을 벌이는 것보다 중국 공산당을 제압하는 편이 낫다.
“필요하신 거라면 뭐든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핵배낭을,”
“그런 거 말고요!”
“그럼 우선 숟가락부터 챙겨주시고요,”
“네?”
뭔 뜬금없이 숟가락?
강태수가 의아해하자 경완이 불평하듯 말했다.
“눈깔 파내는 일에는 한국의 쇠숟가락이 최곤데 중국에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젓가락으로 파내려니 참으로 불편했지라고 중얼거리는 경완을 보며 강태수는 청와대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이거 혹시 외적을 격퇴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하는 꼴은 아닐까?
* * *
경완은 청와대의 부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확실히 한국의 국력이 약해지면 반드시 중국은 자신에게 그 노골적인 마수를 드러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경완에게 한국은 일종의 순망치한의 입술 같은 존재랄까? 없으면 좀 아쉽긴 했다. 자신과 같은 범죄자에게 이렇게 대우를 잘해주는 호구 정부가 또 있을까? 아! 그래서 사기꾼이 많은 건가?
무한전생-더 빌런 1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