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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58화 (158/367)

14-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리고 그 말은 경완의 능력이 이미 삼엄한 호위를 받는 중국 공산당조차도 막지 못하는 수준에 올랐다는 뜻이며, 인구 14억에서 이경완을 상대할 초능력자를 찾는 일에 중국 공산당이 실패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무리 이경완이 테러범이니 빌런이니 해도 이쯤 되면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국가 안보라는 관점에선 더더욱 말이다.

이것은 안보실장인 강태수와의 직무와도 일치하는 논리였으며 그 필요성은 이미 이경완이 ‘오퍼레이션 빌런 드랍’으로 증명했다.

강태수는 초능력이 곧 국력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표어를 피부로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답지 않은 아부를 떨었다.

“그래도 선생님의 도움이 매우 시기적절했다는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흐음…….”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자신이 한국 정부를 대신해 오물을 뒤집어써 준 배려를 했다는 걸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할 일은 없었다.

손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던 빌 게이츠가 골든벨 울려서 그날 매상 죄다 자기가 낸다고 해도 정말 그게 손해인가?

경완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죄다 죽어 나자빠져서 먼지가 될 텐데 뭘 그리 손에 쥐고 가려는지.

그러니 남는 건 결국 기분 문제였다. 빌 게이츠가 순간의 기분으로 골든벨을 울리듯 경완 역시 그러한 짓을 한 것뿐이었다.

결코 기분 나빠하지 않는 그의 반응에 강태수는 미리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그래서 이번 광복절 특사로 사면을 받으실 겁니다.”

“아유, 괜찮겠어요? 반대할 인간들이 참 많을 텐데.”

경완의 말에 강태수는 쓰게 웃었다. 하긴 정계에 이경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대통령조차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굳이 사면하려는 이유는 다 국익 때문이었다.

앞으로 보유한 초능력자가 곧 국력이 되는 시대. 그리고 그것을 증명한 이가 다름 아닌 이경완이었다. 이경완이 베이징에서 그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면 중국이 저리 순순히 북한에서 물러날 리가 있었겠는가?

결국 무력을 사용한 것이니 양아치 같다고?

어차피 국제무대란 힘없으면 서러운 곳이고, 양아치 짓은 저쪽에서 먼저 했다. 대한민국 정도면 국제무대에서 보기 드문 신사라고 할 수 있다고 강태수는 자부했다.

그리고 한국의 높으신 분들이 아무리 경완이 탐탁지 않아도 남의 집 맹견으로 만드는 것보다 우리집 맹견으로 삼는 편이 더 이득이라는 건 굳이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뭐 경완이 광견병 걸린 미친개 수준이었다면 다른 집에 떠넘겼겠지만 그간 그의 행보를 보면 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우면서도 터지면 위험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말이 통하기는 하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강태수는 찔리는 곳에 전혀 없이 당당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걱정되시겠지만 믿어주시죠. 잡음이 안 나오게 잘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경완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강태수가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국가에서 집을 제공할 생각인데 괜찮으십니까?”

그래, 여기서부터가 본론인 모양이었다.

집이라……. 과연 호의일까 족쇄일까?

경완은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공과금이나 비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희가 다 지불합니다. 몸만 들어오시면 됩니다.”

“위치는요?”

“수도권 외각 지역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수도권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지역입니다.”

‘마음만 먹으면’이라는 단서가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그렇게 나쁜 환경은 아닌 모양이었다.

“저야 나쁘진 않죠. 마음에 안 들면 노숙하면 되니까요.”

“……반드시, 아주 반드시 마음에 드실 겁니다.”

경완은 그저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강태수는 아주 진지한 어조로 몇 번이고 강조했다.

광복절 특사까지 남은 기한은 약 석 달. 경완의 노숙을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그때까지 경완이 마음에 들어 하는 집으로 꾸미고 말겠다는 의욕이 솟구치는 모양이었다.

그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노숙하는 이경완? 그거 굴러다니는 시한폭탄과 다를 바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게 경완은 자신의 감방으로 복귀했고, 남한은 북한 난민들을 먹이고 재우느라 러시아와 미국을 비롯해 세계 여기저기의 지원을 받았다.

다만 처음과 달리 유엔에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는데, 목구멍까지 북한을 삼켰다가 뱉어낸 중국과, 또 대륙진출에 눈알이 뒤집어진 일본이 숟가락 올리는 꼴을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마 중국이 조선족을 밀어 넣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중국이 숟가락을 얹는 것도 어느 정도 고려를 해봤겠지만 이미 크게 한 번 데여 버린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다른 한편으로는 딱 잘라 거절할 명분을 줘서 고마울 정도랄까?

아무튼, 중국의 개입을 막아낸 대한민국은 재정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큰 미래의 가능성을 꿈꾸며 여기저기 차관을 빌리며 MOU를 맺기 시작했다. 일단 북한 녹지화 사업과 대대적인 토목 공사로 북한 난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했고, 러시아 직통의 가스 라인 및 시베리아 철도 연결도 토의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놀랐다. 북한 붕괴 이후 북한이란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다들 예상했는데 의외로 중국이 얌전히 물러난 것이다.

물론 진실을 아는 사람은 잘 키운(?) 초능력자 하나 열 핵미사일 안 부럽다고 생각했지만 그에 대한 사항은 입 밖에 꺼내선 안 되는 기밀사항이었다.

그래도 대충 뭔가 중국이 무슨 짓을 당해서 물러난 게 아니냐고 눈치챈 나라가 없지는 않았고, 그 무슨 짓에 십중팔구 초능력이 관련된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초능력에 대한 각국의 국가적 투자가 한층 더 많아진 건 여담이었다.

가히 IT버블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것이 버블인지, 아니면 폭발적인 변화인지는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었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 야욕을 막은 것이 정말 소수의 초능력자라면 그런 초능력자를 양성하는 것이 앞으로의 군사력과 국력을 측정하는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미리 인사드리려고요.”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경완을 앞에 둔 홍 소장이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엄중히 관리해야 하는 재소자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뭔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지 일단 면담해 봐야 하는 홍 소장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히 임하다가 그 위험한 재소자로부터 본인이 광복절 특사로 풀려 나간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야 말았다.

이미 청와대랑 이야기가 다 됐다나? 세상 참 진짜 요지경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다 그만한 공을 세워서 그런 거니까.”

“네가 무슨 공을 세워?”

“기밀이라서 말 못 해요. 살짝 귀띔을 하자면 북한이랑 관련되어 있어요.”

“조선족 쫓아낸 거? 그건 나도 칭찬하고 싶지만 고작 그 정도로 사면은 너무 과하지 않니?”

고작 그 정도만이 아니지만 경완은 일단 그 말을 받아주며 한 가지 사실을 꼬집었다.

“대기업 회장들도 못 하는 일을 해낸 건데 무슨 말씀을?”

그 말에 홍 소장은 그런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삿돈 횡령하고, 주가 조작해서 비자금을 만들어도 경제발전에 기여했답시고 솜방망이 판결을 선고받거나, 사면으로 나오는 회장님들을 생각하면 중국이 개입했을지도 모르는 대규모 조선족 소요사태의 불씨를 미리 꺼뜨린 경완의 공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결국 홍 소장은 한숨만 내쉬었다.

“하아. 암튼 나간다 그거지?”

“네.”

“밖에 나가면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살아라.”

“저도 그러고 싶다니까요.”

경완의 뻔뻔한 낯짝에 홍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 * *

러시아와 미국의 지지를 받아 한국은 빠르게 북한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재정적으로 막대한 부담과 난민문제 등 당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었기에 정신없이 정부조직을 굴려야 했다.

그중 하나가 반파된 평양을 확보하고 재건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김씨 왕조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곳이라지만, 역사적으로 평양의 지정학적 위치는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아무리 반파되었다지만 그래도 북한의 인프라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북한 개발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실리적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의문의 폭발로 평양이 한 번에 날아간 것은 사실, 한미러 합동 조사대가 폭심지를 면밀하게 조사했다.

거대한 크레이터와 피해 반경을 통해 추정한 폭발의 위력은 무려 팻맨의 약 열 배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지하가 아니라 지상에서 터졌다면 더 큰 피해가 났을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초능력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반드시 그것을 확보해야 한다는 당위성까지 만들었다.

‘나는 이 위험한 걸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지만 너까지 그럴 수 있다는 걸 믿기는 힘들다’라는 것이 힘 좀 있는 나라의 스탠스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런 폭발을 일으킨 초능력의 메커니즘은 오리무중이었고 초능력의 위험에 대해 경계하는 여론도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었지만, 핵은 안 위험해서 핵발전소를 지었나?

경제적으로 유용하면 똥물이라도 팔아먹는 것이 자본주의였고, 국익과 국가안보 앞에서 ‘위험한 거 만지지 맙시다’라는 주장은 이상주의자의 넋두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초능력의 각성을 막을 수조차 없잖은가? 초능력자들만 따로 모아 관리하자는 소리는 오히려 인권주의자들의 반발을 부를 것이 불 보듯 뻔했으며, 무엇보다도 그 초능력자들을 어떻게 따로 모아 관리한다는 말인가?

초능력 범죄를 제압하는 데 초능력자를 이용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선 현실적이지 않은 소리였다.

아무튼, 러시아와 미국의 지지 아래 북한의 흡수는 차근차근 진행되었고, 한국 정부가 재정적자에 허덕이든 어떻든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는 투자가들엔 장밋빛으로 보였다. 아니, 허덕일수록 좋았다. 그래야 숟가락을 더 많이 얹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에 대한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의 태도였다. 어떻게든 북한 개발에 숟가락을 올리려고 발악을 하는 일본은 겉으로는 아니었지만 뒤로는 엄청나게 한국 정재계에 돈을 뿌려대고 있었다.

[동아시아 경제권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일본을 북한 개발에서 제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자유무역 기조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라는 모 정치인의 발언은 그러한 로비 활동의 성과였다.

물론 여기에 북한 개발에 참여한 한국 기업과 장비 수주라던가 원자재 공급 따위로 엮이는 시도를 하는 것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뭐, 한국 사람이라면 이렇게 일본이 숟가락 올리는 행위에 기분이 나쁘겠지만 썩어도 준치,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 했다. 아무리 잃어버린 30년의 일본이라지만 그 저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작금의 상황에선 중국이 숟가락을 올리는 것보다 차라리 일본이 숟가락을 올리는 편이 더 나은 것이 사실이라 혐한 기업만 아니면 눈감고 용인하는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북한에서 중공군을 물러난 지 한 달 하고 보름쯤 지나자 중국의 꼬장질이 다시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오퍼레이션 빌런 드랍으로 식겁했던 기억이 한 달 반쯤 되니 점차 희미해지고, 북한이란 중국몽의 중요한 퍼즐 조각에 대한 미련이 진하게 떠오르자 중국은 공개적으로나 비공개적으로나 빠르게 북한 지역을 수습해 나가는 한국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무한전생-더 빌런 1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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