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외교적으로 북한 내 중국의 자산에 대한 권리 보장이라든지, 연변에 들어온 수많은 북한 난민 문제 등을 내미는 건 애교였다.
비공식적으로는 압록강 인근의 국경 수비를 방치하여 조선족의 밀입국이나 삼합회 등의 범죄조직이 북한 지역에 마약을 뿌리는 걸 은근히 조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 이미 충분한 수준의 차관을 지원받았기 때문에 중국의 지원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다’라고 발표된 한국정부의 입장이 중국의 자존심을 꽤나 많이 긁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에서 경완은 광복절을 기다렸고 마침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가게 되었다.
“홍 소장님. 예전에는 광복절 특사가 왜 있나 싶었는데 막상 제가 특사로 풀려나게 되니 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뭔 이해?”
“광복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니가 특사로 풀려나는 일도 없을 거다, 그러니 대한민국 독립에 헌신한 독립운동가분들께 감사하며 조금이나마 애국심을 가져라, 뭐 이런 취지가 아닐까…….”
“퍽이나 그럴싸하구나.”
대답하는 홍 소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거 없는 경완의 뇌피셜에 놀아나다가는 그 궤변에 휘둘리기 십상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홍 소장이었기에 저리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헛소리하는 경완을 보며 얼른 가라고 손짓하며 이렇게 말했다.
“얼른 가. 가면 다신 오지 말고.”
말만 들으면 참 정 없는 말 같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교도소장이고 듣는 이가 재소자라는 사실에서 이보다 좋은 덕담은 없었다.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어찌 덕담이 아니랴?
하지만 경완에겐 그런 덕담에도 초를 치는 뭔가가 있었다.
“그야 장담 못 하죠.”
그간 경완의 개소리를 견뎌왔던 홍 소장은 경완이 저렇게 초를 치는 맥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 말이지?”
“그렇죠. 이제 이해하시네.”
이해는 지랄로.
“그럼 너는 내일 아침에 숨 멈춘 채 발견될 가능성도 있겠네?”
“가능성이야 있죠.”
“그럼 무서워서 잠은 어떻게 자냐?”
“소장님은 왜 제가 죽는 걸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
경완의 반문에 홍 소장의 입이 다물어졌다. 하긴 경완이 지금껏 저질러 온 일을 생각하면 후환을 걱정하거나 죽는 걸 무서워할 린 없었다.
그리고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지?
“그래 니똥 굵다.”
그래도 경완은 개의치 않고 홍 소장에게 덕담을 건넸다.
“비데도 있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 없어도 심심해하지 마시고요, 정 심심하면 동건이 불러서 잡담이나 나누세요. 명색이 제 대타 아닙니까.”
남동건은 경완이 처음 교도소 언터처블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불량 재소자 교정 사업(?)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경완보다 더 정중하고, 교도관들도 흡족해할 요령 좋은 일처리로 신뢰를 쌓았으며 이미 모범수에 이름을 올렸다. 이미 사면각이나 가석방각이 잡혀있다나?
본인은 나가기 전에 경완처럼 언터처블 2세 등의 별명을 원하는 눈치였지만 경완이 이미 중국을 상대하며 리얼 언터처블이 된 터라 남동건이 언터처블이라는 별명을 얻는 건 물 건너가 버렸다.
참고로 재소자들이 뒤에서 그를 부르는 별명은 ‘교도관 딸랑이’였고 그에게 교정(?)을 받은 불량 재소자들은 몰래 그를 ‘씨발새끼’라고 불렀다.
홍 소장은 더는 말없이 다 놓아버린 미소로 얼른 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경완은 그런 그에게 척 하고 경례를 올린 후에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정들었던(?) 감방 생활이 끝난 것이다.
그가 짐을 챙겨 나오니 제프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이렇게 픽업까지 해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경완의 장난스런 인사를 제프리는 동요(動搖) 없이 받고는 경완의 집으로 이동했다.
경완의 집.
희대의 테러범에게 자택이라니 참으로 세상 돌아가는 꼴이 요지경이지만 중국의 북한 침략을 막은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좀 적게 준 부분이 없지 않았다.
경완이 과거에 저지른 짓만 아니었으면 아마 큰 포상을 받고 국가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줬을 정도로 그가 세운 공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이야~ 집 조~옿네.”
경완이 감탄했다. 아무리 교외 지역이라지만 꽤나 컸다. 혼자 살면 청소하기 귀찮을 정도로 큰 주택에 높고 두터운 담은 마치 작은 요새 같았다.
그를 세상과 격리하고 싶은 정부의 의도가 노골적이었지만 개인마다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경완을 격리하는 걸까, 아니면 그가 세상과 담을 쌓는 걸까?
경완은 세상이 골치 아픈 곳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여깁니다.”
경완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대문 주변을 구경하는 와중에 양복을 입은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국가안보실에서 나온 누구누구라고 하는데 어차피 오래 볼 사람은 아니라서 대충 흘려들었다.
아무튼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경완은 정원을 보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그의 표정을 발견한 안보실 공무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뭔가 문제라도…….”
“정원 관리는 누가 해요?”
“어…… 원하시면 저희가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비용은……?”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경완이 말꼬리를 흐리자 얼른 그것도 받는 직원이었다. 그제야 경완은 속이 시원한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넓은 거실을 보고는 다시 한 번 굳어졌다.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점이라도…….”
“너무 넓어서 청소하기 힘들 것 같아요.”
“…….”
경완을 향한 직원의 눈빛을 해석해보자면 이러했다.
‘매일 청소해도 좋으니 나도 이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씨발.’
물론 그 집은 수도권 안, 그리고 직장 근처에 있어야 했지.
아무튼 명색이 청와대 소속인 공무원이라 말을 잘 가려서 했다.
“가정부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누가 내 영역에 침범하면 불편하잖아요. 제가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 누군가를 투명인간 취급하질 못해요.”
아, 예의가 있으셔서 국회의원 허리에 칼침을 놓고 원전을 폭파하시고 그러셨어요?
직원은 할 말은 많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럼 로봇청소기라도 들여놓을까요?”
“어.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경완의 거지근성은 주변 사람을 기막히게 만들 정도였지만 그는 앞으로 자신이 주거할 집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TV가 좀 작은 것 같은데요.”
“최신 기종입니다만…….”
“최신 기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크기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이보다 큰 건 이천만 원대입니다.”
참다못한 안보실 직원이 텔레비전의 가격을 말했다.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뜻에 경완은 바로 물러섰다. 밀어붙이기만 하면 좋지 않다.
“어우~ 그렇게나 비싸요? 전 유튜브도 그렇고 여기저기에 홍보하기에 싼 줄 알았죠.”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제프리가 결국 한마디 꺼냈다.
“그렇게 광고하는데 가격을 몰라요?”
“원래 명품은 광고 잘 안 하지 않아요? 이런 말도 있잖아요. 모든 사람이 아는 물건은 명품이 아니라고.”
이건 또 뭔 궤변이야?
제프리는 괜히 말을 꺼냈다 싶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고 경완은 어깨를 으쓱하며 안보실 직원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죠. 그냥 쓸게요.”
“…….”
누가 들으면 퍽이나 크게 선심 쓴 줄 알 것이다.
아무튼, 경완은 계속해서 집안을 점검했다.
TV 다음에 확인한 것은 게임기와 계정이었다. 안타깝지만 그동안 교도소에서 즐겼던 계정은 자신의 명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게임은 새로 사야 했다.
계정과 연동되는 세이브 파일도 구하지 못했지만 어차피 그런 거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게임기와 계정을 확인한 후엔 침대와 주방, 화장실 등을 둘러보고 경완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이 이제 제집이라는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냥 말없이 입을 싹 닦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나 보상을 주니 ‘이게 그 착취의 꼰대한민국?’이라며 오히려 경완이 놀랄 정도였다.
“장도 봐야 하고, 옷도 사야 하고 할 일이 많네요.”
“그 부분도 도와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옆집에 국정원이라도 세들어 살고 있어요?”
“…….”
느닷없는 찌르기에 안보실 직원은 웃는 표정 그대로 굳었다.
“에이~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았어요. 암튼, 차 필요하면 옆집 초인종 누르면 되죠?”
“되, 되지 않을까요?”
떨떠름하게 말하는 안보실 직원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고 경완은 그런 그를 보며 작게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아 맞다. 안보실 소속이라고 하셨지? 그럼 국정원은 따로 얘기해야겠네요.”
경완은 국정원 제2차장 이관영을 떠올렸다. 일본 돈 먹은 걸 자신에게 들켜 약점 잡힌 인간.
그 인간이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래야 국정원 요원을 운전기사로 맘 편히 부려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쪽에도 나쁠 건 없었다. 운전기사 일을 하면서 지근거리에서 감시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제프리도 있다지만 미국 쪽과는 상호호혜(?)적인 관계다. 그러니 부려 먹기가 좀 미안했다. 하지만 직업윤리도 없이 일본 돈이나 처먹는 국정원은 부려 먹어도 전혀 미안할 마음이 생길 리 없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편안히,”
“아참! 도청기라든지 감시 카메라 같은 거 안 심어났죠?”
뜨끔!
“무, 물론입니다.”
“믿어요~”
웃으면서 믿는다고 말하는 게 어찌나 섬뜩했던지, 그 잠깐 사이에 식은땀이 나와서 직원의 등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그 직원은 국정원에서 도감청 장비를 설치했을 확률이 100%라 생각했지만 정말인지 본인이 확인해 줄 수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일 뿐 정말인지 아닌지는 본인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더구나 그 장비를 설치한 목적의 면전에 대고 말하는 건 긁어 부스럼이었으며 괜히 얽히면 곤란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직원은 얼른 도망쳤다.
* * *
경완은 흐릿한 눈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침대는 과학이라지? 감방의 침대로는 따라잡기 힘든 수면 품질에 그는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침대에서 벗어난 그는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주방으로 가서 시리얼 한 그릇에 우유를 부었다. 따뜻한 밥과 국을 주던 교도소의 아침이 문득 생각났지만 이것도 나름 괜찮았다. 다이어트다, 헬스다 뭐다, 돈 주고 철들러 가는 이 영양 과잉의 시대에 간편하게 아침 한 끼를 해결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경완은 살짝 눅눅해진 시리얼을 입에 넣었다. 역시 시리얼은 우유를 붓자마자 먹는 것이 아니라 시리얼이 우유를 살짝 빨아들인 후에 먹는 게 제맛이었다.
식사를 끝낸 그의 눈에 거실의 소파와 게임기가 들어왔지만 일단 눈을 돌렸다. 오늘은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은 경완은 대문 밖으로 나와 옆집으로 향했다.
띵동!
잠시 기다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경완은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또 잠시 기다렸지만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경완이 아니었다.
띵동띵동띵동띵동띵…….
[누구세요?]
마치 편집증 환자처럼 계속 눌러지는 초인종 소리를 참다 못해서인지 마침내 인터폰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경완이 말했다.
무한전생-더 빌런 16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