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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60화 (160/367)

14-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옆집 사람인데요…….”

[네, 그래서요?]

“거기 국정원인 거 아는데 시치미 떼지 말고 문이나 열어주세요.”

[…….]

느닷없이 들이박는 말에 상대는 한참이나 대답이 없다가 말없이 대문의 잠금장치가 툭하고 열렸다.

경완이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관에서 어떤 여자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 뒤로 또 남자 한 명이 급히 따라 나오며 경완에게 사정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 선생님.”

경완은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둘이 야한 짓이라고 하고 있었어요?”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느닷없는 말에 남자도 여자도 화들짝 놀랐지만 경완은 짓궂었다.

“딱 불장난하기 좋은 상황이잖아요.”

“저 가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불륜?”

“아닙니다!”

남자가 언성을 높이며 얼굴까지 붉혔다. 보아하니 진짜 아닌 모양이었다.

“아쉽네.”

그러니까 뭐가 아쉬운데?

불륜의 멍에를 뒤집어쓸 뻔한 남자가 눈빛으로 항의하자 경완은 솔직하게 말했다.

“약점 하나 잡아서 운전 좀 시키려고 했더니 이렇게 되면 부탁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

양아치도 이런 생양아치가 없다. 남자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음에도 경완은 구~욷이 꿋꿋하게 용건을 꺼냈다.

“제가 운전면허가 없어서 그런데 차 좀 태워주실 수 있어요?”

“……저희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이런 뻔뻔한 인간은 처음 봤다는 표정으로 국정원 요원이 대답했지만 그렇다고 ‘아! 예,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갈 경완이 아니었다.

“에이~ 왜 이리 관료주의에 물든 공무원인 척하실까? 국정원이면 좀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지 않아요? 평범한 공무원이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몰래 들어가진 않잖아요.”

“…….”

남자의 머리에 방한 중인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수행하던 특사단 숙소에 침입해서 노트북 등에 있는 자료를 복사하다가 갑자기 돌아온 특사단원들에게 걸린 사건이 떠올랐다.

국정원의 명예에 똥칠한 사건이 느닷없이 언급되자 남자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상대의 흑역사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경완의 뻔뻔함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 약한(?) 경완이 가만있을 수 없어 한 발 양보(?)했다.

“아아, 알았어요. 내가 명분까지 만들어 줄게요. 이경완에게 운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근접감시. 이 정도 명분이면 괜찮잖아요?”

아주 그냥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작두타고 다 하는 경완의 급발진에 남자의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머리가 멍멍 하고 가슴이 먹먹하고 귓구멍이 웅웅했다.

그런 그를 구해준 건 동료 여성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운전하죠.”

목소리를 들어보니 인터폰을 받은 그 여성임이 분명했다.

그녀가 경완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국정원 소속 오하나라고 합니다. 제가 태워드리겠습니다. 어디 가실 건가요?”

“가장 급한 건 식료품과 스마트폰이요.”

“그런 대리점부터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완이 고개를 살짝 숙이자, 오하나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차고로 이동했다.

“하나 씨.”

남성 요원이 걱정이 되는지 그녀를 불렀지만 그를 돌아보는 그녀의 눈빛이 말을 더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것은 국정원 요원의 임무였다.

그리고 경완이 그런 분위기에 초를 쳤다.

“아유~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으려는 줄 알겠어요. 대단히 진지하셔서 제가 다 민망할 지경입니다. 어디 전쟁 나가요?”

“…….”

“…….”

그러자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시선을 돌렸고 오하나는 차고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 * *

승용차에 탄 경완과 오하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조수석이 아니라 뒷자리에 탄 경완의 예의 없음에 열을 받은 것일까?

뭐, 그런 거에 신경을 경완이 아니지만 빨간불이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운전을 방해해선 안 되지 않은가? 본인도 타고 있는데.

“뭐 좀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이관영 차장님 아세요?”

“……2차장님은 어떻게 알고 계세요?”

그 물음에 경완은 오하나라는 국정원 직원이 이관영 직속은 아니거나 국정원 내부에도 파트별로 기밀을 유지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대충 그렇게 감을 잡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 제가 일본에 간 일이 있거든요.”

“알아요.”

무려 도쿄 경시청에서 인질극을 벌였지.

그런 생각을 하는 여자의 귀에 경완의 말이 이어졌다.

“그 일의 전후로 해서 신세를 좀 졌죠.”

“2차장님에게요?”

“정정하죠. 서로 좀 도왔죠.”

경완은 이관영이 일본 돈 먹고 청탁 들은 거 입 다물어줬고, 이관영은 그걸 반쯤 토해내서 경완의 계좌를 빵빵하게 만들어주고. 지금 불씨재단에 들어간 돈의 절반 이상이 그때 나온 돈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상부상조 아니겠는가? 이관영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경완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말에 오하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도교 경시청에서 인질극을 벌인 것이 혹시 이관영의 플랜 중 하나였다는 말인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국정원 내 대(對) 일본 비둘기파로 유명한 이관영이 일본에 그 난리를 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오하나는 그 일이 오롯이 경완의 거짓말 판별능력과 국정원 내 일본 뇌물이라는 초유의 치부가 얽혀서 일어났다는 전후 맥락에 대해선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상상력이 빈곤하다기보다는 그에 관해 눈치챌 정보도 없었다. 뭐 정보가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믿으려면 한참이나 교차검증을 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사라도 드릴까 해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괜찮을까요?”

이관영에게 연락해 줄 수 있냐고 묻는 말에 오하나가 대답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보고하겠습니다.”

비록 이관영 직속은 아니지만 경완의 능력을 생각해 봤을 때 이렇게 끈을 연결해 둘 수 있다면 나쁜 건 아니었다.

그녀가 경완에게서 얻은 정보를 어떻게 보고할까 고민하는 사이에 휴대폰 대리점 앞에 도착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금방 끝날 거예요.”

경완이 문을 열고 나가자 오하나는 차 안에서 기다렸다. 같이 따라 나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그건 경완에게 부담을 느껴서이기도 했고, 한국인 종특에 기인한 빨리빨리 개통 서비스 때문이기도 했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도 가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설마가 사람 잡았다.

“아악!”

“겨, 경찰 불러!”

소란이 일어난 곳은 바로 경완이 들어간 휴대폰 대리점이었다.

오하나가 급히 들어가니 경완이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점원의 멱살을 잡고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선생님! 진정하세요!”

오하나가 급히 경완을 말렸다.

경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홀로 이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는 듯이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왜 들어왔어요?”

“왜 들어왔긴요! 이렇게 일이 생겼으니까 들어왔지!”

“이게 무슨 일이에요?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폰팔이 새끼 하나가 생전 처음 휴대폰 장만하는 사람 호구 잡으려다가 걸려든 것뿐이죠.”

그게 일이 아니면 뭐가 일이란 말인가?

“선생님! 사면받으신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이러시면 많은 사람이 곤란해져요!”

“그건 제가 아니라 이 새끼에게 달려있죠. 이 새끼가 얼마나 정직하고 신속하게 휴대폰을 개통해주느냐에 달린 거 아니겠어요?”

“알겠으니까 일단 손을 놓으시죠!”

“이거 완전 양아치 새끼라서 손을 놓자마자 지랄할 것 같은데요.”

“제가 처리할 테니 더 이상의 폭력은 안 됩니다.”

경완이 손을 놓고 물러서자 오하나는 창백한 얼굴로 숨을 고르는 폰팔이 점원에게 다가가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그녀의 말을 듣는 폰팔이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경완을 힐끔거렸다. 그리고는 멱살이 잡혀 질렸던 그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렸다.

아마 경완의 이름을 조용히 꺼내 입막음을 시키는 모양인데 나쁘진 않았다.

아니, 그의 기대대로였다. 은밀히 움직이는 국정원이라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습성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무색하지 않았다.

삐용삐용~!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군가 벌써 신고한 모양이었다.

경완이 혀를 찼다.

“쯧. 이렇게까지 투철한 시민의식을 발휘할 필요는 없는데…….”

“…….”

그 말에는 오하나 역시 극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 * *

서둘러 몇 군데 전화하는 것으로 사건을 매듭지은 오하나의 얼굴엔 피곤이 서렸다. 그리고 그 뒤로 경완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나왔다.

“수고했어요.”

격려와 칭찬의 말에도 욕을 박고 싶은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

오하나는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욕설을 삼키며 말했다.

“타세요. 식료품 사야 한다면서요?”

“빨리 사고 갑시다.”

“혹시 더 필요한 거 없습니까?”

“스마트폰도 있으니 인터넷으로 사면 돼요.”

그래서 핸드폰 가게를 가장 먼저 온 것이다.

방구석에서 한 번을 안 나가도 원하는 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이 좋은 세상을 누리려면 스마트폰이 필수였다.

개인인증이니 보안이니 하는 것을 편히 통과하려면 본인명의의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니까.

그 말에 오하나는 다행이다 싶었다. 정말 그렇다면 오늘 같은 일은 또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 기분에 장단을 맞춰주듯 마트에서 식료품을 살 때도 별일이 없었다.

한 사흘쯤은 말이다.

띵동!

“또 왔군.”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괜찮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팀장님.”

띵동띵동띵동띵동띵…….

그새를 못 참고 미친놈마냥 초인종을 누르는 경완으로 인해 오하나는 저절로 욕설을 입에 담았다.

“미친…….”

그녀는 대문을 열고 나가 경완과 마주하며 그에 관해 항의했다.

“한 번만 눌러주세요. 고장 나겠습니다.”

“바빠서 못 들은 줄 알았어요.”

상대가 바쁜 것 같으면 기다리면 되지 무슨 미친놈마냥 초인종을 그렇게 눌러대?

“그리고 이정도로 고장 나면 초인종 업체를 고소해야죠.”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태도에 오하나는 할 말은 많지만 꾹 참고 용건을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신가요?”

“당연히 차죠.”

“……운전면허 딸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유~ 제가 운전을 왜 해요? 초능력으로 뛰어다니지.”

‘그럼 그렇게 다니시면 되겠네요’라고 대꾸하고 싶은 오하나였지만 시민들의 눈을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경완이라는 인간이 사면받았다고 사방에 광고할 생각인가? 명색이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 소속으로서 할 말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완이 그렇게 뛰어다니면 그를 감시한다는 자신들의 임무에도 애로사항이 꽃핀다. 차를 타고 도로를 따라 달리는 이경완이 초능력으로 건물 옥상을 뛰어넘고 다니는 이경완보다 추적하기 쉬운 건 당연했다.

오하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어디 가시려고요?”

“맛집이요. 이 근처에 괜찮은 양갈비 전문점이 생겼데요.”

오하나는 문득 저녁 먹을 때가 된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뻔뻔하고 염치가 없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경완이 이렇게 말을 이었다.

“거기 남자분도 같이 갑시다. 어차피 저녁 먹을 거 다 같이 먹으면 좋잖아요.”

무한전생-더 빌런 1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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