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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62화 (162/367)

15-인간의 탈을 쓴 카미사마

경완이 옆집 국정원에게 고기를 대접한지 며칠 후 사람이 방문했다. 매일 게임을 즐기는 충실한 삶(?)을 즐기고 있던 경완은 자신을 방문한 사람을 보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오랜만입니다.”

“그렇군요.”

경완을 향해 어색하게 웃는 그는 다름 아닌 이관영이었다.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요.”

“하. 하.”

이관영은 어색하게 웃었다. 경완이 일본에서 저질렀던 일로 다시는 안 봤으면 했지만 결국 업무상 어쩔 수 없이 그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관영은 경완과의 쓸데없는 대화를 최대한 줄이려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요전번에 있지 않습니까,”

“아유, 왜 갑자기 존댓말을 하고 그러세요? 어색하잖아요.”

“하, 하. 하하.”

너 같으면 원전 테러하고 중국 주석을 포함한 공산당 고위 간부의 눈알을 숟가락으로 파낸 인간을 막 야야하고 부르고 싶니?

이관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반말을 요구하는 경완의 요구를 한 귀로 흘리고 자신이 찾아온 용건에 관해 말했다.

“야마모토 시구치 기억하십니까? 한국 이름이 이완호인.”

“물론이죠.”

그게 얼마나 오래된 일이라고 벌써 까먹었겠는가?

이관영이 말을 이었다.

“그 일과도 관련이 없는 것이, 일본 정부에서 우리나라 정부에 비선으로 도움을 요청했어요.”

“에이, 됐어요. 안 가요.”

경완은 이관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바로 감이 왔다. 일본이 경완을 간보려다가 들키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외교적으로 해결을 보려는 모양이었다.

간사한 새끼들. 저번에도 느꼈지만 일본에 가서 좋은 꼴을 보기 힘들었다.

“그러지 말고 이야기를,”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또 그러시네. 이번에도 일본에서 돈 먹은 거 있어요?”

경완의 말에 이관영은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이번엔 아닙니다! 손목 내밀 수도 있어요!”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돈을 먹은 건 아니지만 혹시 몰라 그가 내민 손목을 턱 잡은 경완이 질문을 던졌다.

“일본에서 돈이나 향응을 받았어요?”

“아뇨.”

“누구한테 이득이 되는 이야긴데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관영의 말에 경완은 찜찜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손을 놓았다.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이야기라고? 그래서 한 번 들어는 보기로 했다.

경완이 이관영에게 자리를 권하자 그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히 줄이자면 후쿠시마를 빨리 치워서 해양 환경을 보전하자는 이야기죠.”

“……. 끝인가요?”

“어. 좀 더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으며, 검은 반도체라고 불리는 김 양식에 있어서…….”

역시 본론보다는 부연설명이 길었다.

대충 국가의 이득에 관한 부분은 빼고 경완이 얻을 이익은 일본의 막대한 사례금과 안심하고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 큰 바다를 생각하면 유출되는 방사능이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해산물을 찜찜한 기분으로 먹는 것보다는 안심하고 먹는 편이 맛이 더 좋지 않겠어요?”

솔직히 원자력을 사용하던 초기부터 그 많은 원전 선진국들이 자기네 땅에 원전 폐기물을 버리기 싫어서 먼 바다에 버렸던 걸 생각하면 새삼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되니 마니 호들갑 떠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일본으로선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들은 버렸으면서 왜 우리는 버리면 안 되는데?

아무튼, 이관영의 논리는 요컨대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으니 방사능 걱정 없는 바다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1~2년이면 태평양 한 바퀴를 돈 방사능이 제주도까지 닿고 동해, 서해까지 퍼진다나?

이상하게도 이관영은 굳이 생물농축 문제까진 꺼내진 않았다. 그 부분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요소일 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러한 설득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바다가 깨끗해지는 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렇기는 한데, 이게 꼭 싸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는 모양새라 기분이 좀 거시기해요.”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의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원전을 지을 때 지진이나 쓰나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짓는 모양이죠?”

지진이나 쓰나미야 지구의 탓이겠지만 그 뒤에 이어진 일련의 사태와 대응을 보면 후쿠시마는 명백히 인재(人災)였다. 고로 후쿠시마 사태는 전적으로 일본의 탓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세상엔 멍청한 인간들이 많으니까.

“솔직히 기분이 좀 나쁘거든요.”

“어느 부분이 기분이 나쁜지…….”

“무책임하게 사태를 악화시켜 놓고 단 한 명도 책임을 지지 않았잖아요. 그런 놈들 뒤 닦아주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요.”

심지어 고작 3명을 기소했는데 그 3명이 또 전원 무죄라지?

경완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태어난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아마 일본은 무정부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멀쩡한 윗대가리 놈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멀쩡한’이란 신체 상태를 말하는 거지 정신상태를 말하는 건 아니었다.

이관영은 이경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완벽히 납득했다. 이경완이라는 인간이라면 우선 일련의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이들은 일단 반병신으로 만들어놓고 방사능 제염이니 포스필드 청소니 하는 것을 논의했을 것이다.

이관영은 두근두근한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경완 씨가 원하는 것이.”

“에이. 한국인인 제가 일본에 요구할 게 돈이랑 안전밖에 더 있겠어요? 그냥 기분 문제일 뿐이에요. 돈을 얼마나 주든 도와주기가 기분 좆같다는 거죠.”

무한전생-더 빌런 1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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